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화.
실은 좀비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그에게 아주 미약하게 흡수되는 마나를 느끼고는 있었다. 던전에서는 몬스터가 죽을 때 마나가 던전으로 회수되지만, 현실 세상에서는 정시우 본인에게로 회수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단지 흡수되는 마나의 수준이 너무나 미약해,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이세계인가? 역시 재미나다니까.”
“마, 마나 결정! 그걸 다른 엘리트가 먹어 치우고 있어요!”
“총량만 변하지 않으면 괜찮아.”
하지만 마석까지 드랍된 지금은 놈들이 던전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만으로 그의 전력은 100% 이상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던전과 던전이 아닌 장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레벨 업이다.
“흐아아아아아압!”
정시우는 마나를 끌어 올려 육신을 강화했다. 강화하는 것은 육신뿐만이 아니다. 사방의 돌멩이에 모두 부여를 펼쳐 그것들을 일시적이나마 강철보다도 단단하고 날카로운 흉기로 재탄생시켰다!
“레벨이 오르면 마나도 체력도 회복되니 굳이 아낄 필요가 없지.”
“그, 그러고 보니 여태 마나도 사용하지 않고 계셨지.”
“아아, 듀라한이 불쌍해…….”
한 손에 하나씩 쥔 돌멩이를 던지는 폼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여 스킬로 강화된 육신으로, 부여 스킬로 강화된 돌멩이를 내던지니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흡!”
[캬아아아악!]
[쿠게엑!]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고 날아든 돌멩이가 언데드 군단에 일직선의 길을 내며, 그 경로에 있던 모든 언데드를 갈아 버렸다. 심지어는 중간에 정시우의 절묘한 마나 컨트롤로 폭발하며, 수류탄처럼 하나하나 강화된 파편으로 언데드들을 일시에 쓸어버리기까지!
돌멩이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별똥별이 떨어진 것만 같은 파괴의 흔적만이 남았다. 엘리트고 자시고 모든 몬스터가 소멸해 있었다.
[쿠하아아아!]
[키이이이이이이익!]
[벌써 마나를 쓰다니, 과연 그 힘은 놀랍지만…… 크크큭.]
정시우는 듀라한의 도발을 무시하며 자신의 마력을 스스로 점검해 보았다. 방금 내던진 돌멩이 하나에 소모한 마력이 전체 마력의 2% 정도. 아직 마흔여덟 발 정도는 던질 수 있었다. 물론 그사이 회복되는 마력이나 레벨 업은 감안하지 않았다.
“엘리트 놈들은 조금 마나 농도가 짙네. 좋았어.”
이 정도라면 마나가 다 떨어지기 전에 얼마든지 레벨 업을 할 수 있다. 그는 씩 웃으며 보다 빠르게 손에 들린 돌멩이를 던졌다. 또 언데드 수백 마리가 터져 나갔다.
레벨이 높은 적을 상대로는 이렇게 돌멩이만 던지고 있을 수 없겠지만, 레벨이 낮은데다 한 데 뭉쳐 있기까지 한 언데드 군단에게는 이만큼 효과적인 공격도 없으리라!
[놈이 마력을 쓰기 시작했다! 세트나크의 위엄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세에트나아크으으!]
[처어단! 처어다아아안!]
반면 듀라한은 언데드들을 독려해 앞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구울들은 그런 놈들의 사체를 먹어 치우고 또 먹어 치워 하나둘 엘리트로 거듭났다. 그 엘리트조차 마나를 담아 쏘아 낸 돌멩이에 끝장나자, 또 다른 엘리트가 그 사체를 먹어 치워 스스로를 강화시키기에 이르렀다.
“2차 변이…… 아직 가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불안해요. 만약 자이언트 구울 백 마리가 한꺼번에 성벽으로 달려든다면…….”
“한 마리도 남김없이 구축해 주지.”
“그것 참 멋진 표현이네요.”
제아무리 정시우가 돌팔매 한 번에 수십, 수백 마리의 언데드를 죽인다 해도 놈들의 진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점차로 언데드 군단과 성벽의 거리가 줄어들어 갔다. 듀라한은 검은 유령마를 느긋이 타고 전진하며 정시우가 수세에 몰리는 것을 즐겼다.
“흡, 하앗!”
정시우는 이젠 아예 한 손에 서너 개씩 돌멩이를 쥐고 뿌려 댔다. 하나하나 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머금은 돌멩이들이 언데드 군단 사이사이 뿌려지며 폭발해 놈들의 전열을 완벽하게 흐트러트렸다. 듀라한은 그것을 보며 정시우가 초조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이곳에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으로 시작이다. 정당한 전쟁이 비로소 여기에 막을…… 으음?]
그러던 한순간 듀라한은 깨달았다. 거의 바닥을 향해 치닫던 정시우의 마력이 어느 순간 완벽히 회복되는 것을! 그 이유 또한 분명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분명한 인간, 언데드들과는 다른 마나 체계를 지닌 인간인데!
[우리 언데드들의 마나를 받아들여 성장하고 있다. 그것도 저런 하급 언데드들을 죽였을 뿐인데!]
놈은 모르고 있었다. 그야 확실히 그의 레벨 100을 넘기기만 해도 좀비와 스켈레톤을 죽여 얻은 마나와 기록으로 레벨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해지겠지만, 지금 정시우는 터무니없이 강하긴 해도 레벨은 고작 75, 아니 7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았어.”
정시우는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머금었다. 언데드를 죽일 때마다 들어오는 마나의 양이 너무 적어 걱정하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다. 저 졸병들만 처리해도 족히 2레벨은 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2차전 시작해 보자고!”
“성벽, 성벽에 달라붙고 있어요!”
“그런 놈들은 무시해!”
자잘한 놈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정시우가 지금 수성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몸 하나 지켜 가며 언데드들을 전멸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 놈들이 성벽으로 올라올 때쯤이면 놈들의 본대는 전멸해 있을 것이다!
“돌멩이나 먹어라 이 외계 괴물아!”
“그 말 왜 안 하나 했어요!”
레벨이 올라 조금씩이나마 육체와 마력이 더욱 강해진 정시우는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돌멩이들을 던졌다.
정시우의 마력이 회복되는 것을 본 듀라한이 무척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놈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적의 숫자를 줄이는 데에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많이!
무수한 죽음이 쌓이고 쌓여 끔찍한 사기를 뿜어냈다. 언데드들은 동료가 죽으면 죽을수록 보다 더한 힘을 얻는 것만 같았다.
“형님, 엘리트 구울들이 서로를 포식하기 시작합니다!”
“무시해.”
“옙. 앗, 스켈레톤들이 분해되더니 하나의 엘리트 몬스터로……!”
“그것도 무시해.”
“옙. 앗, 그 두 놈이 다시 합체를……!”
“이 자식들 왜 이렇게 합체를 좋아하는 거야!?”
그러던 때 기어이 사단이 났다. 엘리트 구울들이 닥치는 대로 좀비를 잡아먹더니 끝내 서로를 잡아먹어 가며 끝내 한계를 돌파하여 가스트로 탄생하고, 스켈레톤들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합쳐진 끝에 하나의 거대한 창, 플라잉 스켈레톤 랜스로 화한 것!
그러나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정시우가 불과 조금 전 세리엔 공동묘지에서 맞서 싸웠던 가스트보다도 조금 더 큰 덩치를 지닌 가스트가 플라잉 스켈레톤 랜스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플라잉 스켈레톤 랜스에서 작은 뼈 줄기들이 촉수처럼 튀어나와 가스트의 손등, 팔, 얼굴이며 가슴팍에 뿌리를 박은 뒤 잠식하기 시작했다. 종국엔 시커먼 언데드의 몸통을 새하얀 뼈가 갑주처럼 뒤덮은 형태가 되었다.
그것은 굉장히 소름끼치는 광경이었지만 정시우는 완성된 해골갑주의 기사를 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 멋지잖아. 제길……!”
“젠장, 언데드 주제에 저렇게 폼이나 잡고……! 부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성벽 위에서 돌이나 던져 내고 있는 정시우보단 훨씬 멋지지 않은가! 한 마음이 되어 중얼거리는 정시우와 용세하를 보며 수아린이 빽 고함을 질렀다.
“지금 그게 중요해욧! 듀라한만큼이나 강한 엘리트 몬스터가 탄생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구요!”
“아냐, 듀라한보다는 약해. 완벽히 하나가 된 거면 모를까 저건…….”
만약 놈에게 세월이 더 주어진다면 완벽히 융합하여 강한 몬스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뼈 갑주를 탁탁거리며 달려오고 있는 저 몬스터는 겉으로 보기에만 하나일 뿐, 실제론 단지 힘을 뭉쳐 억지로 개체 하나에 불어넣은 미완성품에 불과했다.
“일단 놈이 올 때까지 언데드 숫자나 줄이자.”
“포지티브…….”
이미 언데드 군단은 처음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 비하면 그 숫자가 5분의 1이하로 줄어 있었다. 정시우의 투석과 동족포식에 의해 지금도 빠른 숫자로 규모를 줄여 가는 언데드 무리!
그 누가 이것을 혼자 이룬 일이라 생각할 것인가. 만약 이것이 퀘스트라면 지금의 정시우는 가라는 지름길 놔두고 온갖 장해물로 가득한 길을 골라, 지름길을 달리는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깨부수고 달리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았어!”
“형님!”
“타이밍 한 번 끝내 주네…… 흡!”
기어이 정시우의 레벨이 77에 이르렀다. 때마침 해골 갑주의 기사가 성벽에 도달하는가싶더니, 언데드라곤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성벽을 타고 올라 마침내 성벽 위로 몸을 날렸다!
[그아아아아아아아!]
해골 투구가 열리고 그 안의 썩어 문드러진 언데드의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정시우를 향해 일직선으로 분사되는 독무! 놈은 정시우를 행동불능으로 만들고 그사이 성벽 위에 착지할 셈인 모양이었다.
“수아린, 용세하! 뒤로 물러나!”
하지만 정시우는 오히려 서포터들을 쫓아내곤 곧장 독무 속으로 돌진했다. 그것을 본 언데드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그대로 돌진해 올 줄이야!? 정시우가 지닌 독 내성을 모르기에 범한 결정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놈은 허공에 떠올라 있어 추가적인 행동의 여유가 없었고, 정시우는 독의 안개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며 놈에게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둠 나이트의 독이 체내에 침입합니다. 독 내성으로 완전히 이겨 내지 못해 미약한 중독 상태가 되었습니다.]
[독 내성이 Lv8이 되었습니다.]
독이 체내로 침입하는 순간, 가스트의 그것보다도 더한 독기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돌았지만 그래도 8레벨씩이나 되는 내성을 익힌 덕에 행동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얼마든지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후으, 하아아앗!”
[칵!?]
정시우는 독 때문에 신체 혈관이 타오르는 것만 같은 고통을 무시하며 인벤토리에서 곧장 해머를 끄집어내, 있는 힘껏 언데드…… 둠 나이트를 내려쳤다!
[강타 스킬이 Lv26이 되었습니다.]
[쿠게에에에에엑! 킥!]
둠 나이트가 뛰어오른 것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대지에 처박혔다! 놈의 전신에 박혀 있던 뼈 갑주를 비롯해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게 강화되었던 놈의 육신이 대지와의 충돌 순간 완벽하게 으스러졌다.
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에 정시우의 해머 강타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수십 미터나 되는 허공으로부터 그대로 지상에 추락한 것까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크리티컬 히트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아, 죽었네.”
둠 나이트를 상대하기 직전 레벨이 올랐는데 놈을 죽이니 또 한 번 레벨이 오르다니, 과연 고위 언데드이긴 한 모양이었다. 물론 정시우에게 한 방에 죽어 버린 비운의 몬스터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 오빠. 저거…….”
“어……?”
그런데 어째 성벽 위에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었다. 정시우가 다가가 살피니 그것은 놈이 쥐고 있던 플라잉 스켈레톤 랜스였다!
“히이이익!”
정체를 파악한 순간 수아린이 기겁하며 그의 옷깃을 붙잡았지만,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이미 죽어 있어. 그냥 하나의 해골창일 뿐이야.”
“실은 오빠도 변신하고 싶은 거 아녜요!?”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애석하게도 저것은 정말로 안전한 뼈다귀였다. 정시우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창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새겨졌다.
[둠 나이트의 스켈레톤 랜스]
[랭크 ? C+++]
[공격력 ? 1,500 ? 1,950]
[숙련도 ? 0/500]
[옵션 - ???]
[가스트가 둠 나이트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함께 변이한 해골 창. 무수한 스켈레톤의 뼈가 뭉쳐 무게와 강도가 극한에 가깝도록 강화되었다. 터무니없는 예기와 사기를 품은, 불길한 랜스.]
“아, 아티팩트……! 던전에서는 결코 이런 식으로 직접 아티팩트를 얻을 수 없었는데!”
“설악산에서도 이런 식으로 몬스터가 직접 남긴 아티팩트를 얻었었잖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그런데 이거…… 내 망치보다 좋잖아.”
“이 기회에 돌격창술이라도 배우시는 건……?”
“세하야, 이거 너 해라.”
“형님!”
그것은 용세하가 리타이어 이전 시점에 다루던 랜스보다도 강력한 랜스였다. 탄생에 얽힌 곡절 탓인지 등급에 비해 명백히 공격력이 높고, 무게가 더 나갈뿐더러, 결정적으로 숨은 옵션이 기대되지 않는가.
물론 용세하가 그것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레벨을 조금 더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일단 랜스를 인벤토리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자, 그러면.”
둠 나이트의 마석도 정리해 두고 싶지만, 지금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데드들의 연회를 보고 있노라면 그 순서는 아무래도 조금 뒤로 미루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엔 믿을 수 없었지만…… 네놈은 정말로 언데드의 마나에 영향을 받지도 않고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 있군.]
듀라한의 눈빛이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놈은 더 이상 이대로 정시우를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군단을 학살하도록 놔두다간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 ……그렇게는 안 되겠지.]
유령마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 직후, 놈이 대지를 박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듀라한이 도끼를 들어 올려 정시우를 겨누었다. 하늘을 비행하는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유령마 탓에 그들 사이의 높이도 거리도 무의미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끝내 주지. 전쟁을 거부하는 별, 지구에서 온 인간이여.]
“…….”
정시우는 가만히 해머를 쥐었다.
보스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