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화.
[마력 5를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패시브 스킬 ‘헤비 웨폰 배틀’을 창조했습니다.]
[헤비 웨폰 배틀 Lv1]
[중병기로 벌이는 모든 전투를 보조한다.]
기껏 마력 5를 영구적으로 소모해 만든 스킬임에도 ‘헤비 웨폰 배틀’의 설명은 무척이나 빈약했다. 그러나 그도 그럴 수밖에, 스킬의 모든 면모를 설명하자면 24시간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헤비 웨폰 배틀은 중병기를 이용하는 모든 전투에 정시우만의 리듬을 새기는 스킬이었다. 그가 구축하고 정립한 자신만의 전투기술, 호흡과 무술을 일치시켜 전장에서 꽃피우는 기술인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만든 스킬이었기에 이게 최선인지도 알 수 없었고, 스킬을 만든 직후인 만큼 스킬을 시연하면서도 여러모로 부족한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 못마땅해하는 정시우와는 달리 수아린은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중병기로 벌이는 모든 전투를 보조한다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중병기를 휘두르는 동작에 플러스 보정이 가해지는 것도, 적의 피해량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모든 전투를 보조한다니 대체 어떤 스킬을 만들어낸 거예요?”
그것은 스스로의 육신과 무기, 전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수아린이 아는 한 이렇듯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도 강력한 보정을 가져오는 패시브 스킬은 없었다.
어떤 업적을 세워도 획득할 수 없는, 플레이어의 재능과 노력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스킬. 수아린은 그런 고위 스킬을 고작 마력 5를 소모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스킬을 시연하고 있는 정시우를 보고 있노라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스킬을 획득하고 해머를 휘두르는 정시우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한 거냐?”
“적어도 제가 아는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보다는요.”
“좋아, 그럼 됐어.”
수아린의 솔직한 칭찬에 정시우의 기분도 조금 좋아졌다. 그는 슬레지 해머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돌아섰다.
“그러면 스킬도 확인했으니 끝내볼까.”
[크하아!]
기갑 오크 천부장이 울부짖었다. 놈은 정시우에 의해 전신을 뒤덮었던 기계 장치가 모두 부서지고, 관절이 부러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죽음만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서 정시우가 바로 놈을 끝장내지 않았는가 하면.
“패시브 스킬도 완벽하게 활성화했으니, 놈을 죽이면 스킬 성장에도 보너스가 붙겠지?”
“오빠는 악마예요, 악마.”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 제일 괘씸했다. 그래도 나름 패시브 스킬에 대해 감을 잡게 해준 놈인데 끝까지 스킬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다니 사람이 일관성이 있는 것도 정도가 있지!
“고마웠다, 잘 가라!”
[쿠워어어어어어어어!]
스킬이 완성된 이상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정시우가 내지른 망치가 토르의 묠니르처럼 허공을 찢어발기며 떨어져내려 기갑 오크 천부장의 머리통을 깨부수었다.
레벨 150을 넘기는 플레이어 파티도 사색이 되어 피해 다니는 엘리트 몬스터, 독립된 던전에 이르러 보스로 자리매김한 괴물을 정시우가 홀로 처치한 순간이었다.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2:08:35:36]
[기갑 오크 455, 기갑 오크 백부장 32, 기갑 오크 천부장 1 처치]
[클리어 랭크 ? B]
[추가 보상, 플레임 발리스타의 주문서 1개 획득]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이 15 올랐습니다.]
변화는 실로 극적이었다. 정시우가 무리하여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던전에 도전한 탓에 특수 업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클리어 랭크도 가까스로 B랭크에 도달했을 뿐이었지만 막대한 경험치만은 오롯이 정시우에게 주어졌고, 그 결과 35레벨에 불과했던 정시우가 한순간에 50레벨까지 도약하게 된 것이다.
“으그그그그극.”
물론 갑자기 신체가 변화하는 탓에 찾아온 고통만은 오롯이 그가 감내해야 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뼈가 산산이 바스러지는 것만 같은 감각.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을 만들어내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내부를 관조할 수 있게 된 정시우는 신체의 변화를 보다 확실하게 느끼며 신음했다.
무지막지한 양의 마나가 폭력에 가깝게 밀려들어 그의 육신을 근본부터 변화시켜나가는 감각은 그리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통은 영원보다는 순간에 가까웠다. 마나의 격동이 멈추고, 육신의 상태가 진정되었을 때. 정시우는 비로소 눈을 뜨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확인했다.
[정시우]
[지하 플레이어]
[Lv 50]
[근력 ? 182 민첩 ? 186 체력 ? 200 마력 ? 45]
[패시브 스킬 ? 카오스 테일 Lv1, 무지는 용감 Lv5, 독 내성 Lv6, 화염 내성 Lv2, 소울 컬렉트 Lv1, 살기 Lv2, 헤비 웨폰 배틀 Lv2]
[액티브 스킬 ? 부여 Lv20, 강타 Lv14, 전투질주 Lv14, 마탄 Lv6, 워 크라이 Lv5, 스톤 스킨 Lv3, 크루얼 차지 Lv1]
“후우.”
정시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이제 막 얻었을 뿐인 헤비 웨폰 배틀 스킬의 레벨이 2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스킬을 얻고 오크 천부장을 죽인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마력을 5 잃은 건 뼈아프지만…….”
지금 시점에서 패시브 스킬을 확보한 것이 분명 나중에 큰 보탬이 되어 주리라, 이미 스킬의 가치를 절실하도록 깨닫고 있는 정시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뭔가 태클 한 번 걸어줄 것 같은 녀석이 의외로 잠잠했다.
정시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소매를 살피니, 그 안에서 수아린이 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으으으으.”
“아, 너도 그러냐.”
던전을 클리어하고 성장한 것은 정시우뿐만이 아니었다. 정시우의 서포터인 수아린 또한 그와 비슷한 수준의 격변을 겪었다.
“후, 후우으으으…….”
몸집이 아주 조금 더 커지고, 서포터로서 지닌 레벨이 대폭 상승하며 마력이 회복된 것은 물론이고 이전에 지녔던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들까지 다수 회복되었다. 치유마법 네 번이 한계였던 시절과는 이제 작별인 셈이다.
“저도 힘을 많이 회복했어요, 오빠! 이제 좀 더 빡센 던전에 가도 돼요!”
곧 수아린의 변화도 끝났다. 많이 아팠던 것일까, 눈꼬리에 대롱대롱 눈물방울을 매단 채 그녀가 씩씩하게 외쳤다.
정시우는 역시 귀여운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수아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분간은 쉬운 던전만 돌아다니자.”
“기껏 사람이 할 맘을 먹었는데!”
“강한 놈들과 싸우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죽는 건 싫거든. 확실히 이번엔 좀 무리가 컸어.”
싸울 땐 그도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삼도천을 건널 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헤비 웨폰 배틀 스킬을 정립하기 전까지는 곡예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는 생애 최초로 맞이한 ‘벽’에 조금 지나치게 들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생 살면서 별로 어려운 일이 없었던 만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불타오르는 놈들을 보면 언제나 바보 취급했는데 이젠 그것이 남 얘기가 아니게 되었다. 정시우는 반성하기로 했다.
“참 빨리도 반성하네요…….”
“음……?”
수아린이 투덜거리던 그때 정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 너머로부터 일행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무엇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사실 그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용세하 씨…….”
함정도, 몬스터도 다 제거된 던전이라 장애물은 없다지만 입구에서부터 보스 룸까지 거리가 제법 될 텐데, 용세하는 파티의 돌격수였던 것을 증명하듯 무척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그 덩치는 수아린처럼 조그맸다.
“이대로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로 오크 천부장을 혼자 꺾으시다니!”
“저도 있었거든요!”
“앗, 서, 선배님. 죄송합니다!”
이윽고 용세하가 그들 앞에 도달했다. 일행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의 무기력한 모습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눈망울이 순수한 기쁨과 열정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손바닥에 올라갈 수도 있을 만큼 작아졌는데도 뭐가 그리 좋을까, 하긴 살아났으니 기쁘기야 하겠지. 정시우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자니 용세하가 그의 새끼손가락을 양손으로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어쨌든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옛날 생각나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라.”
“예, 옛날……?”
“하지만 제 안에서 넘쳐나는 감사와 존경을 표현할 수 있는 호칭이 그것뿐입니다, 형님!”
정시우는 포기하기로 했다. 나비 날개의 청년은 허공을 쌩쌩 날아다니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생의 환희를 누가 모르랴, 녀석의 캐릭터가 조금 바뀐 것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녀석이 만끽하도록 두기로 했다.
“앞으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제가 돌격수가 되어 형님의 앞길을 정리하겠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건 고맙구나. 실수만 하지 마라.”
“시우 오빠, 그 말 되게 불길하니까 하지 마요.”
정시우의 서포터가 둘이 된 순간이었다. 서포터의 수준은 철저하게 지하 플레이어를 따르는 것인지, 수아린도 용세하도 사이좋게 50레벨. 마나를 소모해 짧은 시간 실체화할 수도 있으니 히든카드로 써먹기에는 딱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너희 장비는?”
“일단 리타이어할 때 장비를 그대로 장비하고는 있어요. 실체화하면 사용할 수도 있고…… 아, 물론 장비 수준도 떨어진 상태지만요.”
장비가 녀석들에게 귀속되면서 육체를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 녀석들 장비까지 구하느라 고생할 일은 당분간 없다고 보아도 되겠지.
정시우는 안심하며 망치를 들어 천부장의 사체를 강하게 내리쳤다. 강타를 발동해 단숨에 달러와 비드 루팅을 모두 완료! 고생해가며 싸운 보람은 있었는지, 천부장의 비드는 어김없이 나와 주었다.
“그러면 어디 전리품을 얻어 보실까.”
“어차피 한 번에 다 던질 셈이죠?”
수아린은 그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시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모든 오크의 비드를 단번에 끌어모아 제단에 흩뿌렸다. 그러나 중간에 비드 200여 개가 허공으로 튕겨져 나왔다.
[보상의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또냐! 또냐고!”
강화의 제단도 그러더니 이젠 보상의 제단까지! 그의 기분 탓인지 몰라도 괜히 더 환해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수아린이 말했다.
“제아무리 이 던전이 강력한 오크들로 득시글거리는 던전이라고 해도, 던전에서 나올 수 있는 보상에는 어디까지나 한계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에요. 오크 던전에서 드래곤 부츠 같은 게 튀어나올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결국 이 던전에서 얻은 비드를 바친 건데도?”
“오빠는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하며 비드를 독식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오버킬이 많다는 걸 감안해도 이상하리만치 비드 운이 좋기까지 하죠. 언젠가 한번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요.”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시우는 튕겨져 나온 비드를 회수하며 제단 위에 나타나는 보상을 확인했다.
그것은 굉장히 단단해 보이는 흑색의 투구였다. 목 위부터를 전부 가리는 금속 투구.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시우가 전력으로 망치를 내려쳐도 몇 번은 버틸 것만 같은 든든함이 있었다.
[불굴의 의지]
[랭크 ? C++]
[방어력 ? 1000 ? 1200]
[숙련도 ? 0/500]
[옵션 - ???]
[전사의 강한 의지가 금속에 깃들어 탄생한 투구.]
“갑옷보다 방어력이 높잖아!?”
“C등급 무구……. 후우, 이제야 좀 안심하겠네요.”
정시우 역시 만족했다. 적어도 앞으로 바깥에서 날뛸 때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다닐 필요는 없어지지 않았는가! 착용감도 가히 나쁘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그는 투구의 면갑을 올려 시야를 확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가자.”
“남은 비드는 휴식처로 돌리시게요?”
“응.”
최근 벌어들인 비드 거의 대부분을 휴식처에 저금했으니, 이젠 슬슬 휴식처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휴식처? 그게 뭐죠?”
“가보면 알아. 너도 이제 그곳에서 살게 될 테니까.”
정시우는 씩 웃어보이곤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그렇게 그에게 두 명째의 서포터를 안겨준 던전이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