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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4화 (14/260)

# 14

14화.

게이트를 빠져나와 도달한 지상에서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바뀐 것 같은데.”

“바뀌다니 뭐가요?”

자신을 따라하듯 고개를 갸웃하는 수아린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정시우가 답했다.

“전체적으로 고요해진 느낌이 들지 않아?”

“고요하다니…….”

그야 평일의 주택가이니 당연하지 않나요? 하고 반문하는 수아린. 정시우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면 들어가 보자.”

“휴식처라고 했잖아요. 그게 뭐예요?”

“이거야.”

정시우는 자신이 얻은 열쇠에 대해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수아린의 표정은 점점 더 기묘해졌다.

“하늘성의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런 게 없는데.”

“대신 그 사람들한테는 하늘성이 있잖아. 어쩌면 지하 플레이어의 휴식처가 플레이어들의 하늘성이 아닐까?”

하늘성은 그 자체로 던전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초보 플레이어들을 지원하고, 서로 다른 플레이어들의 모임의 장이 되기도 하며 파티를 구성하고, 던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세상 모든 플레이어들의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었다.

“이 휴식처에 가면 오빠 말고 다른 지하 플레이어가 있을까요? 이 세상에 오빠 말고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개미굴 입장 조건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데…….”

수아린은 회의적이었지만 정시우는 아주 조금 들떠 있었다.

정시우는 언제나 자신이 특별하길 원했지만 자신만이 특별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모든 이에게는 특별해질 자격이 있으니까!

만약 지하 플레이어 선배가 있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서 앞으로의 개미굴 공략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정시우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으며 열쇠를 뾰족하게 쥐었다.

“그럼 바로 들어가자.”

“그래도 주위 경계는…… 아, 그렇구나.”

열쇠는 던전의 입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열쇠를 뽑아 쥐는 것만으로 은신 효과가 부여되어 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전투 중에 써먹는 건 무리겠지만 평상시에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열쇠가 지닌 뜻밖의 기능을 알아낸 정시우의 반응은 절망적이었다.

“썩을, 오토바이 도색 괜히 했잖아!”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정시우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열쇠를 꽂았다. 그 순간 열쇠를 중심으로 지름 2미터의 검은 구멍이 생겨나 정시우와 수아린을 부드럽게 빨아들였다.

마치 개미굴 던전에 입장할 때와도 비슷한 묘한 부유감으로부터 벗어나 제정신을 차린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척이나 좁은 방이었다.

“음…….”

“뭐야 이거.”

내부도 무척 심플하여, 제법 푹신해 보이는 침대와 맞은편에 설치된 서랍, 그 위에 놓인 저금통이 전부였다. 아! 바깥으로 나가는 문도 있기는 했다.

까딱하다간 그들을 빨아들였던 구멍보다도 좁을 것 같은, 정시우의 방보다도 초라한 정경에 수아린은 그저 입만 벙긋거렸다.

하지만 정시우는 마냥 실망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휴식처에 입성한 순간부로 그의 눈앞에 정신없이 떠오르는 문자열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휴식처 Lv1]

[침대 Lv1 ? 숙면 가능. 휴식 시 체력과 마력 회복 효율 10% 증가]

[서랍 Lv1 ? 물건 보관 가능]

[문 Lv1 ? 바깥으로 나가는 문]

[이제부터는 던전 클리어 후, 던전에서 습득한 비드를 쓰지 않고 나올 경우 남은 비드는 휴식처의 저금통에 저금됩니다.]

[저금한 비드를 사용하여 휴식처를 확장, 강화할 수 있습니다.]

“아하…….”

과연, 제법 익숙한 방식이다.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능이 아니던가. 플레이어를 다방면으로 보조하며, 대가를 치러 그 기능을 강화할 수도 있는 베이스캠프. 어떤 의미로 보자면 정시우의 예상이 맞았던 셈이다.

다만 이 휴식처의 기능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 하면, 철저하게…….

“혼자를 위한 공간이네요.”

“하늘성은 대규모, 개미굴은 솔플용…….”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지하 플레이어는 오빠밖에 없을 거라니까요.”

수아린이 쓸데없이 어깨를 펴며 우쭐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휴식처가 이 모양이라고 해서 지하 플레이어가 정시우뿐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에휴.”

그러나 정시우는 따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정시우라 해도 강타를 연달아 세 번, 그것도 지금의 그에게는 다소 무리가 있는 기교를 부린 탓에 레벨 업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피로가 남아 있었던 탓이다. 수아린이랑 입씨름을 할 기운은 없었다.

“일단 조금 쉬고 생각하자.”

초라한 방을 둘러보고 있자면 휴식처의 기능을 강화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치솟지만, 지금은 남는 비드가 없으니 어쩔 도리도 없다. 그가 침대에 벌러덩 눕자 수아린은 얌전히 그의 머리맡에 정좌했다.

“쉬세요.”

“너는 안 자냐?”

“저는 하나도 안 지쳤어요. 오빠가 워낙에 강한 탓에, 제가 던전에서 한 일이라곤 오빠를 응원하고 그 유령과 기 싸움을 한 것밖엔 없었던 걸요. 더구나 이 침대에 그냥 눕기도 그렇고. 나중에 이 방에도 인형의 집 하나 놓아주시든가요.”

“그래, 알았다.”

정시우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원망하는 듯한 말투.

그는 피식 웃어 버리며 눈을 감았다. 숙면하며 회복 효율을 높여 준다는 설명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시우는 편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흠, 잘생기긴 했어.”

수아린은 그런 정시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련된 미남은 아니었지만 또렷한 눈매가 특징적인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보니, 그에게 구출 받은 순간엔 아주 살짝 로맨스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 꼴이 됐지.’

능력이 부족해 리타이어했으니 이 꼴로나마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해야 하리라. 더구나 언젠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있지 않은가? 수아린은 피식 웃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나를 수련해야 하는 것은 비단 정시우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능력을 잃고 서포터로 전락했으니, 최대한 마나를 놀려 스킬 레벨이라도 높여 두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사제이던 시절 지니고 있었던 다종에 다양한 버프 스킬을 되찾고 싶은 마음도 컸다.

‘시우 오빠가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않으면.’

물론 이 남자라면 주위 모든 상황을 무력으로 해결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만약의 사태란 항상 있을 수 있는 법이다.

당장 오늘 있었던 거대지네와의 보스전도 정시우가 워낙 압도적으로 밀어붙여 허탈하리만치 쉽게 끝나긴 했지만, 사실 그의 공격이 조금만 늦었어도 독무에 당했을 것이다.

‘오빠는 정말 혼자서 도전하는 것처럼 움직였지. 내 존재를 전력에 넣지 않은 거야.’

내심 한국 탑, 아니 세계적으로도 탑 티어의 사제임을 자부하고 있는 수아린에게는 그 이상 굴욕적인 일이 있을 수 없었다. 반드시 능력을 되찾아 정시우를 놀라게 만들리라!

그렇게 하려면 도저히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 괴물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빠르게 강해지니까!

그렇게 수아린은 마나 수련과 스킬 수련을 개시했다. 한창 최전선에서 뛰던 때보다도 필사적이었다.

정시우는 그로부터 2시간 정도가 흘러 눈을 떴다. 머리맡에서 수아린이 자신이 잠들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정좌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린아?”

“…….”

대답이 없어 확인해 보니 녀석은 앉은 채로 자고 있었다. 정시우는 그것을 깨닫곤 웃어 버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플레이어인 정시우 본인보다도 걱정하고 긴장하던 녀석이니 긴장감이 풀리자 잠들어버린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나.”

정시우는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놀려 녀석을 눕혀 주곤 자신은 자세를 바로 해 앉았다. 달게 잠을 자는 녀석을 깨울 수도 없으니 녀석이 일어날 때까지 마나라도 더 수련할 요량이었다.

이렇게 기껏 수아린이 좁혔던 격차는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거기서 다시 세 시간이 흘러 정시우와 수아린은 일단 휴식처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문을 여니 그들이 입구를 열었던 지상의 공터로 통로가 뚫려 있었지만 이제 와선 이 정도로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빠? 일단 집으로 돌아갈까요?”

“아니.”

휴식은 이미 취할 만큼 취했다. 어차피 집에는 며칠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까지 던져 놓았다.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다른 던전을 찾아보자.”

“그렇게 쉽게 다른 던전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찾았다. 그것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인근 주택 정원에서!

[지네병정소굴 던전 : 위험도 조금 낮음]

“같은 던전이잖아!”

이미 한 번 클리어했던 유형의 던전이라 그런지 이번엔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던전 이름을 알 수 있다는 점만은 아주 좋았다!

“그렇구나!”

그때 수아린이 깨달음의 목소리를 냈다.

“던전이란 곳이 원래 한 명이 죽으면 그만큼 구조가 취약해져 나머지 파티원들도 죽기가 쉬워지죠. 같은 던전에서 죽은 사람들은 연달아 추락했을 테고, 그래서 비슷한 곳에 던전이 형성된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론 던전을 찾게 될 경우 일단 그 인근을 뒤져 보면 똑같은 던전을 찾을 수도 있겠네요!”

“그 무슨 기분 나쁘고 찝찝한 탐색 방식이람!”

던전 하나에 플레이어 목숨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던전을 발견했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지 않은가!

정시우는 지하 플레이어인 자신의 포지션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일단은 꼬리를 쓰윽, 들어 올렸다.

“그러면 후딱 클리어해 볼까.”

“으으, 이번엔 얼마나 더 빨라질까 두려워져요…….”

정시우는 그래도 한 번 해 봤다고 제법 익숙하게 꼬리를 놀려 땅을 팠다. 던전으로 향하는 구멍이 생기는 타이밍까지도 이미 숙지한 후! 곧 둘은 던전으로 떨어져 내렸다.

[개미굴 에이리어 #184 지네병정소굴]

[클리어 제한 시간 ? 5:00:00]

“아, 그래그래.”

심지어 에이리어 넘버까지 똑같았다. 그로 인해 정시우는 에이리어 넘버가 단순히 던전 개수가 아닌, 던전 유형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최소한 183가지 유형의 개미굴 에이리어가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거지.”

“으으, 저기 또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또 던전의 첫 방에 지네 대신 희뿌연 빛을 뿜어내는 유령이 머무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령은 그들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외쳤다.

[인간…… 정말 인간이다!]

“그래그래. 퀘스트 내놔.”

[네!?]

당황하여 반문하는 여자 플레이어의 유령.

아무래도 그들이 방금 거쳐 온 던전의 유령보다는 원한이 그리 깊지 않은지, 눈 색도 비교적 정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원혼이든 아니든 알 바 아니다.

정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 알고 왔으니까 퀘스트 뱉으라고.”

[드, 드리겠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정시우는 인근의 지네병정소굴을 싹쓸이하며 비드와 달러와 경험치를 긁어모았다.

그의 레벨은 25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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