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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5화 (15/260)

# 15

15화.

정시우는 사흘에 걸친 던전 나들이를 마친 후 인근에 지네 던전은 물론 다른 어떤 던전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휴식처로 돌아왔다.

“우우, 씻고 싶어요.”

“이제 곧 집으로 갈 거야. 그전에 정비만 좀 하고 가자.”

“……그래도 이젠 좀 플레이어 같아졌네요.”

사흘간 제법 친숙해진 휴식처의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우선적으로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불과 며칠 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풍성해진 스테이터스가 그를 제법 흐뭇하게 만들었다.

[정시우]

[지하 플레이어]

[Lv 25]

[근력 ? 132 민첩 ? 131 체력 ? 150 마력 ? 25]

[패시브 스킬 ? 카오스 테일 Lv1, 무지는 용감 Lv3, 독 내성 Lv5, 소울 컬렉트 Lv1]

[액티브 스킬 ? 부여 Lv13, 강타 Lv9, 전투질주 Lv4, 마탄 Lv5]

“지네병정소굴…… 더는 없겠지?”

“저는 이제 지네는 좀 그만 보고 싶어요.”

그들은 사흘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려 여섯 개나 되는 지네병정소굴을 클리어했다.

중간중간 휴식처에서 몇 시간씩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곤 지네병정소굴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들은, 이젠 눈을 감고 있어도 지네가 수십 개의 다리를 놀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독 내성을 더 성장시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성을 올리려고 일부러 공격을 당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설마 오빠마저 그럴 줄은. 으으으.”

정시우는 독 내성을 얻은 후, 모처럼이니 지네들에게 조금씩 독을 물리기도 해 보았다. 해독 마법을 지닌 수아린이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비로소 활약할 기회를 얻은 수아린이었지만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복잡미묘한 감정은 알 바 아닌 정시우는, 스킬을 성장시킨다는 일념으로 작정하고 독 내성 수련에 매진했다.

처음엔 일반 지네에게만 물리다가, 나중엔 엘리트 지네에게 물리다가, 급기야 보스 지네의 독무 안에도 휙 들어가 보기도 했다.

독은 확실히 강력했지만 정시우가 얻은 독 내성도 제법 좋은 스킬이었던지 4레벨쯤 되니 보스 지네의 독무나 독 레이저에 맞아도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5레벨이 되니 보스 지네의 독에 당해도 그냥 조금 따끔한 정도가 되었고, 당연히 내성 스킬의 성장도 급속도로 둔화되었다. 성장을 시키려면 더 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쯤에서 지네병정소굴이 더는 남지 않게 되었으니 그것을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외에는…… 흠, 전투질주와 마탄이라.”

두 스킬은 수련이나, 던전의 보상으로 획득한 스킬이 아니다. 바로 던전에서 만난 영혼들로부터 얻은 보상이었다.

물론 모든 던전에 영혼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첫 번째 던전과 두 번째 던전에서 유령이 나타났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계속 허탕만 치다가 마지막 던전에서야 세 번째 유령을 만날 수 있었다.

어쨌든 던전에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두 영혼은 모두 정시우에게 퀘스트를 제시했지만, 그 퀘스트의 내용들 또한 미묘하게 다 달랐고, 완료 보상으로 제 영혼을 전부 내어주는 괴상한 일도 없었다.

대신 얻은 보상이 바로 액티브 스킬, 전투질주와 마탄이었던 것.

“아직 몸에 익지 않은 기분이야.”

“그 사람들의 성취도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니까요. 그들의 기록이 완전히 오빠에게 스며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두 스킬 모두 좋은 스킬이라는 건 확실해요. 그리 쉽게 배울 수 있는 스킬도 아니고.”

전투질주는 말 그대로 전투 중 마나를 소모해 가속하는 스킬이다. 이 스킬을 사용한 상태에서 다른 전투 스킬을 쓰면 위력이 크게 향상되는 효과까지 붙어 있었다.

다만 질주로 끌어 올린 위력을 전투 스킬에 더하기 위해선 전투질주 스킬을 발현한 과정에서 변이되는 마나를 통제하는 테크닉이 필요해, 아직까지 정시우를 애먹이고 있기도 했다.

반면 마탄은 조금 더 간단했다. 투척 강타 스킬의 발전형이라고도 볼 수 있었는데, 응집시킨 마나를 일정방향으로 폭주시키는 것까지는 같지만 무기가 아닌 마나만을 쏘아 보내는 스킬이다.

강타보다 약하지만 훨씬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고, 대신 자유로이 스킬을 다루기 위해선 마나를 사물에서 분리하는 테크닉이 필요했다.

“실제로 이 스킬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들은 마탄의 능력을 보조하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거너 행세를 하기도 해요. 그만큼 습득하기 어려운 스킬인데 용케도 가지고 있었다 싶을 정도예요.”

생전에는 제법 잘나가던 플레이어였던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10단계 던전을 넘지 못하고 리타이어했으니 이제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도 정시우가 스킬을 잘 써 주면 고마워하겠지. 실은 아니어도 상관없다.

물론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던전에서 보스 지네의 비드까지 모든 비드를 바쳐, 결국 광충의 독니와 세트로 판단되는 가죽 방어구를 하나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광충의 독갑]

[랭크 ? D+++]

[방어력 ? 550 ? 850]

[숙련도 ? 27/200]

[옵션 - ???]

[강한 독을 품고 있던 지네들의 정수가 모여 완성된 가죽 상의. 무척 질기고 단단하며 생전에 품었던 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광충의 독갑은 굉장히 훌륭한 방어구였다.

가죽치고는 상당히 얇아서 안에 입고 자켓을 걸치면 별로 눈에 띠지도 않았고, 입고 활동하기도 쉬운 편이다. 수아린의 말에 따르자면 방어력도 무척 좋은 축에 든다니 당분간은 이것으로 버텨 보기로 했다.

물론 갑옷을 입은 후로 독을 제외한 공격에 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성능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수아린은 아직까지도 미진함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세트의 존재를 확인하면 그걸 맞춰 보려고 애를 쓸 텐데.”

“영구적으로 돌 수 있는 던전도 아니고 몇 개 있는지도 모르는 일회성 던전을 돌면서 세트를 맞춰? 내가 미쳤냐?”

두 번째 던전에서 운 좋게 바로 상체갑옷을 얻은 후, 정시우는 그 후로 입장한 모든 지네 던전에서 얻은 비드를 알뜰살뜰하게 모았다. 그냥 모으기만 했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던전을 클리어하고 퇴장할 때 비드를 잃겠지만, 지하 플레이어인 정시우는 그것을 모두 휴식처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지네 던전도 다 돌았으니, 휴식처에서 비드로 할 수 있는 걸 확인해야지.”

“정말 대단해…….”

정시우는 사실 두 번째 던전에서 갑옷을 얻기 위해 비드를 소모한 것조차 아까워하고 있었다. 수아린의 간절한 눈빛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가 목숨 아까운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휴식처에서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래도 건강한 체질이기는 하지만, 요 며칠간은 잠도 별로 안 잤는데 지나치게 컨디션이 좋았어. 아마 이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겠지.’

시간은 자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조금 방만해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래 봬도 운동과 공부만은 규칙적으로 몇 시간씩이고 시간을 들여 하던 정시우였다.

그리고 시간을 투자하면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인 플레이어가 된 지금, 그런 시간의 손해를 줄여주는 장비의 가치는 그에게 있어 무기보다도, 장비보다도 소중했다.

“그러면 가장 먼저 침대의 레벨을…….”

그러나 그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침대를 터치했을 때 그의 눈앞에는 매정한 문구가 떠올랐다.

[휴식처 부속 기구들의 레벨 업을 위해선 우선 휴식처의 레벨을 올려야 합니다.]

[저금한 비드의 80%를 소모하여 휴식처 레벨을 2로 올릴 수 있습니다. 강화하시겠습니까?]

“…….”

순식간에 그것을 읽어 낸 정시우에게 어느덧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휴식처를 강화하는 데 비드의 80%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남은 20%의 비드로는 침대의 레벨을 강화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던전 다섯 군데에서 나온 비드를 모두 끌어모았는데 이 정도라니.”

“그만큼 휴식처의 가치가 크다는 얘기 아닐까요?”

던전 다섯 군데라고는 해도 결국 정시우가 사흘 만에 해치운, 그의 능력에 비해 허접한 던전인 것도 사실이었다. 몬스터 비드의 가치는 몬스터의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커지는 만큼 놀라울 일도 아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마음먹은 것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

정시우는 기필코 침대를 강화하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비드를 투자해 휴식처의 레벨을 강화했다.

그러자 사방이 쾅! 하고 흔들리더니 돌연 휴식처의 넓이가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잡아내기 힘들 만큼 순간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정시우가 변화하는 휴식처의 정경을 눈에 담기 전 그것을 가로막듯 그의 망막 위로 문자열이 새겨졌다.

[휴식처가 2레벨이 되었습니다. 공간이 넓어집니다.]

[욕실 Lv1이 추가됩니다.]

[욕실 Lv1 ? 목욕 가능. 신체에 남은 미약한 독과 저주, 그 외 부정한 기운을 해소]

정시우는 그것을 보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휴식처에 비드를 투자하는 것은 정답이었다. 당장 추가된 욕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확장된 휴식처의 구석에 작게나마 마련된 욕실에는 있을 것이 다 있었다. 상하수도 시설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되겠는데?”

“왜 휴식처에 열을 올리나 했더니 내 집 마련의 꿈이었군요.”

반쯤은 정답이었다.

정시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지하 플레이어로서 활동하려면 언제까지고 집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렇죠. 저도 언제까지고 인형의 집의 인형 신세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면 저는 먼저 씻을게요.”

욕실은 인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미니 사이즈의 수아린이 사용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용감하게 날개를 퍼덕여 욕실로 향했다.

정시우는 신사답게 욕실 문을 닫아 주고는 돌아섰다. 그때, 그의 눈앞에 추가로 문자열이 떠올랐다.

[탐색기 Lv1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탐색기는 휴식처에 저장된 비드를 소모하여 인근의 던전을 탐색하는 소형 장치입니다.]

[남은 비드의 50%를 소모하여 탐색기를 생성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생성하시겠습니까?]

“후…….”

그것을 확인한 순간 정시우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탐색기라니!

욕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드밴티지를 가진 물건이지 않은가!

그가 던전을 EX랭크로 클리어하여 휴식처를 얻은 것도, 주위에 몰려 있던 지네병정소굴을 다 털어 휴식처에 투자할 비드를 모은 것도 이쯤 되면 운명의 인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휴식처를 얻지 못했거나 비드를 휴식처에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제법 많이 헤매고 다녀야 했겠지.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장 탐색기를 생성했다. 이내 그의 손안에 스마트폰보다도 작은 액정의 단말기가 잡혔다.

[지네병정의 비드 10개를 소모하여 3분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단말기를 활성화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정시우는 위치만 알아 뒀다 찾아갈 생각으로 단말기를 활성화했고, 그 즉시 단말 액정에 그들이 머무르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10km를 표시한 미니맵이 떠올랐다. 운이 좋게도 미니맵의 끄트머리 즈음에 초록색 점이 하나 있었다.

[플레이어를 기준으로 난이도 쉬움은 초록색, 보통은 노란색, 어려움은 빨간색에 가까운 빛을 냅니다.]

“그래, 그 정돈 알고 있었어.”

정시우는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 문자의 나열에 쓸데없이 대꾸를 하면서도 미니맵에 나타난 던전의 위치를 단단히 기억해 두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엄마?”

[그래, 아들. 어디니? 혹시 산하동은 아니지?]

“어, 엄레이더…….”

마침 던전이 있는 곳이 산하동이었는데! 정시우의 몸에 소름이 끼친 바로 그 순간 어머니가 잘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마침 잘됐다. 하필이면 거기서 엄마 친구가 장사를 해요. 주소 알려 줄 테니까 얼른 가서 그 친구 좀 구해 줘. 아들은 할 수 있지? TV에 나오는 거 보니까 약해 보이더만.]

“응? 그게 뭔 소리야?”

산하동에는 던전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뭐? 구해 줘? TV? 약해 보여?

대관절 어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반문하는 정시우에게 엄레이더가 대꾸했다.

[그 이상한 괴물들, 혹시 아들 힘으로 상대 못해? 플레이어들인지 뭔지 그 괴물들하고 싸울 수 있는 놈들은 지금 대부분 하늘성에 있어서 바로 오기가 힘들대!]

“……뭐!?”

등에 얼음을 쏟아부은 것만 같았다. 정시우는 다급히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고 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불과 30초도 되지 않아 답을 얻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32단계 던전이 클리어된 것보다도 심각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지금, 서울 산하동에 괴물이 나타나 날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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