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엇갈린 선택 (3)
“봉팔아, 내가 이렇게 부탁한다. 응?”
“알았으니 술이나 좀 처먹어.”
“야, 내 말 이해한 거 맞냐? 제대로 들은 거 맞냐고?”
“매직스타인가 뭔가하는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유정이한테 유료투표하라며, 내 돈으로.”
“유진이다, 유진. 보는 순간 딱 감이 올 거다. 거기서 제일 참하고 예쁜 애니까. 문자 이용료는 오늘 형님이 술 사는 걸로 퉁치면 된다.”
“으휴......”
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나뿐인 친구놈과 간만의 술자리건만, 이 놈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아이돌 오디션에 한 표 행사달라고 시위중이었다.
“근데 넌 무슨 깡으로 이 시국에 사표를 썼냐?”
“거 빨리도 물어본다.”
“부장이 아무 말 안하던?”
“아니, 그냥 꺼지라던데.”
“나가면 어디 갈 데는 있냐.”
“지금은 용역업체에서 알바나 뛰고 있다.”
언제까지나 백수라고 둘러댈 수는 없어서, 당분간은 알바를 한다고 말하고 다니기로 했다. 성가시게 캐물어볼 경우 아예 명함을 파고 다닐 작정이다.
“할만하냐?”
“편해.”
너무 편해서 탈이지. 부서에서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건 아약님 혼자뿐이니.
나는 술잔을 기울이다가 불현듯 소미 생각이 났다.
“야, 이상민.”
“왜.”
“혹시 투시즌이라는 그룹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있냐.”
“니가 웬일로 아이돌 얘기를 먼저 다 하네.”
“대답이나 해봐.”
“구체적으로 뭘 알고 싶은데?”
“소미라는 애에 관한 모든 것.”
“오호라, 역시 소미가 입덕요정이라니까.”
“입덕 뭐?”
“입덕요정. 너 같은 머글을 끌어들이는 얼굴마담이란 뜻이다.”
“머글은 또 뭐냐. 알아들을 수 있게 한국말로 좀 해다오.”
“흐음, 잠시 어떻게 널 이해시켜야하냐 고민을 해보자.”
상민이 눈을 반짝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놈은 정말이지 아이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이런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를 가고도 남았다.
“보통 그룹 내에서 제일 춤을 잘 추는 애를 메인댄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는 애를 메인보컬, 얼굴이 가장 받쳐주는 애를 비주얼이라고 부른다. 세부적으로는 더 복잡하지만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고.”
“그래.”
“소미는 투시즌의 비주얼 멤버다. 아무래도 너 같은 일반인들은 외모를 우선적으로 보다보니 신규 팬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소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
“마치 아이돌 팬은 외모를 안 본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아예 안 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아이돌이 어디까지나 가수라는 걸 잊지 마라. 대개 춤 잘 추는 애, 노래 잘 부르는 애 순으로 인기가 높다.”
“의외로구만.”
나는 맥 빠진 목소리로 호응했다. 어차피 내게 아이돌이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미는?”
“뭐, 대단하지. 춤이나 노래가 처진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그룹 내에서 상대평가인 거고, 다른 그룹에서는 메인댄서는 물론이고 메인보컬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거다. 특히 비주얼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재목이라는 평가다.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더 대단하다더라. 중학생 때부터 팬클럽을 몰고 다녔다는 얘기도 있고, 고등학생 땐 하루에 기획사 명함을 열두 장씩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그럴 거 같더라.”
나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앞에서 실물을 영접한 사람으로서 소문에 조금의 과장도 없다고 확신했다.
“추문은 있냐? 스캔들 같은 거.”
“많다.”
“많.......뭐라고?”
“확실하게 터진 건 없는데, 남자를 정기적으로 바꾼다느니 스폰을 받는다느니 하는 괴상한 소문이 끊이질 않아.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나서서 해명하는 것도 아니고, 소속사도 루머를 내버려두고만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지.”
“흐음.......”
께름칙한 이야기였다. 그런 순진무구한 얼굴로 남자를 후리고 다녔을 것 같진 않지만, 얼굴이란 말 그대로 거죽일 뿐이니까.
- 띠리리리리.
“뭐냐? 아싸 주제에 전화가 다 오고.”
“쉿.”
나는 휴대폰 발신인을 확인한 뒤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소미였다.
처음에는 화면에 뜬 이름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타이밍에 그녀가 연락했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나와 그녀는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사적으로 연락을 취한 적이 없었다.
“중요한 전화다.”
“알바놈이 중요한 전화는 무슨.”
“좀 닥쳐봐.”
나는 입술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예, 박봉팔입니다.
- 안녕하세요, 저 소미에요.
-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나요.
-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저 근처에 와있는데.
나는 상민을 흘쩍 쳐다보았다. 그는 휴대폰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눈치 챘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괜찮긴 한데 무슨 일이신지...
-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맞은편 건물 2층 카페에 자리 잡아뒀어요.
-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 때문이 아님은 확실했다. 잘나가는 현역 아이돌이 듣도 보도 못했던 일반인과 사적 만남을 추구할 리가.
그러나 일 때문이라면 더 문제가 아닌가?
프로젝트는 순항중이었다. 출근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팀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도무지 그녀가 날 따로 불러낼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상민아, 아무래도 일어나야겠다.”
“왜, 여자 때문이냐?”
“그래. 계산은 니가 해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투를 걸쳤다.
“누군데? 형님한테도 말 못할 사람이냐?”
“소미.”
“지랄하지 말고.”
“이만 간다.”
상민은 가게를 걸어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유진이한테 투표하는 거 잊지 마라!”
소미는 길을 걷다 만났으면 결코 알아볼 수 없는 차림이었다. 검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야구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카페 구석진 자리에 박혀있는 모습이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녀와 나만을 위한 자리였다.
“이렇게 뵙다니 별일이네요.”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놀라긴 했지만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남자끼리 술 마시는 것보단 낫죠.”
“혹시 같이 계시던 분께 저를 만나러 간다고 말씀하셨나요?”
“아니요.”
“휴대폰을 제가 보이는 곳에 두실 수 있을까요?”
“.......”
그녀는 녹취를 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나는 연예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감사해요.”
“별말씀을.”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이야기는 저희 둘만의 비밀이었으면 좋겠어요.”
“믿으셔도 좋습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우호적인 미소를 지어주었다.
“전생에서 오데르의 신도이셨다고 하셨죠.”
“예.”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라고 덧붙이려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그러면 사람을 한 명 죽여주실 수 있나요?”
“.......누구를 말입니까?”
나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한심하게도 나는 전생에서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어놓고도, 그녀의 입에서 암살의뢰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약님이요. 웹소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