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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41화 (41/260)

# 41

41화.

[보스가 죽었다!]

[인간들이 보스를 죽였어!]

[이제 곧 이룰 수 있었는데!]

[벌을 받게 될 거야. 그분들께 실로 끔찍한 벌을 받게 될 거야……!]

사자탈을 쓴 우두머리가 깔끔하게 폭사한 직후, 몬스터들은 일제히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의식은 당장에 중단되었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엘리트 몬스터들 역시 주저앉아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침식을 저지하였습니다. 몬스터들의 힘이 약화됩니다.]

[레벨이 6 올랐습니다.]

[무지는 용감 스킬이 Lv7이 되었습니다.]

[헤비 웨폰 배틀 스킬이 Lv3이 되었습니다.]

[전투질주 스킬이 Lv18이 되었습니다.]

정시우는 그의 눈앞으로 주르륵 떠오르는 알림을 보며 다리를 휘휘 흔들어 보였다. 조금 전 일어났던 일이 생생했다.

“왜 난 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왜긴요. 오빠가 무척, 무우척 용감한 사람이니까 그렇죠.”

수아린이 비꼬았다. 정시우가 흑마법의 낌새를 느끼고도 피하지 않는 그 순간, 수아린은 방금 정말로 정시우가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즉사 계열의 흑마법은 성공을 기준으로 무조건 기습 판정, 치명타 판정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정시우가 지닌 패시브 스킬 ‘무지는 용감’은 기습의 데미지를 절반으로 줄이고, 모르는 스킬을 대상으로 결코 치명타를 받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일격필사의 마법을 구사했을 셈이겠지만 바로 그 점이 놈이 정시우에게 터럭만큼도 피해를 입히지 못한 이유가 되고 말았다. 놈이 그 까닭을 알았더라면 원통해 죽고 말았겠지만 이미 죽어버렸으니 상관없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걸 직감으로 깨닫고 안 피한 거구나.”

“언제부터 그렇게 오빠의 직감에 철저한 계산이 동반되었나요?”

수아린은 계속 투덜거렸지만 그것도 전부 정시우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리라. 정시우는 녀석을 쓱쓱 쓰다듬어주며 주위를 확인했다.

몬스터들은 전부 망연자실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놈들이 보스를 따라 죽거나, 갑자기 생겨난 던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만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지나치게 안이하고 소년만화스러운 전개는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즉, 앞으로는 이미 던전이 터져버린 현장에는 내가 굳이 올 필요 없단 얘기네.”

물론 정시우는 이미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강력한 플레이어지만, 그 말고도 다른 강한 플레이어는 많다.

정시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특별히 없다면 그는 이런 곳에 오기보다도 개미굴 던전에서 스스로의 성장에 힘쓰고 싶었다. 괜히 마리나 비셋 같은 플레이어와 조우할 일 없이 말이다.

“하지만 우린 아직 놈들이 말하는 ‘제물’과 지하 플레이어 간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해요.”

“물론 그걸 알아낼 필요는 있겠지. 나도 동감해.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냐.”

그는 조금 전 단 한 방으로 우두머리의 머리통을 터트린 마리나 비셋의 일격을 떠올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는 그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없었다.

정시우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밀도의 마나가 압축되어 탄생한 필살의 마탄. 그것은 인간의 기술, 이치가 닿지 않는 영역에 이른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과연 그런 능력을 지닌 자가 마리나 비셋뿐일까? 아닐 것이다. 당장 용오름 길드의 마스터라는 놈도 신의 축복을 받았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그런 놈들 앞에 당당히 자신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정시우가 망치를 내던졌다. 허공에서 회전하며 빠르게 쇄도한 슬레지 해머가 여태껏 살아남은 엘리트 몬스터의 머리를 시원하게 깨부수었다.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는 현장 정리에 힘써야겠지.”

“마나의 결정에 관심이 있을 뿐이겠죠.”

정시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크루얼 차지를 펼쳐 도망가려는 엘리트 몬스터들을 위주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고, 뒤이어 마리나 비셋 또한 합류했다.

“너 그 흑마법 어떻게 막아낸 거야!?”

“가르쳐줄 것 같아?”

“그런 능력이 있으면 있다고 말이나 해줄 것이지, 괜히 걱정하게 만들어가지고…….”

정시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단지 엘리트 몬스터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잡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현명한 판단이었는데, 보스의 뒤를 이어 몬스터를 지휘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엘리트 몬스터들이 전멸함에 따라 몬스터들은 그들을 가장 위협적으로 만들었던 요인인 단합력과 조직력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패배했다.]

[지성이 나를 떠나는 것을 느낀다. 신께서 나를 버리셨다!]

[아, 아아아아! 파토스시여, 파토스……!]

정시우는 마지막 남은 엘리트 몬스터의 뒤통수에 마탄을 쏘아 죽이는 것으로 전투를 마무리했다. 그 외의 다른 몬스터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방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놈들을 잡아 죽이려면 일주일도 부족할 것이다.

“고생했어!”

뒤에서 마리나 비셋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돌아서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정시우의 지척에서 히죽 웃고 있었다. 한 손에는 권총을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아까 그녀가 쏘아 죽인 보스 몬스터의 사체를 질질 끌고 있었다.

“우리 둘이 합동으로 사냥한 거니까, 전리품 분배를 해야겠지. 현실 세상으로 나온 것들은 비드를 안 남기는 대신 그 외의 모든 것을 남기니까 말이야.”

그녀는 그 말 뒤에 다른 귀찮은 것들이 끼어들기 전에, 라고 덧붙였다.

“용오름 이 망할 놈들, 우리가 전투를 벌일 땐 코빼기도 안 비쳤단 말이지. 그래놓고 이제 전투가 끝난 것을 알면 또 다가와 집적댈 게 분명해. 그러니…… 후딱 정산할 거 정산하고 우리도 헤치는 게 어떻겠어?”

“그 발상은 마음에 드네.”

마리나 비셋이 놈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날려버렸기 때문에 놈의 인상착의는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놈이 착용하고 있던 사자탈만은 끄떡없이 남아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아티팩트였다.

[테스카론의 위압]

[랭크 ? B++]

[방어력 ? 600 ? 950]

[숙련도 ? 0/450]

[옵션 - ???]

[신전을 수호하는 몬스터 테스카론, 그중 엘리트를 잡아 머리가죽을 벗겨내 가공한 것. 방어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착용하는 것만으로 카리스마를 증대시키며, 적에게는 위압감을, 아군에게는 경외를 심어줄 수 있다. 신비로운 옵션이 숨어 있다.]

“신전 수호? 끄응, 설마 이 녀석이 그 신전과도 연관이 있는 녀석은 아니겠지…… 어쩔래, 이거 가질래?”

“네가 원하면 네가 가져. 난 이미 투구가 있으니까.”

물론 랭크는 떨어졌지만 정시우가 절실히 원할 만큼 좋은 것도 아니었다. 마리나 비셋은 내심 그것을 원했는지, 당장 사자탈을 머리에 비스듬히 쓰며 히죽 웃었다.

“좋아, 그럼 이 각반은 네가 가져.”

[테로타의 영광]

[랭크 ? B+]

[방어력 ? 1,100 ? 1,500]

[숙련도 ? 0/450]

[옵션 - ???]

[높이 뛰는 개구리 테로타의 힘줄과 피부를 가공해 만든 각반. 지극히 단단할 뿐만 아니라 착용자의 점프력을 증가시켜주기도 한다.]

바라 마지않던 하체 방어구, 그것도 B랭크를 넘는 각반! 정시우는 냉큼 그것을 받아들어 곧장 착용했다.

각반이 순식간에 그의 허벅지와 동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패시브 스킬을 하나 추가로 얻은 것처럼, 허벅지 위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체 기관이 생겨난 것만 같았다.

“좋아. 서로 만족할 만한 물건을 얻었으니 만사 오케이, 라고 말하고는 싶지만…….”

명색이 설악산에 모여든 수만 몬스터를 통솔하던 장이다. B+랭크의 아티팩트는 확실히 대단하다지만 결국 고레벨의 던전에서 어떻게든 얻을 수 있는 물건이지 않는가? 놈에겐 그보다 더 대단한 물건이 있었다.

[천령의 방울]

[랭크 ? B+++]

[옵션 - ???]

[불러올 수 있는, 불러와야 하는 모든 것을 불러오는 각성의 방울.]

“이거 엄청 수상하지……?”

“그냥 수상한 정도가 아니라 아무리 봐도 이게 메인이잖아.”

정시우와 마리나 비셋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치열하게 부딪혔다.

“이놈 죽인 거, 나지?”

“나 없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했던 거 알고 있지? 지분은 어디까지나 반반이라고 본다만.”

“그래도 결정타를 먹인 건 나니까 나한테 우선권이 주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것과 비견되는 정당한 보상이 따로 존재한다면 그 우선권이라는 말을 써먹어도 괜찮겠지.”

두 사람은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저 너머에서 플레이어들이 발산하는 마력이 느껴지자, 마리나 비셋이 쳇, 하고 혀를 차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럼 시체와 마석의 소유권을 내게 줘. 그럼 이건 너한테 줄게.”

“즉 네 목적은 처음부터 마석이었구나.”

“아 어쩔 거야!”

“좋아, 받아들이지.”

마리나 비셋은 현실 세상에 나타난 몬스터들이 남기는 마나의 결정, 마석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있는 눈치였다. 천령의 방울을 가지고 입씨름을 벌인 것도 보스 몬스터가 지니고 있던 마석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음이 분명했다.

물론 정시우도 보스 몬스터가 남긴 마석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상 그가 그것을 갖고 돌아간다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선 당장 등급이 높은, 정시우의 전력이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이는 아티팩트, 천령의 방울을 가져가는 것이 그에게 나은 선택이리라.

“쳇, 실은 나도 방울이 좋았는데…….”

“너 자꾸 그렇게 힌트 줄래?”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째서 자꾸 정시우의 추리력에 보탬이 되는 복선과 암시만 골라서 내던질 수가 있는 건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면 난 일단 시치미 뚝 떼고 용오름 쪽에 합류할 건데, 넌 어쩔래?”

“바람과 함께 사라질 거야.”

정시우는 천령의 방울을 챙겨 인벤토리에 던져 넣고는, 이 자리에서 그가 잡아 죽인 다른 엘리트 몬스터의 사체에서 빠르게 마석을 회수해 그것들도 인벤토리에 휙휙 던져 넣었다. 음, 그러고 보면.

“네가 보스 몬스터의 사체까지 요구한 걸 보면, 마석뿐만 아니라 몬스터의 사체에도 뭔가 의미가 있나 보지? 난 저걸 가져가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너한테 줄게.”

“어쩜, 너 조금 말이 통하는구나.”

그녀는 정시우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다른 플레이어들이 대전투가 있었던 현장에 진입하기 전 두 플레이어는 그곳에 있던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각자의 인벤토리에 나누어 담은 셈이 되었다.

“그런데 너, 몰래 사라질 수는 있고?”

“그건 걱정 마라. 간다.”

“야, 잠깐만!”

곧장 열쇠를 꺼내어 쥐는 정시우를 마리나 비셋이 멈추어 세웠다.

이제 곧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시 그의 정체를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까발리려는 셈인가?

정시우가 인상을 쓰며(투구로 가리고 있으니 그녀는 알지 못하겠지만) 돌아서니, 어째선지 마리나 비셋이 다급히 사자탈로 본인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다음에 보게 되면 그땐 마리나라고 불러도 좋아.”

“……그래, 아마 다음은 없겠지만.”

“저게 진짜!”

정시우는 실로 쿨하게 대꾸하며 바닥에 열쇠를 꽂았고,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마리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마나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비셋 양! 무사합니까!?”

직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현장으로 날아들며 그녀를 부르는 용오름 길드의 마스터, 김하룡. 마리나는 정시우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여전히 사자탈을 쓴 채 김하룡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요, 무사하고말고요. 용오름 길드 마스터님도 무사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하, 하하…… 물론입니다. 저희도 강한 몬스터들과 맞섰지만, 길드원들의 분투로…….”

가시 돋친 목소리로 김하룡을 골리며 마리나는 정시우에 대해 생각했다.

정시우 본인은 다음이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그녀는 곧 다시 그를 만나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바람일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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