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63화 (63/260)

# 63

63화.

지하 플레이어로 거듭나 개미굴을 탐색하고, 전직 퀘스트를 받아 이세계를 다녀오기까지 하면서 정시우는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세계의 흔적은 너무나 뚜렷이 존재하는데, 어째서 정작 던전에서 인간을 만나 볼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도 몬스터도 똑같이 신을 숭앙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신의 명을 받아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것은 몬스터뿐이란 말인가.

인간이 적으로 나타나는 일은 왜 없었단 말인가.

어쩌면 정시우는 지금 이 순간, 그 의문의 답과 조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 시우야, 동일 씨가 이상해!”

“아니, 이 자식들 다 이상해.”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이서희에게 정시우가 냉정하게 딴지를 걸었다. 천동일이라 불린 인간은 시작에 불과했다. 신의 힘에 미쳐 버린 다른 인간들에게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명백하게 이질적인 푸른 비늘이 뺨 위로, 손등에, 복부에 돋아나 전신을 뒤덮는다. 인간의 눈동자가 급격히 충혈되며 세로로 죽 찢어졌다.

신의 힘에 홀린 인간들이 일시에 도마뱀으로 변하고 있었다.

[따르라.]

마침 좋은 타이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원지는 결계를 찢어발기고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신전. 청백색의 돌로 지어진 작은 건축물, 그 안에 세워진 신상이 직접 입을 열어 말하고 있었다.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현혹하는 무시무시한 권위와 권능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을 듣는 정시우는 이전 전직 퀘스트를 완료할 때 들었던 여자의 목소리에 비해서는 살짝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믿고 따르면 반드시 쟁취하리라.]

“비늘을?”

[승리를!]

“시, 신이시여! 제 동료들이 이상합니다!”

이미 대충 놈들의 속내를 파악하고 있는 정시우와 달리 이서희는 당황하여 신에게 따졌다. 그러나 신은 태평하게 말했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힘에 비해 그들의 자아와 육신이 너무나 허약했기에,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태까지 쌓아 온 것을 버리게 되었을 뿐. 그들도 오롯이 나의 것이 되면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즉 네가 인간들을 몬스터로 만든 거구나.”

“내 길드원들을 어째서! 아무리 힘이 거대해도 저건 이미 그들 본인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

[쿠아아아아아아!]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도마뱀이 되어 버린 플레이어들이 이를 드러내며 정시우와 이서희에게 덤벼들었다. 그 모습은 아까 정시우와 이서희가 맞서 싸운 몬스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시우는 그제야 그들에게서 날개가 사라지고 없음을 깨달았다. 저래 놓고 잘도 인간을 플레이어로 만들겠다고, 그는 속으로만 빈정거렸다.

[쿠가아아아아아!]

[인가아아아안……!]

“이이이이익!”

그러나 정시우가 이대로 놈들을 때려눕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이서희의 손에서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도마뱀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도저히 그들을 죽일 수 없었던 이서희가 소형 결계로 놈들을 봉인한 것이다.

적어도 마력이 유지되는 5분 정도는 꼼짝도 못할 터. 천금 같은 유예였다.

“시우를 플레이어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잖아! 설마 시우도 괴물로 만들 셈이었던 거야!? 그래 놓고 내가 바라는 일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당당하게도!”

상황을 일시정지시킨 그녀가 곧장 신상을 향해 돌아서며 새되게 외쳤다. 그러나 신상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플레이어? 그따위 허울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힘의 형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날개를 원한다면 주마. 물론 그 안에 깃든 힘은 그깟 날개인형들 따위의 그것과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하리라! 힘이 있으면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수 있으니, 나는 거짓말 따윈 하지 않았다.]

“그걸……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야……!”

이서희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가 신의 목소리의 미혹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들과 같은 모습이 되리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너와 너의 남자는 모두 그 자격을 증명했으니, 지금의 그릇 안에 온전히 나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너는 저들과는 다르다. 선택받은 것은 저 버러지들이 아닌 너이다.]

자격 증명이라. 정시우는 가만히 생각했다.

어쩌면 결계 주위에 포진해 있던 몬스터들을 해치운 것이 그 과정이 아니었을까. 죽으며 정시우에게 영혼을 넘겼던 그 도마뱀들은, 지금 이곳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도마뱀들처럼 한때는 인간이었던 자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내게 오라. 너는 나를 따르겠다 이미 맹세하지 않았던가?]

“……후.”

만약 정시우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서희도 다른 길드원들처럼 눈앞의 힘에 취해 냉큼 그의 제안을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굳이 이런 과정도 필요 없이 길드원들과 함께 변이의 순간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그 결과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는지 몰라도, 더 이상 인간 이서희라고는 부를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로 거듭났겠지.

“아니, 난 맹세한 적 따윈 없어.”

[뭐……?]

하지만 막대한 신의 힘 앞에서 자신보다 먼저 타인을 떠올렸던 그녀는, 상대의 제안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미 제정신을 되찾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절대적인 힘이 아닌 권리의 공유였으니까.

“나는 너 따윈 믿지 않아.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멋대로 판단해 망가트리는 네놈 따윈!”

그것이 그녀를 인간으로 남게 했다.

[이, 어리석은……!]

“시우야, 미안해. 나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꽝인 것 같아.”

전투를 각오하고 전신의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말하는 이서희에게, 정시우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대꾸했다.

“괜찮아.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어.”

“뭐……?”

“널 못 믿었다는 게 아니라.”

정시우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 손에 거랑의 앞발이 잡혀 나오는 광경을 보며 이서희도, 신상조차도 눈을 부릅떴다. 그전까지는 이서희도, 신이라 칭송받는 이조차 정시우에게서 마나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정시우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신이란 놈들을 안 믿었다는 얘기야!”

직후, 장내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휘둘러진 슬레지 해머가 신상을 산산조각 냈다. 신의 지극히 일부나마 그 힘을 담고 있던 신상은 본디 간단히 부서질 만큼 연약하지 않았으나 정시우의 괴력에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가, 감히 나의 신성을 훼손하다니!]

“너, 무슨…… 역시 네가 중국집 라이더였구나!?”

“미안하지만 그렇게 부르지는 말아 줄래?”

정시우는 단박에 신상을 부수곤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려, 이번엔 마나를 주입해 거대화했다. 순식간에 망치에 달린 추가 3미터, 5미터 이상으로 커지며 일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떻게, 그 안에 가득 마나가……!”

[이, 이이이이……!]

신상이 무너지고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신의 의식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놈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지구에서 도저히 겪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 불경한 자가…… 그만두지 못해!]

“역시 그만두랄 때 저질러 버리는 순간이 제일 짜릿하지!”

[그마아아아아아안!]

신전이 푸른 번개에 휩싸여 폭발을 일으키건 말건, 정시우는 해머를 그대로 내려쳐 신상을 부수었던 때보다도 더욱 강하고 화끈하게 신전을 무너트렸다!

[네놈…… 이제야 알겠…… 넌……!]

“이런 새끼들은 꼭 퇴장할 때만 되면 목소리에 버퍼링이 걸린다니까.”

[카…… 지……!]

“그렇게 부분적으로 말해서 날 찝찝하게 할 바에야 그냥 잠시 후에 다시 만났을 때 얘기하자. 바이 짜이찌엔!”

어떻게든 복선을 깔아 보려는 신이었으나 정시우는 놈의 흔적도 남지 못하게 해머를 두들겨 신전을 가루 내었다. 그래도 제법 컸던 건축물이 순식간에 한 줌의 먼지로 변하는 광경을 보며 이서희는 그저 아연해할 뿐이었다.

“어떻게 신전을…….”

“후우.”

그녀가 신전에 결계만 쳐 두었던 것은 그녀가 신의 목소리를 따라서이기도 하지만, 그녀와 길드원들의 힘만으로는 신전을 어떻게도 할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정시우는 대체……!

“이제야 좀 상쾌하네.”

“하…… 하하…….”

“그나저나.”

허탈해져 웃고 있는 이서희를 놔두고 돌아선 정시우는 여전히 결계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인간들을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신의 힘을 거둔다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구나. 골치 아파지는데…….”

“아까부터 저들에게 집중하고 있었지만…… 저들은 완전히 몬스터예요, 오빠.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겐 지금 저 상태가 ‘정상’이에요. 만약 저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몬스터들도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돼요.”

이쪽 방면의 전문가인 수아린이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그녀는 본디 사제인 만큼 상대의 이상을 감지하고 치유하는 데에 특화된 스킬이 있었는데, 그 스킬로도 도저히 저들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정시우는 혀를 차며 긍정했다.

“그래. 내 눈에도 얼추 보여. 놈들의 존재의 근본이 뒤바뀌어 버린 게……. 빌어먹을, 그래 놓고 잘도 그런 말들을 지껄였단 말이지.”

“신의 힘이…… 인간을 몬스터로 만들다니.”

한편 제법 진지하게 신의 존재를 믿고, 그들에게 축복을 받기를 원했던 용세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해 절망 어린 어조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을 토닥여 주었다.

“더 늦기 전에 깨달아 다행이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정시우의 시선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도마뱀 인간들을 향했다. 신의 기척이 사라졌음에도 놈들의 적의와 증오는 계속 증폭되기만 할 뿐 도저히 가라앉을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신의 힘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몬스터가 되었다는 뜻이다.

[키히이……!]

[히, 힘…… 인, 간……!]

대화가 통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적의로만 움직인다면 그것이 설사 한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도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 적어도 정시우는 그것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이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잠깐만, 시우야.”

그런데 그가 원래 크기로 돌아온 해머를 꽉 쥐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이서희가 다급히 나서며 그를 붙들었다.

“네게 그 책임을 지울 수는 없어. 그, 그들은 내가 이끌던 이들이고, 그러니까 책임을 진다면 내가…….”

“네가 다른 사람의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 서희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정시우는 지체하지 않고 해머를 들어 올리며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이 저들의 책임을 질 뿐이지.”

[쿠아칵!]

[켁!]

해머가 허공을 갈랐다. 핏물조차 남지 않았다. 소름끼치게 농축된 마나를 담은 슬레지 해머는 한때 인간이었던 도마뱀들을,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감싸고 있던 결계까지 함께 깔끔하게 지상에서 지워냈다.

“아, 아아…….”

장내의 모든 생명반응이 소실되었다. 이서희는 끝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시우 역시 해머를 회수하곤, 놈들의 영혼이 손등의 문신에 흡수되는 것을 느끼며 혀를 찼다. 아까는 바빠서 그냥 넘어갔었지만, 과연 아까 해치운 도마뱀들도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이서희의 나머지 길드원들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신전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자마자 부수었더라면…….”

“쯧.”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급기야는 자책을 시작하는 이서희. 사실은 오히려 이런 상황에 강철 멘탈을 유지하고 있는 정시우 쪽이 초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후.”

그는 한숨을 쉬며 해머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신전이 무너진 자리,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공간에 탐색기가 강렬하게 반응하며 그곳에 ‘침입자들의 통로’가 있음을 알려 오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을 탐색하는 일은 잠시 후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서희야, 일단 쉬자. 그 다음에 생각하자. ……내 얘기도 그때 해 줄게.”

“……응.”

이서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움직일 의사는 조금도 없어 보였기에 어쩔 수 없이 정시우가 그녀를 업어야 했는데, 그녀는 그의 등에 업히고서야 조금 진정된 듯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고마워, 시우야…….”

“으드득.”

“선배님, 잇몸 건강 조심하세요.”

“……그래서 얘네는 뭐야?”

“그것도 나중에 설명해 줄게.”

정시우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아직 다른 플레이어들은 텐구산에서 일어난 소동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