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휴식처에 들어온 3인은 일제히 콜록거리며 바닷물이 섞인 기침을 뱉어냈다. 바깥 공기는커녕 물만 잔뜩 마시고 들어온 셈이었다.
“설마 그 공동묘지가 해저에 있는 던전이었다니…….”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지구는 육지보다 해양면적이 훨씬 넓고,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들도 당연히 육지보단 바다로 많이 떨어졌을 텐데 말이죠…….”
“그것보다…….”
정시우가 입가를 스윽 닦으며 일어나 중얼거렸다.
“아까 본 그놈, 잡고 들어왔으면 좋았을걸.”
“설마 수중에 몬스터가 있었다구요? 고래랑 착각하신 거 아녜요?”
“그럼 지금 나가서 확인해볼까?”
“아니요!”
말은 그렇게 해도 정시우 역시 실제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수영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수중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몬스터와 상대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바닷속으로 나오자마자 몬스터와 조우하게 되다니, 바닷속에선 육지보다 던전 해방이 빨리 일어나고 있기라도 한 건가?”
“잘못 본 거면 좋을 텐데…….”
정시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폰을 들었다. 설령 휴식처로 들어오기 전에 하늘에 있었건 산에 있었건 심해에 있었건 인터넷은 아주 잘 터졌다. 어찌 보면 하늘성보다도 더 설명이 안 되는 장소가 바로 이곳 휴식처였다.
물론 그리 타이밍 좋게 바닷속 몬스터에 대해 떠들고 있는 뉴스는 그리 없었다. 그저 과연 육지가 이 모양인데 바다는 안전한지 걱정을 표하는 뉴스가 한두 개 있을 뿐이었다.
“관련된 얘기는 별로 없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당연해요. 육지에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된 일인데, 해양에 몬스터가 나타나려면 육지보다 훨씬 복잡한 조건을 필요로 하잖아요.”
바로 물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가 없는가. 여태까지 하늘성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며 수아린이 겪은 던전 중 수중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외의 몬스터 가운데 수중에서도 활동할 수 있을 만한 몬스터들까지 카운터를 하면…….
“이거 어쩌면 바다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가 죽어나갔을 수도 있겠는데요.”
수아린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상상하면 할수록 그 규모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실시간으로 세계 곳곳에서 던전이 해방되고 있다. 한국만 해도 정시우가 24시간 내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미 전국 각지에 던전이 해방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를 잡고, 화기로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주둔한다 해도 던전의 해방을 막을 수는 없다. 지구에 몬스터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인간에게 가능한 것은 보스급 몬스터를 제거하는 것으로 몬스터의 세력 확장을 막는 정도였다.
그나마 겉으로 드러나는 육지는 인간들이 바로바로 그 변화를 캐치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바다는? 그 안에서 해방되는 던전의 존재를 과연 알 수나 있는가?
고블린이나 슬라임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지구의 바닷속에 풀려났을지, 그리고 죽어갔을지 그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해양오염 엄청 많이 됐겠는데.”
“어쩌면 선진국 가운데 이미 바다를 탐사하고 있는 나라가 있을지도 몰라요. 죽었을 몬스터의 사체를 수거하기 위해…….”
그러나 정시우는 회의적이었다. 육지에 나타나는 몬스터도 미처 관리를 못 하고 있는데 바다에 있는 몬스터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수 있을까? 그야 해군이 막강한 나라라면 어느 정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글쎄.
“바다생물들이 그것을 먹어치우지 않았을까?”
“하하, 바다생물들이 몬스터의 사체를 먹고 새로운 몬스터로 거듭이라도 나면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용세하가 쓰게 웃으며 말한 그 순간 정시우와 수아린의 비난에 찬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마나가 깃든 몬스터의 살점을 먹고 새로운 몬스터가 되다니, 너무 그럴싸한 이야기가 아닌가!
“용세하 씨…….”
“너…….”
“왜, 왜 그러십니까?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할 리가…….”
정시우는 앞으로 바닷속에서 독자적으로 몬스터가 탄생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용세하는 그럴싸한 추측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행에게 미움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억울해……!”
“가만 생각해보면 아까 그 몬스터도 던전에서 풀려난 몬스터의 사체를 먹고 그렇게 성장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완전히 생긴 게 물고기였거든.”
“어쩌면 이 근처에 세리엔 공동묘지에서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들이 무더기로 떨어졌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언데드 던전도 무더기로 생겨났고, 그 언데드들이 무더기로 바닷속에 풀려났고…….”
“무더기로 물고기 밥이 됐겠네.”
좀비의 살점을 뜯어 먹는 물고기의 모습을 그리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언데드 던전이 있거든, 아직 기한이 지나지 않아 물속으로 풀려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옷을 벗어 던졌다.
“샤워 내가 먼저다. 용세하, 너도 같이 해치우자.”
“알겠습니다, 형님.”
“앗, 비겁해요. 잠깐만, 그렇게 훌러덩 벗지 말아욧!”
정시우는 샤워로 몸에 남은 시체 냄새나 살점, 바닷물까지 말끔히 씻어냈다. 장비도 대충 세척해두었다. 그러자 비로소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가장 늦게 샤워하게 된 수아린만 투덜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바닷속이라…….”
“어쩌면 인간은 더 이상 바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오히려 해상운송이나 유람선을 호위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을 고용하게 될지도 몰라.”
“일이 무척 재밌게 돌아가네요…….”
수아린이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인간이 바닷길을 얼마나 의존하는지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해상무역을 잃게 되면 모든 국가가 초비상사태에 빠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배 대신 플레이어들이 인벤토리에 교역 물품을 담아 나라를 건너가면 되지 않겠어?”
“어라,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마냥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지구상에 플레이어의 입지를 보다 단단히 굳히는 계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수아린은 그것도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지금 그들이 그것까지 걱정할 때는 아니었다.
“좋아, 그럼 바다에서 일어날 일은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도록 놔두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하자. 던전 돌아야지.”
“그런데 오빠, 지금 여기서 가까운 던전이면 또 결국 수중에 있는 던전으로 연결되는 것 아닐까요?”
“그야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된통 잘못 걸렸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던전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다. 정시우와 수아린은 한숨을 교환하곤, 비드를 소모하며 휴식처의 문을 열었다.
[개미굴 에이리어 #127 세리엔 공동묘지]
[클리어 제한 시간 ? 12:00:00]
“아, 역시.”
“으으, 역시…….”
“형님, 이번엔 늙은 할아버지 유령인데요?”
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세리엔 공동묘지 던전이었다. 어쩌면 세 번째 던전도 세리엔 공동묘지일지도 몰랐다.
아직 공동묘지 속 언데드 몬스터들이 바닷속으로 풀려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아린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언데드들과 끊임없이 조우해야 했으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드디어 왔구먼…… 내 한을 풀어줄 용사들이!]
물론 정시우에겐 알 바 아니다. 그는 이미 그들이 세리엔 공동묘지를 한 번 클리어한 줄은 꿈에도 모르고 늙은 노인 플레이어로 변신하여 나타난 밴시에게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속아주며 던전을 즐겁게 클리어했다.
두 번째로 들어간 던전에서 정시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공략방식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첫 번째는 밴시를 최대한 강화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보스 룸에서 튀어나온 자이언트 구울이 강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숫자의 좀비와 구울을 남겨두는 것이었다.
따라서 두 번째 던전에서 정시우가 던전 공략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기본적으로 잠행이었다. 밴시의 안내에 따라 순순히 도시에 숨겨진 밴시의 힌트를 찾아내고, 놈이 이끄는 대로 밴시를 강화해줄 봉인 마법진을 찾아 봉인을 풀고…….
심지어 그는 밴시의 봉인 마법진을 지키고 있는 엘리트 몬스터가 좀비나 구울일 경우 그런 놈들을 따돌리는 수고까지 해가며 움직였다. 얼마나 그가 전투를 열심히 피했던지 밴시는 혹시 겉보기와는 달리 그가 무척 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 레이스다.”
[캬학!]
[자네, 왜 그렇게 유령과 해골바가지만 집요하게 잡는 것이지……?]
“어, 그냥 저것들이 기분 나빠서.”
[…….]
그 사이사이 자이언트 구울을 전혀, 요만큼도, 쌀알만큼도 강화해주지 못하는 레이스와 스켈레톤만은 무자비하게 참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밴시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일행은 무척 빠르고 안전하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있었다. 밴시는 순조로이 자신의 힘을 되찾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전혀 태클을 걸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2시간여가 흘렀을 때, 일행은 무사히 모든 마법진을 해방하여 밴시의 힘을 돌려놓는 데에 성공했다.
[꺄하하하하하, 이 바보 같은 인간 쿠억!?]
“좋아, 포획.”
그리고 밴시가 힘을 되찾아 변신하는 바로 그 순간 정시우는 곧장 뇌신의 라이플을 쏘아 놈의 몸통을 절반 이상 날려버리고,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크루얼 차지로 돌진하여 놈의 몸통을 붙들었다. 실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쿠헥, 쿠헉…… 이, 이게 무슨…… 무슨!?]
바이스처럼 단단한 그의 팔에 붙들린 밴시는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더듬었다. 노인의 모습을 버리고 제 모습을 찾은 밴시는 가만히 보면 20대의 청순한 아가씨의 모습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퍽 애잔하기는 했다.
“어딜 연기질이야!”
[꾸엑!]
그러나 몬스터인 이상 가련한 모습을 보이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정시우는 놈을 붙들고 강타를 발현해 바닥에 내려찍기를 반복했다.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파지니, 냅다 붙들고 어떻게든 끝장을 내려는 것이었다.
“핫, 흐아아아아아!”
[꾸힉! 끄에에에에엑!]
“우와, 아프겠다…….”
“망치로 얻어맞는 것보다 더 아파보이는데요…….”
물론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한 선택이었으나, 용세하와 수아린이 무심코 자기 눈을 가릴 만큼 끔찍한 광경이기도 했다.
“빨리 네 부하들을 부르는 게 나을걸! 네가 죽기 전에 말이야!”
[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밴시는 자신에게 남은 마나 전부를 담아 정시우에게 저주를 쏘아내는 것과 동시에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들을 집결시키는 고함을 내질렀다. 정시우에겐 그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제 막 얻은 저주 내성을 숙달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으니까.
“세하야, 보스 룸 열렸냐?”
“열린 것 같습니다, 형님.”
“좋았어.”
[이, 인간…… 설마 알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이 밴시라는 사실도, 던전 보스를 부리고 있다는 것도! 정시우는 놈의 물음에 상쾌한 미소를 지어주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이 정시우 님은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다고!”
“이미 같은 던전을 한 번 돌았을 뿐이면서 무지하게 잘난 척하네요…….”
스켈레톤과 레이스를 제외한 던전의 몬스터들은 모두 온전히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에, 주인이 발하는 구원요청을 무시하지 못하고 모두가 그에게로 몰려왔다. 하지만 그때쯤엔 이미 밴시의 목숨도 경각에 달해 있었다.
[어, 억울하다. 이렇게 인간에게 농락당한 끝에 죽음을…….]
“안녕, 기왕이면 다음 던전에서도 보자꾸나.”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정시우는 피 흘리는 여자 유령의 면상에 정시우 생애 최고로 강력한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갈기며 히죽 웃었다.
그렇게 밴시는 차라리 봉인에서 해제되지 않는 것이 나았을 만큼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정시우의 저주 내성 스킬 레벨은 2로 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