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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37화 (37/260)

# 37

37화.

“설악산 겁나 넓네 진짜!”

“몬스터 기척만 읽어내고 길을 골라 달려도 이 정도라니 정말 미치겠네요.”

“대체 던전이 몇 개 터져나간 건지도 짐작이 안 가요…….”

던전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현장은 세 군데인가 있었다. 그런 곳에는 유독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모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그곳에 보스 몬스터가 없었다는 것이다.

알맹이는 쏙 빠져나가고, 쭉정이만 남은 곳. 정시우는 폭풍처럼 그 모두를 휩쓸어버리며 점차로 수색범위를 좁혀갔다.

“인터넷 뉴스에는 뭐 나온 거 없어?”

“없어요. 몬스터들이 헬기도 격추시키는 와중에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있을 리가. 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확인하던 도중 수아린이 겍,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정시우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무척 떨떠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용오름 길드가 던전 공략을 마치고 하늘성에서 내려와 투입된다고 하네요.”

“그거 잘 됐네. 나 혼자 감당하기에 이곳은 지나치게 넓어.”

플레이어 외에 몬스터들에게 당해 죽은 사람의 시체도 몇 구인가 발견했다.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증원은 필수였다.

수아린 또한 설악산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강한 플레이어들이 동원되는 상황 자체는 환영이었으나 하필이면 용오름 길드라는 사실에 영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용세하 씨, 저랑 당신은 꼭꼭 숨어 있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이제 저는 용오름 길드 멤버가 아닌, 시우 형님의 서포터니까!”

왠지 그 말을 하며 뿌듯해하는 용세하를 정시우는 가볍게 무시하고 내달렸다.

그로부터 다시 30여 분 정도가 지났다. 전투의 냄새를 추적하며 설악산을 가로지르던 정시우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는 플레이어 그룹을 몇 개인가 더 발견했다.

물론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밀리는 플레이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몬스터들에 맞서 잘 싸우고 있었으며 일부는 압도하고 있었다. 마력의 양으로만 따지면 정시우보다 훨씬 대단한 플레이어들도 그 가운데에는 있었다.

“좋아, 싸우는 애들은 잘 싸우도록 내버려두고…….”

“역시 형님, 기척도 잘 숨기시는군요.”

“너만 안 꿈틀거리면 되거든?”

정시우는 단순히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섬세하게 놀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괜히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광고할 생각은 없었기에, 몬스터들과 잘 싸우는 녀석들을 확인하면 조용히 기척을 감추고 뒤로 빠졌다.

단, 그 와중에도 플레이어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 녀석의 영혼은 아무도 모르게 수거했다. 단지 그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 수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플레이어들의 사체는 녹아 사라지고 영혼만이 그의 손등으로 빨려 들어왔다.

[소울 컬렉트 스킬이 Lv3이 되었습니다. 보유 영혼 13개]

[억? 제물이, 제물이!]

[제물이 사라졌다! 영양가 높은 제물이!]

역시나 몬스터들은 플레이어의 사체에 뭔가 특별한 의미를 두는 모양이었다. 정작 동료의 사체를 지켜야 할 플레이어들은 전투를 치르느라 확인하지 못하는데, 몬스터들은 플레이어들의 사체가 사라지는 것에 지나치리만치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나려나?”

정시우는 쥐도 새도 모르게 현장을 빠져나와 산속을 질주하며 중얼거렸다. 몬스터들의 목적이 너무나 궁금했다. 수아린이 보태었다.

“마나, 아니면 영혼? 제가 플레이어로서 활동하던 때에도 영혼의 힘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어쩌면 마나가 영혼에 속한 개념일지도 모르고요. 중요한 건, 영혼을 수거하는 오빠의 지금 그 스킬은 지나치게 특별하다는 사실이죠.”

“어, 으으으. 어려운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요, 형님, 선배님?”

“쉿.”

순간 정시우가 멈추어 섰다. 용세하와 수아린 역시 그 이유를 깨닫곤 곧 멈추었다. 대략 300미터 너머에서 느껴지는 전투의 냄새를 맡은 정시우의 눈빛이 심각하게 물들었다. 정시우가 이 산에서 벌였던 전투 중 가장 대규모의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둘 다 강한데?”

“그래도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서 고전 중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오빠?”

“음…….”

잠시 고민하던 정시우였으나 설령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용오름 길드의 마스터라고 해도 돕기는 도와야 했다.

그는 고민을 멈추고 내달렸다.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는 눈앞을 가로막는 나무 몇 그루를 그대로 부숴버리며 현장에 난입했다. 망막 위로 흩뿌려지는 눈부신 햇살을 뿌리치며 전장을 확인하니, 그곳은 바위로 뒤덮이고 세찬 물이 떨어지는 폭포 인근이었다.

[쿠겍!?]

[적이다! 강한 힘을 지닌 적!]

[이상한 기색이다! 다른 놈들하고 다르다!]

“또 다른 몬스터가…… 아니네!”

계곡에는 맑은 물 대신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 널린 몬스터의 사체, 그 위에 다시 다른 놈의 사체가 쌓인다. 개중에는 엘리트 몬스터로 보이는 놈도 몇 있었다.

“사람 맞지? 도와줘!”

그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정시우를 돌아보며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설마 사람도 몇 명은 있을 줄 알았던 정시우의 예상을 뒤엎고 단 한 명이었다.

물론 지금 설악산에 다종다양한 몬스터가 몰려 있다고는 하지만 개중에는 레벨 100을 넘기는 몬스터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힘을 지닌 몬스터들이 별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죽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 번에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상대하려거든 단순히 레벨만 높아선 불가능했다. 여태껏 혼자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던 사람…… 저 여자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얘기였다.

“뭐야, 너 사람 아니야?”

“하.”

[온다!]

[막아, 놈을 막아!]

그쯤에서 정시우는 상황파악을 끝내곤 돌진했다. 이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크루얼 차지! 멋모르고 어정쩡하니 병장기를 들어 올리던 몬스터들이 차례대로 튕겨나 사망했다.

차라리 중전차로 들이박는 게 이것보단 덜 아플 것이다. 그의 돌진 경로에 있던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뭐야, 그 스킬?”

여자가 얼이 빠져 물었으나 정시우가 순순히 답해줄 이유가 없다. 단지 그는 망치를 꺼내어 쥐며 여자에게 말했다. 그녀가 영어로 물어왔기에, 영어로 답했다.

“뭐해, 안 싸울 거야?”

“싸워야지. 그럼 얘기는 이것들 다 죽이고 하자고!”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을 텐데.”

수아린이 품에서 여자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정시우는 한숨을 쉬며 망치를 휘둘렀다. 그에게 덤벼오던 오크의 머리통이 가볍게 터져나갔다.

실로 파괴적인 일격, 힘을 실어 공격했으니 하체가 흔들릴 법도 한데 정시우는 오히려 망치의 힘을 이용해 앞으로 한 발짝 강하게 내디디며 사선으로 망치를 올려쳤다. 그 궤적에 놓인 세 마리의 몬스터가 말 그대로 갈가리 찢겨져 죽었다.

[강해!]

[너무 강하다!]

분명 휘두르는 것은 망치인데 워낙 가볍게, 날카롭게 휘두르다 보니 마치 검으로 베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정시우가 과거 검을 배웠던 탓에 그런 기색이 묻어나는 것이기도 했다.

“힘은 그렇다 치고 저 몸놀림…… 200레벨은 여유롭게 넘는 플레이어 같은데 어떻게 여태 내가 모를 수 있었지?”

여자는 그런 정시우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의 정체를 탐구할 수는 없다. 정시우가 싸우고 있는데 자신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는 정시우가 뚫어놓은 길을 따라 다급히 뒤로 빠지며 숨을 고르고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두 손에 쥐여 있는 것은 푸른빛을 발하는 권총, 정확히는 권총의 형상을 본뜬 아티팩트였다.

“그럼 어디 다시 싸워보실까!”

그녀는 물론 전방에서 격투를 벌이는 것도 자신이 있지만,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믿음직한 동료가 앞에 있어줄 때였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위험이 없을 때, 단언컨대 그녀는 모든 플레이어 중 최강의 공격력을 뽑아내는 사수가 된다!

[막아! 여자를 막아!]

[무서운 게 온다! 너무 무서운 게 와!]

늦었다. 여자는 입천장에 발라둔 마나 포션 농축액을 핥아 마나를 회복하며 씩 웃고는, 쌍권총으로 오크 무리가 모인 곳을 겨누며 스킬을 발동했다.

“난사!”

[쿠가가가가각!]

[피해, 피해!]

시끄럽게 떠들던 놈들의 머리에 먼저 바람구멍이 생겼다. 1초에 몇 마리씩 몬스터가 픽픽 쓰러졌다. 레벨의 고저는 상관없다. 어차피 모두 한 방이니까.

여자가 쏘아내는 마탄의 세례는 지나치게 빠르고 강했다. 뛰어난 동체시력의 그녀 앞에선 몬스터가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정지한 표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는 스킬의 힘으로 활성화된 육신으로 쉬지 않고 팔을 움직여 표적을 조준하고 마탄을 발사했다.

그녀의 총구가 지나가는 방향을 따라 차례대로 쓰러지는 몬스터들의 모습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우스웠다.

“뭐야, 저거……?”

망치를 쥐고 몬스터들을 짓이겨 죽이던 정시우는 갑자기 자신이 건드리지도 않은 몬스터들이 우수수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기겁하고 말았다. 저래서야 정시우를 보고 놀랄 계제가 아니지 않은가! 만약 거리를 조금이라도 둔다면 정시우도 금세 벌집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실력이 더 늘었잖아.”

반면 수아린은 쳇, 혀를 찼다. 아는 녀석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정시우는 질문을 묻어두고는 몸을 놀렸다. 그가 일부러 드러낸 빈틈을 노리고 짓쳐들어온 몬스터들이 니 킥 한 방에 고꾸라졌다.

[쿠아아아아아아!]

[크각, 오크 집에 가고 싶다!]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이자 부딪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정시우와, 그의 뒤에서 쉬지 않고 죽음의 마탄을 쏘아대는 여자.

한 명만 있어도 무시무시한 플레이어 둘이 합공을 하니 몬스터들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몬스터 부대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어느 순간, 드디어 몬스터들이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도망, 도망가자.]

[우리의 힘으론 무리다. 저 제물들은 지나치게 특별하다.]

“어딜.”

“아니.”

정시우가 다시 크루얼 차지를 할 준비를 했으나, 여자가 놈들의 뒤를 쫓으려는 정시우를 붙잡았다.

“보내주자. 이 정도로 난리를 쳤으면, 저놈들은 아마 지들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상부에 보고를 하러 갈 거야. 놈들의 뒤를 쫓아서 우두머리를 죽이자.”

“그건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하고 정시우는 냅다 망치를 내던졌다. 크리티컬 불릿을 다루는 요령을 담아, 강타와 전투질주의 마나가 동시에 적용된 망치는 허공을 매끄럽게 회전하며 날아가 몬스터 다섯 마리를 단숨에 갈아버렸다.

[키히이이이이이!]

그때까지 살아남은 몬스터는 네 마리. 크리티컬 불릿을 쏘아내 그중 두 마리를 더 죽여 버린 정시우가 자신을 보고 멍해져 있는 여자에게 씩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검은 투구를 쓰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저렇게 많이 살려 보낼 필요는 없겠지.”

“너…….”

여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에메랄드처럼 투명한 녹색의 눈동자가 매력적으로 반짝였다.

“방금 그 마탄 대체 뭐야!? 평범한 마탄 아니지, 그치!?”

“……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 쌍권총의 사수 마리나 비셋과 정시우가 처음으로 조우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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