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화.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2:46:07]
[모든 함정 파괴]
[지네병정 503, 지네돌격병 3, 거대 지네 1 처치]
[특수 업적 ‘독?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달성]
[추가 보상, 플레이어 스킬 획득 ? 독 내성(패시브)]
[클리어 랭크 ? EX]
[추가 보상, 개미굴 휴식처 출입열쇠 획득]
[…….]
“…….”
지네가 쓰러져 던전이 클리어되고, 공동은 정적에 휩싸였다.
정시우는 눈앞으로 연달아 떠오르는 글귀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고, 수아린과 유령은 조금 전 그가 보여 준 광경에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이 5 올랐습니다.]
그러나 고요도 잠시, 곧 정시우의 전신에서 빛이 일며 그의 레벨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마나를 얻을 때와 달리 이번엔 단지 그가 지니고 있던 것이 강화될 뿐이었기에 이전과 같은 격렬한 고통은 없었다.
[정시우]
[지하 플레이어]
[Lv 15]
[근력 ? 112 민첩 ? 111 체력 ? 125 마력 ? 15]
[패시브 스킬 ? 카오스 테일 Lv1, 무지는 용감 Lv2, 독 내성 Lv1]
[액티브 스킬 ? 부여 Lv9, 강타 Lv7]
정시우는 스스로의 바뀐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곤 두 주먹을 쥐어 보며 후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일반화는 곤란하겠지만, 근력과 민첩, 체력은 레벨 당 2, 마력은 레벨 당 1씩 상승한다고 보면 얼추 맞는 것 같았다.
“힘을 수치로 나타낸다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만.”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상승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는 뿌듯하게 웃으며 다음으로 얻은 보상을 확인했다.
그 첫째는 바로 독 내성.
아무래도 던전을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단 한순간도 독에 당하지 않아 업적을 달성하게 된 모양인데, 어째서 독에 당하지도 않았는데 얻은 스킬이 독 내성인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스킬의 효과는 굳이 자세히 살필 것도 없이 알 수 있다. 독에 저항하게 해 주는 힘, 독을 이겨 내게 하는 힘. 독을 지닌 몬스터는 앞으로도 많이 나타날 테니 반드시 얻어 둬야 할 스킬이라 볼 수 있겠지. 정시우는 만족했다.
문제는 클리어와 함께 그의 손바닥에 나타난 열쇠, 바로 두 번째 보상이다.
[휴식처 출입열쇠]
[가능성을 보인 지하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휴식처로 들어가게 해 주는 열쇠. 대지에 꽂는 것으로 입구가 열린다.]
“애매한 것도 정도가 있지.”
휴식처? 대지에 꽂아? 이건 한 번 해 보기 전까지는 파악이 힘들겠다.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열쇠를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곤 바닥에 쓰러진 지네의 시체로부터 망치를 뽑아, 그대로 몸통에 거세게 내리쳐 달러와 비드 루팅까지 완료했다. 이어서 유령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퀘스트 보상 내놔.”
[……네? 네, 네! 보상, 보상 드리겠습니다!]
유령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렸다.
그가 보여 준, 어지간한 플레이어들보다도 압도적인 반응속도와 강타 스킬을 다루는 테크닉은 10단계 던전에서 좌절하고 리타이어한 그에게는 너무나 눈부신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시우가 나아가는 길에 자신이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보잘것없던 삶의 가치는 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닐까.
유령은 심장도 없는 주제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500% 초과달성이라면 가능합니다. 제 기록의 결정체를 떼어 드리는 것도……!]
“기록의 결정체?”
마지막으로 수아린의 정신이 돌아왔다.
기록의 결정체라는 말은, 명색이 서포터면서 이번 던전에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던 그녀의 두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큼 대단한 보상이었다.
“설마 스킬을 주겠다는 말인가요?”
“스킬?”
[그렇습니다. 이 던전에 갇히면서 제게 남은 유일한 가능성, 그것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유령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반투명하니 뚜렷하게 모습을 보였는데, 보상을 주겠다는 선언을 한 직후부터 몸이 뿌옇게 물들어 갔다.
수아린이 그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아닌데……?”
“아는 거 있으면 빨리 말해.”
“아뇨, 전 처음엔 이 사람이 생전에 쓰던 스킬을 주겠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스킬, 이젠 정시우도 스킬의 위력을 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어째 수아린의 묘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아린이 말했다.
“이 사람, 그냥 자기 자신을 주려는 것 같은데요?”
“기분 나빠!”
그러나 이제 와 무르려고 해도 이미 그의 형체는 완벽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끝에 남은 작은 빛의 결정체가 천천히 날아들어 정시우의 손등에 스며들었다.
손등에서 발하는 찬란한 빛에 정시우가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덧 손등에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것과는 명백히 다른 힘이 느껴졌다.
[퀘스트 완료!]
[소울 컬렉트 스킬을 얻었습니다. 현재 보유 영혼 1개]
[아직 영혼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은 알 수 없습니다.]
“이게 뭐야!”
“저도 처음 듣는 스킬 이름이네요. 자기 영혼을 통째로 내맡길 정도니 시우 오빠의 힘에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는 충분히 알겠지만, 이렇게 할 거면 적어도 자신의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말해 줬으면 했는데 말이죠…….”
남녀는 그로부터 한동안 머리를 짜내고 용을 쓰며 그의 손등에 깃든 영혼의 힘을 이용해 보려 했으나 역시 무리였다.
정시우는 기껏 500% 초과달성을 한 퀘스트 보상이 정체가 뭔지 모를 타투로 끝났다는 사실에 지극히 허탈해졌으나 이내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할까.”
“설마 정말로 한 대도 안 맞고 끝낼 줄은 몰랐어요, 오빠.”
물론 던전이 다 이 지네병정소굴 같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난이도 보통 정도의 던전이라면 별 무리 없이 클리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정도면 첫 던전 나들이는 완벽하게 마친 셈이다.
“그러면 이제 제단에 비드 던지고…… 어라?”
보스 룸 끄트머리에서 백광을 발하는 제단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가던 정시우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그 옆에 조금 더 자그맣게 마련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제단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이건 뭐냐?”
“……굉장히 말해 주기 싫은데요.”
수아린은 인상을 찌푸리며 망설였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건 던전을 우수한 성적으로 클리어했을 때 일정 확률로 모습을 드러내는 제단 중의 하나, 강화의 제단이에요.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티팩트와 몬스터 비드를 소모하여 아티팩트를 강화할 수 있죠. 몬스터 비드의 성향과 질, 개수에 따라 강화의 방향성과 정도가 정해져요.”
“그렇구나.”
“오빠, 부탁이니까 우리 방어구 먼저 마련해요, 네?”
그러나 수아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정시우가 어떻게 움직일지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는 백광의 제단에서 완전히 돌아서 적광의 제단으로 향했다.
“비드를 바친다고 갑옷이 튀어나오라는 법은 없잖아. 더구나 강화의 제단이 언제 다시 튀어나올지도 알 수 없지. 강화를 해 둘 수 있을 때 무기를 강화해 두는 게 낫지, 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잖아?”
“끄응…….”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정시우는 본인의 뜻을 오롯이 이룰 수 없었다. 적광의 제단에 슬레지 해머를 올려놓고, 보스 몬스터의 비드와 엘리트 몬스터의 비드 3개를 올려놓는 순간 제단이 강한 붉은빛을 발하며 엘리트 몬스터의 비드 2개를 도로 튕겨 내는 것이 아닌가.
[강화 최대치. 이 아티팩트는 그 이상으로 강화할 수 없습니다.]
“휴우……!"
“쳇.”
슬레지 해머의 등급이 애초에 너무 높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비드와 엘리트 몬스터의 비드 1개만으로 아티팩트 강화 한계에 이른 것. 정시우는 입술을 삐죽이며 제단에 놓인 비드만으로 강화를 진행했다.
찬란한 적광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가는 사라졌다.
정시우는 제단에 놓여 있던 해머가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커진 것을 확인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헤드 끄트머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수십 개 돋아난 것이 인상적이었다.
[흑랑의 앞발]
[랭크 ? D+++]
[공격력 ? 450 ? 1,050]
[숙련도 ? 9/240]
[옵션 ? 1. ??? 2. 타격 시 일정 확률로 중독]
[자이언트 블랙 울프의 앞발에 담긴 거력을 그대로 담아낸 슬레지 해머. 단단하며 강력하지만, 그만큼 무거워 다루기 힘들다. 강력한 독의 힘이 추가되었다.]
“테스트 던전으로 D++등급의 무기를 얻고 첫 번째 던전에서 D+++로 강화…….”
수아린의 표정이 아득해지든 말든 정시우는 새로이 탈바꿈한 해머를 허공에 휙휙 휘둘러 보며 살폈다. 무게가 더해진 것도 리치가 길어진 것도 공격력이 강해진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옵션이 붙었구나. 첫 번째 옵션이 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아마 자이언트 블랙 울프의 성질이나 스킬을 닮은 옵션이 아닐까요? 숙련도를 올리면 자연스럽게 개방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아린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소매를 붙잡고 파닥파닥 백광의 제단으로 이끌었다. 무기를 얻었으니 다음은 방어구다. 물론 나오란다고 순순히 방어구가 나와 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것까지 강화에 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나…….”
정시우는 못내 미련이 가득한 얼굴로 적광의 제단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버리곤 백광의 제단에 비드를 부었다. 일반 지네의 비드 353개, 엘리트 지네의 비드 2개를 한꺼번에.
이번엔 수아린도 말리지 않았다. 그저 한 번에 방어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할 따름이었다.
제단이 빛을 발했다. 이윽고 그 빛 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수아린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하하, 하하하…… 하…… 후우…….”
헛웃음을.
[광충의 독니]
[랭크 ? D++]
[공격력 ? 250 ? 500]
[방어력 ? 250 ? 450]
[숙련도 ? 0/200]
[옵션 - ???]
[강한 독을 품고 있던 지네들의 정수가 모여 완성된 한 쌍의 가죽장갑. 무척 질기고 단단하여 손을 방어하기에도 적절하며, 너클 부위에 박힌 작고 단단한 가시는 적을 공격할 때에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오, 방어구네.”
“이게 어딜 봐서 방어구예욧! 보호면적이 고작 손…… 아니, 그냥 대놓고 무기잖아요!”
징 대신 번뜩이는 금속질의 가시가 박힌 붉은 가죽 장갑을 집어 들며 화색이 되어 중얼거리는 정시우와는 달리 수아린은 이를 바득 갈았다.
“제단의 보상 아이템이 던전 클리어 기록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으으으.”
“이건 평상시 끼고 다녀도 사람들이 모르겠다. 더구나 맨손보다는 훨씬 든든해서 좋잖아?”
“그래요, 그렇지만 이제부턴 조금 쉬운 난이도의 던전을 찾아보도록 해요, 우리…….”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맙다.”
정시우는 장갑을 양손에 착용하곤 기지개를 켰다.
그들이 용무를 마친 것을 귀신같이도 알아챘는지, 바깥으로 나가는 게이트가 생성됨과 동시에 던전이 서서히 붕괴하려 하고 있었다.
‘이것도 이상해. 원래 하늘성의 던전은 특별한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영구적으로 유지되는데, 개미굴의 던전은 한 번 클리어하면 사라지잖아? 그 근본이 추락한 하늘성의 플레이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까……?’
수아린은 그것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래서야 정시우는 한 번 클리어한 던전을 다시 클리어하며 안정적으로 경험치를 얻는 일도 불가능하게 된다.
하드코어 난이도도 정도가 있지, 개미굴이란 정말이지 하늘성 이상으로 이해 가지 않는 곳이었다.
“좋아, 나가면 휴식처라는 게 뭔지 알아보자고.”
“그건 또 뭐예요!?”
가뜩이나 복잡해 죽겠는데 또다시 새로운 키워드를 꺼내 들다니! 수아린이 경악하는 가운데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직후 던전은 완벽하게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