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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8화 (28/260)

# 28

28화.

“이건 정말 군락인데?”

“소천전장의 일부를 고스란히 옮겨온 것만 같네요. 개미굴, 정말 알 수 없는 공간이에요…….”

던전 깊숙이 들어갈수록 동굴에서 벗어나 고원 지대의 산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던전. 분명 통로도 있었고 방과 방 사이의 경계도 뚜렷했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지하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광활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내겐 더 좋아.”

아무리 공간이 넓어도 한 방에 나타나는 오크의 숫자는 그래봐야 둘에서 셋, 많아도 다섯. 공간이 좁으면 좁은 대로 유인책을 펼칠 수 있지만, 넓으면 또 넓은 대로 공간을 질주하며 정시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투를 끌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인간!]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신호도 주지 않고 대체 뭣들 한 거야!]

뭐하긴, 신나게 싸웠지. 정시우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히죽 웃었다.

기갑 오크들은 군대처럼 정찰병을 두고 있었고, 신호 체계 또한 갖추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침입자가 한 명이다 보면 경계심이 많이 느슨해지는 법. 정시우를 스스로 상대할 생각에 들뜬 탓에 다른 오크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전 목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흡!”

[나무 뒤에서 온다! ……아니, 나무랑 같이 온다!]

정시우는 던전에 솟아난 지형지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물론 정시우나 기갑 오크들이나 나무나 바위 정도에 다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시야를 가리거나 틈을 만드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쿠학!]

[아니, 뒤에서 오잖아!]

오크들이 많을 땐 일단 마나를 가득 실은 공격으로 확실히 한두 마리를 끝내놓는다. 부여 스킬과 강타 스킬이 성장한 덕에, 무엇보다도 슬레지 해머에 붙은 옵션이 있어 가능했다.

초장에 기선제압을 하고 나면 놈들은 정시우를 경계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홀로 맞붙어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합격을 하려는 것. 정시우는 혼자 날뛰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놈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

[쿠겍!]

[시모오오오오온!]

하지만 그것과 효율성은 별개다. 애초에 합격에 익숙하지 않은 놈들이 제 욕구를 억누르고 손발을 맞추려 하니 자연히 빈틈이 더 드러날 수밖에!

[감히 시몬을 죽이다니!]

“크크, 너도 곧 시몬 곁으로 보내주지.”

“그 대사 엄청 악역 같아요, 오빠…….”

정시우는 놈들의 뻘짓에 경의를 표하며 한 놈 한 놈 차분히 머리통을 뽀갰다. 그의 손에서 회전하며 오크들의 급소에 차례대로 꽂혀 깨부수는 해머. 회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자 슬레지 해머의 추가 그의 손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날뛰는 것도 여기까지다!]

“흡!”

정시우가 네 번째 오크의 골통을 부순 그때, 마지막 다섯 번째 오크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근처의 굵은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뛰어내린 것이다.

그러나 놈의 도끼가 정시우의 정수리를 쪼개기 직전, 정시우가 오크의 대가리에 박혀 있던 망치를 들어 냅다 놈에게 던졌다.

[칵!?]

“뒈져!”

망치가 놈의 도끼를 강타해 반쯤 으스러트린 직후, 그 뒤를 따라 대지를 박차고 점프한 정시우가 놈의 턱에 강렬한 어퍼컷을 날렸다. 강타까지는 아니었으나 마나를 부여해 강화된 돌주먹이 놈에게 뇌진탕을 일으켰다.

“이어서…… 음?”

[꾸르륵……!]

정시우는 그대로 놈의 멱살을 잡고 대지에 내던질 작정이었으나, 그 전에 턱을 중심으로 놈의 얼굴에 퍼지는 녹색 기운을 보고는 기겁하며 놈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대지에 내동댕이쳐진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끅, 끄르륵…… 독, 독을 쓰다니……!]

“독?”

정시우가 얼떨떨해져 반문했으나 오크는 마지막으로 파르르, 떨고는 그대로 죽어버렸다. 오크 다섯 마리가 대기타고 있던 방을 깔끔하게 끝낸 것은 물론 좋은 일이었으나…… 독이라니?

“오빠, 그 장갑. 장갑이요.”

“아, 그러고 보니.”

정시우의 시선이 그가 착용한 장갑을 향했다. 방어용으로도 좋고, 너클 부위에 달린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로 적을 공격하기도 좋은 장갑. 여태 잘 써먹었지만 ‘옵션’이 발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광충의 독니]

[랭크 ? D++]

[공격력 ? 250 ? 500]

[방어력 ? 250 ? 450]

[숙련도 ? 101/200]

[옵션 ? 공격 시 일정 확률로 무기 랭크에 비례해 중독시킨다.]

[강한 독을 품고 있던 지네들의 정수가 모여 완성된 한 쌍의 가죽장갑. 무척 질기고 단단하여 손을 방어하기에도 적절하며, 너클 부위에 박힌 작고 단단한 가시는 적을 공격할 때에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숙련도가 절반을 넘겼어. 그래서인가?”

“옵션은 지니고 있는 위력에 따라 빠르게도, 늦게도 나타나요. 실제로 슬레지 해머도 아직 첫 번째 옵션이 안 나타났잖아요?”

그의 주무기 슬레지 해머는 두 개의 옵션을 갖고 있었다. 장갑처럼 적을 중독시키는 옵션도 있었는데 발동확률이 낮은 건지 아직까지 발동한 적이 없었고, 첫 번째 옵션은 드러나지도 않았다. 숙련도는 진즉 절반을 넘겼음에도.

“그러면 숙련도를 전부 채우면 어떻게 되지?”

“무기 능력이 상승하죠. ……그리고 합성의 제단을 이용할 수 있게 돼요.”

“제단이란 건 정말 종류가 다양하구나…….”

어차피 숙련도를 다 채우려면 아직 한 세월이나 남았으니, 합성의 제단에 대한 설명은 그때 가서 다시 듣기로 했다. 어쨌든 능력이 강해진 것은 좋은 일이다. 화염에 독까지, 다채로운 힘을 다루게 되니 제법 즐겁기도 했다.

“던전에 들어오고 얼마나 흘렀지?”

“하루 조금 넘었어요. 소천전장에서도 다섯 마리나 되는 오크 무리와 맞붙는 건 던전의 중반을 넘어서라고요. 오빠는 지금 페이스가 너무 빨라요.”

수아린의 말에 시간을 확인하니 정말로 던전 클리어 제한 시간이 이틀도 안 남아 있었다. 전투의 쾌감에 취해, 성장의 쾌감에 취해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니 시간 감각을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더욱이 그 사실을 자각하자 걷잡을 수 없이 피로감이 몰려왔다. 정시우는 근처 나무에 기대어 앉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 1시간만 쉬자.”

“철인이에요?”

“너도 쉬어.”

“전 시우 오빠랑은 달리 한 번 잠들면 1시간 안에 깨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도 없거든요.”

수아린이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순순히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정시우는 슬레지 해머를 한 손에 느긋이 쥐고 나무에 기대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아린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밀어 넣으며 눈을 감았다.

‘언제쯤 오려나.’

적의 기척이 느껴졌다. 실은 전투가 끝난 직후부터 정시우의 틈을 노리는 적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만은 스킬로도 마나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시우가 타고난 직감이다. 적은 정시우가 눈치를 채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무방비하게 다가올 수는 없다.

‘딱 이렇게 방심할 때쯤 찾아오는 게 정말 귀신같네.’

던전의 방과 방, 뚜렷한 경계. 만 하루 이상 그것에 적응해 움직이게 해놓고, 그가 가장 방심한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친다. 정시우에게 날카로운 직감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아린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의심하고 있어. 내 숨소리를 읽고 있구나.’

이번 적은 굉장히 예리한 놈이다. 다른 기갑 오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기세, 그것을 은밀하게 감추는 능력까지 감안해 판단하면 엘리트 몬스터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이길 수 없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판단을 했더라면 용세하가 죽건 말건 진즉 던전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온다. 아니 아직, 오히려 물러났어. 씁…… 오게 만들어야겠군.’

전신에 은밀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정시우와는 달리, 수아린은 멋모르고 이미 단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하긴 제아무리 마력을 회복하고는 있다지만 치유능력의 서포터인 그녀가 정시우를 쫓아 움직여야 했으니 지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던전에서 싸우다 리타이어했던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만한 전투만 골라 벌이고 있는 것이 새삼스레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 던전이 끝나고도 힘든 일만 있을 테니 힘내.’

물론 아무리 그녀에게 미안해도 이번 던전만 클리어하고 쉬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직 클리어해야 할 던전이, 탐험해야 할 미지가 산더미같이 남아 있었으니까! 악덕사장이 따로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런 진취적인 마인드라면 적어도 사망 플래그는 세우지 않으리라!

정시우는 수아린과 서서히 호흡을 맞추었다. 물론 자는 척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실제로 잠들어버렸다간 황천길 건너는 수가 있으니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위장했다. 아주 서서히, 편안한 잠에 빠지듯이.

놈이 움직였다. 무척 신중한 움직임이었지만 충분히 빨랐다. 정시우와 오크들이 난동을 피웠음에도 아직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던 나무와 수풀들을 차폐물로 삼아 순식간에 그들과의 간격을 좁혀왔다.

20미터. 17미터. 13미터. 5미터.

놈이 3미터 거리를 두고 가까워진 바로 그 순간 폭발음이 일었다.

[크윽!?]

오크가 기겁하며 멈춘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기회라고 판단한 정시우가 망치에 최대한의 마나를 주입해 그대로 놈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크아아아아아!]

놈의 키는 다른 오크에 비해 족히 20센티미터가량은 컸다. 머리의 투구에 달린 장식이 놈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놈의 가슴팍에 달린 기계 장치를 강타한 슬레지 해머에서 강력한 불꽃이 일어 놈을 집어삼켰다는 것이다.

[나도 눈치 채지 못하는 함정을 설치해두고 있었다니, 내가 습격해올 것을 알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난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실은 함정이 있다는 건 정시우 본인도 모르고 있기는 했지만 오크 놈을 화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줄 용의가 있었다!

정시우는 분노에 가득 차 도끼를 들어 올리는 놈의 기계 팔뚝, 이제 막 압축가스를 분사하려는 바로 그 부위를 다시 한 번 망치로 가격했다!

[카하아아아!]

“흐아아압!”

과연 엘리트는 엘리트인가, 오크는 한쪽 팔뚝이 맛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투지와 집념으로 도끼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정시우는 최대한 놈의 몸통 안쪽으로 돌진하며 도끼를 비껴내고는, 망치를 놓아버리며 오른 주먹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인간 놈의 가녀린 주먹 따위로는……!]

“내 생애 처음 듣는 말이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으려는 놈의 턱에 다시 한 차례 어퍼컷! 그것으로도 그치지 않았다. 정시우는 놈의 품에 들어간 상태에서 전투질주를 발동해 그대로 놈의 몸통에 부딪히며, 어깨와 허리를 중심으로 마나를 부여해 강타를 발현했다.

[크가아아!]

부여와 강타를 익힌 지 얼마 안 된 이가 펼쳐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전신강타! 엘리트 오크는 함정에 불꽃, 어퍼컷에 이은 강타에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놈은 어떻게든 반격을 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으나, 그런 놈을 맞이하는 것은 정시우가 들어 올린 거대한 슬레지 해머였다.

[이런.]

엘리트 오크는 정시우의 품 안에서 영리하게 반짝이는 작은 천사의 눈망울을 마주하며 자신이 누구에게 당했는지 깨달았다.

[썩을.]

정시우의 망치가 놈의 골을 깨부수었다.

정시우는 그 뒤로도 용케도 죽지 않고 스물하고도 몇 마리인가의 엘리트 오크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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