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56화.
[케이나의 악의]
[랭크 ? B++]
[공격력 ? 1,800 ? 2,200]
[숙련도 ? 0/500]
[옵션 - ???]
[듀라한으로 전락한 기사 케이나의 원혼과 마나가 집중되어, 언데드로서 소멸한 후에도 남은 머리통과 투구. 사악한 기운과 강도만은 여전하다. 듀라한의 기록을 품고 있어, 마나를 주입해 던지는 것으로 강력한 투척 공격이 가능하다.]
“와오.”
설마 듀라한이 머리통을 드랍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야 물론 플레이어들이 듀라한을 잡아 본 적도 없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으으으, 겉보기엔 투구지만 그걸 벗겨 내면 썩은 시체 얼굴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런데 봐, 공격력이 엄청난데?”
“대체 어디서 그런 공격력이 나오는 걸까요……?”
“글쎄, 이 마기 아냐? 이거 어째 점점 주위 마기를 흡수하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케이나의 악의]는 최소 공격력과 최대 공격력 모두 준수했다. 오히려 정시우가 뇌신의 라이플을 다룰 때 많은 마나 소모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시점에서는 뇌신의 라이플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줄 수 있었다!
“오빠, 정말 그거 쓰실 거예요……?”
“흠.”
수아린이 긴장하며 묻는 가운데 정시우는 듀라한의 머리통을 들어 올려 투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마침 시야에 들어온 엘리트 구울을 향해, 마나를 주입한 머리통을 그대로 내던졌다!
[칵!]
검은 투구를 달고 있는 듀라한의 머리통은 그대로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엘리트 구울의 몸통을 깔끔하게 분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듀라한이 머리통을 다룰 때 그러했던 것처럼 목표물에 명중한 직후 다시 정시우의 손아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옵션 ? 1. 투척 후 회수 가능 2. ???]
정시우가 이미 듀라한과 대판 싸움을 벌였기 때문일까? 아직 아티팩트의 숙련도가 0임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옵션의 힘이 드러났다. 비록 그 외관은 조금 거시기하다 할지라도, 그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짱이다!”
“그것 참 좋은 일이네요…….”
정시우가 돌멩이를 던지는 것도 그리 봐줄 만한 광경은 아니었는데, 이젠 듀라한의 머리통을 던지고 다니게 된다니! 그게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더욱 짜증났다.
그러나 정시우는 수아린이 짜증을 내건 말건 듀라한의 머리통을 이리저리 던져 가며 엘리트 몬스터들을 끝장냈다. 용세하는 날개를 활짝 펼쳐 언데드들 틈을 뚫고 달리며 마석들을 일일이 회수했다.
“거인의 비명도…… 찾았다. 좋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날뛰어 보실까.”
여태까지 날뛰었으면 되었지 대체 뭘 본격적으로 날뛴다는 것일까. 수아린이 한숨을 쉬며 지켜보고 있자니, 정시우는 듀라한의 머리통을 허공에 띄웠다가는 그대로 망치로 후려쳐 쏘아냈다!
[키이이이이이이!]
[아파, 아프다!]
[세에트나아아아크으으으으!]
가뜩이나 강한데 이젠 타격으로 인한 추진력까지 더해진 듀라한의 머리통, 케이나의 악의가 검은 레이저가 되어 궤도상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날아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정시우의 눈앞으로 돌아왔다.
그렇다. 정시우의 손아귀가 아니라, 그의 눈앞으로.
그것을 확인한 정시우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어렸다.
‘계획대로다.’
듀라한이야 그것을 항상 품에 끼고 다니기에 머리통을 팔꿈치 안으로 복귀시켰지만, 사실 이 회수 옵션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의념만으로 조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시우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불러들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의념이 명확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지만, 그의 정신력과 의지 정도면 충분했다.
회수 시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목표물에 명중하지 않더라도, 혹은 목표물에 명중하고 나서도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머리통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즉, [투척 후 회수 가능]이란 옵션은 사실 [투척 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위치로’ 회수 가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물론 케이나의 악의가 지닌 성능에 비하면 옵션의 디테일함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능력이 괴물 같은 집중력과 반사신경을 지닌 정시우에게 주어진다면…….
“흡.”
정시우는 케이나의 악의를 망치로 후려쳐 날렸다. 그것이 목표물을 부술 때쯤, 그는 다른 손에 쥔 망치를 휘두르며 그 궤도상에 케이나의 악의를 불러들였다.
그러면 마침 휘둘러지는 망치에 얻어맞은 케이나의 악의가 재차 추진력을 얻어 쏘아 내지는 것이다!
[쿠엑!]
“하!”
[카흑!]
[키아아악!]
그것이 반복되자 마치 서커스라도 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정시우가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케이나의 악의가 회수되어 다시 쏘아 내지니, 언데드들은 정시우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케이나의 악의에 분쇄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쿠아아악!]
[주, 죽음. 놈이 죽음이다!]
[크겍!]
[칵!]
쏘아 내고 회수하고, 회수하고 쏘아 내고의 간극이 너무나 짧아 마치 정시우가 무한하게 머리통을 쏘아 내는 것만 같았다. 단지 힘이 강할 뿐만 아니라, 정시우가 어마어마한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을 지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 설마 듀라한의 머리통을 저렇게 다룰 줄은……. 듀라한보다 더 무서운걸요.”
“저렇게 유용하게 다룬다니 죽은 케이나가 참 좋아하겠군요…….”
정시우는 자신이 쳐 낸 머리통의 비행 궤도를 읽었고, 자신의 움직임을 컨트롤했으며, 언데드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이 세 가지만 파악한다면 케이나의 악의를 무한히 쏘아 내 먼 거리의 적들을 전부 쳐부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았다.
단.
“이거 마나가 제법 소모되네.”
“한 번 쳐 낼 때마다 마나를 담아야 하니 당연하죠.”
케이나의 악의를 한 번 쏘아 낼 때 소모되는 마나의 양은 크리티컬 불릿을 한 번 쏘아 낼 때 소모되는 마나의 양과 얼추 비슷했다. 물론 크리티컬 불릿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품고 있다지만 도저히 난사할 수준은 못되었다.
‘이 정도로 해 둘까.’
정시우는 마나의 소모로 인해 몸을 쥐어짜는 것만 같은 압박감에 숨을 몰아쉬며 케이나의 악의를 완전히 회수해,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육신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자 엉망진창으로 변한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제대로 폐허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니 다행이에요, 정말.”
새로운 무기를 얻고 조금 들뜬 탓에 무리를 했다. 케이나의 악의는 무너진 성벽 터를 무수히 가로지른 끝에 수천 마리 이상의 언데드들을 분쇄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남은 언데드들은 너무 약해 정시우의 눈에 안 들어온 녀석이거나, 아직까지 이성이 남아 있어 필사적으로 그를 피한 녀석들뿐이었다.
“하지만 너희들도 봐줄 수는 없거든. 자, 고통 없이 끝내 줄 테니 들어오도록 해.”
[세, 세에트나아크…… 세에트나아아크의 재애리이이임……!]
[죽음, 압도적인 죽으으음……!]
아무래도 못 이길 것 같으니 언데드들이 멀쩡한 인간을 세트나크 취급하기 시작했다! 정시우는 인간이나 언데드나 말로 해서는 알아먹지를 못한다는 진리를 새삼스레 깨달으며 한숨을 쉬곤, 이내 두 주먹의 망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래, 꼭 내가 움직여야 한다 이거지.”
죽은 도시 세리엔에 쳐들어온 언데드의 대군이 완벽하게 전멸하기까지, 그로부터 20분 동안 더 정시우는 몸을 놀려야 했다. 기어이 단 한 명의 인간이 수만의 언데드 위에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그 끝에 정적만이 남았다.
“와, 도시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는데요, 이거.”
“서적을 미리 회수해서 다행이지.”
정시우는 용세하의 말에 성벽 잔해를 털어 내고 엘리트 구울이 남긴 마석을 회수하며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제아무리 마석을 엘리트 몬스터만이 드롭한다고는 하지만 쳐들어온 언데드의 규모만 수만. 전장에 넓게 퍼진 마석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정시우가 지닌 펜듈럼이 마석에 반응하는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전량 회수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걸로 끝인가.”
“듀라한처럼 쓸모 있는 걸 남기는 녀석은 별로 없네요. 그래도 좋은 던전…… 좋은 세계였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이런 게 전직 퀘스트라면 몇 개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역시 퀘스트의 본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요.”
수아린이 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반쯤 무시하며, 정시우는 적당히 언데드 사체가 없는 곳을 골라 철퍼덕 주저앉았다. 케이나의 악의를 비롯해 자신의 무기들을 점검하고, 그 다음으로는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이 도시의 서적들을 꺼내었다.
“이제 탐구해 볼까.”
“과연 이 서적들을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정보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요.”
수아린의 말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첫 번째로 획득했던 노트가 친절하다 싶을 만큼 다른 서적에는 난해한 말들만이 가득했다. 심한 경우 빛의 신 루이오스의 이름을 찬양하는 기도문만 적혀 있는 서적도 있었다.
“어.”
그런데 그것을 읽던 와중 수아린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이오스의 사제로 전직하겠냐는 메시지가 저한테.”
“내가 아니고 네가 전직하는 퀘스트였냐, 이거!?”
“일단 무서우니까 거절해 둘게요.”
아직 그 실체조차 모르는,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의 사제가 되라니 뜬금없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수아린은 그렇게 루이오스를 외면했다.
정시우는 혹시 자신에게도 가능성이 있나 싶어 그 기도문을 열심히 읽어 보았지만 전직 메시지가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좌절하던 그때 용세하가 잔해 더미에서 낡은 종이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를 불렀다.
“형님, 이건 어떨까요. 굉장히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데요.”
“그래, 꼭 이런 데에 가장 중요한 힌트가 있게 마련이지.”
정시우는 미약한 기대감을 담아 종이를 받아 읽었다.
그것에는 딱 두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되리라. 신의 이름으로 벌이는 전쟁, 누구도 거부할 수 없으리라.”
“이 세계에서 일어났던 세트나크와 루이오스의 전쟁을 암시하는 말일까요……?”
“글쎄……. 비단 이 세계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두 문장 다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 더 신경이 쓰이는 쪽을 고르라면 후자였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전쟁. 듀라한이 무엇이라 말했던가? 정당한 전쟁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지구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지.”
“하늘성에 개미굴까지 있는 마당에 그게 무슨 거부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지만요…….”
수아린이 투덜거림에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린 정시우가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한 바로 그 순간.
정시우의 눈앞으로 몇 줄인가의 문장이 떠올랐다.
[당신은 세계의 진실을 일부 깨달았습니다.]
[신들은 다른 세계에 강력한 기록과 마나로서 존재하며, 그 신들의 하수인들은 지금 지구를 노리고 있습니다.]
[하늘성은 그들을 아주 짧은 세월 막아 냈으나, 이제 그것에도 한계가 생겨 그들의 마력과 기록이 서서히 지구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그래, 놈들은 지구를 노리고 있다. 듀라한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지구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이세계의 몬스터와 신이 지구를 직접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 낸 하늘성은 어쩌면…….
그 이상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정시우가 사고를 멈추어 버린 그 순간.
[당신은 이 퀘스트를 통해 수호자, 탐구자, 그리고 파괴자의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드디어, 전직의 길이 정시우의 눈앞에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