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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웅.
어느새 들어선 적막 속, 하늘이 살짝 어두워진 가운데 승합차만 조용히 벌판을 가로질렀다.
"……."
"……."
"……."
고천수 일행은 창문 밖으로 주위만 둘러보며 침묵에 잠겼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폭풍전야처럼 모든 게 일촉즉발처럼 보이는 상태였다.
"이제 이 길로 쭉 가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방찬혁은 태연하게 앞을 쳐다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다른 방향으로 틀지만 않으면 어느 순간 출구가 보일 거다."
여태 차량의 방향을 잡아준 방찬혁은 이로서 안내를 종료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그를 밖으로 집어 던져도 이제 상관없다는 뜻이 될 수 있었지만, 방찬혁 또한 그점을 미리 염려한 것인지 즉각 말을 덧붙였다.
"출구를 통과할 때 내가 마지막으로 지시만 해 주면 위로 올라갈 수 있겠군."
방찬혁을 잡아던질까 말까 고민하던 고천수는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밖의 유성들을 올려다보았다.
‘이 방향으로 간다고 안전할까?’
유성이 곧 있으면 떨어져 내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정해져 있다고 안전하게 그곳으로 갈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고천수는 현재 젠도 없는 상태였다. 무슨 위기가 닥친다 해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쿠궁.
적막이 가득했던 하늘에서 순간 폭음이 울렸다.
일행들이 굳은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성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긴장하세요!"
고천수는 곧이어 일어날 일을 직감하며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콰아아아아!
공기가 진동했다. 차가 떨리기 시작하자 심하문이 운전대를 더 꽉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
"옵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심하문이 소리치자마자 근처로 유성 조각이 먼저 떨어져 내렸다.
쾅! 콰앙!
말이 조각이지 지금 떨어지고 있는 것은 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것들의 잔해였다. 반파된 빌딩, 조각난 섬들이 지면과 충돌하자 차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큭!"
일전에 봤던 것처럼 추락으로 인한 유성의 파괴력이 설정상 저감된다고 해도 충돌은 충돌이었다.
차가 뒤뚱거리자 일행들도 놀라며 주위의 고정물을 잡았다.
"천수 님!"
제나의 외침에 고천수가 다시 앞을 돌아봤을 때였다.
콰앙!
유성 본체가 차 앞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떨어지며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다.
"이런, 씨!"
자기도 모르게 고천수가 욕을 뱉는 순간, 차가 두둥실 떠올랐다.
콰우우우우!
엄청난 후폭풍.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진 승합차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꽉 잡으십쇼!"
그 와중에도 심하문은 운전자로서의 책임감을 발휘하며 이를 악물었다. 차가 떠오른 이상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곧, 내려설 겁니다……!"
회오리에 휘말리긴 했지만 아직 승합차는 회전하거나 뒤집히지 않았다. 승합차가 금방 다시 지면에 내려설 것임을 알아챈 심하문은 전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때를 기다렸다.
쿠웅!
충돌 지역에서 멀찍이 밀려난 승합차가 곧 땅으로 내려섰다.
심하문은 그 충격으로 차가 넘어지지 않게 핸들을 계속 좌우로 돌리면서 균형을 맞췄다.
심하문의 활약으로 차는 다시 자세를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안도의 숨을 쓸어내리며 밖을 바라보았다.
땅으로 떨어진 세계의 조각들에서 정체 모를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무섭네, 이거.’
다행히 달려가는 차를 쫓지는 못하는 몬스터들을 보며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하나 떨어졌을 뿐인데.’
하늘에 존재하는 대기 유성은 눈에 보이는 것만 수십 개였다.
죄다 출구로 향하는 길목에 늘어서 있는 만큼, 방금의 충격은 맛보기에 불과할 터였다.
화악.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 끝나고 정크 야드의 쓰레기 산들이 나타났다.
마치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듯한 쓰레기들에 놀란 심하문이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심하문의 실력 덕분에 차가 전복되지는 않았지만 쓰레기들 때문에 운전이 더 어려워졌다. 차는 쓰레기들을 피해 속도를 늦추며 길을 돌아갔다.
"또 옵니다!"
그 와중에 심하문이 다시 외쳤다.
콰아앙!
주변 쓰레기 산으로 유성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충격으로 쓰레기들이 이곳저곳으로 휘날리는 가운데, 또 다시 유성 본체가 코앞에 직격했다.
"……!"
이번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차가 곧바로 뒤집히면서 핸들을 놓친 심하문이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렸다. 일행들은 이곳저곳에 몸을 처박으며 신음을 터뜨렸다.
콰당탕!
후폭풍에 휘말렸다가 다시 지면으로 내려온 승합차가 지면에 충돌했다.
"큿!"
승합차가 몇 번이나 구르는 바람에 고천수도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구르는 승합차 안에서 세탁물처럼 굴려지고 나서야 고천수는 다시 신음을 뱉어낼 수 있었다.
"망할……."
타박상이라도 입었는지 온몸에 고통이 치달리는 것을 느끼며 고천수는 눈을 살짝 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차는 똑바로 멈춰 있었다. 뒤집힌 게 다시 원위치가 된 듯했다.
다만 더 이상 주행은 하고 있지 않았다. 고천수는 운전에 널브러져 있는 심하문을 바라봤다.
"괜찮으십니까?"
고천수는 심하문의 어깨를 건드려봤다가 탄식을 터뜨렸다.
힘없이 늘어진 심하문의 가슴에 커다란 쇠막대가 박혀 있었다. 즉사였다.
"시발……."
입술을 깨물며 고천수는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일행들은 이제 막 충격이 완화된 듯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천수야,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장서연이 이마를 짚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고천수는 심하문 일병의 안전벨트를 풀면서 말했다.
"충돌이 일어나면서 차가 굴렀어요. 운전자로 있던 심하문 일병이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더 이상 운전을 맡길 수는 없었다. 안타깝지만 고천수는 운전석 문을 열고 심하문을 바깥으로 버렸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심하문 일병."
고천수는 자신이 운전석에 앉은 뒤 다시 차를 조작했다.
우우웅.
하지만 앞으로 나가야 할 차가 요란한 엔진음만 낼 뿐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우우우웅…… 덜컥.
이상한 소리와 함께 차는 완전히 기능이 정지됐다. 고천수는 키를 다시 돌리고 시동을 걸려고 해 봤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반응이 없었다.
쾅!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친 고천수가 이를 까득거렸다.
"야, 방찬혁."
그 분노는 곧 옆에 있는 방찬혁에게 돌아갔다.
"길 안내 제대로 한다고 하지 않았냐?"
"……."
방찬혁도 상태가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쳐서 움직이기 힘든 몸을 천천히 돌려세우며 고천수를 바라봤다.
"제대로 한 거다."
"뭐?"
"길 안내는 제대로 했다."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린 방찬혁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진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난, 확실히, 안내했다."
"새끼가!"
고천수는 방찬혁의 멱살을 끌어 잡았다.
"했다고 하고 끝인 상황이 아니라고!"
고천수가 방찬혁에게 기대한 건 안전한 길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제법 당당하게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기에 당연히 대기 유성에 대한 대책도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만 예상이 완전하게 빗나간 것이었다.
"차가 퍼졌으니까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시간이 없으니까!"
대기 유성들이 떨어지면서 각 멸망 세계의 몬스터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이곳에 고립되면 목숨이 위험했다. 고천수는 빨리 안전한 길을 확보해야만 했다.
"걸어도, 이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방찬혁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차를 타든 아니든 이쪽으로 가기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수 님……!"
고천수가 화가 나서 방찬혁의 멱살을 더 세게 끌어 잡을 때였다.
정신을 차린 제나가 차창 밖을 보다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고천수도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정말로 몬스터들이 근처로 몰려오고 있었다. 대부분 모르는 몬스터였다.
"빨리! 빨리 다들 일어나!"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일행들이 주섬주섬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이라고 했음에도 이제 막 깨어난 터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너도, 내려."
딸깍.
고천수는 방찬혁의 안전벨트를 풀어 주고 문도 열어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두고 가고 싶지만 출구 쪽 마지막 길 안내를 위해 필요할 수 있었다.
고천수가 노려보자 방찬혁은 천천히 바깥으로 내렸다.
따라서 밖으로 나온 고천수는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이쪽으로 오고 있는 몬스터의 수는 적어도 수백은 되어 보였다.
그다지 빠른 놈들은 없는지 아직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문제는 정보였다.
처음에 만났던 페이크맨이 게임이 아닌 세계의 주민일 때부터 눈치채고 있던 사항이지만, 유성으로 떨어지는 잔해들에는 아예 고천수가 모르는 멸망 세계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 세계들의 조각은 분명 게임의 것이 아닌, 지구처럼 종말의 시험을 받으며 무너지고 있는 것들의 산물일 터였다.
즉, 그쪽 산물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고천수가 대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정보가 부족해 함부로 어그로를 쓸 수 없었다. 만약 개체 하나하나가 크롤러처럼 강하다면, 어그로로 신체를 강화한다고 해도 위험한 건 고천수였다.
‘능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또 모르겠다만…….’
당장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게 문제였다.
"움직여!"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쓰레기 산이든 뭐든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들어간다! 거기서 다시 계획을 짜는 거야!"
몬스터 군단을 확인한 일행들도 당연히 그 의견에 동조했다.
다들 살기 위해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왈!
그 와중에 흑구가 고천수의 곁으로 다가와 한 번 짖어 보였다. 다른 일행들과 달리 흑구는 그다지 겁을 먹은 느낌이 아니었다.
"왜."
고천수는 짧게 물음을 던졌다.
"싸우기라도 하려고?"
흑구는 고천수를 보며 헥헥거리더니 옆에서 다가와 털을 비볐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보일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럴 시간 없어. 얼른 같이 움직여."
고천수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설문 결과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를 구할 의지.’
전심전력으로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하지만, 시청자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걸까.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새로운 후원 하나 없었다. 한도초과까지 거의 잠수에 가까운 상태를 보이는 것에 고천수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건데.’
응답 없는 시청자들 대신에 흑구가 계속 옆에 달라붙는 것을 보며 고천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심하문이 죽었다. 남은 인원이라고 해 봤자 이제 방찬혁과 제나, 초기 동료들일 뿐.
살기 위해서 데려온 사람들의 숫자가 이제 몇 되지 않았다.
꿀꺽.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고천수는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찾은 쓰레기 산의 구덩이가 있었다.
"다들 이쪽으로!"
고천수는 일행들을 불러 그곳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흑구는 고천수에게 달라붙으며 몬스터들을 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짜증과 불안으로 생각이 잠시 닫혀 있던 고천수는 뒤늦게야 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야, 너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