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에신으로 (5)
외교관들이 보고를 위해 복귀한 후, 참호도 머지않아 완성되었다. 푹신한 부엽토가 허리깊이까지 쌓여있어 땅을 파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참호 다음에는 야포사격을 위한 포진지를 구축할 차례였다. 가져온 대포는 2문에 불과했는데, 특전사가 포를 다루는 데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모래주머니가 궤도차량에서부터 쉴 틈 없이 날라져왔다. 특전사들은 노동요까지 불러가며 작업에 흥을 돋웠다. 그동안 박문식 대령과 장교들은 돌풍 작전의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투투타타타......
여섯 개의 프로펠러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잘 빠진 유선형 몸체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곧 펼쳐둔 노트북 화면에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표시되었다.
“드론으로 찍는 화면인가요?”
“그렇습니다.”
“근데 화질이 너무 나쁜데요.”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화질이 추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통신장교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데이터 중계소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화질을 더 높이는 게 불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저쪽부터 살펴보죠.”
나는 손가락으로 포탈 뒤편의 숲을 가리켰다.
“됐습니까?”
“예, 그쯤에서 멈춰주세요.”
드론이 상당히 높은 고도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정기호는 드론이 송출하는 화면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저건 강인가본데.”
뱀처럼 구불구불한 물줄기가 울창한 우림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끝은 화면에 잡히지도 않고, 폭은 몇 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강이었다.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요?”
“예.”
통신장교가 침착하게 드론을 조종했다. 화면이 점차 강변을 향해 가까워졌다. 멀리서는 음영에 불과했던 것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 보세요?”
차수진이 다가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다른 과학자들도 그녀를 따라와 모니터링에 참여했다. 그들은 머지않아 화면에 비친 생물들을 두고 토론에 돌입했다.
“저걸 새라고 불러야할까요?”
“새라고 부르기엔 너무 크군요. 수각류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깃털이 없잖아요?”
“저 반짝이는 볏을 깃털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포획을 해봐야겠습니다만...”
“쉿.”
정기호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토론을 가로막았다. 그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화면의 귀퉁이를 가리켰다.
“알아보겠냐?”
“뭐?”
그가 가리킨 건 얼핏 바위처럼 보이는, 하얗고 덩어리진, 움직이지도 않으며 인상적이지도 않은 물체였다.
“저게 왜?”
“자세히 봐라.”
“.......”
여전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전사 장교들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자들조차도 전혀 감이 안 오는 눈치였다. 반면 정기호는 세상 근심을 홀로 떠안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건 뼈무더기다.”
“뭐?”
“생선뼈를 발라내서 탑처럼 쌓아둔 거라고.”
“아!”
차수진이 별안간 감탄성을 내었다.
“강에서 수렵활동을 하고 난 뒤 부산물을 모아둔 거군요, 패총처럼요!”
“그렇군...!”
“그럼 이 근처에 선사시대 수준의 취락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드론을 복귀시키세요, 당장.”
이때 내 목소리는 거의 명령조였다. 기쁨에 겨워하던 과학자들이 의뭉스런 얼굴을 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의 기분까지 다독여줄 여유가 없었다. 정기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분들은 즉시 포탈로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장관님께 공병이 아니라 전투병을 보내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네? 갑자기요?”
“위급상황인가?”
“그렇습니다.”
대령은 상황판단이 빨랐다. 그는 자세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명령을 하달했다.
“전원, 전투배치!”
“전투배치!”
대원들이 큰 목소리로 복창하며 화기와 탄통을 챙기러 뛰쳐나갔다. 나도 급히 소총을 한 정 챙겼다. 오데르의 술법은 다른 술법보다 유난히 원거리 화력전에 취약했다.
“이해가 안 가요. 갑자기 돌아가라니, 왜요?”
차수진이 내게 따라붙으며 질문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어라 설명하려다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에게 오늘은 일생일대의 날이었다. 어떤 말을 한들 납득시킬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꽉 쥐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당부했다.
“토양샘플 챙기세요.”
“하지만...!”
“그리고 장관님께,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7층을 그냥 매립해버리라고 하세요.”
“부팀장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거듭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받아.”
정기호가 성큼 다가와서 쌍안경을 던졌다. 그는 허리춤에 덜렁이는 검집 말고는 비무장이었다.
“총 안 쓰냐?”
“나 면제다.”
“네가?”
“복싱 금메달 따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했으니까.”
“......”
그러고 보니 그가 메달을 따는 장면을 스포츠뉴스로 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환생자란 메리트를 정말이지 유감없이 활용하며 살았던 듯하다. 그에 비하면 나란 놈은 머저리가 따로 없었다.
“부팀장, 지금 우리가 정확히 뭘 대비하고 있는 건가? 자네가 말했었던 시체걸이나 거인이라도 오나?”
“저도 아직 확신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그래도 뭔가 아는 게 있으니 드론을 불러들였을 거 아닌가? 아까 봤던 그 뼈 무덤이 문제였던 거지? 그게 대체 뭘 의미하나?”
뼈 무덤은 이곳에 터를 잡은 육식성 종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정글 한가운데 무리지어 사는 종족을 몇 가지 꼽을 수 있긴 했다. 개중에는 무역이 가능할 정도로 고등한 지능을 갖춘 종족도 존재했다. 그러나 나와 정기호가 우려하는 건 그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종족이 아니었다.
“크록.”
“크록?”
“한 마디로 걸어 다니는 악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기호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입니다. 까마득한 옛날 황제의 군대가 남반구 밀림 어딘가의 늪지대를 행군하다가, 하룻밤 사이 악어 형상을 한 괴물들에게 모조리 잡아먹히고 말았다는 이야기죠.”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로군?”
“에신이란 그런 세계입니다. 전승으로밖에 세계의 실체를 접할 수 없죠.”
“자네들이 전문가라는 건 아는데, 소문만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저희는 세계의 실체에 다가가지 못했지만, 에사인은 다르니까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아약이 진짜로 다르마알의 아바타였다면 관광이나 하라고 목 좋은 곳에 포탈을 열어줄 리가 없었다.
“일단 최대한 대비를 하도록 하죠. 어떤 종족이든간에 우리에게 우호적일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알겠네.”
대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쌍안경으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무가 너무 빽빽해서 시야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껏 챙겨온 곡사포도 무용지물이었다.
이것조차 다르마알의 설계일까?
문득 불길한 가정이 떠올랐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이유가 바로 빽빽한 정글 때문이었잖아. 게릴라들이 하도 날뛰니까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농약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지.
만약 다르마알이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병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숲을 전장으로 고른 거라면, 우린 완전히 좆 됐다는 거다.
푸드드득.
나무 꼭대기에서 커다란 새가 활개를 치며 날아올랐다. 몇몇 병사들이 깜짝 놀라 총구를 위로 겨누었다.
참호 안엔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금 병사들의 적은 미지 그 자체였다. 이러다간 싸워보기도 전에 탈진하는 수가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의식을 한 점으로 집중했다. 해가 중천이었으나, 빼곡히 드리운 나뭇잎 덕에 술법을 쓰기에 안성맞춤의 환경이었다.
스스스스.......
나무에서 나무로, 풀과 바위로, 내 의식은 그림자를 건너 확장을 거듭해갔다. 식물, 동물, 그 밖에 우리의 언어로 분류되지 않는 수많은 생명들이 각자의 흔적을 발밑에 매단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 중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골라내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나는 이윽고 숲의 일부를 아우르는 한 덩어리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림자가 곧 나이며 내가 곧 그림자인, 말하자면 물아일체의 경지.
물론 도가에서 언급하는 그런 고차원적인 정신작용은 아니었다. 그저 술법의 힘을 빌렸을 뿐.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 게 그쯤이었다. 축축하고 음침한, 불쾌한 감각이 그림자에 드리웠다. 감각은 실체 없이 오직 의지만을 띠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뚜렷한 살의가 그림자를 매개로 내게 쏘아져왔다.
- 죽어라.
주술사였다. 크록의 강대한 에사인, 마그나크록을 섬기는 주술사가 틀림없었다.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술법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