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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32화 (32/260)

# 32

32화.

“형님은 대지의 신의 축복 같은 걸 받으신 걸까요.”

대지에 열쇠를 꽂아 휴식처로 통하는 문을 만들어내는 정시우의 뒷모습을 보며 용세하가 중얼거렸다. 수아린이 그의 말에 허무하게 웃었다.

“리타이어하게 되면서 완전히 그쪽에 관심을 끊었었지만…… 그렇죠. 용오름 길드의 최근 화두는 ‘신’이었죠.”

플레이어들끼리 모여 종교에 대한 토론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플레이어로 선택받고, 현대 문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인 하늘성과 던전이 등장함에 따라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은 신에게 특별히 선택을 받은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정신 나간 주장 또한 힘을 얻는 것이 당연. 결국은 선민의식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걸로 끝나면 그냥 비웃고 말겠는데, 높은 단계의 던전으로 올라갈수록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몬스터나, 던전을 이루는 유적과 같은 것에서 지구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신의 존재가 강하게 암시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특정한 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힘이 강화된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게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신을 믿고, 그들로부터 힘을 나누어받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인간 중에서도 그런 이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신의 축복을 받아 다른 모든 존재를 압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일련의 이야기가 각 엘리트 길드 안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네. 그것도 속성이니 신화니 하면서 얘기가 많았죠. 길드 마스터도 그렇게나 강력한 불의 힘을 다루시지 않습니까. 분명 불의 신의 축복을 받으신 게 분명해요.”

“흥.”

수아린은 길드 마스터 김하룡의 얼굴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속한 길드의 장으로서 따르기는 했지만 인간적으로 그리 호감이 가는 이는 아니었다.

그는 분명 강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의 장이 되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경쟁심도 크고, 명예욕도 지대했으며 결정적으로 틈만 나면 그녀에게 치근대곤 했다.

32단계 던전 공략도 다른 나라의 길드들보다 앞서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서두른 까닭에 결국 자신이 리타이어하기에 이르렀다. 그 덕에 정시우를 만날 수 있었으니 이제 와선 그리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김하룡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저는 신을 믿지 않을 거예요. 설혹 정말로 그 인간이 신의 축복을 받은 거라면, 그런 신은 필요 없어요.”

“그러고 보니 선배님, 마스터와 약혼 관계라는 얘기가…….”

“개소리, 헛소문. 다시는 그 얘기를 입에 담지도 말아요.”

“예, 옙!”

순간적으로 수아린이 내보인 기세에 용세하는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녀의 깊은 빡침에서 처절한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하룡이 수아린을 노골적으로 노렸기에 다른 이들은 수아린에게 호감이 있어도 그것을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수아린은 자신이 리타이어하는 순간까지 남자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것은 모두 김하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경험이 좀 있어야 끌려다니지 않을 텐데. 가뜩이나 저쪽은…….”

“네? 경험? 저쪽?”

“닥쳐요.”

“넵.”

용세하는 입에 지퍼를 채웠다. 마침 휴식처로 향하는 문을 연 정시우가 엉덩이에 붙은 도마뱀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거기에 덧붙인 말이 문제였다.

“둘이서 연애라도 하냐? 거기서 속닥거리지 말고 얼른 와.”

“안 해욧!”

“히익!?”

왜 혼나는지 알지도 못하고 혼나는 정시우. 괜히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용세하였다.

“이곳이 휴식처…… 제법 공간이 되네요!”

휴식처 안으로 들어선 용세하는 수아린에게 혼났던 것도 잊고 탄성을 내질렀다. 대지에 열쇠를 꽂는 것만으로 열리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더 신기한 것은 내부였다.

그가 플레이어가 되기 전 살던 집의 거실만 한 안정적인 크기에, 푹신한 침대며 넓은 욕실까지 있을 것은 다 있지 않은가.

“뭣보다 이게 전부 아티팩트라는 게 가장 놀랍습니다.”

“보는 눈은 있구나, 신입. 참고로 난 지금부터 침대를 강화할 생각이야.”

그 누구도 방해할 생각 하지 말라는 듯 엄숙하게 선언하는 정시우. 그는 자신만만하게 침대에 손을 얹었다. 곧 그의 망막에 친절하게도 문자열이 새겨졌다.

[침대의 레벨 업을 위해선 휴식처의 레벨을 더 올려야 합니다.]

[저금한 비드의 30%를 소모하여 휴식처 레벨을 3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강화하시겠습니까?]

그 부분에서 정시우는 잠시 사고를 중단했다. 어라, 이게 뭐지? 이전에도 한 번 이래서 휴식처 레벨을 2로 올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뭐냔 말이야! 버그, 버그다. 운영자를 데려와라!

“오빠, 저번에 휴식처 레벨 올릴 때요.”

그보다 먼저 해답을 찾은 것은 수아린이었다.

“정확히 휴식처 레벨을 2로 올려야 침대 레벨을 올릴 수 있다고 했었나요?”

“아니, 그런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

당연히 휴식처의 레벨만큼 부속 가구의 레벨도 올릴 수 있겠거니 생각했거늘,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분해하건 말건 수아린은 잔혹하게 그 뒷말을 이었다.

“그럼 휴식처의 레벨을 3으로 올려도 침대의 레벨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

“어, 역시 자취가 빡세긴 빡세네요. 힘내세요, 형님.”

정시우는 용세하를 주먹으로 날렸다. 그리고 조용히 휴식처의 레벨 업에 비드를 투자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과거 두 배로 늘어났던 공간이 다시 그 두 배로 늘어나, 어지간한 사무실 정도의 크기로 확장되었다!

[휴식처가 3레벨이 되었습니다. 공간이 넓어집니다.]

[냉장고 Lv1이 추가됩니다.]

[냉장고 Lv1 ? 식품 보관 가능. 일정 시간마다 랜덤한 능력의 포션을 생성.]

정시우는 서랍 옆에 떡하니 냉장고가 생겨나는 것을 보며, 그것이 지닌 터무니없는 기능을 확인하며 못내 불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꼭 이렇게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날 달래려 들어.”

묘하게 현실적인 살림살이가 늘어나는 점도 그렇고 그것이 지닌 기능이 정시우에게 꼭 필요한 점도 그렇고 꼭 누군가 정시우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언젠가 그놈에게 주먹 한 방 강하게 먹이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이 다음으로는 또 뭔가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침대에 쏠렸던 내 집중을 앗아가겠지? 다 안다, 이놈들아!”

“오빠, 진정해요.”

그러나 정시우의 예상은 반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그가 이를 벅벅 갈고 있던 그 순간 그의 망막으로 이러한 문자열이 떠올랐다.

[부속 가구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침대 레벨 업 가능 ? 보유 비드의 20% 소모]

[문 레벨 업 가능 ? 보유 비드의 50% 소모]

“뭐……?”

휴식처 레벨이 오를 때마다 레벨 업 가능한 부속 가구를 알려주는 건 그래, 고마웠다. 침대의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좋았다.

그런데 웬 문?

[휴식처 Lv3]

[침대 Lv1 ? 숙면 가능. 휴식 시 체력과 마력 회복 효율 10% 증가(레벨 업 가능)]

[서랍 Lv1 ? 물건 보관 가능]

[문 Lv1 ? 바깥으로 나가는 문(레벨 업 가능)]

[욕실 Lv1 ? 목욕 가능. 신체에 남은 미약한 독과 저주, 그 외 부정한 기운을 해소]

[냉장고 Lv1 ? 식품 보관 가능. 10시간마다 1병씩, 랜덤한 능력의 하급 포션을 생성]

아, 그러고 보니 있었다. 이곳은 분명한 지하임에도 저 문을 열면 지상으로 나갈 수 있으니, 그야 저 문도 평범한 문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레벨 업을 시키는 데 침대보다도 비드가 많이 소모된단 말인가!

“어차피 레벨 올리실 거잖아요, 오빠. 괜히 사연 늘어놓지 말고 후딱 해치우죠.”

“너 요즘 좀 예리하다?”

행동패턴이 점점 수아린에게 파악되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묘했다. 사실 정시우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얻은 패시브 스킬 ‘무지는 용감’만 생각해봐도 간단히 결론이 나오지만 말이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한다! 보이는 건 만진다! 문이 있으면 연다! 몬스터가 보이면 팬다!

“멋집니다, 형님!”

“조용히 해라.”

정시우는 용세하를 침묵시킨 후 우선적으로 침대의 레벨을 올렸다. 당장에 침대가 더블 사이즈에서 킹사이즈 이상으로 커지며 매트리스와 이불, 베개까지 단숨에 질이 좋아졌다.

그는 매트리스의 쿠션감을 확인하곤 경악하고 말았다. 수아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침대는 과학이라더니…….”

“두 분, 그 두 개 다른 브랜드예요.”

곧 레벨 업이 완료된 침대의 상세내역이 그의 망막을 가득 채웠다.

[침대 Lv2 ? 숙면 가능. 휴식 시 체력과 마력 회복 효율 20% 증가. 아주 서서히 모든 스킬의 숙련도 증가.]

“회복 효율이 오른 건 그렇다 치고…….”

“여기서 자는 것만으로 스킬의 숙련도가 오른다구요!?”

“오오, 꿈속에서 수련이라도 시켜주는 것 아닐까요!”

용세하가 제법 가능성 있는 추측을 했다. 정시우는 당장이라도 침대에 다이브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으나 아직 샤워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어디로든 문이라도 되는 건가.”

“저 그리스가 가보고 싶어요, 오빠.”

뒤바뀐 침대의 성능에 만족한 남녀는 멋대로 꿈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이젠 거침없이 문을 강화할 준비가 되었다. 정시우는 과감하게 비드를 투자해 문을 강화했다!

[문 Lv2 ? 바깥으로 나가는 문. 비드를 소모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던전에 바로 입장가능. 휴식처 출입 열쇠를 통해서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

“…….”

“…….”

셋은 사이좋게 침묵했다. 만 원 쥐어주고 미용실에 보낸 초등학생 딸이 마리 앙뚜아네트 머리가 되어 돌아오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냉정해졌을 때, 수아린이 미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 오빠 꼬리로 직접 땅 팔 필요는 없겠네요.”

“그것 참 기쁜 일이다, 그래.”

정시우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제법 좋은 기능이었다. 솔직히 서울에도 슬슬 들어갈 던전이 떨어지고 있기도 했고, 만약 저번 산하동 사태처럼 던전이 터져 몬스터들이 마구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멀찍이서 땅바닥에 열쇠만 꽂아 던전에 입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러나 안 좋은 점도 당연히 있었다. 예를 들어 아무 생각 없이 문을 통해 근처 던전으로 갔는데 그 근처 던전이 마왕성 같은 곳이었을 경우 들어서는 순간 도망쳐야 할 테니까. 정시우는 귀환석이 충분히 확보된 상황에만 그 기능을 사용하자고 다짐했다.

“에이, 몰라.”

정시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당면의 과제였던 강화 오크의 군락 정복을 마친 지금, 더 이상 뭔가를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무리였다.

“씻고 자자.”

“어, 형님. 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용세하가 머뭇거리다가는 물었다.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다가는, 이내 깨달음의 탄성을 질렀다.

그는 두 채째의 인형의 집을 구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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