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46화 (46/260)

# 46

46화.

[구아아아아가각!]

[죽는 건, 싫다……! 또 죽는다……!]

“어딜 도망가.”

정시우는 도시라는 환경은 어쩌면 전투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장 자체는 넓으면서도 막상 자유롭게 돌아다니기엔 좁아 도망치기가 영 까다롭고, 건물이나 그 외의 구조물들이 많아 뭐만 하면 부서지고…… 그 모두가 정시우의 무기가 되어주었다!

“으랏차! 너도 받아랏!”

[피, 필요 없…… 꾸에에엑!]

좀비 무리가 정신없이 도망치는 가운데 유독 덩치가 거대하고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던 구울이 정시우가 걷어찬 건물 파편에 얻어맞고 몸통이 터져나가 즉사했다.

던전이란 환경은 다행히도 몬스터의 사체가 분해되기 이전에 데미지를 정산해서 루팅을 수행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달러화와 구울의 몬스터 비드뿐이었다. 그렇게 밤의 도시에 달러와 비드가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이 던전의 무식한 물량도 그렇지만 어째서 저것들이 다 일일이 비드로……?”

“내가 원래 그렇더라고.”

“그렇군요, 형님. 원래 그러셨군요…….”

이곳저곳에서 반짝이는 비드의 숫자만 벌써 수백. 그 가운데에는 좀비보다 강한 몬스터들의 비드도 얼마든지 많았다. 아무리 봐도 이 단계의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비드의 양과 질은 아니었다. 수아린에 이어 용세하도 서서히 체념의 정서를 숙련하기 시작했다.

[클리어 제한 시간 ? 11:13:42]

“아직 던전에 들어온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도시가 반파된 것 같은데요, 선배님…….”

처음 정시우가 했던 계산은 틀렸다. 물론 그의 망치질 한 번에 일곱 채, 열 채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맞았지만, 그가 좀비들과 전투를 벌이는 충격의 여파로만도 건물들이 얼마든지 추가로 쓰러졌던 것이다. 망치로 쳐 날린 건물 파편 하나가 수십 채의 건물을 꿰뚫어 붕괴시키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봉인 마법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봉인된 몬스터를 약화시키기 위해선 그 전에 다른 건물의 언데드 강화 마법진을 추가로 없앨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마침 정시우가 쏘아올린 거대한 건물 파편에 의해 도시 내에서도 유독 거대한 건물,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 도시에서 가장 수상한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 안에는 상당히 강력한 언데드 엘리트 몬스터가 숨어 있는 모양이었지만 충돌의 충격과 건물이 무너지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듯 그대로 죽어버렸고, 희미하게 검은색의 몬스터 비드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건물 안에 숨겨져 있던 정보가 정시우의 망막 위로 가지런히 떠올랐다.

“뭐야, 밴시를 약화시킬 방법도 있었어?”

[그, 그건 저도 처음 알았는데요…….]

던전에 들어온 지 불과 50분 만에 이전에 이 던전을 클리어하려 했었던 파티도 알아내지 못한 정보를 파악한 정시우!

처음 그들에게 퀘스트를 부탁했던 여자 유령은 이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엔 이 던전에서 정시우가 가장 무서웠다.

“그나저나 약화라…….”

지금껏 거침없이 건물들을 때려 부수던 정시우가 문득 망치를 멈추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몬스터들이 그를 공격해 오진 않았다.

좀비들은 그저 그를 피해 도망칠 뿐이었고 구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도시에 지극히 적은 확률로 모습을 드러내는 엘리트 몬스터, 레이스들은 그의 활약상에 일찍이 감을 잡고 멀찍이 숨어 있었다. 그래봤자 결국 도시가 다 무너지면 죽을 텐데 실로 덧없는 도망이 아닐 수 없다.

“이거 그냥 부수기만 하면 안 되겠는데?”

“그 기본적인 문제를 이제야 겨우 깨달은 건가요!?”

“건물을 잘못 무너트려서 밴시가 약화되기라도 하면 그 녀석이 내놓을 기록도, 비드도 더 약빨이 적을 것 아니겠어?”

“겨우 이해해줬나 했더니 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걱정을 하고 계셨다니!”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 가장 분통이 터졌다! 정시우는 망치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바닥에 찍으며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1시간 동안 전력으로 망치를 휘둘러대기만 했으니 어지간하면 지칠 때가 되었는데, 마나를 얻고, 레벨이 오르며 육체가 강화되고, 결정적으로 헤비 웨폰 배틀이라는 걸출한 패시브 스킬을 각성한 뒤로는 아무리 망치를 들고 날뛰어도 숨이 거칠어지지를 않았다. 기갑 오크 천부장을 상대로 날뛴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인데, 그는 벌써 그런 치열한 전투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밴시는 좀 강했으면 좋겠는데…… 약화라니 안 될 일이지.”

“오빤 정말 바보예요, 바보!”

[그, 그러시다면 지금부터는 제가 안내할까요?]

그러고 보면 분명 맨 처음엔 유령이 적극적으로 퀘스트의 진행을 도와줄 것 같은 낌새가 풍겼었다.

퀘스트를 진행하는 방법을 터득한 정시우가 이것저것 다 부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그녀와 함께 망자가 나타나는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잠행을 하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험을 진행하고 있었으리라!

“그래, 그러면 어디 한 번 네가 안내해 봐.”

[네! 도시가 반파된 덕분에 봉인 마법진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며 말하는 유령. 아마 본인이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쪽입니다, 몰래 따라오세요!]

하지만 그녀의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도 몰래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정시우가 움직이자 사방에 숨어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움찔하며 슬슬 그를 피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인간이었던 놈들이기에 더더욱 그를 경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는 길에 비드나 줍자. 가랏, 용세하! 너로 정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오빠는 대체 서포터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게 보지 말아욧, 저도 간다구요.”

본래 달러 루팅과 비드 루팅이란 이미 죽어 있는 몬스터를 상대로 한 번 더 일격을 가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정시우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몬스터들은 200%, 300% 이상의 오버킬을 당한 바람에 루팅이 되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었다. 그러니 굳이 정시우가 움직일 필요 없이 서포터들이 움직여도 되는 것이다!

용세하와 수아린은 날개를 펼치고 빠르게 활강하며 비드와 달러를 차곡차곡 회수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정시우가 아닌 그의 서포터들이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은 기겁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건물을 부술 때마다 얻는 기록으로 이미 충분히 깨달으셨겠지만, 밴시를 봉인하는 마법진은 하나를 부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명의 포켓…… 서포터들이 비드를 회수하도록 놔두고, 정시우를 인도하며 여자 유령이 친절하게 해설했다.

[완전히 똑같은 마법진이 여럿 나뉘어 있어서, 우리는 그것들을 전부 찾아 부수는 작업을 거쳐야 해요. 그리고…… 운이 없을 경우엔 마법진을 부수는 것이 오히려 밴시의 힘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당연한 일이다. 이 도시의 모든 봉인 마법진은 밴시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밴시는 도시를 찾아온 이들을 완벽히 속이기 위해 각각의 봉인 마법진에 자신의 기운을 나누어 봉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밴시의 본체가 아니라 밴시의 힘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진을 파괴할 경우, 약화된 밴시를 처치하기는커녕 밴시의 힘을 북돋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

“과연. 이 도시 전체가 미니 게임의 구조를 띠고 있구나.”

정시우는 단박에 수긍했다. 봉인된 개체, 그 개체의 힘을 약화시키는 마법진, 힘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마법진, 본체를 속박하고 있는 마법진. 굉장히 간단하고 납득하기 쉬운 구조였다.

“밴시를 강하게 만들어 퇴치하는 것도 좋지만 밴시를 후딱 끝내버리고 클리어 랭크를 높이는 것도 포기할 수는 없는데……. 끄응,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운에만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마음에 안 들어.”

[그, 그렇지요…….]

범인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고민거리였다. 유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인도했다. 곧 그들은 봉인 마법진이 새겨진 첫 번째 건물에 도착했다.

[조심하셔야 해요, 봉인 마법진이 있는 건물에는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력한 엘리트 몬스터가 등장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설령 이 건물에 극한으로 강화된 육신과 마력을 지닌 언데드가 한때 숨어 있었다고 해도, 이미 놈은 정시우에게는 두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개겨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몰래 다른 곳으로 튀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은 뭐 이리 약삭빨라?”

[이상하다, 원래 이런 애들이 아니었는데…….]

유령은 혼란에 빠졌다. 정시우는 과감하게 망치를 들어 건물 벽면에 감추어져 있던 마법진을 내려쳐 부수었다.

[봉인 마법진이 봉인하고 있던 대상이 중급 언데드 몬스터 밴시라는 사실을 새로이 깨달았습니다. 밴시는 저주가 담긴 울음소리를 비롯해 강력한 마력을 기반으로 마법 공격을 퍼붓는 몬스터입니다.]

[밴시의 힘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진 일부가 해체됩니다. 밴시의 마력이 불어납니다.]

정시우는 무심코 환호성을 내지를 뻔한 것을 참았다. 그리곤 태연한 얼굴로 유령을 재촉했다.

“좋아, 마법진이 몇 개나 남았지?”

[어…… 앞으로 여덟 개 정도 남았네요.]

“좋았어, 후딱 다음 건물로 옮겨가자.”

그때쯤 비드 수거를 마친 수아린과 용세하도 그에게 다시 합류했다. 무너져 내리는 첫 번째 건물, 도시에 더욱 끓어오르는 언데드의 마력, 빛나는 태양보다도 환한 정시우의 미소!

“으으, 강화된 밴시 싫어…… 무서워…….”

“선배님, 선배님의 해주 스펠만 믿겠습니다.”

그들의 은밀행동은 계속되었다. 그들이 이동하는 장소마다 좀비며 구울이며 썰물처럼 빠졌기에, 단 한 마리의 언데드와도 마주칠 수 없었다. 분명 유령이 생각하던 잠행과는 달랐을 터이나 유령은 더 이상 태클을 거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밴시에 관한 기록을 얻었습니다. 밴시는 언데드이나 언데드가 아닌, 요정의 기원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입니다. 본디 인간의 죽음을 예고하는 요정이었으나, 사악한 흑마법에 타락한 끝에 인간의 죽음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악귀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밴시의 힘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진 일부가 해체됩니다. 밴시의 마력이 불어납니다.]

“두 번째도 실패라니…….”

“밴시의 힘이 강화되는 대신 밴시의 기록의 일부 또한 흡수하는 느낌인가……. 하여간 소설이든 게임이든 다 흑마법이 나빴다는 식으로 몰아가지. 흑마법 때문에 사악해졌을 놈이면 흑마법이 없었어도 결국 그렇게 됐을 거야. 꼭 이렇게 남 탓만 하는 놈들이 있다니까. 아주 글러먹었어. 쯧쯧.”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밴시에 관한 기록을 추가로 얻었습니다. 밴시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언데드입니다.]

[밴시의 힘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진 일부가 해체됩니다. 밴시의 마력이 불어납니다.]

아무래도 유령은 찍기 운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 건물을 찾아 마법진을 부술 때마다 점차로 밴시의 힘이 강해지기만 할 뿐이었던 것이다!

“오, 오빠아.”

“밴시의 힘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어쩌면 기갑 오크 천부장보다도 강할지도…… 던전의 히든 보스 몬스터를 겪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놈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에요!”

“아직 강한 마력을 지닌 놈과 맞상대한 적은 별로 없지. 좋은 기회야.”

[이곳입니다.]

유령은 여전히 침착했다. 정시우가 보여주는 든든함에 매료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것만 부수면!]

“좋았어.”

여전히 마법진을 지키는 몬스터는 없다. 정시우는 호쾌하게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밴시의 힘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진이 전부 해제되었습니다. 밴시가 온전히 힘을 되찾습니다!]

[밴시에 관한 기록을 추가로 얻었습니다. 도시에서 수백 년 세월 살아오며 강력한 힘과 기록을 얻은 밴시는 아군인 척 의태하여 무수한 모험가를 죽음의 늪에 빠트려왔습니다!]

[후…… 후후후후후!]

여자 유령이 지나치도록 음산하게 웃었다. 그녀의 전신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깃들고 있었다. 순한 사제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사제복은 피 묻은 드레스로 바뀌어갔다. 여태까지 잠잠하던 도시 내부의 모든 언데드가 그녀의 마력과 동조하여 마구 괴성을 내질렀다!

[어리석고 오만한 인간! 한 치 앞도 읽지 못하는 아둔한 자 같으니!]

여자 유령, 아니,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정시우에게 접근했던 밴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정시우를 조롱했다. 던전에 봉인되어 있던 자신의 힘을 온전히 되찾은 이상 그녀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래그래.”

그러나 수아린과 용세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던 그때, 정시우는 어느 틈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인지 알 수 없는 뇌신의 라이플을 밴시에게 겨누며 말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인트로는 생략하고 시작할까, 우리?”

[뭐, 그건 무슨…….]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고대했던 순간. 정시우는 씩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뇌신의 라이플이 도시 전체를 물들일 황금의 마탄을 쏘아낸 다음 순간, 밴시의 몸통 절반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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