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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2화 (22/260)

# 22

22화.

정시우는 여태까지 힘으로 다른 누구에게 밀린 적이 없었다. 전력을 낼 기회 자체가 없었다.

거대한 뭔가를 때려 부순 적은 있었지만, 그렇기에 자신과 비슷한 체구의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맞상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캬하!]

“큭!”

그것이 지금은 달랐다. 정시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초인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다.

지하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마나로 육신이 강화되며 가뜩이나 강했던 힘이 더욱 강해졌음에도 기갑 오크를 상대로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힘은 조금 약하지만 기술은 굉장하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비로소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닌 기술을 내보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힘은 약하지만 기술이 좋다 이거지…… 하!”

[크핫!]

망치를 올려쳐 오크의 도끼를 받아 내는 정시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생애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이었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정시우는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의 힘을 컨트롤하기 위해 각종 무술을 섭렵했다. 정말 많은 것들을 익혔지만 정작 그것들을 인정받을 기회는 없었다. 어지간한 일은 손가락 하나로도 해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그렇게나 염원하던 플레이어가 되어 던전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테스트 던전의 웨어울프든 지네든 고블린이든 주먹 한 방에 해결되었고, 반대로 거대한 보스 몬스터들은 대인 기술이 아예 통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그것은 그 나름 좋다.

정시우는 힘을 써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를 부수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힘은 자신의 아이덴티티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모순된 존재이기 마련이어서, 그는 자신이 타고난 것을 증명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쌓아 온 것 역시 증명하길 원했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다.

‘내가 안 되는 머리 싸매 가며 공부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지.’

자신이 타고난 힘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언제나 다른 무언가에 매진했다. 자기발전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 보다 나은 자신을 만들었다.

……아니, 아니다.

실은 그런 겸손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실로 잔혹하게도, 자신이 축복을 받고 태어난 만큼 정시우는 어린 시절부터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는 노력은 그 효율이 극악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노력으로 쌓아 올린 성과가 아니다. 오히려…….

‘힘을 타고난 것만이 아냐. 내겐 다른 재능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공부도 잘하고 무술도 잘하고 여튼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터무니없이 어린아이 같은 욕망, 세상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열망. 그것이 정시우를 움직이는 동력원이었다.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게 되었을 때 그의 발전은 잠시 정체되었지만, 그의 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인 기갑 오크를 조우하게 되어 비로소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던전을 클리어하고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도 더더욱 중요한 순간을, 지금 그는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리조리 잘 피하는구나, 오크 전사에게는 걸맞지 않은 몸놀림이다!]

“너도 만만치 않게 잘 피하는걸!”

[맞아 줄 가치도 없는 공격이기 때문이다!]

적의 공격이 무서워 피하다니 정시우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과거 무수한 무술 사범들로부터 공격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긴 했었지만, 여태까지는 굳이 써먹을 일이 없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피하지 않으면 오크가 휘두르는 도끼가 그의 몸을 마른 장작처럼 쪼개 버리게 될 것이다. 정시우는 전신의 근육을 한계까지 짜내어 필사적으로 몸을 놀렸다.

“나도 여태까지는 내가 이렇게 잘 피하는 줄 몰랐는데.”

[하!]

스스로도 우스웠다. 평생 열세에 처한 적이 없는 자신이 이렇게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즐거웠다.

어쩌면 그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제대로 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수련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련의 무게가 어찌 같으리!

실시간으로 회피를 위한 감각이 활성화되고, 근육이 바짝 당겨지는 감각에 익숙해져 갔다.

그는 발전하고 있었다.

‘아린이가 내 속내를 알면 화내겠지만…… 역시 이 던전에 들어오길 잘했어.’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하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은 망치로 맞받는다. 충격을 흘려 내고 적의 자세를 무너트리며 적의 몸에 어떻게든 한 줄기의 상처를 새긴다!

[크, 역시 제법이군!]

망치를 다루는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가 익힌 무술의 동작에 무기를 끼워 넣으면 대부분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적을 상대하며 자신만의 무술을 정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보단 약해!]

“하!”

정시우는 놈의 공격을 피하며 한 손만으로 망치를 휘둘러 놈을 공격했다. 놈의 호흡과 어깨근육의 움직임만으로 공격 궤도를 파악하고, 환시처럼 그려지는 그 궤적을 피해 몸을 놀리며 그 사이 틈으로 망치를 내려찍는다!

[큭!?]

“그렇게 피할 줄 알았지!”

기갑 오크는 그것을 피해 내기 위해 더 큰 틈을 드러내야 했고, 정시우는 손에 쥐고 있는 망치의 무게나 원심력까지도 추진력으로 이용하여 더욱 강력한 공격을 펼쳤다.

처음부터 적의 회피를 상정하고, 무기와 함께 몸을 움직이며 한 바퀴 돌아 다시 공격할 땐 보다 치명적인, 보다 빠른 번개와 같은 일격을 꽂아 넣는다!

[쿠학!]

확실히 오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 무기를 다루는 재능을 타고난 정시우이기에 보일 수 있는 연환격 앞에 결국 놈의 움직임이 한 발 늦고 말았다.

놈의 텅 빈 가슴팍에 슬레지 해머의 추가 작렬하며 굉음을 토했다!

“이제야 좀 알겠네.”

[큭, 크흑……!]

아무리 정시우보다 강한 존재라 해도 원심력까지 더해진 그의 망치 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멀쩡할 수는 없었다. 오크의 가슴팍을 뒤덮은 흉갑이 크게 일그러졌고, 오크가 도끼 쥔 손을 떨어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휴우.”

수아린은 그것을 보며 비로소 정시우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 안심했다.

반면 용세하는 두 눈을 휘둥그레 크게 떴다. 비단 지금 그가 보인 공격뿐만이 아니다. 오크와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정시우의 모습이 그에게는 경이 그 자체였다.

“오크들과 정면으로 붙다니, 그게 가능했다니…….”

기갑 오크는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다.

강대한 마법의 힘을 다루어서도,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되어서도, 저주를 걸거나 함정을 파서도 아니다. 터무니없이 무식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지니고, 고작 수년 던전을 올랐을 뿐인 플레이어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무기술과 체술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높은 레벨의 스킬과 원거리 공격수단 없이는 결코 기갑 오크와 붙지 않는다. 무력, 마력이 아닌 기술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기갑 오크와 맞상대를 벌일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적과 기술을 겨루다니!

정시우의 몸에 머무르는 마나에 비해 파괴력이 가히 압도적인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정시우가 스스로의 육신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저도 나름 돌격수를 자칭하고 있지만……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군요.”

용세하는 용오름 길드의 직계 엘리트 라인에 있는 전사였다. 그의 장기는 바로 강력한 힘과 순발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랜스 차징!

상대적으로 몬스터의 공격에 많이 노출되는 위험한 역할이었지만, 랜스 차징으로 전장을 압도하는 쾌감과 다른 이들을 지킨다는 정의감에 취해 언제나 전장의 선봉에 서곤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레벨이 높은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돌격해, 밀리지 않고 맞붙는 정시우를 보고 있자면 자신은 그저 레벨을 올려 쌓은 힘과 무기만 믿고 날뛴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오빠가 그렇게 강해요?”

“필시 고련을 거듭했겠지요. 저도 다른 레벨과 스킬만이 아닌 실질적인 테크닉에 신경을 썼더라면 지금 이렇게는…….”

용세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시우와 기갑 오크의 전투는 점차로 격렬해지고 있었다.

[나를 기술의 시험대로 삼다니 대단한 배짱이구나!]

“그게 싫으면 좀 더 잘 해 보지 그래!”

[쿠하아아아아아아아!]

순간, 정시우는 기겁했다. 놈은 방금 위에서 찍어 내리던 도끼를 중간에 붙들어, 그대로 가로로 휘둘러 왔기 때문이다!

무식할 정도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막무가내의 공격! 공격이 시작된 방향만 읽어 내고 움직였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변칙적인 공격이었다.

“흣.”

[하!]

하지만 정시우는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그것을 피해 냈다.

공격 방향이 바뀌는 순간 놈의 근육이 크게 부푸는 것을 확인해 전신을 긴장시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카카카카카, 그걸 피하다니!]

“쯔!”

정시우는 과격하게 공격 방향을 바꾸느라 빈틈을 드러낸 놈의 몸통에 있는 힘껏 망치를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망치에 부여한 마나를 정방향으로 폭주시켜 강타를 발현했다!

[크학!?]

운이 좋았던 것일까, 망치에 주입된 정시우의 마나가 그것에 깃든 불꽃의 힘을 크게 자극했다.

강타를 펼치는 순간 불꽃은 더욱 크게 타올라 오크를 덮쳤다. 놈의 한쪽 팔과 가슴팍을 덮고 있던 기계가 강한 불꽃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불꽃…… 강대한 힘이군!]

기갑 오크는 원거리 공격과 불꽃 앞에 취약하다. 그들도 그것을 알기에 경계하지만, 불꽃의 힘이 인챈트된 망치까지도 미리 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깟 기계 좀 녹아내린다고 내가 물러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오크는 전신으로 번지는 불꽃에 이를 악물며 도끼를 꽉 쥐고 일어섰다. 정시우가 다시 망치를 내질러 놈의 도끼를 강하게 후려쳤다.

놈은 지지대를 잃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다가는, 어느덧 자신의 머리 꼭대기 위에 위치한 정시우의 슬레지 해머를, 그 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마주하게 되었다.

[크큭.]

오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음 순간 놈은 도끼를 놓아 버리고는 있는 힘껏 정시우에게 돌진했다. 정시우는 놈이 달라붙기 전, 망치를 거세게 내려쳐 놈의 대가리를 깨부수었다!

[카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크는 죽지 않았다. 거의 빈사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아직 명줄이 붙어 있었다. 정시우는 망치를 다시 쥐어 놈을 겨누며 이를 악물었다.

비록 놈과의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아직 무리다. 그는 이 던전을 결코 클리어할 수 없었다.

한 명을 상대로도 이렇게 힘을 짜내야 하는데, 던전을 나아가며 복수의 오크와 마주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빌어먹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힘도, 기술도, 경험도 모두 부족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레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했다. 이것도 새로운 감정이었다.

재정비가 필요하다.

“다음엔 압도적으로 이겨 주지. 거기 딱 붙어 기다리고 있어라.”

정시우는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돌아섰다. 그때 오크가 그를 붙잡았다.

[크흑, 나를 끝내라.]

“뭐?”

오크의 입에서 의외로운 말이 흘러나왔다.

[내겐 느껴진다. 이 공간이 언젠가 지상으로 확장되리라는 것이. 이 공간의 마나가 가득 차 지하만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순간이 바로 지상 침공의 때가 될 것이다.]

산하동에 몬스터가 나타났던 것과 같은 현상을 이르는 듯했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정시우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니 놈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그만큼의 마나가 소실되어, 조금이라도 지상 침공의 순간이 늦어진다. 반면 이 공간의 마나는 나의 기록과 육신을 오롯이 수복할 것이다. 다음번에 네놈이 더 많은 준비를 해 온다면, 그때 나는 새로운 몸으로 네놈과 다시금 겨룰 수 있게 된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말 아닌가?]

“과연.”

정시우는 비로소 던전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오크의 말에 납득해 망치를 들어 올렸다. 화상과 망치의 일격으로 일그러진 놈의 험상궂은 얼굴에 히죽, 미소가 떠올랐다.

[발전을 기대하고 있겠다, 어린 전사.]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정시우는 망치를 내리쳐 놈의 대갈통을 깨부수었다. 적의 죽음을 확인한 정시우는 루팅을 하지 않고 돌아서며 수아린에게 말했다.

“귀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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