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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생을 기억한다-10화 (10/205)

10화. 에신으로 (1)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다르마알은 죽은 게 아닙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우리가 쓰러뜨린 건 아바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제국 수도로 가면 참고해볼만한 문헌이 있을 거예요. 과거 어떻게 다르마알을 물리쳤는가부터 해서...”

소미는 말을 하다말고 벌떡 일어났다. 이범영 과장과 정기호를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 무리 중 가운데에 선 인물을 알아보았다. 외교부장관인 박병철이었다. 그는 포탈 프로젝트를 세우고 밀어붙인 장본인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장관이라니.

현행범 각이 나왔다는 건가?

마침 나는 아약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로 칠갑을 한 상태였다. 옆에 멀뚱히 서있는 수상쩍은 갑옷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자네가 박봉팔인가.”

장관이 멀찍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의 경호원들은 내가 눈에서 총이라도 쏜다는 듯이 장관을 앞뒤로 에워쌌다.

“예.”

“그쪽은 소미양일 테고.”

소미가 몸을 움찔거렸다.

“경호팀장에게 간략히 내막을 들었네. 정전된 사이에 부서 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졌었다는군.”

장관은 굉장히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다. 나로서는 당장 수갑을 채우라는 호통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도.

“나는 지금부터 관련기관에 사안이 매우 특수하다는 양해를 구하러 갈 걸세. 자네들도 기탄없이 조사에 임해 외교부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장관은 외교부의 수장으로서 팔이 어느 쪽으로 굽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도 여부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범영 과장.”

“예, 장관님.”

“자네는 자네 팀원들과 긴밀하게 협의해서, 오늘중으로 프로젝트가 반드시 속개되어야 하는 이유를 수렴해 내게 직접 전달하게. 지금까지 나왔던 것들만 가지고는 VIP를 설득할 수 없어. 더 확실한 걸 가져오게나.”

“예.”

“기다리고 있겠네.”

장관의 표정이 사뭇 어두웠다. 나는 이 사태로 인해 좆된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포탈 프로젝트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어간 국책사업이었다. 게다가 현장에는 수많은 고위각료들과 국회의원이 배석해있었다.

만약 관리감독 소홀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포탈이 열려 국가 전체에 위험을 초래한 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장관 모가지만 날아가는 게 아니라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에신1과 회의실에 네 명의 인원이 모였다. 나와 정기호, 이범영 과장, 소미였다. 이범영 과장은 장관만큼이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 또한 프로젝트와 생사를 같이하는 인물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과장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관님께서 최대한 직권을 발휘해 수사권 발동을 막고 있으시지만, 저조차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아약님이 죽어야만 했던 겁니까? 여러분을 냉혹한 살인마로 보지 말아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확인했습니다만, 살인이 아니라 결투였습니다.”

정기호의 의견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소미는 면갑을 내린 뒤론 벙어리행세를 하는 중이었다. 결국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과장님, 혹시 에사인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여러 차례 말씀해주셨죠. 하지만 아직도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한 걸 장관님께서 이해하고 계실지도 의문입니다.”

“그럼 제가 남북관계에 빗대서 설명을 드리죠.”

“예? 어떻게 말입니까?”

“에사인은 쉽게 말해서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쯤 되는 존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축지법을 써서 강물도 건너고, 솔방울을 던져서 수류탄도 터뜨립니다. 이천만 백성이 장군님의 신통함을 믿고 따릅니다.”

“......계속하시지요.”

이범영 과장의 고개가 묘한 각도로 기울어졌다.

“이 김씨 부자에겐 숙원이 있습니다. 자유세계를 침략해 지배하는 거죠. 아약이라 알려진 자의 목적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포탈은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인 셈입니다.”

“예.”

“김씨 부자는 자신의 영역에선 신과 다름없지만, 영역을 벗어나면 한 사람의 고도비만 환자일 뿐이죠. 에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신을 벗어난 차원에서는 힘을 크게 쓰지 못합니다.”

“이해.......했습니다.”

이범영 과장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많은 걸 생략한 설명이었으나, 한국사람을 납득시키기엔 이만한 예가 없었다.

“잠시, 그럼 지금 침략용 땅굴이 외교부 청사와 연결됐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도로 막아버려야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의 힘만 가지고는 포탈을 닫을 수 없어요.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듣기만 하던 소미가 끼어들었다. 면갑을 벗지 않은 탓에 목소리가 날벌레처럼 앵앵거렸다.

“좋습니다. 방금 말씀해주신 비유를 장관님께 전달해보겠습니다. 아약님은 여러 건의 살인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설득이 불가능하진 않아 보입니다. 하면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어야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포탈 너머에 북한의 김부자와 맞먹는 세력들이 있다면, 처음부터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이젠 그런 논의를 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포탈이 열린 지금 저희에겐 선택권이 없으니까요. 나가서 싸우든가, 평화를 맺든가 해야 하는 거죠.”

“........알겠습니다. 저는 그럼 가서 장관님께 보고를 드릴 테니, 두 분은 불편하시더라도 당분간 건물 안에 머물러주시길 바랍니다. 숙식은 성심껏 제공을 해드리겠습니다.”

아직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확실하게 우리의 무죄에 배팅을 한 것 같다.

정부가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데에는 세계적인 스타를 살인죄로 기소해야한다는 부담도 한몫할 것이다. 소미가 입을 뻥긋하는 순간 몇천만에 달하는 팬들이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낱낱이 알아버리게 될 테니.

이러니 억울하면 출세부터 하라는 건가.

이범영 과장이 회의실을 나가자, 정기호가 내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약이 에사인이라고? 에사인 누구 말이냐?”

“다르마알.”

“......네 실력은 인정한다만, 네가 혼돈을 죽일 정도로 강하진 않다고 보는데.”

“죽이지 못했던 건 확실해. 죽였다고 생각했는데도 포탈은 열렸으니까.”

나는 마지막 순간 아약이 보였던 알 수 없던 웃음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그건 자포자기가 아니라, 일이 계획대로 되어간다는 의미의 웃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살해당하는 것마저 계획의 일부였을 수도.

그날 이후 나는 열흘 동안 외교부청사 안에 갇혀있었다. 열하루째 되는 날 이범영 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외교부장관이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아약이 불순분자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나는 공을 인정받아 경호팀 부책임자로 보직이동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소미는 나보다 닷새 전에 외교부를 빠져나갔다. 앨범 준비를 하러 간다는 말 한 마디에 굳건한 외교부 정문이 속수무책으로 함락되었다.

반갑지 않은 소식도 하나 있는데, 드디어 우리 과도 감시와 견제를 받게 되었다. 새로 협업하게 된 부서는 국방부였다.

뚜벅뚜벅,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초로의 남자가 강인한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이범영 과장은 그의 옆에 서니 난쟁이처럼 보였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대령 박문식.

그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매뉴얼 그 자체였다. 각진 걸음걸이와 빈틈없이 다려진 군복, 농담이라고는 모를 것만 같은 메마른 입술. 내 군생활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모 행정관도 그의 앞에선 한 수 접어줘야할 듯했다.

“반갑습니다, 대령님. 경호팀 부책임자인 박봉팔입니다.”

“말해두지만 나는 자네들이 주장하는 마법이라는 걸 믿지 않아. 적당히 비위만 맞춰주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예산을 날로 먹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말게.”

그는 내가 내민 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말했다. 상당한 적대감이 느껴지는 어투였다. 국방부는 단단히 작심하고 앞뒤 꽉 막힌 인간을 감시역으로 선정한 듯했다.

“그리고 자네.”

그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경호팀 부책임자라고? 그런 약해빠진 몰골로 경호가 가당키나 한가? 내세울만한 무술 단증은 있나?”

“없습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범영 과장이 옆에서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사실은 사실이다. 오데르는 단증 같은 건 안 키우거든.

“한심하군.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일인데 어떻게 돈이면 돈, 자리면 자리,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을 수가 있나? 내 장관님께 따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제부턴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우리와 얘길 해보고 진행하게.”

“그러겠습니다.”

괜찮은 사람 같았다.

나도 세금 내는 입장이다. 세금 아깝다는 공무원 말이 어찌 고까울쏘냐.

“대령님, 장관님께서 지시하신 작전 말씀입니다만.”

옆에서 이범영 과장이 끼어들었다.

“저희 외교부가 요구하는 특전대원의 숫자는 20명입니다. 필요한 물자는 기재부와 저희가 협의해서 조달하겠지만, 세부 작전계획은 여기 계신 두 분과 의논하여 수립하셔야합니다.”

“의논이라고? 민간인과 작전을 의논하라니, 그게 무슨 망발인가?”

“두 분은 민간인이 아닙니다. 우선 정기호님은....”

“됐네, 그건 자네들이 나설 영역이 아니야!”

대령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그는 그가 어디에서 작전을 펼치게 될지 언질도 받지 않고 온 것 같았다. 아니면 듣긴 했으나 그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도 못하고 있다던가.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포탈로 진입했다간 정말로 참사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마법의 존재 정도는 일깨워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잠시.”

나는 슬며시 다가가 그의 그림자를 지그시 밟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코앞까지 다가온 나를 노려다보았다. 그가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건 불과 몇 초 후의 일이었다.

“.......”

그의 안색이 점점 벌겋게 물들어갔다. 종국에는 벌겋다 못해 말린 고추처럼 시들시들해졌다. 지금 그는 팔다리를 움직이는 건 고사하고 눈꺼풀조차 마음대로 닫을 수 없는 상태였다. 오직 그의 동공만이 경악으로 인해 점점 확장되고 있었다.

이범영 과장은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깨닫고 좌불안석이었다. 나는 대령의 열린 눈을 들여다보며, 그가 오해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웃어주었다.

“마법도 민간인이 함부로 언급할 영역이 아닙니다, 대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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