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화.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첫째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고,
둘째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사람이다.
정시우는 자의식이 확립된 순간부터 줄곧, 자신이 그중 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왔다.
“아, 정시우! 소파 들지 말라고 했지!”
“꺄하하하!”
“우리 애 기네스 같은 거 내보낼까?”
“아냐, 잡혀가서 해부당할 거야. 아! 냉장고 들지 마! 아예 집을 들어라, 집을!”
“꺄하?”
“아냐, 아빠가 미안해. 들지 말아 줘…….”
그는 힘이 강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냥 강했다.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그에게 있어 힘이란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었다.
“시우야, 힘 조절해라.”
“조절하고 있는데?”
“아파!”
“헉, 정시우다!”
어렸을 땐 제대로 힘 조절을 하지 못해 애도 많이 먹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 힘을 어떻게든 조절하게 하려 무술도장이란 도장마다 그를 등록시켰지만, 어떤 도장도 그를 1년 이상 버텨 내지 못했다.
“이 아이는…… 우리 도장에서 가르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죄송합니다, 부인.”
“어떻게든 기초만은 때려 박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놈이 우리 도장을 때려 부쉈죠.”
“얜 무기를 다룰 수 없어요. 무기가 녀석을 못 버텨요. 아니, 몸이 가장 강력한 무긴데 대체 왜 다른 무기를 들게 하시려는 겁니까?”
그나마 ‘힘을 기술로 제압한다!’며 자신만만하게 그를 받아들인 유도 도장이 조금 오래 버텼는데, 가뜩이나 힘도 강한데 유도 기술까지 배운 정시우가 관장을 제압하며 그것도 막을 내렸다.
“시우야, 너는 맹수다. 인간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는 거야.”
정시우에 의해 도장 바닥에 내던져진 유도 관장이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 반문했다.
“그런데 나 유도 배우고 더 강해진 것 같아, 관장님.”
“응, 실은 그게 문제다…… 맹수가 기술까지 배워서 괴물이 되어 버렸으니. 나중에 어디 가서 나한테 배웠다고 말하지 마라.”
“곤란해지면 관장님 이름 팔면 된단 얘기지?”
“이 똑똑한 새끼……!”
비록 여러 도장 문을 닫게 만드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으나, 그 끝에 정시우는 간신히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정시우 나이 11살의 일이었다.
“야, 왜 너만 체육시간에 혼자 노냐?”
“난 구기 열외야.”
“왜 너만 열외야? 장난하냐?”
“내가 나가면 나머지 인원이 전부 열외되거든. 물리적으로.”
“힉.”
사람들은 어렴풋이 그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대충 그에게 맞추어 주었다. 정시우가 그것에서 우월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더욱이 나날이 늘어가는 그의 힘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이 정도였으니!
‘그래, 난 특별하구나.’
그것이 그에겐 지극히 당연한 진리였고, 절대였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마냥 오만하게 굴지는 않았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인간은 으레 다른 분야에도 도전을 해 보고 싶어지는 법, 그는 타고난 무력을 스스로 단련하는 한편으로 공부에 도전했다.
“정시우가 전교 3등 했대.”
“미친 놈.”
“저놈이 공부까지 잘하면 우리가 뭐가 돼!?”
성과는 분명 있었지만 무력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시우는 그 정도로 만족했다. 이것이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다른 것들을 찾아 매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고난 능력이 그를 성실하게 키운 것이다.
그렇게 그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지구 상공에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비행기로도, 제트기로도, 미사일로도, 인간의 기술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성이었다.
지구인들 중 극소수가 성의 선택을 받아 날개를 얻었고, 그들은 성에 도달하여 지구에 없는 신비로운 재화와, 그것을 지키는 파수꾼 괴물들과 만났다. 괴물들을 물리친 이들은 ‘플레이어’라 불리게 되었고, 인간 사회의 중심은 단박에 그들에게로 옮겨졌다.
정시우는 자신이 당연히 플레이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날개가 돋아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정시우는 아직 플레이어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구, 정확히는 태평양 상공에 ‘하늘성’이 생겨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것은 정말로 거대한 성이었다. 단지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다면 터무니없이 거대한 주제에 하늘에 둥둥 떠 있다는 것과,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그것에 접촉할 수가 없었다는 것.
전투기로 들이박으려 하면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슥 지나쳐 버리고, 미사일로 격추하려 하면 명중 직전 미사일이 사라져 버렸다. 한꺼번에 여럿이 덤벼도 딥따 큰 놈으로 덤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늘성은 꼭 지구와 다른 채널에 있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고,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정보도 얻어낼 수가 없었다.
그 정체를 파악하고자, 인간이나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고자, 하다못해 그 안에 있을 누군가와 대화라도 시도해 보고자 많은 이가 노력했으나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인간에게 날개가 생겨나기까지는, 그랬다.
하늘성이 나타났던 것처럼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지구인 중 극소수의 등에 날개가 돋아났다. 나비 날개, 박쥐 날개, 독수리 날개, 종류도 여러 가지였지만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날개가 돋아난 이들은 자력으로 비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날개의 종류와 숙련도에 따라 비행속도나 거리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날 수 있었다.
거기서 인간들은 떠올린 것이다. 혹시?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날개가 달린 돌연변이가 나타났다는 건 이 인간들이 하늘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가설은 아주 훌륭하게도 들어맞았다. 날개가 돋아난 인간들, 차후 플레이어라고 불리게 되는 이들은 자력으로 난다는 전제하에(즉 비행기를 타고 하늘성에 도달해 내린다거나 하는 편법을 구사하는 자들을 제외하고) 하늘성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들어갈 수 있게 된 하늘성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늘성 안에는 옷을 제외한 그 어떤 현대 문물도 출입할 수 없었기에, 촬영도 녹음도 기록도 불가능했던 탓이다.
그러나 변화는 극명했다.
인간과 하늘성의 접촉 이래 각국의 상공에 괴물과 함정으로 가득한 ‘던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날개 달린 인간들은 하늘성에서 무언가 정보를 얻어 나온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던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특별한 힘과, 부귀영화를 얻어 나왔다.
날개라는 특별한 접속권한을 갖고 하늘성과 던전에 드나들며 재화를 독점하는 특권세력 ‘플레이어’의 탄생이었다.
‘슬슬 플레이어가 될 때가 된 것 같은데.’
스물여섯 살의 정시우는 대학생에서 프로 백수로의 전직을 깔끔하게 완료했다.
언제 플레이어가 될지 모르니 결코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을 수는 없다! 열심히 육신을 단련하고 각종 서적을 섭렵하며 자기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거실 바닥의 온도를 몸으로 느껴 측정하는 결코 누구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했다.
단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시우야, 쓰레기 좀 버리고 와라.”
“지금 중요한 일 하고 있는데…… 알았어, 엄마. 어, 그런데 이 봉투에 나 안 들어가겠는데?”
“조금만 기다려, 아들. 곧 들어갈 수 있게 해 줄게!”
“헉!”
정시우는 사소한 조크에 눈을 뒤집으며 달려드는 어머니를 피해 쓰레기봉투를 캐치하고는 그대로 집을 달려 나왔다.
“후, 무서워. 정말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니까.”
집 앞의 쓰레기장에 봉투만 버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기껏 밖에 나왔는데 쓰레기만 버리고 들어가기는 심심하다.
그는 항상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손수건을 꺼내어 손을 대충 닦고,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차게 기지개 한 번을 켰다. 여기서 광합성이나 조금 하다가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귀환할 생각이었다. 실로 훌륭한 백수의 라이프 사이클이 아닌가.
“아.”
그런데 그때 마침 하늘 저 너머에서 요란한 빛이 터졌다. 빨강주황노랑초록, 무지개로 착각할 만큼 다채로운 빛이 여러 차례. 정시우뿐만 아니라 한국에 사는 이라면, 아니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강렬한 빛의 향연.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지만 정시우는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32단계 클리어 됐나 보다.’
정시우는 짐짓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었다. 쓰레기봉투 하나 버리러 나오면서도 스마트폰을 챙기는 용의주도함, 따위는 아니고 단지 어머니를 피해 급히 뛰쳐나오느라 폰을 놓고 나올 새가 없었을 뿐이었다.
인터넷 앱을 켜고 적당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니 역시나, 이제 막 하늘성 32단계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는 뉴스가 상단에 떠 있었다.
“[하늘성이 열리고 10년, 자랑스러운 한국의 플레이어 길드 ‘용오름’의 주도로 32단계 던전을 최초 클리어하는 데 성공]이라…… 뭐야, 한국에서 성공한 거야.”
기사의 헤드라인을 읽는 정시우의 입가에는 절로 쓴웃음이 어렸다.
던전 최초 클리어라는 영광된 타이틀 아래 숨었을 피비린내를 맡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공략을 숙지하고 도전해도 어려운 것이 던전인데, 거기서 최초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했을지는 안 봐도 블루레이 아니겠는가.
“후…… 아이스크림이나 사러 가자.”
그가 진즉 플레이어가 되었더라면 지금쯤 32단계 정도가 아니라 하늘성을 완전히 정복했을 텐데. 하늘성도 참 인재 보는 눈이 없구만, 하고 투덜거리며 그는 편의점으로의 발걸음을 서둘렀다. 홧김에 걷어찬 돌멩이 하나가 순식간에 높이 솟구쳐 사라졌다.
“천 원이요.”
“아니 이 쪼그만 쭈쭈바 하나에 무슨 천 원…….”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이요.”
“굿.”
어째서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쭈쭈바를 두 개 사 봤자 두 개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항상 행사라는 말에 반색하며 두 개를 집어 들고 만다. 그는 에휴, 한숨을 쉬며 하나를 알바에게 내밀었다.
“덥지, 하나 먹어요.”
“굿.”
알바와 나란히 꽁다리를 땄다. 이전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할 때 쭈쭈바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힘을 조금 주면 갈라지지 않고, 너무 주면 아이스크림이 통째로 터지기 때문에 정확히 꽁다리를 뜯을 만큼의 힘을 내는 데에 집중하는 연습.
그 연습을 하다가 한 자리에서 오십 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우고 배탈이 났던 것도 지금은 좋은 추억이었다.
“아까 보셨어요? 하늘에서 폭죽 터지던 거.”
“봤죠.”
“보니까 32단계는 기어코 한국에서 최초 땄더라고요. 정말 사람 욕심이 뭐라고.”
정시우는 자신과 똑같은 쭈쭈바를 빨아 먹고 있는 알바와 피식 미소를 교환하고는 편의점을 나왔다. 마냥 밝지만은 않은 얼굴이었다.
‘벌써 10년이네.’
처음엔 뭔가의 착오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인간을 뽑는다면 자신이 빠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1년을 기다리고 2년, 3년, 끝내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는 플레이어로 선정되지 못했다.
“슛, 골.”
다 먹은 쭈쭈바 비닐을 가볍게 구겨 쓰레기통에 골인시키며 한숨을 쉬었다. 돌아서는 그의 눈에는 한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이 비추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날개가 없기에, 저 하늘로 날아오를 수가 없다.
‘그래도 이제 곧이야. 곧 날개가 돋아날 거야. 그런 강렬한 확신이 든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덤으로 돈도 없다. 올봄을 마지막으로 용돈이 끊겼기 때문이다. 일도 안 하는 자식을 여태 집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일단 일은 좀 해 둘까.’
아무리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도 돈이 없어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정시우는 쭈쭈바를 괜히 넘겨주고 왔나, 살짝 후회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흰색…… 아니지.”
여자의 속옷을 탐구하는 것은 모든 남자의 본능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여자가 흰색 팬티를 입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틀림없어,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다……!’
모든 플레이어가 부와 영광을 얻느냐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하늘성과 던전은 매혹적인 만큼 위험으로 득실거리고, 혹여나 그곳에서 능력이 부족하여 리타이어하게 되면 지금 저 여자처럼 추락하게 된다.
추락한 플레이어가 살아났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다. 지면이든 수면이든, 그들은 빠른 속도로 추락한 끝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만다.
플레이어가 이렇게 추락하는 광경을 마주하는 것도 굉장히 드문 일. 적어도 정시우 인생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떨어지는 걸…….’
“가만 놔둘 수는 없거든!”
무척 당황했지만 정시우의 행동은 신속했다. 추락하는 여자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체크하고, 힘껏 내달려 바닥을 디디고 도약했다. 여자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스읍…… 흡!”
저 너머 하늘에서 내던져진 여자를 받아 내는 것이다. 저항이 터무니없으리라는 것은 제아무리 정시우가 문과라고 해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양팔을 내밀어, 여자를 받아 냈다. 부드럽게 받아 내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어마어마한 압력과 함께 팔이 부러질 것만 같은 격통이 그를 덮쳤다.
“흡!”
“……꺅!?”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져 두 눈을 감고 있던 여자가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모양이지만 지금은 그녀를 살필 시간이 없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되었다!
“으으으으으으으!”
“뭐야!? 어떻게!?”
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여자를 받아 낸 순간 정시우의 몸이 대지에 처박힐 뻔했지만, 정시우는 고통을 버텨 내며 어떻게든 대지에 두 다리를 디디고 착지했다. 초인적인 힘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시도도 하지 못했으리라!
“끄으으으!”
그러나 어째설까, 여자가 안 다치게 받아 내 지상에 착지까지 했음에도 정시우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이 정시우까지 짓눌러 죽이려는 것만 같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늘성의 존재부터가 물리법칙을 위반하고 있으니 새삼스레 놀라울 일도 아니다.
“놔, 놓으세요! 이러다 당신까지 죽어요!”
여자는 기겁하며 정시우를 떨쳐 내려 들었다. 리타이어한 순간 죽음을 각오한 몸, 괜히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정시우는 코웃음을 쳤다.
“날 죽이려거든 이 압력의 세 배는 퍼부어야 할걸!”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거실바닥에 달라붙어 습득한 비기, 부동자세! 멀리 떨어진 리모콘에도 닿지 않는 선풍기 버튼에도 어머니 눈초리에도 꿈쩍하지 않던 경험을 살려 어떻게든 버틴다, 좌우지간 버틴다!
그러자 이내 땅이 꺼지기 시작했다.
“……날 못 이기겠으니까 대신 땅을 꺼트리겠다 이거지.”
“당신은 대체 누구죠!?”
분명 생명의 위기를 목전에 둔 상황임에도 여자는 태클을 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그녀가 플레이어 노릇을 하며 만난 그 어떤 생명보다도 괴상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눈만 끔벅이고 있는 동안에도 땅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이내 가속이 붙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마치 흙으로 된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있는 것마냥 빠른 속도로 지하로 떨어져 내렸다. 바깥에서 보면 꼭 싱크 홀을 보는 것만 같으리라.
“후우으으으으으으.”
“이럴 수가…….”
그렇게 실시간으로 지하 깊숙이 파묻히던 어느 순간, 천장이 막히고 주위가 껌껌해졌다. 정시우는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멈췄네……?”
하강이 멈추었다. 대체 얼마나 깊숙이 내려왔는지 감도 안 잡힐 만큼 깊은 지저에, 두 사람만 덜렁 내던져진 것이다.
“살았네.”
“정말 살아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여기, 어딜까요?”
“그러게 말이야.”
플레이어면 이런 이상한 현상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여자 역시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정시우도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를 받아 내서 살렸단 얘기는 못 들어 봤으니, 어쩌면 지금 그들이 겪고 있는 일은 세계최초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생매장 당해 줄 수는 없고…… 후우.”
그러나 정시우가 일단 천장을 부숴 볼까, 하고 가볍게 마음먹으며 주먹을 들어 올린 그때, 정시우의 귓가로 낯선 이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엑스트라 월드 ‘개미굴’이 열립니다.]
[지하 플레이어의 도전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얀 날개 묘지를 클리어하고 지하 플레이어로 거듭나세요.]
바라마지 않던 축복이 찾아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