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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215화 (215/224)

215. 최상층 (1)

쿠구구구.

탱크는 빠르게 하늘 길로 향했다. 몬스터들도 뒤를 쫓아오기는 했지만 일단은 탱크가 더 빨랐다.

-천수야, 시간 없다.

-지금부터 속도 내야 돼.

-서둘러.

하늘 길의 입구가 코앞이었다.

고천수는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 줘야만 했다.

"형님들, 예, 일단 너무 감사하고요."

잠시 머리를 긁적인 고천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 스읍."

-ㅋㅋㅋㅋㅋ

-멍석 깔아 주면 못 하나.

-얼른 해. 늦기 전에.

고천수는 앞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늘 길로 올라가는 초입 구간만은 다행히 완만한 각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길의 각도가 수직에 가깝게 바뀌는 과정에서 포신이 바닥에 걸릴 가능성이 컸다.

고천수는 일단 포탑을 옆으로 돌렸다. 무게 중심이 균형을 잃을 수 있었지만, 현재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나서야, 고천수는 채팅창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형님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솔직히 서로 지지고 볶고 많은 일을 해 왔다.

각기 다른 존재이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이 순간 남은 것은 스트리머와 시청자의 관계뿐이었다.

당장은 그것으로 됐다.

고천수가 바라던 것은 어차피 그리 거창한 보답은 아니었다.

"제 시청자가 되어 주신 형님들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합니다."

스트리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애정이었다.

그걸 받았다.

그렇다면 고천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게임 체인저로서의 그 관심과 애정에 멋들어지게 응답하는 것뿐이었다.

쿠우!

경사를 올라가는 탱크의 속력이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들 꽉 잡아!"

고천수는 게임 패드를 꽉 쥐었다.

효력, 즉시 발동.

수십 톤의 탱크가 로켓 엔진을 단 것처럼 중력을 찢어발기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위이이잉.

탱크가 수직에 가깝게 올라서자 고천수는 포탑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이제부터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이 상태를 버텨야 했다.

"끄으으윽!"

"형!"

"천수 님, 조심하세요!"

화면에 나타난 디텍터의 줄기를 보며 일행들이 외쳤다. 고천수는 탱크를 움직여 그 가시넝쿨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다.

콰직!

하지만 일부가 탱크에 닿으면서 속력이 살짝 줄어들었다. 고천수는 순간 숨을 삼키면서도 게임 패드를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아직!’

아직 괜찮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깔려 있는 가시넝쿨들이었다.

틈이 있기는 하지만 가시넝쿨은 제법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일정한 속력을 유지하면 디텍터가 이 탱크를 공격할 일은 없겠지만, 문제는 가시넝쿨 그 자체였다.

무한궤도에 넝쿨이 엉켜 버리면 탱크가 제 속력을 못 내고 추락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치명적이었다.

‘할 수 있다.’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집중력을 발휘하면 이 고난 또한 이겨낼 수 있었다.

덜컥.

그렇게 또 하나의 디텍터를 비켜 가려다가 넝쿨을 일부 밟았다.

아니, 엉켰다.

탱크의 속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시발!"

도로에 달라붙는 흡착 기능에까지 경고 표시등이 들어왔다. 고천수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장서연 씨! 무한궤도 우측! 넝쿨이 끼었습니다!"

"뭐?"

장서연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해치를 열고 나갔다.

그리고 외골격을 붙잡고 삐걱거리는 무한궤도 근처로 향했다.

끼기기기긱!

무한궤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엉킨 넝쿨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디텍터의 줄기는 그만큼이나 질겼다. 장서연은 들고 있던 총을 그쪽으로 겨눴다.

무한궤도가 부서질 수도 있었지만, 탱크는 이미 곧바로 도로에서 떨어질 것처럼 휘청대고 있었다.

어떻게든 제거해야만 했다.

탕! 타다다!

장서연은 몸을 겨우 지탱하며 끈질기게 붙어 있는 가시넝쿨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위이이이잉!

마치 신경 자극을 받은 생물처럼 꿈틀거린 가시넝쿨이 곧장 떨어져 나갔다. 무한궤도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천수! 해결했……."

다시 해치 위로 돌아와 고천수에게 상황을 알리던 장서연이 순간 휘청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크윽!"

고천수는 크게 흔들리는 탱크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문제가 생긴 건 다름이 아니었다.

다른 가시넝쿨들이 무한궤도에 끼어 버린 것이었다.

"제, 기랄!"

도로에 깔려 있던 디텍터들이 예상보다 너무 많았다.

아무리 피해내려고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던 양이었다.

"야, 양민철!"

총까지 떨어뜨리고 해치에 매달려 소리치는 장서연을 구하기 위해 양민철이 포탑 위로 올라갔다.

끼기기기기.

극적으로 양민철이 장서연을 붙잡아 안으로 들였지만 탱크는 이미 추진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무한궤도가 제 기능을 하지 않자 탱크가 도로에 달라붙는 흡착력도 점차 약화됐다.

"형님들, 이거 너무 하드하잖아요!"

탱크가 급격히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고천수는 크게 소리쳤다. 흡착 기능만은 무한궤도와 상관없이 달아 줬어야 했다. 이래서는 탱크로 이곳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77, 71, 67…….

미션 효력으로 인해 탱크가 계속 전진하려고 해도 무한궤도의 문제 때문에 실제 속력은 떨어졌다. 현재 효력이 모든 조건을 무마시킬 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며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안 돼.’

속력이 떨어지면 탱크는 디텍터의 먹잇감이 된다. 고천수는 화면으로 보이는 남은 거리를 확인했다.

덜컥.

그리고 게임 패드를 빼서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쿵쿵쿵!

탱크 뒤에서는 사이클롭스가 길을 기어오르며 이 탱크를 쫓고 있었다.

고천수는 사이클롭스를 겨냥하고 다시 조종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쿵쿵쿵쿵쿵!

조종받기 시작한 사이클롭스는 빠르게 길을 기어올랐다.

가까운 거리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천수는 탱크 전면으로 디텍터의 가시넝쿨들이 더욱 심하게 널려 있는 것을 보고 급하게 사이클롭스를 조작했다.

쿵!

서둘러서 내민 사이클롭스의 손이 탱크의 후면을 스쳤다.

"앗!"

"크읏!"

"아!"

갑작스러운 충돌에 일행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더 놀란 건 고천수였다. 마음이 급했기에 너무 조작이 빨랐다.

사이클롭스는 탱크를 붙잡지 못하고 균형을 잃은 채 미끄러져 내려갔다.

"망할!"

고천수는 다시 해치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급하게 게임 패드를 원래 자리에 끼어 넣었다.

탱크 통제권이 돌아왔다.

고천수는 전면에 나타난 디텍터의 넝쿨들을 피하기 위해 탱크의 방향을 급하게 바꿔댔다.

끼이! 끼이이이!

무한궤도가 한계에 다다랐다. 탱크의 속력은 결국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60, 50, 40…….

고천수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실패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끝날 리는 없었다.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한 시청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쿠구구구구!

탱크의 뒤에서 거대한 울림이 들려왔다.

카메라를 전환해서 띄운 탱크의 후면에서는, 미끄러졌던 사이클롭스가 다시 미친 듯이 길을 붙잡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쿵!

탱크가 동력을 잃고 디텍터의 가시넝쿨들에게 붙잡히려던 그때, 사이클롭스가 먼저 탱크를 손에 넣었다.

쿠구구!

사이클롭스는 탱크를 붙잡은 팔을 안쪽으로 굽혔다. 수많은 가시넝쿨이 탱크를 노리고 줄기를 뻗었다.

"고천수."

거대한 사이클롭스의 입에서 익숙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너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겠다."

사이클롭스의 눈은 고천수를 직접 바라보듯 탱크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천수도 그 눈을 마주하듯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 사이클롭스는 움츠렸던 몸을 펴며 높게 손을 뻗었다.

그렇게 한도초과가 내던진 탱크는 디텍터들 위로, 길에 맞붙지도 않은 채 위로 쏘아졌다.

화면은 다시 앞을 비췄다. 거기에는 조각 난 하늘의 구멍이 있었다.

-닿을 수 있을까?

-조금만.

-조금만 더!

쨍그랑!

닿았다.

탱크는 금이 간 하늘을 더 부서뜨리며 구멍을 통과했다.

콰가가각!

하늘 너머로 올라선 탱크가 검은 지면을 밟았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다시 게임 패드를 손에 쥐었다.

구멍을 통과할 때의 충격 때문인지 지면이 무너지고 있었다.

고천수는 다시 탱크를 몰려고 했지만, 이미 탱크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고천수는 게임 패드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밖으로 나가! 어서!"

그 외침을 듣고 일행들은 서둘러 탱크를 빠져나갔다.

방찬혁은 그대로 버려질 뻔했지만, 양민철이 데리고 나와 주었기에 그대로 함께 검은 지면을 밟고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계속해서 무너진 지면에 삼켜져 탱크도 저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일행들은 그저 균열을 피해 달아났다.

"저쪽!"

고천수는 시인성을 확보해 주는 채팅창으로 시선을 향해 무언가 경계가 있는 쪽을 확인했다.

그렇게 일행들과 함께 경계를 통과했을 때였다.

균열이 그곳에서 끝났다.

지면은 딱 그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만 무너졌다. 더 이상 달릴 힘이 없어 넘어져 버렸던 일행들은 그 광경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형!"

하지만 문제가 끝난 건 아니었다.

고천수는 양민철의 외침을 듣고 달려갔다.

그리고 경계의 끝에 선 양민철이 방찬혁을 매달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아니, 정확히는 경계에 들지 못해 추락한 방찬혁이 양민철에게 억지로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이로 양민철의 소매를 문 채로 말이다.

"으, 으아아아!"

결국 양민철도 딸려 내려갔다.

고천수는 몸을 내던져, 떨어지는 양민철의 팔을 붙잡았다.

타악!

무너지지 않은 경계선의 땅에 몸을 걸친 고천수는 양민철을 끌어올리기 위해 힘을 주며 말했다.

"제나!"

이대로 끌어올려 둘을 구할 필요는 없었다.

고천수의 외침에 제나가 서둘러 곁으로 다가왔다.

"천수 님!"

"네가 끝내라!"

고천수는 악을 쓰는 표정으로 양민철에게 달라 붙어 있는 방찬혁을 가리켰다.

"……."

방찬혁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제나를 매서운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제나는 그런 그를 보며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찬혁."

고천수는 제나 대신 방찬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이 위로 올라서고 싶나?"

어떻게 해서든 이곳으로 올라오고 싶다는 방찬혁의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런 방찬혁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덤덤히 사실을 알려 주었다.

"네가 여기로 올라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방찬혁 또한 희생양이었다.

자신은 세계가 개변되기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조차 설정에 의한 것일 뿐이었다.

선택받은 건 고천수였다.

그리고 그건 복잡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넌 주인공이 아니야."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나한테 맡겨."

방찬혁은 어디까지 알고 있던 것일까.

어쩌면 이곳에 올라서면 소원을 빌 수 있다 정도까지는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주인공에게는 페이스 메이커가 필요했다.

방찬혁은 그런 존재였다. 설정을 알고만 있을 뿐, 그것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억울해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분노에 차 있는 방찬혁의 얼굴을 보며 고천수는 확신했다.

이 녀석은 그저 마지막 기회를 노려 고천수가 갖게 될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지 못한 것에 화가 나 있을 뿐이었다.

파삭.

고천수는 경계선에 붙어 있던 지면 조각을 한 손에 쥐었다.

"미리 돌아가 있어."

그렇게 고천수는 조각을 들어올렸다.

슥.

하지만 던질 필요는 없었다.

방찬혁이 턱에서 힘을 뺐기 때문이었다.

"……나였을 텐데."

추락.

한 마디를 남긴 방찬혁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자."

불어 닥치는 바람을 맞으며 고천수는 양민철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무너진 곳에서 시선을 돌려, 경계 안쪽의 저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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