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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0화 (10/260)

# 10

10화.

추락의 충격으로부터 정신을 차렸을 때, 정시우는 테스트 던전 때와 유사한 동굴 초입에 자신이 이르러 있음을 자각했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 인터페이스 ?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개미굴 에이리어 #184 지네병정소굴]

[클리어 제한 시간 ? 5:00:00]

정시우는 알림창을 손으로 휘휘 저어 걷어 내며 수아린에게 물었다.

“원래 던전에 클리어 제한시간 같은 것도 있어?”

“제가 알기론 없지만 하늘성의 지식이 개미굴에서 100% 들어맞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특히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제한시간 내에 클리어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설마 그대로 던전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늘성에서 리타이어 한 자신처럼 마나를 모두 빼앗기기라도 한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정시우가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클리어 제한 시간 ? 4:59:48]

“그러니까 조금 서둘러 봐요, 오빠. 물론 오빠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네가 나설 일도 없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인벤토리에서 슬레지 해머를 꺼내 들어 허공에 붕붕 휘두르는 정시우의 자신감은 하늘이라도 뚫을 것처럼 충만해 있었다.

보통 영화나 만화를 보면 이렇게 기가 살아 날뛰는 놈들이 제일 먼저 죽어 나가기 마련이지만, 정시우는 하늘을 뚫겠다고 마음먹으면 정말로 하늘을 뚫는다. 2주일 동안 충분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정시우를 겪은 수아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오빠. 설마 1단계 던전에서 상태이상 계열 몬스터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가 탐험해야 하는 건 1단계 던전은커녕 기본설정부터가 다른 던전이니까 말이지.”

“지네라면 분명 독을 품고 있을 거예요. 독 내성이 없는 지금 오빠가 그렇게 안심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래 봤자 지네지.”

“몸길이 10미터에 키 1미터짜리 지네를 만나도 그런 말이 나올까요?”

“어, 음. 그래 봤자 졸라 큰 지네……?”

“에휴…….”

서포터로 거듭나며 본래 지니고 있던 스킬들을 어느 정도 되찾은 수아린이지만, 그것들을 구사하기 위한 마나가 얼마 없는 것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힐링 포션도 없어 모든 상처를 치유 스킬로 때워야 하는 판국인데, 독을 해제하는 큐어 포이즌 스킬까지? 잘해야 두 번이 한계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지네의 독이 강해 해독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거 복잡하게 계산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일단 전진해 보자.”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무지는 용감이라는 스킬을 얻고 정시우가 스킬 이름이 이게 뭐냐며 투덜거렸던가? 그 스킬 이름만큼 정시우에게 어울리는 스킬도 없으리라! 수아린은 입술을 삐죽이며 속으로만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요, 가.”

“가능하면 품에서 나오지 마. 아직 몬스터는 느껴지지 않는다만…….”

“그 오감 레이더 진짜 신기하다니까.”

던전은 그렇게까지 어둡지 않았다. 정시우는 적당히 몸을 긴장시키며 던전의 첫 번째 방을 향해 걸었다.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 오감이 그에게 그 방에는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히…… 으흐…….]

하지만 유령은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그것과 마주한 수아린이 비명을 지르자 단숨에 놈이 일행을 향해 돌아섰다.

[사, 사람인가……!?]

“꺄악! 꺄아아악!”

방 정중앙에 희뿌옇게 떠 있는 그놈은 어딜 어떻게 보나 유령이었다. 색소란 색소는 모두 시체에 남기고 영혼만 새하얗게 빠져나왔나 싶을 만큼 몸통이 새하얗고, 반투명하기까지 했다.

“그래 봤자 유령이잖아. 좀 조용히 해 봐.”

“전 몬스터 중에서도 언데드는 질색이란 말이에요!”

“그런 문제였어……!?”

정시우는 이제와 새삼스럽게 종교와 영혼에 대한 깊은 고찰과 토론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초자연적인 힘이나 플레이어나 말도 안 되긴 마찬가지였으므로 적당히 납득하기로 했다.

[정말…… 사람이다……!]

한편 유령은 그들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미안한데 말 좀 빠르게 안 될까?”

[너무…… 오랜만에…… 입을 열어서!]

수아린은 여전히 벌벌 떨며 정시우의 소매 안에 숨어 있었다.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놈에게 물었다.

“너 진짜 유령이냐?”

[분명…… 나는 리타이어 했고, 그럼에도 여기에 이렇게 있으니까……!]

“리타이어라. 역시 플레이어였구나.”

정시우의 눈이 빛났다. 리타이어한 플레이어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던전이라, 갈수록 재미있어지지 않는가.

“리, 리타이어 한 플레이어라구요……?”

수아린 역시 그 말을 듣고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는지, 정시우의 소매 밖으로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는 유령을 찬찬히 살폈다.

유령이 수아린을 보곤 외쳤다.

[작다!]

“저도 알아욧!”

정시우는 수아린이 유령과 눈싸움을 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는 슬쩍, 해머를 들었다.

“일단 때려 볼까.”

“오빠!?”

“던전에 나온 이상 몬스터가 아닐까 해서.”

[잠깐, 맞으면 죽어! 죽는다! 죽습니다!]

“이미 죽었잖아.”

[이미 죽어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죽게 됩니다!]

오랜만에 말을 해서 느리다던 놈이 신기하게도 정시우가 들어 올린 해머를 본 순간 말이 빨라졌다. 그대로 후려 패 볼까 고민하던 정시우가 쩝, 입맛을 다시며 해머를 거두곤 놈에게 확인했다.

“너 우리 적 아냐?”

[난 적이 아닙니다! 나는 이 던전에서 눈을 뜬 이후 줄곧 이곳을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 대신 복수를 해 줄 사람들을, 내 퀘스트를 수행해 줄 사람들을 말입니다!]

“퀘스트……?”

정시우가 그렇게 반문하는 순간, 그의 눈앞으로 이젠 제법 익숙해진 알림창이 또 하나 새로이 떠올랐다.

[던전 퀘스트 발생]

[지네병정소굴의 원혼]

[플레이어로서 리타이어 되어 이름도 영혼도 기록마저도 지저에 묶인 원혼은 우연히 던전을 방문한 당신이 지네를 소탕해 주길 원한다. 가급적, 파괴적이고 잔인하게.]

[퀘스트 조건 ? 지네병정소굴의 지네를 대상으로 오버킬 0/150]

[퀘스트를 수락하겠습니까? 퀘스트를 거절할 경우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퀘스트. 사전적 정의로부터 조금 변질되기는 했으나 게임이나 만화 같은 곳에서는 주로 ‘의뢰’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즉 저 유령은 정시우에게 이 의뢰를 맡기기 위해 이곳에 죽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맞아요. 퀘스트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대상으로도 발동할 수 있답니다. 퀘스트의 보상을 확실히 제시할 수만 있다면요.”

“보상이 뭔데?”

“아주 다양해요. 평범한 아티팩트나 포션, 그 외 현실세계의 재보나 특권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극히 드물게는 자신의 기록이나 마나를 걸기도 하죠.”

수아린은 이미 이 퀘스트의 보상이 그쪽 방향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 이유 또한 간단해서, 저 유령은 이미 집도 절도 없기에 굳이 남은 게 있다면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유령에게 물었다.

“이 퀘스트를 해야 네가 성불한다든가 그런 거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지네 놈들이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 싶어요! 내가 괴로워한 만큼, 아니 나보다 더욱!]

그 말을 내뱉는 원혼의 눈빛이 일순 붉은빛으로 물들어 섬뜩하게 느껴졌다. 괜히 원혼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은 아닌 셈이다. 만화에서 이렇게 나오는 놈은 처음에는 선역이더라도 보통 나중에 사고를 치던데…….

“흠.”

역시 지금 처리해 둘까? 하고 생각하며 망치 손잡이를 굳게 잡은 정시우였으나, 직감만으로 죽이기엔 처음으로 맞이한 퀘스트를 놓치는 것이 아까웠다.

“어떻게 생각해, 아린아?”

결국 바턴은 수아린에게로 넘어갔다. 수아린은 그가 자기 생각대로만 결정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의지해 주는 것에 적잖이 뿌듯함을 느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는 퀘스트를 하는 게 좋다고 봐요. 어차피 우린 이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니까요. 오버킬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결국 겁나 세게 후려 패서 죽이면 된다는 거 아냐?”

“보다 정확히는, 적의 남은 체력보다 훨씬 많은 데미지를 주어 죽이는 것을 이르는 용어예요. 몬스터 비드가 나올 확률을 높여 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만큼 까다롭죠.”

그냥 적을 죽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의 체력을 적절히 깎아 놓고 한 번에 강한 데미지를 입혀 죽여야 하기에 힘이나 집중력이 두 배로 소모된다. 전리품 습득방식도 그렇고, 역시 정시우의 생각대로 던전은 체력 싸움이 맞는 모양이다.

“아마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면 페널티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퀘스트를 거절해도 페널티가 있는 건 마찬가지죠. 그러니 저는 퀘스트를 일단 수락한 후에 지네를 상대해 보고, 그때 포기할지 속행할지를 결정하는 게 낫다고 봐요.”

“좋아. 그럼 퀘스트를 받겠어.”

정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표하자 퀘스트의 알림창이 사라지고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났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퀘스트에 실패할 경우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원혼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놈을 보는 정시우의 눈빛은 지극히 냉정했다. 의뢰니 뭐니 하지만 다짜고짜 퀘스트를 내민 주제에 거절해도 페널티, 실패해도 페널티라니 곱게 보려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이제 지네라는 놈들을 잡으러 가 보자고.”

[놈들의 이에는 독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당신을 보조하겠습니다!]

“이렇게 친절할 데가.”

“오빠를 보조하는 건 제 역할인데…….”

하지만 정시우는 그 감정을 대놓고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한 단계, 경계 스위치를 올릴 뿐이었다.

그렇게 플레이어와 서포터와 유령의 기묘한 임시 파티가 결성되었다.

[놈들은 언제나 방심의 틈을 타고 나타납니다. 제가 처음 놈들에게 물린 것도 그래서였죠.]

“흐음.”

유령은 퀘스트를 주고는 일행에게 따라붙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이젠 입에 모터를 단 것만 같았다.

이 던전이 지네 던전이 된 것도 하늘성에서 자신이 지네에게 죽어서 그런 것 같다는 둥, 지네 몬스터가 얼마나 험악하게 생겼는지 아냐는 둥, 도움이 될 것 같으면서도 현재 상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뿐이었지만 정시우는 묵묵히 그것을 들어주었다.

“이 던전을 탐험해 본 적은 있냐?”

[그건 없습니다. 퀘스트를 받아 줄 인간들이 나타날 때까지 저 방에 계속 죽치고 있었을 뿐이죠. 사실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겁니까? 그 꼬리를 보아하니 평범한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은데…….]

“흠.”

지네들은 위험하다며 따라붙은 주제에 피크닉이라도 나온 것처럼 떠들어 대는 유령과 함께 두 번째 방을 지나 이제 막 세 번째 방에 들어서려는 찰나.

정시우는 가만히 제자리에 멈추며 중얼거렸다.

“방심의 틈.”

[네?]

정시우가 해머를 쥔 손에 힘을 꽉 주며 빠르게 뒤돌아섰다. 그러자 천장에서 그를 향해 뚝 떨어지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몸통이 길고 갑각으로 뒤덮였으며 더듬이를 기분 나쁘게 흔드는, 다리가 무척 많이 달린 괴물. 몸길이 2미터를 넘기는 거대한 지네였다.

[키이이이이이이!]

“흡!”

정시우가 돌아섰을 땐 이미 유령이 그렇게나 경고했던 지네의 독니가 그의 목을 꿰뚫기 직전이었다. 새빨갛게 물든 독니가 위협적으로 번뜩이며 그의 목덜미를 노렸다.

그러나 놈이 목표를 달성할 것만 같았던 그 순간, 정시우의 해머가 깔끔하게 뻗어 나가며 놈의 머리통을 정통으로 후려쳤다!

[꽉!]

지네의 사체가 호쾌하게 날아가 던전 벽에 쾅! 부딪혔다. 그 충격이 루팅으로 인정된 것일까? 놈의 사체가 사라지며 바닥에 100달러 지폐 1장과 새빨간 몬스터 비드 1개가 나타났다. 유령은 그것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죠……?]

정시우는 담담히 걸어가 돈과 비드를 회수하며 퀘스트를 확인했다.

달성 항목이 [1/150]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조금 전 일격은 확실히 오버킬로 처리된 모양이었다. 정시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허공에 슬레지 해머를 붕붕 휘둘렀다.

“이야, 역시 무기가 있으니까 다르네! 이 정도 놈만 나타나면 마나는 쓸 필요도 없겠는데?”

[…….]

“…….”

그냥 후려쳐서 오버킬을 달성한 주제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파악하지 못하고 껄껄 웃는 정시우. 원혼과 수아린은 모두 그 모습을 보며 사이좋게 침묵했다.

당연하지만, 그의 만행은 그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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