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정시우는 수아린과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수아린에게도 원래 머무르던 집이 있었겠지만 조그맣게 줄어든 지금 그녀의 몸 상태로는 정시우와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부모님한테 연락 안 해도 돼?”
“부모님 돌아가신 후로는 저 혼자 살아요. 작은 집이 하나 있긴 한데 시우 오빠 놔두고 저 혼자 가 봤자 할 일도 없구요.”
그 어린 나이에 자기 집이 있다니 과연 플레이어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고 부럽게 생각하던 정시우는 곧 정신을 차렸다. 이젠 그도 어엿한 한 명의 플레이어인 것이다.
“좋아, 그러면 내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숨어 있어.”
“으으, 주머니에서 동전 냄새 나요…….”
수아린은 울상을 지으며 정시우의 바지 주머니 안에 숨었다. 정시우는 그녀가 숨은 것을 확인한 후 조용히 집 문을 열었다.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나가선 몇 시간이나 지나서, 그것도 웃통을 발가벗은 채 돌아온 것이다. 이미 어머니께 혼날 것은 예정된 일이지만 적어도 태세를 정비한 후 마주쳐야 했다. 일단은 몰래 방에 돌진한다!
“왔구나. 얼씨구, 그 꼴은 또 뭐니.”
“그럼 그렇지, 엄레이더를 피할 수 있을 리가…….”
“엄마한테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어머니의 레이더를 피해 보려는 정시우의 시도는 말짱 꽝이 되었다. 몰래 들어가려던 것이 실패했으니 이젠 막무가내로 돌파하는 수밖에!
정시우는 자이언트 블랙 울프에게 돌진했던 그 순간처럼 어깨를 앞으로 슥 내밀고 자세를 취했으나 그다음 순간 어머니의 손바닥이 그의 등짝에 작렬했다.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그는 상태이상 스턴에 걸린 것처럼 멈추었다.
“또 어디서 구르다 왔어! 사람 패고 온 거 아냐? 엉?”
“내가 패면 사람 죽는 거 알잖아.”
“으휴, 뭔가 하기는 했구만. 뉴스에 나올 일이야, 안 나올 일이야!”
“들켰으면 나올 수도 있고…….”
“뉴스 나오면 혼날 줄 알아! ……그래서 일은 잘 끝났고?”
“……응.”
정시우가 미약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어머니는 에휴, 한숨을 쉬면서도 그러면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씻어, 이 녀석아. 배고프지?”
“응.”
정시우는 그렇게 무사히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까지 그의 바지 주머니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던 수아린은, 그가 방문을 닫고 자유를 되찾는 순간 아주 조용히 말했다.
“시우 오빠, 평소에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예요? 왜 이렇게 대화가 자연스러워요?”
“벤 삼촌이 그랬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그걸 잘 생각해 보면 힘이 생기면 온갖 귀찮은 일이 꼬인다는 거고…….”
“오빠는 예전부터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는 거구나. 나이…… 스물여섯 맞죠?”
나이를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입술을 삐죽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쨌든 씻고 올 테니 얌전히 숨어 있어. ……그나저나 네 밥은 어쩐다?”
가만히 생각해 보던 정시우가 서랍을 열고는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던 에너지바 하나를 책상에 올려 두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을래?”
“너무 커요.”
“이러면 어때.”
에너지바를 절반으로 나누자 간신히 그녀가 양팔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과연 이 서포터와 이대로 괜찮을까, 정시우가 심란해져 있는 사이 수아린은 끙끙대며 에너지바를 최대한 편한 자세로 잡았다.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수아린이 끙차, 소리를 내며 양팔로 에너지바를 안고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제 딴엔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듯 조심스레, 천천히 먹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에너지바가 너무 커 입가에 묻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솔직히 눈도 크고 피부도 뽀얗고, 크기까지 작아지는 바람에 요정이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이 생긴 그녀가 에너지바를 냠냠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고, 정시우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내 수아린이 그의 시선을 눈치챘다.
“왜, 왜 그러세요? 저 원래 에너지바 좋아해요. 던전 들어갈 때는 필수품이거든요.”
“아무것도 아냐. 많이 먹어, 서랍 안에 있는 거 다 먹어도 돼.”
“시우 오빠 미소가 조금 징그러운데…….”
정시우는 휘파람을 불며 방을 나왔다. 어머니가 거실 소파에 앉아 TV채널을 마구 돌려 가며 혹시 정시우가 어디에 찍히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것을 상냥한 미소와 함께 무시하기로 했다.
정시우가 씻고 저녁식사까지 마쳐 드디어 제 방으로 돌아왔을 때엔 수아린도 에너지바 절반을 다 먹어 치우고 제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이 열리고 정시우가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며 정좌했다.
“잘 먹었습니다.”
“더 안 먹어도 돼?”
“몸이 줄어들면서 위장도 줄어들었나 봐요.”
한 끼에 에너지바 반 토막으로 해결된다니 일단 식비 걱정은 덜었구나, 내심 생각하며 정시우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그가 일단 한숨 쉬려고 마음먹은 찰나 책상 위에 정좌해 있던 수아린이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 앞으로 지하 플레이어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 봐요.”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런데 너 되게 의욕적이다.”
물론 정시우는 성장하고 싶었다.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던 이면에는 ‘특별해지고 싶다. 이미 특별하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제 정말로 플레이어가 되었으니 여태까지 날카롭게 갈기만 하던 칼을 뽑아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자고, 속으로는 제법 진지하게 다짐하고 있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시우의 바람일 뿐, 수아린의 바람은 아닐 터인데. 그런 의문을 담아 바라보자 수아린이 새치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시우 오빠가 빨리 성장하면 저도 빨리 성장할 테고 그러면 원래 몸을 되찾는 것도 빠를 테니까요.”
“확실히.”
빈틈 하나 없이 똑 부러지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정시우 입장에선 수아린이 적극적이어서 나쁠 것이 없다.
“이것 먼저 확인해 둘게요. 시우 오빠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던 거죠? 앞으로 적극적으로 던전에 들어가려는 거죠?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면서?”
“당연하지.”
플레이어가 될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정시우에게 던전이란 생애 최대의 목표였다. 던전 외에 집중할 것은 없었다. 설령 그 던전이 지하에 있는, 자신 외의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던전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강해질 수 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러면 좋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오빠를 돕겠습니다. 음, 우선은 테스트 던전을 거쳐 정식 플레이어로 거듭난 이들이 1단계 던전에 진입하기 전에 해 두어야 할 것들을 설명해 볼까요.”
“좋아, 와라.”
테스트 던전을 클리어하기까지의 플레이어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마나도 다루지 못하고, 인벤토리도 없고, 스킬도 없고, 아까 수아린이 말한 대로 그저 날 수 있을 뿐인 일반인이다.
“하지만 날 수 있다는 건 제법 큰 강점이기도 하거든요. 던전의 몬스터들은, 적어도 테스트 던전의 몬스터들은 날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기동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도 하고. 그래서 대부분은 그리 어렵지 않게 던전을 통과해 마나를 얻게 됩니다.”
“지금 내가 마나를 얻은 상태지. 날개는 없지만.”
“그다음이 중요해요. 1단계 던전은 테스트 던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거든요.”
왜냐, 마나를 다루는 몬스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들어갔던 테스트 던전에 나온 몬스터들은 모두 마나를 다뤘잖아.”
“어, 어쨌든 테스트 던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몬스터가 나올 거예요!”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테스트 던전을 통과한 후 대략 1달에 걸쳐 마나 적응 기간을 갖는다. 무기를 정해 수련하기도 하고, 강해진 육신에 적응하며, 마나를 수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최소한 열 명 이상으로 뭉쳐서 1단계 던전에 도전하는 거죠. 테스트 던전과 달리 정식 던전부터는 파티 플레이가 가능해지거든요.”
“파티 플레이가 가능해도 같이 할 사람이 없어.”
“어, 어쨌든!”
왜 이렇게 특수한 상황뿐이란 말인가! 수아린이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정식으로 플레이어가 되었다고 해서 무턱대고 1단계 던전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마나와 스킬을 충분히 숙달하고 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사실 아까 마나를 각성하자마자 보여 준 정시우의 모습에 굳이 마나를 숙달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수아린이었으나, 정시우의 말마따나 지하의 1단계 던전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지금 최대한 준비를 해 두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마나를 다루는 연습을 할 것. 시우 오빠가 지금 쓸 수 있는 마나의 최대치나 회복속도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지, 마나를 연습하면 누구나 갖게 되는 범용 액티브 스킬 ‘강타’를 획득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아 봐요.”
“강타…….”
굉장히 직관적인 스킬 이름이었다. 마나를 소모해 한 방 세게 날리는 스킬이겠지.
그리고 그것이 던전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킬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당장 오늘 강타가 있었더라면, 정시우는 옷을 벗어 던지느니 할 필요 없이 놈의 빈틈에 강타를 때려 박아 보다 편하게 싸움을 전개할 수 있었을 터였다.
“좋아, 익혀 볼게. 기다림이라면 익숙하거든.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하기 위해 1달 수련하는 정도는 우습지도 않지.”
눈에 보이는 목표까지 있다면 더는 거부할 수 없다. 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장의 방침을 정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수아린은 사실 아주 조금,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
‘스스로 스킬을 자각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비록 범용 스킬인 강타라고 해도 레벨 50, 늦으면 7단계 던전을 클리어할 즈음에야 간신히 자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시우 오빠라면.’
마나를 얻자마자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어 꼬리를 수납하던 정시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비록 해내지 못한다 해도 그때까지 얻은 마나 숙련도는 어디로 날아가지 않을 테지.
‘시우 오빠는 하늘성의 플레이어들과는 달라. 그들과 함께하며 익힌 내 경험을, 시우 오빠에게 맞추어 풀어내야 해.’
정시우는 분명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수아린은 자신이 그의 성장을 더더욱 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치 육성게임을 하는 것 같아 조금 재미나기도 했다.
“방침도 정해졌으니 오늘은 일단 쉬는 걸로 해요, 오빠.”
“그래. 너도 많이 지쳤을 텐데 편히 쉬어라.”
까지 말하다 말고 정시우는 문제점을 한 가지 깨달았다.
“널 어디서 재우지? 아니, 너 씻는 건 어떻게 씻냐?”
“어, 그건…….”
그날 밤, 정시우는 플레이어로서 번 돈의 일부를 기꺼이 털어 침대에 욕조까지 딸린 초호화 거대 사이즈의 인형의 집을 주문했다. 그가 사회적으로 끝장나는 순간이었지만 여태까지도 별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날이 찾아왔다.
뉴스에 용오름 길드의 서브마스터 수아린의 사망소식이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