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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화 (2/260)

# 2

2화.

“지하 플레이어?”

“재탄생?”

정시우와 여자의 목소리가 겹쳤다. 다음 순간 둘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방이 어두웠기에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정시우는 초인답게 안력도 제법 강했기에 그녀의 윤곽 정도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재탄생이 뭐야?”

“지하 플레이어라는 건 뭔가요?”

다른 이가 보면 굉장히 멍청해 보일 법한 광경. 다행히도 둘은 사태를 빠르게 파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차근차근 얘기해 볼까. 자기소개부터 하자고.”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좋아, 그럼 나부터. 난 올해로 스물여섯에 이름은 정시우…….”

정시우가 할 얘기는 얼마 없었다. 대학을 마치고 백수 생활을 즐기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젊은 여자를 발견해 점프, 붙잡았더니 땅속에 같이 처박혀 지금 이 모양. 실로 심플하다.

“평범한 인간이 도약해서 추락자를 붙잡을 수는, 그것도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받아낼 수는 없다구요. 그건 플레이어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나 돌아오는 여자의 반응이 격렬했기에, 정시우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추가설명을 했다.

“내가 힘이 엄청 세.”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그런 초인적인 힘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요?”

“플레이어가 될 운명이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은데.”

“그럴 리가요.”

여자는 친절한 설명으로 정시우의 환상을 박살 내주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플레이어인 사람도 있지만, 그런 플레이어라고 해도 하늘성에 들어가 정식으로 플레이어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해요. 어디까지나 테스트 던전을 클리어하고 정식 플레이어가 되어 마나를 다루기 시작하고 나서야 어엿한 초인으로 거듭나는 거죠.”

마나, 게임이나 소설에서는 많이 본 단어였다. 그런데 설마 그것이 실재하고, 심지어는 플레이어들의 능력의 기반이 되는 요소라는 것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야 대외비니까요. 어쨌든 얘기를 계속하자면, 당신…… 정시우 씨는 몸에 마나가 아직 한 톨도 없어요. 제 감지능력은 특별하거든요, 그러니까 확실해요.”

“즉, 마나가 없는데도 내 힘이 강하다는 게 놀라운 거지?”

“네!”

말이 통해서 다행이라는 투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그 여자에게 정시우가 대꾸했다.

“세상에 마나 같은 것도 있는데 마나 없이도 힘이 센 사람이 있어서 이상할 건 없지 않을까?”

“어…… 그러네요?”

여자가 납득했다! 역시 플레이어다운 이해력이었다!

“그러면…… 초인이기는 하지만 날개도 없고 하늘성과도 관련이 없는 존재인 정시우 씨가 저를 구하는 과정에서 함께 땅속에 처박혔고, ‘지하 플레이어’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는 거죠.”

“응, 바로 그거야. 지하 플레이어가 뭔지…… 모르지?”

“네.”

여자는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여긴 하늘성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면서도 영 관계가 없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조금 전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가, 하늘성이나 던전에 들어갈 때면 나오는 어나운스 보이스와 완전히 똑같았거든요.”

“그래, 분명 엑스트라 월드 개미굴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지하 플레이어라.”

정시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늘성의 플레이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그는 신비의 한가운데에 있다. 적어도 그가 타고난 특별한 힘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환경에 처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면 이번엔 제가.”

“아, 그랬지.”

당장 이 공동 너머로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정시우는 아직 여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머쓱해졌다. 다행히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은 없는 것인지, 여자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한국의 플레이어 길드 용오름에 소속되었던 레벨 219의 치유사 수아린이에요.”

상상 외의 거물이었다!

“용오름 멤버들과 함께 32단계 던전에 도전했었지만, 던전 보스와의 전투에서 그만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하는 바람에 날개 유지 마력을 잃고 그대로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죠. 그렇게 꼼짝없이 죽나 싶었던 순간에 정시우 씨가 절 구해 준 거예요.”

그리고 그대로 함께 지저에 처박혔다.

“당연하지만, 하늘에서 추락하는 것을 정시우 씨가 받아 줬다고 제가 플레이어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건 아녜요. 아무래도 전…… 공식적으로는 죽은 것 같네요.”

기껏 구해 준 사람 맥 빠지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 타이밍에 정시우는 아까 그녀가 중얼거렸던 단어를 기억해 냈다.

“아까 재탄생이라고 했었지?”

“네. 전 지금 추락 이전의 힘을 대부분 소실한 상태예요. 하지만 아무래도 시우 씨가 저를 구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면서, 시우 씨는 ‘지하 플레이어’로 거듭날 기회를, 저는 ‘서포터’로 재탄생을 할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플레이어가 아닌 서포터, 아무래도 어감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플레이어가 주연이라면 서포터는 조연일 것만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지 않는가!

“그대로 죽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다니…… 너무 기뻐요.”

그러나 이어지는 수아린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정시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다행이기는 한데.”

“고맙습니다.”

어둠 속에서 수아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시우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이 은혜는 평생에 걸쳐 갚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까진 없는데?”

플레이어가 될 기회를 얻은 시점에서 오히려 정시우가 수아린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수아린은 그의 겸허한 말에 픽 웃어 버렸다.

“아무래도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성공적으로 재탄생이 이루어질 경우, 전 정시우 씨의 서포터가 되는 모양이라서요.”

“과연.”

절로 납득하고 말았다. 너무 착착 맞아떨어지는 시나리오에 감탄을 할 지경이다.

“수아린 씨는 그걸로 납득해?”

“당연하죠. 그리고 그냥 편하게 아린이라고 불러주세요. 저 올해로 스물둘이거든요.”

정시우보다도 어린 나이에 플레이어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다가, 성공을 눈앞에 두고 허무하게 탈락해 영락했음에도 저렇게나 긍정적인 태도라니. 그는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린아. 이렇게 됐으니 잘 부탁한다.”

“네!”

“그런데…….”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생각해 보니 지금부터 둘은 이 던전이라는 곳을 같이 탐험해야 하는 처지였다. 정시우는 그제야 새삼스레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던전은 상당히 위험한 장소라고 들었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데도 기습해 오는 놈이 없네.”

“네. 원래 던전의 첫 방은 대기실이라고 해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던전의 특성을 파악하거나 보급품을 확인하거나 해요. 물론 모든 던전이 다 이런 것은 아닐뿐더러 엑스트라 월드인 이곳은 던전의 법칙 자체가 다를 수도 있으니 제 말을 너무 믿으시면 안 되지만…….”

“아냐, 적어도 이 던전에 한해선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정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 다섯 놈이 저기 입구에 숨어서 우리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네. 그런데도 안 넘어오는 걸 보면 정말 무슨 규칙이 있긴 한가 봐.”

“……네?”

수아린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해 반문했다.

“저기 입구라니, 이 어둠 속에서 눈앞이 보이는 건 둘째 치고 수십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몬스터의 기척을 느끼셨단 말인가요?”

“원래 안 되는 거야?”

수아린은 그건 스킬을 보유한 도적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자신이 아까부터 굉장히 전형적으로 놀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곤 그것을 참았다.

상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여유롭게 받아 낸 인물. 나름 최상위권 플레이어인 자신조차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잠재력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를 서포트하고자 한다면, 그의 모습을 그대로 긍정하며 그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아뇨, 잘하셨어요. 벌써 던전에 적응하셔서 놀랐을 뿐이에요.”

“난 또 뭐라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돌진하고 싶지만 안 되겠지?”

아직 던전과 플레이어의 스탠다드를 알지 못하는 정시우는 그저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초심자에 불과했다.

지금 그는 무척 들떠 있었고, 스스로도 그것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일부러라도 자신에게 제동을 걸고자 했다. 그것은 무척 긍정적인 태도라고 수아린은 생각했다. 하지만.

“아뇨, 지금은 괜찮아요. 이 던전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 테스트, 자질을 시험하는 던전이니까요. 하늘성 내에서도 이 던전을 거쳐서 플레이어로 거듭나곤 했죠.”

하늘성의 테스트 던전은 몬스터가 플레이어 후보를 죽일 수 없다는 규칙도 있었지만, 그 정보가 개미굴에서 통할지는 확실치 않으니 배제했다. 대신 최대한 확실한 정보만을 전달했다. 치유사로 활동할 때부터 팀원들을 다독이고 관리하는 것은 그녀의 역할이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정시우 씨가 멀리서도 기척을 읽어 낼 수 있는 몬스터라면, 지금의 정시우 씨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라는 얘기죠. 다만 몬스터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생긴 존재이고,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 해도 놈들을 눈앞에 두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확실히 좀 더럽게 생기긴 했는데.”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정시우는 적당히 셔츠 밑자락을 찢어 왼 주먹에 둘둘 감았다. 수아린은 그 모습이 조금 멋지다고 생각하며 이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치유사의 자격과 레벨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지금 가능한 것은 저급 치유 한두 번이에요. 테스트 던전의 길이를 측정할 수 없으니 부상은 최대한 피하셔야 해요.”

“최대한 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몬스터들을 다 후드려 패기만 하면 된다 이거지. 쉽네?”

“네, 나머지는 첫 전투가 끝나면 알려 드릴게요.”

“오케이. 오랜만에 힘 좀 쓰겠…… 어!”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며 뛰쳐나가는 정시우! 그의 도약이 너무나 빨라서 레벨을 부여받지 않은 자의 몸놀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수아린은 당황하며 그 뒤를 따라 내달렸으나 레벨을 모두 잃었기에 그 속도는 쳐질 수밖에 없었고,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정시우는 이미 던전의 두 번째 방, 다섯 마리의 몬스터가 숨어 있는 첫 실전의 장에 도달해 있었다.

[그르아아아아아아아!]

[인간…… 맛있어 보이는구나!]

그가 매복을 감지하지 못한 줄 알고 일제히 그를 덮쳐 오는 괴물들! 정시우의 뒤를 따라 달리다 말고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한 수아린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자, 잠깐…… 정시우 씨, 잠깐! 뭔가 이상해요, 저놈들은 웨어울프인데…… 어째서 테스트 던전에 레벨 50이 넘어가는 웨어울프가!? 멈춰요, 정시우 씨!”

“미안, 이제 못 멈춰!”

몬스터를 보면 움츠러들지도 모른다는 수아린의 걱정과는 달리, 정시우는 몬스터들의 위치를 파악한 순간 오른발로 바닥을 디디며 주먹을 내질러 정면을 강타했다.

[구아아아아아아아아!]

이를 내밀고 그에게 덤벼들던 ‘웨어울프’ 한 마리가 그것에 정통으로 얻어맞는 광경을 보며 수아린은 그만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나이스!”

웨어울프는 단말마도 남기지 못하고 머리통이 터져 즉사했다.

“……응?”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광경에 수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나 정시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은 네 마리의 웨어울프를 학살했다.

“흡!”

[카학!]

“귀찮게!”

[케에에에엑!]

방해되는 놈을 강하게 걷어차 죽인 후 가장 가까운 놈의 목덜미를 붙잡아 주먹 한 방에 대가리를 터트리고, 자신에게 드러난 틈을 노리고 발톱을 휘둘러 오는 웨어울프의 복부로 파고 들어가 어깨로 들이받아 심장을 파열시켜 죽였다.

그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는데, 그리 세련된 움직임이 아니라 막대한 힘으로 밀어붙일 뿐이었음에도 묘하게 빈틈이 없는 동작이었다. 유전자에 사냥법을 새기고 태어난 맹수가 이럴까 싶었다.

[크, 크르으으으으으…….]

그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는 정시우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으나, 정시우는 씩 웃으며 용서 없이 놈에게 덤벼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놈은 첫 번째 웨어울프처럼 머리통이 터져 즉사했다.

“흥, 차라리 이를 드러내고 덤벼들기라도 했으면 기백은 있어 보였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다섯 마리의 웨어울프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정시우는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는 첫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다가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수아린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왜 멈추라고 했던 거야?”

“…….”

그녀는 이제야 간신히 정시우를 따라잡았는데, 표정이 마치 주식을 판 다음날 그 주식이 상한가를 치는 것을 확인한 펀드매니저 같았다. 그러나 그가 괜찮냐고 물어보기 전 그녀가 흔들흔들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녜요. 정말로 정시우 씨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들만 나왔네요…….”

그녀의 이론은 정확했다. 테스트 던전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 후보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만 내보내는 게 맞았다!

……단, 정시우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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