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214화 (214/224)

214. 시청자들은 그를 사랑한다.

시청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에게 기관총을 연사하는 고천수의 앞에 보급함이 하나 안착했다.

[띠링! 빛나는게임패드 님이 520젠을 후원! - 갖고 놀아버려.]

덜컥.

고천수는 보급함 안에서 게임패드 하나를 발견했다.

곧장 게임패드를 들어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표적 설정 완료.

화면에 나타난 십자 표시가 사이클롭스 쪽으로 움직이더니 자동으로 설정이 완료됐다.

그러자 화면에 조작해 보라는 문구가 이어서 떠올랐다.

고천수는 총열이 뜨거워진 기관총을 내려놓고 게임패드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크으으으으으!

그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온 사이클롭스가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일행들이 놀라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고천수는 개의치 않았다.

고천수는 시청자들과의 연계를 믿기로 했다.

후우우우웅!

몽둥이가 떨어져 내렸다.

공기가 찢어지듯 갈라지며 몽둥이는 곧장 고천수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멈칫.

아니, 떨어지기 직전에 멈춰 버렸다.

"……몽둥이는 여기다 휘두르면 안 되지."

고천수가 게임패드의 방향키를 움직이자 사이클롭스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래, 이쪽."

후우우우웅!

사이클롭스는 다시 몽둥이를 빠르게 휘둘렀다. 또 한 번 공기를 찢고 움직인 몽둥이가 몬스터 무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쿠아아아아앙!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쿵! 쿵!

사이클롭스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작은 몬스터들을 짓밟고 다니기 시작했다.

"형님들, 지금 보급함에서 나온 것들, 양도 가능합니까?"

-그렇다만?

"그럼……."

고천수는 사이클롭스를 움직여 잡기 버튼으로 흑구를 들쳐 메게 했다.

그러고는 몬스터들 사이를 가로질러 일행들을 향해 달려갔다.

"장서연 씨!!"

"어?"

"받으세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보며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장서연에게, 고천수는 기관총을 건네주었다.

"그걸로 저랑 다른 인원 엄호하세요! 나머지는 잠시 기다려!"

후우웅!

고천수의 손가락질을 따라 어느새 작아진 흑구를 비교적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다시 몽둥이를 휘두르며 뛰쳐나갔다.

쾅! 콰앙! 콰아앙!

몬스터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지만 고천수가 사이클롭스를 다루는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게임패드는 일전에도 써 본 적이 있는 익숙한 물건이었다.

이걸로 뭔가를 조정해 본 경험은 차고 넘쳤다. 실전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다행히 사이클롭스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놈이었다.

거대한 육체를 가지고도 게임 캐릭터처럼 빠르게 반응하는 사이클롭스를, 고천수의 실력으로 제대로 다뤄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타앗!

틈이 보이자 고천수는 곧바로 다른 보급함으로 달려나갔다.

[띠링! 니목에혓바닥 님이 472젠을 후원! - 낼름!]

보급함을 열어젖히자 거기에는 방패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는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바로 옆에 다가온 몬스터 한 마리가 팔을 휘두를 때 방패를 가져다대자, 곧장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낼름.

방패에서 튀어나온 혓바닥 하나가 팔을 휘두른 몬스터를 감싸 잡았다. 그러고는 뱀이 똬리를 트듯 꽉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콰드드득.

몬스터는 그대로 짓이겨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낼름, 낼름.

가까이 다가오는 몬스터가 생길 때마다 방패는 혓바닥을 내밀어 몬스터들을 하나씩 박살내 버렸다.

"민철아!"

고천수는 뒤돌아 달려가 방패를 양민철에게 건네주었다.

"들고 있어!"

"예? 자, 잠깐!"

제법 징그러운 방패라고 생각했는지 양민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곧 방패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방패는 들고 있는 이를 적대하는 몬스터들을 계속해서 붙잡아 캔처럼 구겨 버렸다. 들고 있지 않으면 구겨지는 것은 바로 양민철이 될 터였다.

후우웅!

사이클롭스의 몽둥이질을 계속하며 고천수는 다른 보급함을 찾았다.

"온리베어!"

고천수의 외침에 온리베어가 성하지 못한 몸을 끌고 다가왔다.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해! 찾을 수 있겠어?"

그러자 온리베어는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쿠우.

온리베어는 뭔가를 발견한 듯 뛰어갔다. 고천수는 그런 온리베어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이건……."

거기에는 엄청난 크기의 보급함이 있었다.

거의 컨테이너 박스 몇 개를 이어 붙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건?

-그거네.

-오케이.

시청자들 또한 그 안에 든 게 무엇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고천수, 여길 빠져나갈 준비는 됐지?

됐다마다.

안 됐다고 해도 고천수는 이 거지 같은 곳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

[띠링! 불쌍한거못봄 님이 302젠을 후원! - 화끈하게.]

[띠링! 비렁뱅이 님이 570젠을 후원! - 빌어먹어서라도 간다.]

[띠링! 후회남 님이 610젠을 후원! - 후회는 없는 거다.]

어디선가 한 번 봤던 닉네임들이었다. 고천수는 몰아치는 후원에 가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거대한 보급함을 열어젖혔다.

탱크.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 아닌 상상치도 못했던 이동 수단이었다.

"……와우."

-뭐임. 반응 이게 다임?

-ㅋㅋㅋㅋㅋㅋ

-기깔나지?

너무나도 멋진 자태를 가진 차량이었지만 여기서 감상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바로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쪽이야! 다들 이쪽으로 와!"

고천수의 손짓을 본 일행들이 바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흑구는 제나가 맡아서 들쳐 업은 채였다.

"형님들."

그들 중 아직도 탑의 정상으로 향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뛰어오고 있는 방찬혁을 보며 고천수가 물었다.

"저 녀석 데리고 가야 합니까?"

-글쎄.

-우리가 말로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어서.

-너의 결정에 따라야 해.

"아직!"

고천수의 눈빛을 감지한 건지, 방찬혁이 멀리서 소리쳤다.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

데려가기 싫어도 꼭 데려가야 되는 인물이 존재하는 건 여러 게임에서도 꽤 흔하게 나오는 설정이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몰아쉬며, 작아진 온리베어와 함께 먼저 탱크에 올라탔다.

『패드를 장착해 주십시오.』

안쪽의 전면부에 패드를 끼워 넣는 부분이 있었다. 이걸 끼워 넣는 순간 사이클롭스의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빨리 타!"

고천수는 다시 해치 바깥으로 나가 소리쳤다.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그리 많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일행들은 차례차례 탱크로 올라탔다.

남은 건 방찬혁뿐이었다.

"아주 그냥 가지가지 하네."

양팔이 박살나서 탱크에 기어오르지 못하는 방찬혁을 데리고 고천수는 같이 탱크 안에 입성했다.

"자, 다들 꽉 잡아."

고천수는 게임패드를 빈곳에다가 끼워 넣었다.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전차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게임패드 옆으로 새로운 버튼들이 올라오고 눈앞에는 커다란 화면이 나타났다.

고천수는 게임패드와 함께 솟아 나온 핸들을 쥐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 보자."

끼기기기긱!

홀로그램의 안내에 따라 조작을 시작하자 탱크의 무한궤도가 돌아갔다.

크으으으으으!

통제에서 벗어난 사이클롭스가 몽둥이를 허공에 휘두르며 탱크를 쫓기 시작했다. 고천수는 탱크의 시속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겁나게 많네……!"

화면을 통해서 본 전면에도, 수많은 몬스터가 진을 치고 있었다.

고천수는 곧장 포신을 움직였다.

"제나! 뒤에 있는 노란 버튼 누르고 있어!"

일반 탱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포탄을 장전해야 하는 일은 없었지만, 홀로그램의 안내에 따라 역할 분담은 해야 했다.

제나가 고천수의 말대로 노란 버튼을 누르자 있자 이내 핸들에 붙어 있는 버튼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다들 꽉 잡아!"

콰앙!

격발.

버튼을 누르자 탱크가 뒤흔들리며 포탄이 하나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발력이었다. 강력한 후폭풍까지 일어나는 광경을 화면으로 목격하며 고천수는 숨을 삼켰다.

‘아직이야.’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이클롭스의 발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포탄을 쏘는 동시에, 활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쾅! 콰앙!

포탄 연사.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속도로 포탄을 쏘아내며 고천수는 주저 없이 탱크를 몰았다.

"저쪽이다."

방찬혁이 길을 안내하듯 손을 뻗었다.

고천수는 그렇게 화면을 확인했다가 눈을 크게 떴다.

"저건……."

해가 떠 있는 곳 아래에 커다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크기는 이 먼 장소에서 봐도 대략 왕복 10차선 크기는 되어 보였다.

"뭐야."

문제는 그 길이 하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경사를 가지고.

-다 왔네.

-저기로 올라가면 돼.

-좀만 더 힘내.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높은 경사를 올라갈 수 있는 탱크라고 해도, 거의 수직에 가깝게 솟아 있는 길을 올라갈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

하지만 시청자들이 이유 없이 고천수를 사지로 몰지도 않을 터.

계기판의 기능들을 살펴보던 고천수는 ‘흡착’이라고 표시된 버튼을 찾아냈다.

"형님들, 이겁니까?"

-잘 찾네.

-어떻게 올라가냐고 따질 줄 알았더만. ㅋㅋㅋ

-이제 우리를 좀 믿나 보네?

이 탱크는 엄청난 젠을 투자해 얻은 아이템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기능이었지만, 고천수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주는 탱크네요."

길까지 찾았겠다, 이제는 달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고천수가 모는 탱크는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뚫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

하늘로 나 있는 길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길이 그렇게 가까워질수록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하늘 길에 무언가 식물들이 자라나 있는 것이 보였다.

화면을 확대해 본 고천수는 그게 무엇인지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콰앙!

그때, 뒤까지 쫓아온 사이클롭스가 몽둥이를 휘둘러 탱크를 스쳤다.

커다란 충격에 일행들은 균형을 잃은 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천수 님……!"

"난 괜찮아!"

겨우 조정간을 놓치지 않았다. 고천수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제나! 다시 장전 부탁해!"

고천수는 포탑을 돌렸다. 탑승하고 있는 공간도 함께 돌아가기에, 안에 타고 있는 이들 입장에서는 탱크가 후진을 하는 것과 다름없이 됐다.

"고천수!"

"괜찮습니다!"

장서연의 우려 섞인 외침을 들으며 고천수는 포신을 뒤따라오는 사이클롭스에게 맞췄다.

"그만 좀 우리 떨어지자, 어?"

몬스터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저런 놈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끼기기기.

포신은 사이클롭스의 다리를 향했다.

콰앙!

그 즉시 발사된 포탄.

날아간 포탄은 사이클롭스의 무릎에 직격했다.

크으으으으!

사이클롭스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그런 사이클롭스 밑에 깔렸다.

위이잉!

다시 포탑을 전면으로 돌린 고천수는 화면에 떠 있는 하늘 길을 또 확인하고 숨을 삼켰다.

‘제기랄.’

사이클롭스를 떼어내기는 했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고천수는 하늘 길에 붙어 있는 가시넝쿨 같은 것들을 확인했다.

디텍터.

속도가 느린 것을 붙잡아 분쇄해 버리는 식물형 몬스터였다.

빠져나가려면 저 수직에 가까운 길을 빠른 속도로 통과해야만 했다.

-천수야, 걱정 마라.

-우리가 그 정도 대비도 안 했겠냐.

-ㅋㅋㅋㅋㅋ 흑역사 만들 준비나 해라.

[띠링! 한도초과 님 외 49명이 연합 미션을 설정하였습니다.]

[연합 미션 - 시청자들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말하기.]

[연합 보상 - 탑승하고 있는 개체를 5분 동안 시속 100km까지 끌어올리는 부스터. 미션 완료 시 즉시 발동.]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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