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악어 사냥 (3) >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나는 홀로 호텔을 빠져나왔다. 우르술라와 아길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끄는지라 기밀을 요하는 일에는 동행할 수 없었다.
엘 드라고 카르텔.
완전무장한 돌격병 일개 중대를 남의 나라 한복판에 풀어놓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선을 넘었다.
나오기 전 뉴스를 조금 검색해봤는데, 과천 인근에서 벌어졌던 총격전은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최소한 정보통제는 하는 중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손을 놓아버린 듯했다.
끼이익.
나는 유흥가 모처의 무인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마치 야누스 같았다.
나는 우르술라처럼 사람의 욕망을 들여다볼 줄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죄업을 읽을 줄은 알았다.
낮의 화창하고 북적이던 거리는 사라지고, 죄업으로 얼룩진 침침한 골목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팍팍하며 삶에 찌든, 쳐다보기만 해도 생기가 빨려나갈 것만 같은 눈빛.
나는 사람들을 지나쳐 죄업 센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걷지 않아 박병철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예,장관님.
- 날세. 시간 괜찮은가?
- 통화할 시간은 있습니다.
- 수석사제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네. 자네가 현장에 와있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 저도 놀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검을 쓸 일이 생길 줄은 몰랐으니까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집니까?
- 과거엔 아니었네.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지. 대한민국이 더 이상 자네가 알던 그 대한민국이 아닐세. 여태 세상에 없던 문제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데, 관료들은 답을 몰라. 답을 몰라서 발만 구르는 사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중이라네.
한마디로 방관 중이라는 소리였다.
- 죄송하지만...
- 아네, 무능하게 들린다는 거. 그런데 우리로서도 외통수야. 과거에는 끽해야 공무원 서너 명에 셰퍼드 한 마리 붙여놓으면 단속반 활동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지. 그런데 웬걸, 군경 수천 명을 투입해도 제압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카르텔이 서울 도심에 잠복하고 있다지 않나. 자네가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시가지를 봉쇄하고 탱크라도 투입하겠나?
쉽지 않은 결정이긴 했다.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내리려면 국민 모두에게 국가가 준전시상태에 돌입했다는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마약은 음지에서 퍼지는 독버섯이라, 실제 위험도와 사람들이 체감으로 느끼는 차이가 컸다.
- 하지만 방관하는 사이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 카르텔 병사들을 상대해봤는데, 아주 악랄한 술법으로 인간을 개조해놨더군요. 이미 저들에게는 선이라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약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기세등등해질 뿐이죠.
- 안다네, 나도 해외를 돌며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을 두루 접했지. 오늘 자네가 본 것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박병철 장관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도 군대를 동원하는 건 가급적 피하고 싶어. 군인이라고 해봤자 머리만 짧게 깎았다 뿐이지,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책 펼치고 공부하던 청년들 아닌가? 나라의 귀한 동냥들을 그런 괴물들과 맞서라고 내보내는 건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살인이 아니겠냐는 말일세.
- 딜레마로군요.
국민을 지키려면 군대를 불러야 한다. 그러나 군대를 이루는 것도 국민이었다.
- 그래서 우리는 공화국과 협업을 원하네. 단기적으로는 자네의 우수한 전투원들을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우리도 그런 늠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전문적인 요원들을 자체적으로 양성해야 하지 않겠나.
- 주술사를 양성하려면 에사인 신앙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 그 점은 조금 걱정되긴 해.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교계의 힘이...
-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밝은 네온사인에 클럽 23이란 숫자가 큼직하게 박혀 반짝였다. 건물 앞에는 청년들이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클럽이 불법의 온상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이 건물 어딘가에 상당한 죄업을 짊어진 자가 틀어박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경험상 단순히 사람을 때렸다든가, 사기를 쳤다든가 하는 정도로는 이만큼의 죄업을 쌓지 못했다.
최소한 사람을 십여 명 이상은 죽여 봐야 한다. 대한민국 제도권에서 그만한 죄를 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건물을 돌아 뒷문으로 향했다. 어차피 정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에.
외모나 나이를 떠나서 이런 장소에 어울릴만한 옷을 입고 오지 않았다.
"어이, 아저씨, 아저씨! 이쪽으로 오면 안 돼.”
정장을 입은 덩치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제대로 된 격투술이라고는 배워본 적 없는, 덩치와 인상만으로 밥벌이를 하는 놈들이었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손부터 썼다.
콰지직.
얌전히 기절만 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사람 대신 건물 벽을 후려쳐 허물어버렸다.
"산재처리 될 것 같으면 덤벼라.”
"....지나가시죠, 형님.”
포기가 빠른 친구들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마력반응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운을 쫓아 비상구 계단을 올라 건물 옥상에 도달했다. 옥상 문은 잠겨있었기에 힘을 줘서 뜯어내야만 했다.
"너 뭐 하는 새끼냐?”
아주 파릇파릇한, 부티가 자르르 흐르는 젊은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그는 품에서 잽싸게 단검을 꺼내 내게 겨누었다.
박력과 달리 목소리는 여자처럼 가날팠다. 피부도 얼마나 곱던지, 화장이 아니고선 저런 때깔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칼 내려놔라, 다치기 전에.”
"웃기지 마,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 담구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 알아?”
그의 단검에 눈부신 마력이 맺혔다.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는 마치 총을 쥔 어린아이 같았다. 혹은 영화나 소설에서 단역으로 소비되는 엑스트라거나.
말하는 품새나 행동거지가 도저히 저런 크기의 마력을 다룰 자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거 익스티아냐?”
나는 그의 바지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아까부터 주머니를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에.
"어떻게 알았...씨발!”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무척 불안한 상태였다. 흰자위가 온통 붉게 물든 걸 보니 방금 전 익스티아를 복용한 게 분명했다.
“무서운 사람들을 알고 있나본데.”
“그만 꺼져, 진짜로 좆 되기 전에!”
"미안하지만 그냥은 못 간다. 넌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공급책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나한테 해줄 말이 많을 것 같거든.”
"더 이상 다가오지 마, 찌른다, 진짜 찌른다고!”
그가 단검을 내민 채 휘휘 휘둘렀다. 기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윰직임이었다.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어린아이 제압하듯 간단히 손목을 비틀었다. 손에서 떨어진 단검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악!”
나는 그를 힘으로 무릎 꿇린 후, 얼굴을 차가운 바닥에 짓눌렀다.
"이제부터는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머리통을 뭉개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가 바닥에 깔린 채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내 예상대로 그가 카르텔과 연관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여러 차례 봤을 것이다.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하지. 클럽마다 너 같은 딜러가 하나씩 있나?”
"......."
나는 그가 잘 볼 수 있도록 바닥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손가락이 득득 소리를 내며 시멘트를 뚫고 들어가자, 그가 공포로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어차피 너는 죽어.”
나는 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엘 드라고는 너 같은 잔챙이는 쓰다 버리는 패로밖에 생각 안 하거든. 네가 불지 않았다고 아무리 변명해봤자 믿어주지 않을 거라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나한테 걸어보는 게 좋을 거다.”
"다, 당신이 누군데?”
"네 유일한 구원이다.”
나는 그의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수축된 동공이 나를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그는 죽기 직전의 김신우 박사처럼 정신이 황폐해진 상태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혼돈의 목소리를 머릿속으로 직접 듣게 된다던가.
"익스티아를 뿌리는 게 엘 드라고라는 건 알고 있다. 너 같은 놈을 시켜서 클럽을 중심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내가 궁금한 건 그놈들이 대체 어떤 루트로 들어왔느냐다.”
그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모르나 본데 익스티아는 그냥 밀가루야. 배 타고 앞문으로 대놓고 들어온다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구원을 나불거리냐.”
"아니, 밀가루 말고 엘 드라고 조직원들 말이다. 그 엄청난 덩치에 무장상태하며, 도저히 밀항이 가능한 레벨이 아니던데.”
놈들은 크록보다도 덩치가 컸다. 말인즉슨 키가 최소 2미터 50센티는 된다는 소리다. 내내 지하실 같은 곳에 처박아둘 게 아니라면 눈에 띄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을 덩치였다.
결정적인 건 늠들이 장비와 한 덩어리라는 임택의 증언이었다. 그 두꺼운 세라믹 방탄판들을 평소에도 둘둘 감고 산다는 건데, 어떻게 그런 꼬라지로 치안 좋기로 소문난 한국에서 암행작전이 가능하다는 건지?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남자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한숨을 쭉 쉬며 그의 머리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쩔 수 없네. 고문은 정말이지 취향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겠지. 그래도 안 된다면 전문가에게 넘기는 수밖에. 마침 우리 쪽에 정신마법 달인이 한 명 있는데...”
"나, 나는 정말로 몰라. 네가 그랬잖아, 난 잔챙이라고! 내가 들은 건 언제부턴가 MD들 사이에서 끝내주게 죽이는 약이 돌고 있다는 것뿐이었다고. 손님 더 끌어볼 생각에 약이라도 써볼까 싶었던 거라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연락이 왔고, 나는 그쪽에서 주는 걸 받아서 돌린 게 전부야.”
그는 잔챙이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아는 전부일 것 같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그가 느끼는 두려움이 설명되지 않았다.
“네가 팔아제낀 약이 평범한 마약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어차피 몸에 좋으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 약은 사람을 서서히 미치게 한다. 그러다가 결국 정신이 완전히 붕괴하게 돼. 그 시점부터는 뇌사상태나 다름이 없어지지.”
"그,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어......”
"하지만 네 정신이 망가져가는 건 느끼고 있었겠지? 너는 사람을 죽였다, 고작해야 돈 몇 푼 벌어보겠다는 이유로.”
"나는, 나는…”
"알아, 그럴 생각까진 없었다고, 그렇지? 그렇다면 아는 걸 토해내. 네 미안한 마음을 증명해보란 말이다.”
"나는...”
그가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나는 혹여 그가 김신우 박사처럼 자폭하진 않을까 마력의 흐름을 예의주시했다. 그때는 속수무책이었으나, 지금 눈앞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멈추게 할 자신이 있었다.
"떠드는 소리를 들었어. 영어였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단어 몇 개가 전부였지만.”
"뭐였냐?”
"던전.”
"던전이라고?”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 무슨 게임에서 나올 법한 단어지.
여기가 에신이라면 또 모르겠다만.
"그리고 포탈.”
흙이 입에 들어갔는지, 그가 기침을 쿨럭거렸다.
"포탈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