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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53화 (53/260)

# 53

53화.

정시우는 언데드 무리가 도시로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도 침착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그의 직감이 워낙 탁월해서일까, 언데드 놈들의 접근을 무척 일찍 깨달은 덕분에 준비를 할 시간만은 차고 넘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놈들의 진군이 터무니없이 느릴 뿐이었다.

물론 전투 준비라고 해도 별로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정시우는 성벽을 제외한 도시 내부 건축물들을 있는 대로 부수며 큰 파편을 모았다. 저급의 언데드가 대부분인 몬스터 무리를 상대하는 데에는 이 정도 돌덩이들로도 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얻는 서류는 급한 대로 일단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지금은 이 도시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보다 언데드 놈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더욱 급했다.

“기껏 뇌신의 라이플을 얻었는데 마나 소모량 때문에 쓰지도 못하고, 다른 투척 무기를 만드는 상황이라니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냐.”

“다 오빠의 마나가 적어서 그래요.”

“말이나 못하면.”

“나중에 마나 소모가 적은 마탄 전용 아티팩트를 구하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합!”

용세하는 정시우를 도와 건물을 부수는 것을 도왔다. 정확히는, 정시우가 무너트린 건물의 잔해들을 보다 잘게 부수어 보다 탄환에 적합하도록 가공하는 것이었다. 순수한 사제인 수아린과는 달리 녀석은 미니 사이즈인 상태에서도 제법 힘을 쓸 수 있었다.

“형님, 이 정도 크기면 되겠죠?”

“그래. 조금만 더 힘내자고.”

“물론입니다. 형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좋네요!”

용세하의 미소가 지나치게 눈부시다! 어째서 이 녀석들은 이렇게 포지티브한 거지!? 정시우는 그의 순수한 열정을 감당하지 못해 홧김에 다른 건물을 부수러 향했다. 탄환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세트나크의 이름으로!]

[세에트나아크으으으!]

“흠.”

대충 짐작은 했지만 역시 저 언데드 놈들은 세트나크를 따르는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의문들도 이래저래 해결이 되었다.

“세트나크의 신도였다는 그 여자는 아마 우리가 던전에서 맞서 싸웠던 밴시를 이르는 말이 아닐까?”

“그렇게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종교 전쟁에서 패배해 언데드로 화한 도시의 주민들, 그들을 다스리게 된 세트나크의 종 밴시…… 그들이 그대로 던전으로 옮겨 와 정시우와 싸우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얼추 설명이 되었다. 어쩌면 세트나크란 언데드의 신일지도 모르겠다.

“언데드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라…….”

“으으으으.”

저 언데드 군단의 규모를 보면, 어디까지 뻗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세계 전체가 세트나크의 지배를 받고 있으리라는 가정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수아린에게는 실로 끔찍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불온분자를 처단하라!]

[처어단! 처어다안!]

[정당한 전쟁을 저지하는 비겁자들을 처단하라!]

[처어단! 처어다안!]

“저건 뭔 소린지 모르겠고…….”

어느덧 제법 가까운 거리에까지 이른 언데드 놈들 가운데서 터져 나오는 고함에 정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정당한 전쟁이라니? 이 세상에 정당한 전쟁이란 없다. 전쟁이란 모두가 억지이며 국가 규모의 폭력을 명예나 명분 따위로 그럴듯하게 치장했을 뿐인 죄악인 것이다.

“전쟁을 저지하는 비겁자……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루이오스의 신도?”

“그건 저놈들을 쳐부수고 나서 생각하자.”

정시우는 다시 성벽 위로 올라섰다. 어느덧 좀비 한 마리 한 마리의 얼굴을 그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놈들의 군세. 그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군단을 쫙 훑어보며 어떤 놈이 대빵일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딱히 소득은 없었다.

“좀비, 스켈레톤, 구울…… 기초적인 애들밖에 없는데?”

“베이스가 어떠냐에 따라 그놈들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구요. 아, 물론 저것들은 아닌 듯하지만요…….”

생전의 차림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좀비들. 물론 대부분이 삭아 버리긴 했지만, 철갑주를 입거나 예리한 병장기를 들고 있는 언데드의 숫자는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았다.

“아, 찾았다.”

“어디…… 켁.”

그런 가운데 정시우는 군세의 최후미에서 위풍당당하게 검은 유령마를 타고 등장한 기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흑갑으로 무장한 반투명한 유령마와, 그것과 깔 맞춤을 한 듯 흑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있는 기사!

놈은 한 손에는 도끼를, 나머지 한 손에는 헬름을 쥐고 있었는데, 원래 머리가 있어야 할 목 위로는 퍼런 귀화가 치솟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정시우는 헬름 안에 놈의 머리통이 들어 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지 목을 들고 다니네. 성격 한 번 괴팍해라.”

“목 없는 기사, 듀라한(Dullahan)……!”

“맙소사, 아직 던전에서는 조우하지도 못한 몬스터잖아요!”

수아린이 또다시 기절할 뻔하고, 그녀 대신 용세하가 설명을 해 주었다. 유명한 언데드 던전에서 몇 번씩 존재만이 언급되고, 정작 플레이어들이 조우한 적은 없는 고위 언데드의 하나라는 것. 즉 레벨 200을 훌쩍 넘기는 적수라는 얘기가 된다.

“딱 좋네. 저놈을 이기면 플레이어 탑이랑 비벼 볼 수 있게 된다는 거지?”

“포지티브!”

세상 사람 모두 이렇게만 생각하면 스트레스로 고민 받을 필요도 없을 텐데! 수아린이 기막혀 하는 사이 정시우는 하나둘 인벤토리에서 돌을 꺼내기 시작했다. 듀라한은 듀라한이고 지금은 일단 수만을 넘기는 언데드를 어떻게든 해치워야 했다.

“세하, 너는 저 듀라한을 살펴. 놈이 뭔가 하려는 것 같으면 나한테 말해.”

“알겠습니다.”

“아린이 너는 신성력 모아 두고.”

“네.”

정시우는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고 전신의 근육의 힘을 끌어냈다. 마나는 듀라한을 대비해 아껴 둔다. 애초에 다른 놈들을 상대론 마나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체로 단단히 대지를 딛고, 허리를 튕기며…… 첫 번째 탄환을 쏘아 낸다!

[쿠가가아아아아아아!]

“아.”

탄환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는 마치 괴물이 포효를 내지르는 것만 같았다. 사소한 문제점이 있었다면 속도를 이겨 내지 못한 돌멩이가 끝내 산산이 부서져 산탄이 되고 말았다는 것!

[카학!]

[크아아아아!]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더 좋았다. 작은 알갱이가 되고도 속도와 위력을 잃지 않은 탄환이 언데드 무리의 선두를 덮쳐, 그대로 괴멸시킨 것이다.

[세트나…… 음?]

[켁, 케켁!]

듀라한을 포함한 언데드의 군세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두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적은 방금 마나를 다루지 않았다. 그냥 육신의 힘을 이용해 돌멩이를 내던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수십 마리 이상의 언데드가 그 자리에 넝마가 되어 쓰러졌다. 마나가 담기지 않은 일격이니 본디 죽지는 않아야 할 터이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탓에 모든 기능을 손실했으니 죽지 않고 배겨 낼 도리가 없었다.

“와오.”

“계속 간다.”

조금 큰 돌멩이 하나로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낸 당사자인 정시우는 이미 그렇게 될 줄 알았던 것처럼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며 두 번째 돌멩이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쏘아 냈다.

[카학!]

[꾸에에에엑!]

요령이 붙어서인지 그가 두 번째 쏘아 낸 탄은 보다 넓은 범위의 언데드를 효과적으로 쓸어버렸다. 돌멩이가 도중에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한 정시우가 산탄의 범위를 계산해 던져 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며 비단 언데드 군단뿐만이 아니라, 그의 옆에 있던 수아린과 용세하도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게 가능한 플레이어가 있을까요……?”

“용오름 길드 마스터 정도라면…… 으으음, 역시 마나 없이는 무리겠지요.”

정시우가 뛰어난 이유는 바로 굳이 마나로 강화하지 않고도 충분히 괴물의 영역에 이른 육신과, 그 육신의 힘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고스란히 뽑아내 사용하는 능력을 조화시킬 수 있는 탓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마나를 사용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모든 일을 마나로 해결하려 한다. 레벨이 오르며 강화된 육신을 그저 마나를 다루는 도구로만 파악하고, 깊게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스킬들을 연구하고 숙달하느라 육신 그 자체를 다루는 데에까지 신경이 미치지 않는 까닭도 있겠지만, 지금 정시우가 벌이는 짓들을 보게 된다면 그들 스스로 얼마나 큰 실수를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리라.

‘형님은 자신의 육신을 오롯이 파악하고, 그 능력을 온전히 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계셔.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경악스럽다. 강한 육신과 마나를 조화시킬 때 형님은…….’

당장 기갑 오크 천부장과 전투를 벌이던 때와 가스트와 전투를 벌이던 때를 비교해 보면 극명히 드러나지 않는가.

그는 지나치도록 빠른 속도로 강해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일주일 전의 정시우 열 명이 덤빈들 지금의 정시우를 이기진 못하리라. 아마도 열흘 후의 정시우에게 지금의 정시우 열 명이 덤벼도 마찬가지로 패배할 것이다.

[네놈은…… 투척병인가?]

아마도 듀라한이겠지. 놈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나를 타고 정시우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죽음은 그분께서 가장 즐기시는 것. 군단의 죽음으로 하나의 죽음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 또한 유쾌하겠지. 네가 언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무척 기대되는군.]

듀라한의 말에도 정시우는 얼굴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세 번째 돌멩이를 던져 또다시 언데드 수십을 부술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정시우는 마음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말은 중간에 지가 나서는 일은 없단 거겠지? 좋아, 땡잡았군.’

이래서 고위급 인사는 안 된다니까! 그 어떤 상정외의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나서기가 싫어 어떻게든 하급자들을 대신 내보내다가 결국 일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도 그땐 이미 손을 쓸 수도 없을 만큼 모든 일이 늦어 있게 마련!

지금 정시우에게는 무척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세하, 계속 살펴.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까.”

“옙.”

“후, 좋아. 그러면…….”

정시우는 네 번째 돌멩이를 쏘아 내고는 몸을 다시 한 번 풀었다. 그 후 인벤토리에 쌓아 두었던 돌멩이들을 성벽 위로 우르르 쏟아 내어, 양손에 하나씩 돌멩이를 쥐었다. 그의 눈이 번쩍였다.

“속사 모드로 변경.”

“지금 그 모습 정말로 기계 같으니까 그만해요, 무서워요.”

그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양손의 돌멩이를 연달아 쏘아 냈다. 비록 파괴력과 속도는 덜했지만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상대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

무리의 일단이 또다시 무너졌다. 그러나 정시우는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곧장 다시 두 개의 돌멩이를 주워 내던졌다.

두 개를 던지고 고개를 조금 숙여 다시 두 개의 돌멩이를 줍고, 던지고! 일절 낭비 없는 경로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돌 쏘아 내는 기계를 보는 것만 같았다.

[꾸아아아악!]

[세, 세에트나아아크으으으으!]

[죽는다! 완전히 죽는다!]

[꾸엑, 꾸이이이익!]

아직 언데드들은 성의 지척에도 이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오는 놈들은 곧장 돌멩이 산탄에 맞아 파괴되고 말았다. 단순한 물리력이 만들어 냈다기엔 실로 끔찍한 광경. 순식간에 파괴된 언데드의 숫자가 천을 넘어섰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 어어.”

“저놈들…… 동료를 먹는데요?”

“……뭐?”

정말이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군세의 중반 즈음에 있던 구울 놈들이 앞으로 나서며 좀비와 스켈레톤의 잔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정시우가 던진 돌멩이에 죽어 나가는 것은 놈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산탄 폭격 와중에도 요리조리 잘 움직이며 살아남는 놈들은 점차로 몸집을 불려가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수아린이 그 중 일부를 보며 외쳤다.

“엘리트, 방금 엘리트가 되었어요!”

“양으로 밀어붙여 안 되니 숫자를 줄이고 정예를 강화하겠다는 건가……!”

이젠 비단 좀비와 스켈레톤의 파편에 그치지 않았다. 구울 놈들은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있었다! 수만을 넘겼던 군단의 숫자가 순식간에 일만 이하로 줄어들었고, 눈을 감았다 뜨니 다시 그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 이대로 가다간…….”

“합체로봇도 아니고 저렇게 자유자재로 강화되다니 비겁하다!”

역시 이 퀘스트는 언데드 군단 몰살 따위가 아니라 진실의 탐구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수아린과 순식간에 강화되는 엘리트 구울 무리를 보며 비겁하다고 외치는 용세하.

그때 정시우는 문득 든 생각에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 하나를 강하게 내던졌다. 막 좀비를 포식하고 고개를 든 엘리트 구울이 돌멩이에 정확히 얻어맞아 파괴되었다.

“헉!?”

“저건……!”

구울이 파괴된 그 자리에 어두운 빛을 내는 마나의 결정 하나가 떨어졌다. 마리나가 마석이라고 부르던 바로 그것이었다.

“역시.”

그것을 본 정시우는 확신을 담아 중얼거렸다.

이곳은 던전이 아니었다.

살아 숨 쉬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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