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정시우]
[파괴자(Breaker)]
[Lv 85]
[근력 ? 330 민첩 ? 300 체력 ? 310 마력 ? 120]
[내성 ? 독 Lv10, 화염 Lv6, 저주 Lv6]
[패시브 스킬 ? 직감 Lv9, 카오스 테일 Lv3, 무지는 용감 Lv9, 소울 컬렉트 Lv3, 용의 위엄 Lv5, 헤비 웨폰 배틀 Lv6]
[액티브 스킬 ? 괴력 Lv1, 부여 Lv33, 강타 Lv30, 전투질주 Lv30, 크리티컬 불릿 Lv11, 워 크라이 Lv12, 스톤 스킨 Lv13, 크루얼 차지 Lv7]
“와오.”
정시우는 순수한 감탄사를 냈다. 육신을 점검하며 스스로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눈에 정리된 것을 보니 새삼 실감이 드는 것이다.
“이건 그냥 다른 사람인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클래스. 지하 플레이어라는, 어딘가 플레이어의 아류를 떠올리게 하던 명칭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파괴자라는 이름이 들어앉아 있었다.
또 육신이 개변되는 과정에서 모든 스테이터스가 크게 상승했다. 순수 레벨로만 따지면…… 역시 따지지 않는 편이 좋겠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패시브 스킬들이 성장했다는 사실. 그의 육신에 직접 새겨지는 능력인 만큼 육신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엉덩이 뒤로 솟아난 도마뱀 꼬리…… 카오스 테일 또한 레벨이 올라 외관이 변화되었다. 보다 길고 굵어진 꼬리는 이젠 제법 태가 났다. 정시우는 괜히 꼬리를 몇 번 휘둘러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패시브 스킬뿐만 아니라 액티브 스킬의 성장도도 컸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번에 새로 생긴 액티브 스킬이었다.
[괴력 Lv1]
[마나를 소모해 자신이 원하는 신체 부위를 극한에 가깝게 강화시킨다. 폭발적인 힘을 끌어낼 수 있지만 스킬을 사용한 후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완전 심플하네…….”
정시우는 이미 부여 스킬로 육신을 강화하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괴력 스킬은 오로지 그의 육신을 강화하는 것만을 목표로 마나를 변형시키는 고위 스킬이었다.
목적에 맞게 마나를 변형하는 부분만 보면 전투질주와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 수준에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전투질주는 끙끙대며 연구한다면 어떻게든 스스로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 괴력 스킬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전직 특전으로 얻지 못했더라면 제아무리 정시우가 자신의 육신과 마나를 다루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한들 스스로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빠, 오빠 팔에 희미한 문신처럼 새겨진 흔적이 보여요.”
“좀 이상하군요. 액티브 스킬이라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야 할 텐데요.”
“그렇지.”
괴력 스킬은 물론 정시우의 의지로 발동시키는 액티브 스킬이 맞았지만, 반쯤은 패시브 스킬의 영역에도 한발을 걸치고 있었다.
전신에 고유한 성질을 띤 마나 회로로 새겨진 것도 그렇고, 이 스킬을 쓰면 쓸수록 서서히 육신을 영구적으로 강화시키는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굉장한 스킬이었다. 물론…….
“후유증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원래부터 마나를 다루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전직을 하며 마나를 보는 눈이 더욱 좋아진 정시우.
그는 이제 전신에 새겨진 마나 회로만 봐도 얼추 그 스킬이 지닌 힘과, 그 뒤에 찾아올 대가의 견적을 내는 것이 가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유증 때문에 행동불능이 되는 자신의 미래가 그려질 뿐이었다.
“실전에서 바로 써먹기는 좀 그렇겠는데. 끙…….”
“고통과 공포만큼은 모든 플레이어가 끌어안고 가야 하는 숙제죠.”
게임과 현실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이 바로 그 두 가지다.
게임 속의 캐릭터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건, 얼마나 강하고 두려운 적을 마주하건 유저는 냉정하게 캐릭터를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꽃의 뜨거움, 얼음의 차가움, 관통상이며 자상의 고통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현대인은 고통에 너무 취약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공포도 마찬가지.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는 몬스터를 앞에 두면 플레이어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만다. 정시우가 지닌 스킬 용의 위엄도 적에게 공포를 불어넣어 행동에 지장을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단순한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투의 변수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겨 내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정시우는 아까 전직을 하던 순간, 그가 고통을 버티던 그때에 성장했던 패시브 스킬 ‘무지는 용감’을 떠올렸다. 어째서 그 스킬이 고통을 견디는 데에 도움을 주는지는 스스로도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건 조금 연습을 해 보자.”
“그래도 지금은 쉬셨으면 좋겠는데.”
따져보면 설악산에서부터 지금까지 정시우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계속 달리기만 했다. 그 덕에 터무니없이 강해지고 얼결에 전직까지 해치울 수 있었지만, 수아린은 그가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오빠는 이미 충분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걸요. 그러니 지금은 쉬어요, 네?”
“……그, 그래. 알았어. 하루 정도는 쉬지 뭐.”
정시우는 그에게 고운 얼굴을 들이밀며 휴식을 권하는 수아린에게 압도되어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미니 사이즈일 때는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의 박력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는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다. 과장 조금 보태 천사처럼 예쁜 소녀의 걱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정도는 쉬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오빠의 최대한이겠죠. 정말 이상하게 성실한 구석이 있다니까요.”
“그냥 눈앞에 길이 놓여 있는데 달리지 않는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을 뿐이야.”
그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린, 그 끝에 간신히 가능성을 붙잡은 이라면 누구나가 자신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수아린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침대에 몸을 눕히며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래. 추진력을 얻으려면 가끔은 무릎을 굽힐 필요도 있겠지.”
“그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쉬신다니 된 셈 칠게요.”
정시우는 자세를 편히 하며 눈을 감으려다 말고, 문득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아린을 보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너희, 계속 그 모습으로 있으려면 침대가 필요할 것 같다.”
“네? 어…… 그, 그렇네요.”
침대는 셋은 무리여도 둘이 충분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는 넓었다. 수아린은 순간적으로 정시우의 옆에 누우면 되지 않겠냐고 말하려던 자신의 입을 간신히 틀어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대담한 발언이었다.
“자, 잘 때는 다시 몸을 축소시키면 되니까요.”
“하긴, 그것도 그런가…….”
“저는 형님의 옆자리에서도 얼마든지…… 히익.”
프렌들리한 제안을 하려던 용세하가 수아린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 조용해졌다.
그러나 정시우는 이미 잠들어 있어 그 소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침대에 눕고 3초 만에 잠들다니 어쩌면 휴식 스킬이라도 마스터한 것이 아닐까 싶은 속도였다.
“아, 역시 많이 피로하셨던 모양이네요. 푹 쉬셨으면 좋겠는데.”
수아린은 정시우가 잠든 것을 보며 순식간에 표정을 풀었다. 용세하는 그녀의 태세 전환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무서웠기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수아린은 정시우의 머리칼을 가지런히 쓸어 넘기고는 이불을 끌어 그의 몸을 덮었다. 그녀의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
“다행입니다, 선배님.”
“……그래요. 이제 겨우 여기에 왔네요.”
비록 원래 몸으로 지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휴식처에 국한될 뿐, 아직 그들을 둘러싼 일들 중 해결이 된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그래도 수아린은 지금에 만족했다.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예전보다 더 좋았다.
“다행이지요.”
“……저는 먼저 쉬겠습니다. 선배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앗, 잠깐만요!”
그때 용세하가 알아서 몸을 축소시키더니 인형의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 딴에는 수아린을 신경 쓴다고 써 준 것이겠지만 막상 둘만 남아도 더 뻘쭘해질 뿐이지 않은가! 수아린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가는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그냥 이대로 있지 뭐.’
용세하처럼 인형의 집으로 들어가 자자니 뭔가 아깝고, 그렇다고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결과가 현상유지. 수아린은 가만히 정시우의 자는 얼굴을 지켜보고 있기로 했다.
‘더 잘생겨졌나?’
플레이어는 플레이어 후보로 선택받는 때, 레벨이 오르는 때, 전직을 하는 때마다 조금씩 신체 구조가 변화된다. 보다 자신이 개발한 특성에 적합하게 진화해 가는 것이다. 당연히 얼굴 또한 아주 조금씩이지만 변화했다.
정시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육신의 격렬한 변화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의 얼굴에서도 모가 난 부분이 많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마나는 모든 것을 강화하고, 진화시키는 에너지. 그 본질을 해석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대체적으로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는 아무래도 이전보다 매력적으로 변화한다. 워낙 조금씩 바뀌어 모르겠지만 아마 오랫동안 정시우를 만나지 못한 이들은 그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이전도 좋았는데.”
빈말로도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얼굴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그 인상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수아린은 이전의 그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아주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동안 그가 그녀와 함께하며 이렇게 변화해 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으으, 그만 생각하자.’
역시 용세하가 잔다고 했을 때 그녀도 얌전히 물러났어야 했는가.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핑크빛 망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주책이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정시우의 머리맡에 놓인 그의 폰이 진동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한 충전이 언제였더라,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그녀는 조심스레 폰을 집었다. 전화였다.
다른 이의 전화를 대신 받는 것은 실례지만 그렇다고 끊을 수도, 이대로 놔두어 기껏 잠든 정시우를 깨울 수도 없다. 수아린은 침대에서 물러서며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정시우 씨 폰입니다. 지금 정시우 씨가…….”
[……시우 새 여친?]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부터 들려온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곧장 수아린의 깃털날개가 뒤로 활짝 펴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 쌍심지도 켜졌다. 수아린은 본능적으로 대꾸했다.
“그런데요.”
[아…… 응, 그렇군요.]
“실례지만 용건이? 오빠 자는데요.”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이 나왔다. 수아린은 그런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말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냉철하고도 사나운 태도를 유지하는 그녀에게 전화 너머의 여자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단지 시우한테 알려 주고 싶은 게 있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시우는 항상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전화를 건 이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정시우를 잘 아는 듯한 저 아련한 목소리에 그녀의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째서란 말인가. 수아린은 감정을 조절하려 애쓰며 대꾸했다.
“그것 참 고마우셔라. 그런데 그게 하시려던 말씀과 무언가 연관이? 중요한 말이라면 제가 대신 오빠한테 전해 줄게요.”
[후우…… 플레이어가 되는 방법이 있다고 들어서,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어요. 그 녀석 엄청 좋아할 테니까요.]
“……네?”
수아린은 자신의 입장도 끓어오르던 분노도 남몰래 자라던 속상함도 모두 잊고 반문하고 말았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같았다.
인위적으로 플레이어를 탄생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