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진실의 추 (11) >
김신우 박사는 죽기 전에 국내에 다르마알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테러조직이 있다고 증언했었다.
상당히 강한 주술사가 그들을 관리한다고도.
“제가 그것 때문에 왔죠. 오빠한테 자랑 좀 하려고.”
소미가 눈웃음을 지었다.
“잘 됐어?”
“테러조직은 너무 앞서간 표현이라는 게 제 결론이에요.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악플을 달던 사람들에 불과했어요. 김신우 박사같이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힘을 나눠주긴 했지만, 겪어보셨다시피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구요. 핵심은 그 사람들을 연결하는 주술사인데, 마침 추적에 성공해서 잡아올 수 있었어요.”
“잡아왔다고?”
“네. 가둘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캠프로 데려왔는데, 만나보실래요? 안 그래도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 오빠의 힘이 필요했거든요.”
“당연히 만나봐야지.”
다르마알은 교활한 놈이었다. 그는 아바타를 내세워 활동하거나,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농락하는 등 직접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타인을 조종하는 걸 더 선호했다.
아직 누구도 그의 진정한 목적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조직을 관리하는 관리자라면 그에 대해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을 것이다.
물론 김신우처럼 폭사하지 않게끔 질문을 잘 골라야겠지.
“여기예요."
소미는 우리를 캠프 외곽의 조그만 숙소로 안내했다.
아직 입주자가 없는 건물이라 방 안은 황량하고 단조로웠다.
한 사내가 사슬에 묶인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무광 가죽조끼에 흰 셔츠를 받쳐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십대 남성이었다. 바싹 밀어버린 머리엔 낙서 같은 문신이 가득했다.
사슬에는 카둔의 인장이 선명했다. 단순한 족쇄가 아니라 주술력이 가미된 봉인이란 의미였다.
“올라, 아미가스. 알레한드로라고 불러주시게.”
그는 먼저 소미를, 다음으로 테일리시를 쳐다보며 눈웃음을 건넸다.
사교성이 대단한 자였다, 여자에 한해서는.
라틴계 특유의 여유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는 에신과 전쟁 중인 나라 중 유일한 중남미 국가인 멕시코 출신임에 틀림없었다.
“라힐이라고 한다. 이곳의 책임자다.”
“반갑네, 마침 누가 이런 아리따운 세뇨라들을 거느리고 계신지 궁금했던 차였지.”
그는 날 보고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아직 힘이 회복되지 않은 내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건 그렇다고 쳐도, 소미에게 조직이 박살난 자 치고 지나치게 태연자약했다. 진실의 추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우리나라에서 다르마알의 조직을 이끌었다던데.”
“다르마알의 조직? 천만에. 자네는 책임자라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이제 와서 발뺌을 할 셈인가?”
김신우는 억양이 어눌했다는 이유를 들어 다르마알의 사제가 서양인이라고 추측했다. 그런 이유라면 멕시코인도 충분히 용의선상에 들 수 있었다.
알레한드로가 사슬에 묶인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이걸 풀고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떻겠나. 어차피 난 죽었다 깨도 자네들을 이기지 못할 테니.”
소미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오른손을 들더니 주먹을 힘껏 쥐었다.
빠각.
그 즉시 족쇄가 둘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철그럭거리며 떨어졌다. 알레한드로는 손목을 매만지며 능청스럽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살벌하구만.”
“이제 해명을 해보실까.”
“잠시만 기다리게나.”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금빛으로 번쩍이는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 작자도 정기호처럼 겉멋에 죽고 사는 부류인 듯했다.
“후, 살겠군.”
그가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후 코로 내뱉으며 물었다.
“뭣부터 알고 싶나?”
“당신이 알고 있는 전부.”
“너무 광범위해. 조금만 축소시켜보게.”
“다르마알의 목적.”
“그렇지, 그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어. 다르마알은 일곱 권능이 주도하는 질서를 깨기 위해 새로운 시대의 지배자들을 준비하고 있다네. 비범한 재능과 타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자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앞서나간다고 봐야겠지. 플레이어가 둘이나 되는 나라는 흔치 않으니까.”
“플레이어라고?”
“에사인이 되려는 자들 말일세.”
알레한드로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심기가 불편해졌다.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 내게로 끌어당겼다.
“네가 한국사회에 침투해서 사보타지를 주도한 것도 새로운 시대의 지배자들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거냐.”
“오해하지 말게나.”
그의 갈색 눈동자가 나를 탐색하듯이 훑었다.
“자네는 다르마알에 대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다르마알은 혼돈 그 자체일세. 그것의 역할은 플레이어들에게 판을 깔아 주는 게 전부야. 혼돈이 자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보였다면, 자네가 본 건 혼돈이 아니라 혼돈이 투사한 다른 플레이어의 욕망일 확률이 높아.”
“그럼 내가 본 건 누구의 욕망이냐.”
“그야 내 친애하는 형제이자 자네와 같은 플레이어인 엘 드라고님의 욕망이시지.”
알레한드로의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혔다.
나는 그를 풀어주며 설명하라는 의미로 눈짓했다.
그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먼저 우리의 사업모델이 자네들에게 불쾌함을 불러일으켰다면 사과하겠네. 우리는 차기 에사인이 될 자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장사를 할 이유가 없어. 자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모든 기반을 철수하도록 하지.”
“네 사업이라는 것은?”
“보게나.”
그가 주머니에서 작고 얇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봉지 안에는 흰 가루가 소량 들어있었다.
소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약이네요.”
“천만에, 그런 저급한 쓰레기는 격이 다른 물건이야.”
“마약이 아니라면 뭐죠?”
“밀가루.”
“밀가루라고요?”
소미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떤 할 일없는 놈이 밀가루를 봉지에 담고 다니는가는 둘째 치고, 가루에서 은은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는 가루를 테이블 위에 쏟은 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부르르 떨리더니, 눈알이 위로 까뒤집히며 흰자위가 드러났다.
“대단한 밀가루 나셨네요. 저걸로 부침개를 해먹으면 아주 그냥 뿅 가겠는걸요.”
소미가 신랄하게 비난했다.
나는 뽕 간다는 표현이 아이돌로서 적절한지 소소한 의문을 품었다.
곧 알레한드로의 눈이 정위치로 돌아왔다. 그는 의외로 멀쩡해보였다.
“흠, 확실히 좋군.”
“물론 좋으시겠죠. 감옥에서 썩을 준비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자네들은 술법의 의의가 뭐라고 생각하나? 남에게 고통이나 주는 것? 엘 드라고 형님은 그렇지 않다고 보셨네. 술법이란 모름지기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그분의 철학이야. 그래서 그분이 만든 게 바로 이 익스티아라는 물건일세. 천상의 쾌락을 부여하는 마법 밀가루지.”
“하필이면 왜 밀가루죠?”
“그래야 통관이 되니까.”
알레한드로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 마력이 메마른 영혼을 적시던 쾌감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이 힘이 너무 좋습니다.
김신우 박사의 고백이 떠올랐다.
멕시코인들은 다르마알의 술법으로 밀가루, 아니, 마약사업을 일군 모양이었다. 뭐든 가루와 결부를 짓는 게 과연 그쪽 정서답다고 해야 할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익스티아는 현대인의 다양한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솔루션이 될 수 있어. 가뜩이나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서 스트레스가 많지 않나?”
“솔루션이 아니라 독약이겠죠. 중독된 사람들은 같은 양의 쾌감을 얻기 위해 점점 많은 약을 필요로 할 테고, 그러다가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겠고요.”
“아가씨, 익스티아를 다른 쓰레기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우린 화학물질로 값싼 흥분을 유발하는 게 아니야. 술법이 주는 쾌락에는 결코 익숙해질 수가 없다니까?”
결코 익숙해질 수도, 잡아낼 수도 없는, 술법으로 만들어낸 마약.
무서운 물질이었다.
게다가 김신우 박사의 사례를 돌이켜보자면, 익스티아는 복용자에게 소량의 마력을 선사하기도 하는 듯했다. 제어할 수 없는 마력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내가 나쁜 놈 같나?”
“네, 누가 봐도요.”
“말했잖아, 우리는 그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을 뿐이라고. 익스티아가 만들어지고 나서 우리 조직은 멕시코를 접수했어. 다른 조직은 품질에서 경쟁을 못하니 상대가 되지 않았지. 조직이 통일되니 갱들끼리 싸울 일이 사라지고, 갱들이 싸우지를 않으니 치안이 상승할 수밖에 없고, 결국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이야기야.”
“...어이가 없네요.”
소미가 한 마디로 감상을 정리했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이 기나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진실의 추가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다.
알레한드로는 진심으로 엘 드라고의 약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못했다. 김신우 박사가 폭사해 죽은 이유와, 그의 모든 행위가 종국적으로는 다르마알을 향한 신앙심만 키워줄 뿐이었다는 것.
“가서 엘 드라고한테 전해. 우리는 그런 약이 필요 없다고.”
“알겠네, 내 발로 걸어 나가지. 나중에 후회한다는 것에 내 전재산을 걸고 싶지만.”
알레한드로가 미련 없이 떠날 차비를 했다.
나는 옆을 스쳐지나가려는 그의 팔을 붙들었다.
“한 가지만 더 묻자.”
“뭔가?”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엘 드라고도 우리와 같은 플레이어라면, 그는 어떻게 에사인이 되려는 거냐?”
“존경심.”
그가 물어봐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기쁘게 대답했다.
“엘 드라고는 형제들의 존경을 사고 있어. 누구도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지.”
“그래서 그가 에사인으로서 힘을 발휘한 게 있나? 다르마알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었나?”
“아직이지만, 곧 그리 되리라 믿고 있다네. 멕시코인 중에서 살아있는 성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으니.”
“좋아. 사업을 철수해주는 보답으로 나도 팁을 하나 주도록 하지. 여정을 조금이나마 먼저 떠난 입장에서 주는 팁이니 네 형님께 잘 전해드리라고.”
“알겠네.”
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작게 속삭였다.
“새로운 힘을 얻으려면 우선 가진 걸 비워내라.”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가진 걸 비워내라? 그거면 되나?”
“그래.”
“알겠네. 형님이라면 알아들으시겠지.”
알레한드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미가 그를 바래다주기 위해 나섰다. 그녀는 방을 떠나가기 전,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오빠, 좀 잔인한 면이 있는 거 알아요?"
“그런 위험한 놈을 살려둘 순 없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엘 드라고는 아직 에사인을 향한 여정에 접어들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동지들로부터는 충분한 존경을 받는 듯하니, 술법의 힘을 버리기만 하면 그 또한 나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르마알의 힘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닌 것이고.
“거짓말은 안 했어.”
나는 생각났다는 듯 뒤늦게 한 마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