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화.
[크리티컬 불릿 스킬이 Lv5가 되었습니다.]
정시우는 이미 개미굴에 나타나는 유령들을 몇 차례 겪어본 적이 있다. 그들이 마치 게임에 나오는 NPC처럼 퀘스트를 내놓는다는 사실도, 그러나 무조건 던전이 그들이 준 퀘스트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도, 오히려 그들과 싸우게 될 확률마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유령을 믿지 않는다. 그에게 동료는 서포터인 수아린과 용세하뿐이다.
설사 전생에 사제였으며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기 쉬운 상냥한 미소를 짓는 여자의 유령이라고 해도, 그는 믿지 않는다.
“게다가 중간부터는 티가 엄청 나기도 했고 말이지.”
“그런데 왜 가만히 놔둔 거예욧!”
“그대론 너무 약했다니까!”
기왕 밴시를 잡는 것 온전한 힘을 지닌 놈을 잡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가 알아채지 못하는 척 행동하면 밴시가 자신에게 틈을 드러낼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비록 뇌신의 라이플이 크리티컬 불릿 하나 쏘아내는 것만으로 그의 마력을 절반 이상 잡아먹기는 했지만, 바로 그 탄환 한 방에 밴시의 반신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밴시는 어디까지나 요정의 기원을 지닌 영체인 만큼, 영으로 이루어진 육의 소실은 곧 마력의 저하를 뜻했다. 기껏 마법진을 부수어가며 힘을 되찾았더니 그것을 고스란히 도로 날려버린 꼴!
밴시는 비단 자신의 주력 스킬이어서뿐만 아니라, 지금 본인의 절실한 심정을 담아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물리력으로 화한 음파가 정확히 정시우를 노리고 쏘아진다! 정시우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마력에 혀를 차면서도 크루얼 차지를 발동했다. 밴시의 음파를 상대로 정면으로 돌격하려는 것이다!
“수아린!”
“으이구 정말!”
수아린은 이젠 이름만 불려도 정시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밴시의 음파를 몸으로 때울 작정인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해주 스펠!
수아린의 필사적인 영창으로 탄생한 신성력을 몸에 두른 정시우는 그대로 하나의 인간 전차가 되어 밴시를 향해 돌격했다.
그 손에는 슬레지 해머가 쥐여 있었다. D+++등급의 무기. 분명 처음 얻을 땐 상급의 무기였던 그것은 정시우가 하도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이젠 더 이상 강력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도 밴시를 상대로 하기에는 조금 위력이 처지는 면이 있지만……!
“이미 몸통 반절이 날아간 놈을 상대로는 얼마든지 먹히거든!”
[꺄아아아아악!]
정시우의 망치가 밴시의 머리통을 깨부수기 전, 밴시의 분노에 찬 고함이 이중으로 날아들어 정시우를 직격했다.
마력에 의해 고도로 강화된 끝에 물리력까지 띠게 된 파장, 그 안의 지독한 저주까지! 정시우는 그것에 반응해 활성화되는 수아린의 해주 스펠을 생생하게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수아린의 스펠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반시의 저주는 본신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했다.
‘물론 이겨낼 자신이 없었으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도 않았겠지만!’
정시우가 눈을 부릅뜨며 한 발 나아가 망치를 내질렀다. 밴시는 잽싸게 허공으로 몸을 놀렸지만, 정시우는 그 상황에서 그대로 손을 놓아 돌진의 기세를 품은 망치를 던져, 밴시에게 적중시켰다!
[캭!]
해머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밴시가 바람 빠진 풍선마냥 초라한 꼴로 추락했다. 직후 밴시는 크루얼 차지의 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던 정시우와 정면으로 부딪혀 끔찍한 굉음과 함께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크루얼 차지 스킬이 Lv3이 되었습니다. 적과의 충돌 시 충격파가 발생하여 충돌한 적과 그 근처의 적에게까지 추가적인 충격을 입힙니다.]
[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정시우가 바닥에 떨어진 해머를 쥐고 그대로 밴시를 마무리하려던 그때, 그녀가 다시 한 차례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정시우를 공격하는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뚜렷한 의사를 담고 사방으로 퍼져 도시 전체를 진동시켰다.
[그아아아아아!]
[그녀가 우리를 부른다.]
[움직이자. 우리의 산 제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자.]
직후. 언제 숨어 있었냐는 듯 도시 곳곳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숨어들어간 것도 정시우 일행이 밴시의 봉인을 쉽게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전력을 아껴두었다가 필요한 순간 정시우 일행을 제압하기 위해서!
“모, 몰려온다. 미리 정리했어야 했는데.”
“이래야 좀 박진감이 넘치지! 좋아, 해볼까!”
“음? 형님, 그런데 어째…….”
이변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정시우가 아닌 용세하였다. 정시우가 사방으로부터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밴시를 향해 달려 나가던 그때, 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끼이익, 철문이 열리는 소리를 포착한 것이다. 곧 정시우 역시 그것을 깨달았다.
“이거 설마…….”
“설마고 자시고 보스 룸 열리는 소린데.”
그가 열지도 않은 보스 룸이 열리는 경험도 이번으로 두 번째. 정시우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밴시가 히든 보스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녀석이 던전의 보스까지도 휘하에 넣고 있었다니!
명령을 한다고 스스로 보스 룸을 열고 나오는 보스는 또 뭐란 말인가. 이거 완전 콩가루 던전이잖아!
[네 혼을 먹어치워 내 힘을 되찾겠어! 그리고 지상으로 올라가 새로운 공동묘지를 만들어 내리라!]
“꿈은 크게 꾸는 게 좋지, 그럼.”
정시우는 빠르게 그들에게 가까워져오는 기척을 느끼면서도 여유롭게 대꾸하며 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밴시의 명령 하에 그에게 덤벼들던 좀비와 구울 떼가 볼링공에 맞은 볼링핀처럼 사방으로 튕겨나가며 다음 순간엔 달러와 비드로 화했다. 공포영화 한중간에서 정시우만 여전히 미니게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영원히 그렇게 달콤한 꿈만 꿀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꺄아아아아아아!]
밴시는 정시우와 거리를 좁히면 그 순간 끝장이 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스펠, 비명을 연속적으로 내지르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그에게 남아 있던 해주의 기운이 그것으로 깔끔하게 해소되고 말았다.
반면 언데드 몬스터들은 그녀의 비명에 버프라도 받는 것처럼 마주 괴성을 내지르며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정시우에게 돌격했다!
“더 늦기 전에 다시 마탄을 쏴요, 오빠. 한 방만 명중시키면 그대로 끝장이 날 거예요.”
“누가 그걸 모르냐. 그런데 마나가 부족해.”
“겍…… 오빠도 예전보단 마나가 훨씬 많아졌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니!”
제아무리 정시우가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도시 하나를 가득 채우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밴시를 쳐 죽일 방도는 없다.
비록 한순간에도 수십 마리씩 몬스터가 죽어나가며 포위망이 헐거워지곤 있었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보스 룸으로부터 도시로, 점차 보스 몬스터의 기척이 가까워져만 갔다!
[넌 실수를 한 거야! 아주 거대한 실수, 오만한 인간들이 언제나 저지르는 그 실수!]
[그오오오오오오!]
밴시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괴성. 놈이 벌써 도시로 들어온 것이다! 그 고함을 들은 밴시는 화색이 되어 자신의 남은 마력을 모두 개방했다. 그녀가 지닌 저주의 힘이 영체의 사슬로 형상화되어 정시우에게로 날아든다!
[죽어라, 그대로! 너도 나의 것이 되어라!]
“큭, 블레스!”
수아린이 다급히 추가적인 스펠을 발현해 자신에게 남은 신성력을 모두 정시우에게로 퍼부었지만, 정시우는 그것만으로는 밴시의 저주를 감당하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물론 이대로 저주를 버티면서 보스 몬스터를 먼저 죽이고, 차근차근 다른 언데드를 정리한 후 밴시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클리어 시간을 많이 날리게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밴시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홀가분하게 보스 몬스터를 잡는 쪽이 나을 거야.’
정시우는 피할 수 없는 영체의 사슬을 보며 지그시 눈을 감아버렸다. 수아린으로부터 그에게 부여된 가공된 마나, 저주를 약화하고 해소하는 신성한 힘을 자각했다.
이대로라면 저주의 힘에 덧없이 녹아 사라질 기운. 하지만 정시우의 마나로 그것을 강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결국 그 실체는 마나이지 않은가.
정시우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다곤 해도, 이미 존재하는 기운을 강화하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은 마나를 깨친 지 얼마 안 된 초심자가 하기엔 지나치게 건방진 발상이었으나, 체계적으로 마나를 수련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재능을 지닌 정시우에게 마나의 성질이니 변화니 하는 것들은 의지와 노력으로 어떻게든 되는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좋아, 될 것 같아. 완전한 구조는 만들 수 없지만, 기운의 틈을 헐겁게 해 내 기운을 끼워 넣는 것으로 해주의 위력을 불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기운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강화하는 게 중요해. 어떻게 보면 부여의 요령이 먹힐 것도 같은데…….’
“형님, 출격하겠습니다!”
정시우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게 되자, 마음이 다급해진 용세하가 그의 품에서 뛰쳐나와 순식간에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갑주를 입고 돌격용 랜스를 꼬나쥔 전사!
“흐오오오오오오오! 용맹한 돌진!”
“자화자찬을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요.”
“스킬 이름입니다, 선배님! 흐아아아아압!”
[꾸에에에엑!]
[저런 인간은 없었는데!]
그는 본래 모습을 되찾은 즉시 거센 고함을 내지르며 돌진, 정시우를 향해 달려들던 언데드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지금의 그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이었으나, 한순간의 일격에 본인이 다룰 수 있는 모든 마나를 소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형님, 계속 가만히 계실 겁니까!? 보스 몬스터까지 시야에 보이는데, 거대한 구울처럼 생겨서 딱 봐도 제가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이제 되겠다. 이렇게 하면……!”
정시우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밴시로부터 뻗어 나온 영체의 사슬이 그의 양팔과 양다리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오빠……!?”
“형님, 옵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정시우가 마나를 활성화하자 그의 팔을 휘감은 쇠사슬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부여는 성공이었다. 그의 내부에 깃든 해주의 기운이 점차로 증폭되어가고 있었다!
[부여 스킬이 Lv27이 되었습니다.]
[뭣!?]
“오빠, 대체 무슨!?”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밴시와 수아린은 그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달았다. 설마 자신의 마나로 신성력을 증폭시키다니!?
정시우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변에 당황하는 밴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거대 구울은 이미 도시를 있는 대로 파괴하며 달려오고 있었지만 놈은 결코 정시우보다 빠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잘 시간이야!”
정시우는 양팔에 휘감긴 영체의 사슬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경황 중에 있던 밴시는 사슬을 미처 풀어버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끌려왔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사슬을 만들어내느라 얼마 남지도 않은 마나를 전부 소모하여 비명을 내지르는 밴시! 그러나 그런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정시우의 바위보다도 단단한 주먹이었다.
[켁!]
신성력이 담긴 주먹 강타! 그것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밴시는 달러와 비드만을 남기고 깔끔하게 소멸하고 말았다. 제법 포스 넘치게 등장했지만 결국 정시우와 엮여 허무하게 퇴장하고 만 것이다.
[쿠오오오오오오!]
한편 밴시의 명에 따라 보스 룸을 탈출, 도시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거대 구울은 딱 두 걸음을 남겨둔 상황에서 주인이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광경을 보며 분노에 가득 찬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저주도 담기지 않은 괴성 정도로는 정시우를 위축시킬 수 없다. 그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신성력이 그의 주먹 끝에 감도는 것을 확인하곤 히죽 웃으며 놈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너도 곧 주인 옆에서 잠들게 해줄게.”
생애 최초의 언데드 던전.
그곳에서 정시우는 신성력을 느끼고, 새로운 마나의 활용법을 개척하는 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