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9%로 100% (3)
-여태까지 잘 버텼다.
-솔직히 너무 빨리 등반해서 죽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타이밍 좋게 다시 만났다면 인연이 있는 거겠지.
채팅창 활성화.
-근데 지금 좀 위험하지 않나?
-위험하지.
-하지만 괜찮아.
읽기 버거울 정도로 쏟아지는 채팅들.
고천수는 시청자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한도초과] : 우리 보고 싶었지?
보고 싶었느냐고?
헛웃음이 나오는 질문이었다.
과거, 고천수는 시청자가 단 한 명밖에 없는 방송을 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지 않고 있는 것은 익숙하다 못해 일상이었다.
하지만 스트리머라면 누구나 많은 시청자를 원하기 마련이었다.
그게 이런 얼토당토않은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방송이라도, 고천수는 처음 가져보는 많은 시청자에게 고양돼 결국 탑까지 오게 된 터였다.
그런데 그 시청자들이 일순간 사라졌다.
누가 보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고천수는 마냥 플레이어로서의 본분을 지키려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고천수는 방송을 잊지 않았다.
방송이라고 생각해야만 두려움이 없어지던 것도 있었다.
그러니, 보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뻔한 걸 물어보는 게 취미십니까?"
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들 어디 갔다가 오신 겁니까! 비명횡사하기 직전인데……!"
다시 나타난다면 솔직히 짜증만 날 거라 생각했다. 여태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그런 설문 결과만 내던져 준 채 뒤로 빠지기로 작정한 거라면 화도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천수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나가고 있었다.
"놀리려고 지금 나타난 겁니까?"
물론 시청자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단순 플레이어가 아닌 스트리머였다.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걸 시청자들도 모를 리는 없었을 터.
-그럴 리가.
-말했잖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뭘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까.
고천수는 주위에서 들리는 수많은 괴성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지면에 직격한 수많은 대기 유성에서 몰려나온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었다.
이젠 아예 해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흑구는 몬스터들에게 거의 뒤덮여 있었다. 이대로 두면 죽을 터였다.
-있잖냐, 고천수.
가만히만 있지 말고 어떻게든 해 달라고 하려는 찰나, 시청자들이 고천수에게 물었다.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지영배와 같이 먼저 게임을 진행했다가 실패한 이들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것일까.
"형님들 하기 나름이죠."
고천수는 명확하게 대답했다.
"제가 어떤 놈인지는, 이미 다 보셨을 테니까."
스트리머로서 최선을 다했다.
계속 방송을 이어나가게 할지는, 이제 시청자들의 몫이었다.
-그럼 됐어.
-우리도 확실히 결정했다.
-설문 결과지를 봐.
고천수는 품에 있던 종이를 꺼내 확인했다.
그래프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적힌 내용에는 변화가 있었다.
9%.
고천수를 구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던 문장이, 고천수를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별것 아닌 차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에게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후웅.
갑자기 들린 소리에 고천수는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대기 유성들만이 가득했던 하늘이었건만, 어느새 낙하산을 매단 초록색 상자들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보급함이었다.
온리베어가 손을 치켜들어 그 상자들을 가리키는 것을 보며 고천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보급함!"
보급함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층은 다중 차원하고 연결돼 있어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창고도 이쪽에 개방할 수 있지. 조건 때문에 채팅을 꺼 놔야 했지만.
-물론 그렇다고 게임의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
시청자들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허락된 선에서 보급함을 보내는 거야.
-아무리 우리가 보낸 보급함이라고 하더라도, 네가 그냥 열지는 못해.
-그건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보급함을 열려면 젠이 필요했다.
그건 이 게임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룰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이 필요했지.
보급함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가라, 고천수.
터엉!
지척에 보급함이 하나 떨어져 내렸다.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는 지점이었다.
"형?"
상식적으로 행동한다면 절대 그곳으로 가지는 않을 터였다. 몬스터가 없는 곳으로 가야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그곳으로 뛰쳐나가는 고천수를 보며 양민철이 소리쳤다.
"형!"
고천수는 외침을 무시하고 보급함을 향해 달려갔다.
보급함에 있는 것인지 미리부터 알 수 없는 이상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고천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살아남는 건 이제 평범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다.
고천수는 모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지키기로 결심한 9%의 시청자들을 100%로 믿는 것이었다.
턱!
보급함을 잡았다. 덮개에 박혀 있는 건 공격 표시.
"120젠……!"
하지만 상자를 열기 위해 필요한 젠은 무려 120에 달했다.
고천수는 손에 힘을 주었다. 한 푼도 없는 그의 손으로는 이 보급함을 열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된 걸까.
하지만 고천수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120젠을 후원했습니다! - 놀아 보자.]
역대급 후원의 시작.
120젠을 후원받은 고천수의 손이 보급함을 그대로 열어젖혔다.
"이거, 진짜……."
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후원액이었다. 시청자들이 준비했다는 게 이런 것이었을까.
크아아아!
근처에서 들려오는 괴성을 들으며 고천수는 보급함 안에 있던 것을 들어올렸다.
"진짜냐, 이거."
1m 정도 되는 길이의 무반동포였다.
자동으로 작은 화면이 펼쳐지며 락온까지 되는 첨단 무반동포에 고천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크아아아!
끼게게게!
끄우우우우!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더 이상 지체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고천수는 격발하라는 알림을 뱉는 화면을 보며, 무반동포의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반동포에서 포탄이 쏘아져 나갔다.
그 포탄은 고천수 쪽으로 달려오던 몬스터들에게로 직행했다.
그리고 바로 터지지는 않고 몇 마리의 몬스터를 그대로 관통해 찢어버린 뒤에야 허공에서 터지며 폭음을 일으켰다.
쿠아아아아아아아!
몬스터 수십 마리가 한 번에 폭발하는 가운데, 먼 곳까지 퍼지는 흙먼지를 맞으며 고천수는 놀라 주춤거렸다.
120젠짜리 무반동포는 고천수가 버거워했던 도마뱀 몬스터조차 그냥 찢어 버렸다.
"워, 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고천수가 눈을 크게 뜨자 채팅창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ㅋㅋㅋㅋㅋㅋ
-그래, 이런 표정을 원했지.
-이거 보려고 쏟아 붓는 거야.
고천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무반동포를 살펴보았다.
화면에 나와 있는 장전된 포탄의 숫자는 넷.
한 발을 쏘고 남아 있는 듯했다.
"……좋아."
포탄이 미리 네 개나 더 장전되어 있다니,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지금 이곳은 뭐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었다.
고천수는 120젠짜리 무반동포를 흑구 근처로 돌렸다.
"이거면, 살릴 수 있다."
흑구가 괴로워하며 주변 몬스터들과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고천수는 그 근처로 무반동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앙!
포탄을 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몬스터가 또다시 수십 마리가 날아갔다.
쾅! 콰아앙!
고천수는 열이 달아서 나머지 포탄도 사용했다.
아끼고 있어 봤자 쓸모도 없었다. 고천수는 포탄을 흑구 근처로 모조리 날려 보냈다.
끼잉!
흑구도 포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충격에 날아간 흑구가 어딘가에 몸을 처박고 몸을 늘어뜨렸다.
-그렇게 아무데나 써도 돼?
살리려면 할 수 없었다. 고천수는 무반동포를 버리고 다른 보급함 쪽으로 달려갔다.
"형님들, 방금 그거 하나로 끝은 아니겠죠?"
무반동포 하나에 무려 120젠을 사용했다.
여기 오기 전까지 고천수가 받아서 사용하던 후원과는 금액대가 달랐다. 다음에도 그만한 젠을 줄지는 솔직히 미지수였다.
[띠링!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202젠을 후원했습니다. - 매니저 후원도 간다.]
하지만 고천수는 확신하고 있었다.
덜컥.
시청자들이 어디에서 젠을 가져왔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황금 기관총……!’
고천수는 원래 가지고 있던 소총은 버리고 보급함에서 나온 황금 기관총을 들어 올렸다. 여느 게임에서 볼 듯한 이 강화 무기는, 무려 수백 발의 탄띠도 함께 딸려서 장전돼 있었다.
"갑니다."
고천수는 바로 탄띠를 몸에 두르고 기관총을 든 채로 흑구를 향해 진격했다.
투다다! 투다다다다!
사용 방법은 고천수가 익히 알고 있는 기관총과 비슷했다. 무게도 비슷했다.
하지만 파괴력은 아니었다.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기관총에서 쏘아져 나오는 총알을 맞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이게……!’
고천수가 바라마지 않던 아이템의 모습이었다. 그대로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움직이자니, 더 이상 일행들의 우려 섞인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을 터였다.
보급함이 보이지 않는 그들로서는, 고천수가 갑자기 나타난 아이템을 들고 몬스터들과 격돌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던 것이다.
"흑구야!"
광견으로 있는 시간은 10분이었다. 기절하듯 누워 있는 흑구를 보면, 이미 그 시간은 다 한 게 틀림없었다.
"야, 흑구!"
위험하지만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일행들을 위해 희생을 감행해 준 흑구를 꼭 살려서 데려가고 싶었다.
쿠우우우우.
하지만 그건 단순한 고천수의 바람이었을까.
추락한 새로운 대기 유성을 뜯고 나온 10m 이상의 초거대 몬스터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고천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사이클롭스.
거대한 몽둥이를 든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녀석은, 지하에서 올라온 전설 속의 거인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었다.
주춤.
아무리 기관총을 갖고 있다 한들 상대할 수 있을까.
흑구를 구하기는커녕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할 정도의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안구로 사이클롭스는 고천수를 주시했다.
고천수는 기관총 하나만 들고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형!"
"천수 님!"
"얀마, 뭐 해!"
일행들이 고천수가 위험에 빠진 것을 직감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고천수는 사이클롭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움에 발이 굳은 것은 아니었다.
고천수는 그저 도망만 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뿐이었다.
후웅!
사이클롭스의 뒤로는 다른 대기 유성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듯 고천수의 주위로는 새로운 보급함들이 낙하산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형님들."
고천수는 이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봉급, 다 쏟아 부어 주실 거죠?"
시청자들은 자신만의 세계들을 가지고 있다. 젠은 그 세계에서 얻는 수익이었다. 그건 한도초과를 떠봐서 이미 확인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런 젠을 한 번에 몇 백 젠이나 지금 후원한다는 건 무슨 의미겠는가.
"지갑 두둑이 챙겨 오셨을 거라 믿습니다."
확실히 준비를 마치고 왔는지를 떠보는 고천수를 보며 시청자들이 웃음을 내뱉듯 말했다.
-그래, 오늘 우리가 얼마나 수금하고 왔는지, 보여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