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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3화 (23/260)

# 23

23화.

정시우는 던전을 빠져나오기 전, 용세하에게 급한 대로 인벤토리에 비축해 두었던 식량을 전부 넘겨주었다.

“식량이 다 떨어져도 너무 걱정 마. 아마 도중에 죽어도 유령의 형태로는 남게 될 테니까.”

“그것 참 좋은 소식이군요. 그래도 가능하면 제가 살아 있을 때 다시 찾아와 주세요.”

혹시나 귀환석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일말의 걱정을 품었던 수아린이었으나 아티팩트의 능력은 확실했다. 그들이 용세하를 받아 냈던 도로 한복판에 그대로 돌려놓은 것이다.

너무 순식간에 돌아오느라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에 치일 뻔한 것을 제외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후…….”

“치유해 드릴까요……?”

“아니…… 그래, 일단 휴식처로 가자.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정시우는 열쇠의 힘을 이용해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휴식처의 문을 열었다. 단지 던전 첫 번째 방의 오크 한 마리와 싸웠을 뿐이건만, 그 짧은 시간이 그에게 남긴 후유증은 상당했다.

“설마 그 정도로 압도적일 줄이야.”

“오빠가 밀리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요.”

“밀렸다고 봐야 해.”

무기에 인챈트된 불꽃의 힘이 아니었다면 오크에게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물론 정시우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힘이라 여겼지만, 그것만 믿고 오크를 상대하다가는 가벼운 실수 한 번에 골로 가기 딱 좋다고 보았다.

“단련을 좀 해야겠어. 그 오크 놈만의 문제가 아냐. 앞일을 생각해도…….”

그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오크가 나타나는 던전이 겨우 26단계.

그나마도 진짜 하늘성 던전인 소천전장에는 기갑 오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류의 몬스터들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차마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인정하자.

기갑 오크의 강함은 그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할 만큼의 충격을 주었다. 몇 번의 레벨 업을 거듭하고, 산하동의 몬스터까지 처리하며 스스로에게 나름 만족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당장 그의 옆에 있는 수아린만 해도 그것보다도 6단계나 높은 던전을 진행하던 실력자.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녀보다도 강한 이가 수백 명. 실로 까마득하다.

세상엔 그보다 강한 이가 이렇게나 많다.

32단계 던전 위로도 많은 던전이 있을 터, 그 놈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시우는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오크를 넘어서자. 그게 되면 그다음은 기갑 오크 천부장이라는 놈을 넘는 거야.”

“오빠, 이상하게 기뻐 보이네요. 저는 오빠가 조금 더…… 풀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평생 압도적인 강자의 입장에서 살아온 정시우다. 그런 그가 현실을 깨닫게 되면 조금쯤 충격을 받지 않을까, 수아린은 걱정했었다.

그래서 그의 수준에 비해 쉬운 던전을 차근차근히 정복해 스스로의 수준을 높이길, 그렇게 성장해 마주하는 모든 적을 압도적으로 짓누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녀가 아는 모든 플레이어가 그렇게 성장했고, 그것이 성장의 정석이기도 했다. 자신을 구해 준 남자가 언제까지고 잘난 모습만을 보여 주길 원했던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강적의 존재를 깨달은 지금 그는 못 견디도록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내 가치는 타인과 비교한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야. 나보다 강한 이가 있다고 해서 내가 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필요는 없어.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갈 가능성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는 것, 내가 그것을 알았다는 것, 내게 그것을 행할 방법이, 의지가 있다는 거야.”

플레이어가 되어서 다행이다.

더욱 발전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정시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10년간 플레이어가 되길 꿈꾸며 정체되었던 남자의 갈망을 수아린은 미처 헤아릴 수 없었으나, 처음으로 벽에 부딪혀 그럼에도 뛰어넘을 것을 다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싸우다 져서 강해지겠다고 다짐하는 거죠. 초등학생 같아서 귀엽네요.”

“시끄러 인마.”

물론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시우는 우선 방어구를 다 벗고 몸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한바탕 난리를 친 후 샤워를 하니, 몸과 마음의 열기가 기분 좋게 식으며 사고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레벨 업을 우선으로 해야겠어.”

“당연하죠!”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모름지기 발전이란 부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오늘, 오크와 싸우는 잠시의 시간 정시우의 전투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던가!

그러나 그것으로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에겐 보다 많은 경험과 수련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의 결정체가 바로…….

“스킬. 그중에서도 패시브 스킬.”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르다.

능동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 액티브 스킬은 마나를 다루는 요령이 반복되며 전신에, 그자의 영혼에 일종의 통로가 되어 새겨지는 것.

그렇기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스킬이 발동되는 그 순간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마나의 변이는 실로 압도적이다.

반면 능동적이지 않되 꾸준히 작용하는 패시브 스킬은 마나가 특정한 형태로 변이, 응축되어, 플레이어 육신에 직접 자리를 잡는 것이다.

당장 카오스 테일과 소울 컬렉트는 스킬의 소유 여부가 분명히 신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은 정시우의 수준이 일천해 잘 느끼기 힘들었지만, 그 외의 패시브 스킬들 또한 마나의 결정체가 되어 그의 신체 내부 깊숙한 곳에서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다 자연스럽게 느끼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그도 보다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액티브 스킬을 만들었던 것처럼 패시브 스킬도 만들 수 있게 되겠지.”

“알고는 계시겠지만 무척 힘든 일이에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던전 클리어 보상이나, 업적 보상으로 패시브 스킬을 획득하거든요. 여태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요.”

운이 좋아 전투, 특히 무기술과 관련된 패시브 스킬을 일찍 얻은 플레이어들은 개고생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이 지닌 패시브 스킬을 발전시켜 가며 보다 압도적인 힘을 쉽게 손에 넣는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은 지금 대부분 각 길드의 수뇌가 되어 있었다.

“패시브 스킬은 탄생 시에만 마나의 영향을 받고, 그 이후로는 마나의 고저에 상관없이 발전하며 주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죠. 팔다리처럼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패시브 스킬이에요. 오빠는 지금 그 팔다리를 스스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체내 마나를 응축, 특정한 힘을 발휘하는 형태로 고착화시키면 결국 그게 패시브 스킬 아니야?”

패시브 스킬의 핵심을 짚는 말이긴 하다.

이미 그가 각종 업적을 달성하며 패시브 스킬을 몇 개고 얻어 왔기에 할 수 있는 말. 하지만 수아린은 후,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명쾌한 정리네요. 그만큼 그게 평생 마나를 다뤄 보지도 않았던 오빠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시겠죠?”

“일단 무기술과 체술 패시브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자.”

“역시 이런 부분에서만 제 말을 하나도 안 듣는군요.”

패시브 스킬을 만들기 위해선 마나를 변이시킬 만큼의 숙련도는 물론이고, 스킬로 만들고자 하는 능력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필요했다.

결코 하루나 이틀 만에 될 일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점은 그가 못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빠, 그전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 드리죠.”

“뭔데?”

의욕에 차 있던 정시우를 수아린이 냉정한 말로 격추시켰다.

“지금 오빠의 마나는 패시브 스킬을 만드는 시도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적어요.”

“커헉.”

결국 끝까지 그의 적은 마나가 발목을 잡았다.

“더구나 패시브 스킬을 만들게 되면 마나의 일부를 필연적으로, ‘영구적으로’ 잃게 돼요. 가뜩이나 마나가 적은 오빠가 패시브 스킬까지 만들었다간 액티브 스킬을 발현할 마나가 남아나지 않게 된다구요.”

“끄응…….”

답은 결국 하나다.

던전을 돌아야 한다. 던전을 돌며 레벨을 올리고, 무기술이든 체술이든 몬스터들을 상대로 단련하고, 마나를 소모해 패시브 스킬을 만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용세하가 완전히 죽어 버리기 전에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이 나왔으니 그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나. 가능한 휴식처에 저장된 비드가 다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던전을 확보해야 해.”

“지금 당장 움직이시게요?”

“그래야지. 빨리 움직여야 네 후배를 살릴 것 아냐.”

정시우는 툴툴대며 방어구를 입었다. 수아린이 열심히 날개를 퍼덕여 가며 방어구를 닦은 덕에 제법 깨끗해져 있었다.

수아린은 휴식처를 나서는 그의 어깨로 달라붙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만만한 던전이 많이 발견되길…….”

물론 그녀가 그런 기도를 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각, 전 세계적으로 던전에서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들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생겨나고 있었다.

[귀환석이라는 기물을 이용해 던전을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던전의 난이도가 상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 길드 용오름 역시 철저히 상정하고 전투에 임한 던전에서 용세하 씨를 비롯한 멤버 여럿을 잃었음을 밝히고, 지상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과 때를 맞추어 모든 던전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답했으며…….]

[속보입니다. 어깨에 날개가 돋아난 이들, 플레이어에 대해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텐데요. 최근 나타나지 않았던 플레이어 후보들이 돌연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새로 신고 된 플레이어 발생 건수만 1천 건, 전 세계적으로는 수십만에 이르러 잇따른 플레이어 리타이어와 몬스터 발생으로 긴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한편 과연 이것이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한데…….]

[플레이어는 던전에서 달러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달러,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세계 경제가 출렁일 만큼의 달러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어째서 물가는 치솟지 않을까요. 이경제 기자가 취재를…….]

마치 몬스터의 발생과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것처럼 세계 각국에서 플레이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늘성의 모든 던전이 강화되었다. 10년 내내 활동해온 베테랑 플레이어들이 리타이어하기도 하고, 테스트 던전조차 넘지 못해 쩔쩔 매는 플레이어 후보도 생겨났다.

지구 내에 유리된 별개의 사회였던 하늘성은 점차로 지구에 깊이 관여되기 시작했고, 당연히 플레이어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도 높아졌다.

플레이어들이 리타이어하니 자연히 개미굴 던전도 늘어났고, 아직 많은 이들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곧 터져 나와 지구에 새로운 재앙을 안겨 줄 것이었다.

“탐색기…… 필요 없겠는데…….”

“그러게요.”

그리고 그 모든 사태를 관통하는 단 한 명의 지하 플레이어, 정시우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곳곳에 생겨난 던전을 보며 떨떠름해지고 말았다.

바야흐로 지구에 대격변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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