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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43화 (43/260)

# 43

43화.

꿈에서 그는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동양 이야기에 나오는 기다란 몸집을 지닌 용인지, 서양 이야기에 나오는 도마뱀처럼 생긴 용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는 스스로를 용이라고 생각했다.

꿈일 뿐이었지만 모든 것이 생생했다. 스스로의 존재감도, 그에게 반응하며 천변만화하는 세상도. 그는 절대자였으며 지배자였다. 세상이 그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납득은 할 수 없다.]

그의 목소리였다.

[짐은 짊어지지 않아. 나는 홀로 살아남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

용이 상공에 멈추었다. 그에게서 실로 거대한 기운…… 정시우가 다루는 마나와 같다고 하기도 미안할 만큼 압도적인 기운이 솟구쳐, 하늘을, 그리고 지상을 모두 뒤덮었다.

정시우는 그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에, 그것과 함께 호흡하며 힘을 북돋는 육신에, 세상의 의지를 갈라 스스로의 의지를 끼워 넣는 폭력성에 전율하며 감격했다. 지금 그는 세상과 하나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세상을 그가 모두 먹어치운 것이다!

[나아갈 수 없지만, 멈출 수 없기에 나는 퇴보를 택하겠다.]

마나가 세상에 흩뿌려졌다. 용의 거대한 두 눈동자가 그 광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으나, 정시우의 일천한 능력으로는 그 마나가 무슨 작용을 일으키는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는 그 압도적인 마나를 느끼며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순수한 마나, 폭력적인 마나, 육체와 교류하며 힘을 증폭시키는 마나! 마나 앞에 모든 물질과 비물질은 의미를 잃었다. 모두가 같았다. 그저 겉모습을 달리할 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끝에 모든 신을 물어죽이리.]

그 목소리를 끝으로 정시우의 의식이 아득해졌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더 듣고자 안간힘을 썼으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세상을 향해 뿌려지는 마나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그의 존재는 지워지고도 남았다.

물 속 깊숙한 곳에 잠겨 있다가 뭍으로 끌어내지는 것처럼, 그는 편안한 부유감으로부터 갑자기 방출되어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면 어김없는 휴식처의 천장이 보였다. 전혀 낯설지 않았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10 상승합니다. 마력이 추가로 10 상승합니다.]

[카오스 테일 스킬이 Lv2가 되었습니다. 꼬리가 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워지며 굵어집니다.]

[살기 스킬이 용의 위엄(패시브)으로 변화합니다.]

[용의 위엄 Lv3]

[절대자의 편린, 영혼 깊숙이 새겨진 기세를 드러내어 적을 압박한다.]

“……뭐야.”

절로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 격변하는 육신을 느끼며 정시우는 얼떨떨해지고 말았다.

육신이 보다 굳건해지고 강해진다. 심장 중심부에서 보다 많은, 맑은 마나가 솟아나 전신을 빠르게 순환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지하고, 의지를 발하여 마나의 끈을 붙잡아 조율을 시작했다. 비록 꿈에서 보았던 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하지만, 육체와 마나가 동조되어 함께 호흡하며 이전까지의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개꿈이 아닌 것 같잖아.”

“……오빠?”

정시우가 부스럭대자 그의 머리맡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수아린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음, 그게.”

그녀 역시 곧 정시우에게 일어난 이변을 눈치 챘다. 아무리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만으로 모든 스킬이 성장한다지만 하룻밤의 성장이라고는 납득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지 않은가.

“혹시 저 놔두고 혼자 사냥이라도 다녀오셨어요?”

“아니, 그냥 꿈 하나 꾸고 일어났을 뿐인데…….”

지금 상황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시우 본인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상황을 설명해줄 단서를 찾는 데 성공했다.

“이거 대체 언제 나와 있었지?”

“부서졌네요……?”

이물감이 느껴져 이불을 들춰내니, 그 자리에 산산조각이 난 천령의 방울이 있었다. 설마 그가 잠결에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몸으로 짓눌러 부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정시우는 혹시나 하여 천령의 방울의 정보를 살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한 줄기 마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수아린은 이제야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듯 짝,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사용자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강화시켜주는 아티팩트였군요……. 던전에서 얻는 보상 중에 확실히 이런 게 있었어요. 내단, 영단, 뭐 그런 것들이요.”

“그러면 방울 때문에 내가 그런 꿈을 꿨다 이거지……?”

“꿈?”

“아, 아냐. 그냥 개꿈이었어.”

자신이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는 얘기를 해줘봐야 수아린은 그가 실제로 용이 되어 느꼈던 압도적이고 황홀하기까지 한 감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는 그냥 설명을 포기하기로 했다.

천령의 방울이 사용될 때 무조건 그런 꿈을 꾸게 되는 것인지,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꿈은 지나치게 생생했으며 그의 머릿속에 새겨진 이미지도 확고했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어도 천령의 방울이 이미 완벽히 깨져버렸으니 방도가 없었다.

“용…….”

정시우는 자신의 꼬리를 실체화하여 눈앞으로 가져왔다. 2레벨로 성장한 그의 꼬리는 과연 보다 길어지고, 보다 굵어졌으며, 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까딱하다간 그의 망치보다도 더.

“용이라.”

“하긴 뱀 꼬리보다는 용의 꼬리일 확률이 높겠죠. ……용이라, 오빠랑 어울리는 이미지네요.”

수아린이 키득거렸다. 정시우도 피식 웃어버렸다.

언젠가 그도 꿈속에서의 자신처럼 강대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 목표를 찾지 못해 헤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확고한 의지가, 목표점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잠은 다 잤다. 몸이나 움직여야지.”

“죄송하지만 저는 조금만 더 잘게요.”

“그래.”

정시우는 침대에서 천령의 방울의 파편을 쓸어내 버리고는 신체단련을 시작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신체를 단련하며 몸에 가득 들어찬 마나를 이리저리 다루는 작업을 병행했다.

천령의 방울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이루었으니 신체도, 마나도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의 정신은 마치 이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성장한 육신과 마력을 자연스럽게 다루었다. 순식간에 그의 능력을 한계까지 발현하고도 부족해 이를 갈았다. 정시우는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꿈 덕분이구나.’

압도적인 육체, 압도적인 마나.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다룬 경험이 남아 있었던 탓에 육체와 마나를 보다 수월히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꿈이 얼마나 강렬한 경험이었는지 새삼스레 실감했다.

‘천령의 방울을 얻어오길 잘했어.’

설마 천령의 방울에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마리나도 쉬이 물러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천령의 방울의 효력은 정시우가 이미 온몸으로 흡수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녀가 천령의 방울의 효력을 알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후우우우…….”

단순히 스킬이 변화하고, 스테이터스가 늘어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다. 천령의 방울을 통해 겪은 경험과 인식은 정시우의 몸에 새겨져 앞으로 그가 성장할 때마다 더한 효과를 얻도록 도와줄 것이다. 지금 그가 마나와 육신의 상호교류를 이루고 있듯이 말이다.

[부여 스킬이 Lv25가 되었습니다.]

[강타 스킬이 Lv20이 되었습니다.]

[전투질주 스킬이 Lv21이 되었습니다.]

정시우는 휴식처 내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방식으로 마나를 다루며 스킬들의 레벨을 성장시켰다.

마나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야가 뒤바뀌었기에,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 보다 효율적이고 세련되게 바뀌었기에 자연히 스킬의 성장속도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빨라졌다.

아마 실전에 나서면 그 변화는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마나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육체에 대한 관념도 근본부터 뒤집혔기 때문이다. 액티브 스킬뿐만 아니라 패시브 스킬들까지도 한결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

그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자신의 힘을 마구 방출하고 싶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아린과 용세하는 편안한 숨을 내쉬며 단잠을 자고 있었다.

‘제기랄, 이렇게 된 이상 휴식처에서 해둘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두고 나가자.’

그렇게 그는 둘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거의 모든 액티브 스킬이 다시 한 번씩 레벨 업을 할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녀석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형님, 하룻밤 사이에 너무 강해지셨는데요!?”

수아린과는 다르게 중간에 한 번 깨지도 않고 푹 잠들었던 용세하는 정시우에게서 풍겨나는 기세에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놀라기는 밤에 깨어나 그의 변화를 감지했던 수아린도 마찬가지였다.

“그 짧은 시간에 더 강해졌잖아요!?”

“그야 힘에 적응하고 스킬들을 성장시켰으니까 그렇지.”

“이 괴물…….”

“자주 듣는 말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정시우는 용세하에게 간밤의 일을 대충 설명했다. 용세하는 부러워 끙끙 앓았다.

“가뜩이나 강하신 분이 그런 기연까지……. 역시 형님은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분명하다니까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사실 그 신이라는 놈들이 뭔 짓을 하는 놈들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째 직접적으로는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 것들인데 이미지는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있었다. 마리나 비셋이 했던 말도 그렇고, 신을 믿으며 제단이니 제물이니 지껄여댔던 몬스터들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꿈에 나왔던 용이 신을 물어죽이겠다며 으르렁거렸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신, 신이라.”

“새삼스레 종교가 갖고 싶어지셨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신을 죽이는 건 너무 뻔한 클리셰가 아닌가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어.”

“지금 그런 문제예요!?”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정시우가 강하다 해도 형체조차 짐작할 수 없는 적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는 고뇌했지만 나중에 적당히 상황을 보다가 신을 죽일지 그냥 조용히 살아갈지를 정하기로 했다.

“아, 신 하니까 생각났는데.”

정시우는 인벤토리에서 뇌신의 라이플을 꺼내었다. 전체적으로 검푸른 금속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신이 굉장히 길고 두꺼워 소총보다는 대포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

크리티컬 불릿의 합성 조건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마리나에게서 받아낸 아티팩트로, 나중에 마리나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될 만큼 굉장한 녀석이었다.

“이건 어떻게 써야 할까.”

“만약 제가 마탄을 다룰 줄 알고, 이런 굉장한 아티팩트를 얻었더라면 망설임 없이 사수로 전향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아니니까요.”

“그래. 차라리 이걸 들고 몽둥이 대신 쓰면 몰라.”

실제로 효과적일 것이다. 뇌신의 라이플은 길기도 길었을뿐더러 어마어마한 무게와 강도를 자랑하는 총이었으니까.

이걸로 얻어맞으면 모르긴 몰라도 흑랑의 앞발보다 더 아프지 않을까. 물론 뇌신의 라이플은 근접전 용도로 제작된 아티팩트가 아니므로 그 안은 기각이다.

“권총이었으면 품에 넣고 그때그때 쓸 수 있겠지만 이렇게 길고 무거워서야…… 평소엔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 빠르게 꺼내어 쓰는 게 제일 낫겠다.”

“그걸 스왑이라고 불러요. 아마 익숙해지시면 나중에 편할 거예요.”

상황에 맞게 여러 무구를 다루는 플레이어들도 제법 많다. 인벤토리를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식의 영역인데,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위치로 꺼내는 요령을 숙달하면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좋아, 그건 나중에 연습하기로 하고…… 일단 이 총을 시험해보러 갈까?”

총의 위력도 성질도 군대에서 다루던 M16과는 천지차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그리움을 느끼며 정시우는 발걸음을 떼었다.

이젠 그의 무대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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