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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204화 (204/224)

204. 지독한 놈 (2)

"아, 제기랄."

오랜만에 보는 면상들을 보니 고천수는 정말이지 반가움이 앞섰다.

탕! 타앙!

그 반가움의 인사로 바로 방아쇠도 당겨 주었다. 주위의 일행들도 똑같이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

순식간에 주변이 총성으로 가득 찼다.

좀비들은 달려오다가 총에 맞고 이리저리 넘어지거나 굴러다녔다.

"으아아아아!"

대부분은 거리를 두고 처리할 수 있었지만, 한 마리가 심하문 일병에게 달라붙었다.

"떠, 떨어져!"

딸깍!

하지만 심하문 일병은 총은 총알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좀비가 달라붙은 상태에서 탄창을 갈 수는 없었기에, 심하문은 주춤대며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파악!

다른 일행들이 도와주기에도 사격을 할 만한 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장서연이 달려가 심하문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는 좀비의 뒷목을 바로 칼로 찍어 버렸다.

커, 커허.

순간 구멍이 뚫린 채로 휘청대는 좀비를 넘어뜨리며 칼을 빼낸 장서연이, 다시 칼을 휘둘러 바닥에 엎어진 좀비를 끝장내 버렸다.

"으아악!"

하지만 좀비에게 공격받은 건 심하문만이 아니었다.

"도, 도와……."

소지영 일병도 좀비에게 붙잡혀 주춤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흑구가 달려가 좀비의 옷자락을 물어서 던져 버렸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안심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미 수많은 좀비에게 총알을 먹였는데도 달려드는 좀비의 숫자는 줄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새끼가!’

방찬혁이 안에서 뭔가 문을 연 게 분명했다.

고천수는 달려오는 좀비들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대좀비 전용 스킬 사용을 위해 크게 샤우팅을 날렸다.

"이쪽이다아아아아!"

그러자 좀비들의 시선이 고천수에게 쏠렸다. 여태 다른 인원들을 향해 달리고 있던 놈들까지 전부 다.

어그로 37 - 09:01

먼저 달려들다가 총에 맞은 몇 마리 때문에 어그로는 이미 켜져 있었다.

거기에 갱신된 수치는 무려 37.

470%의 출력을 얻게 된 고천수가 어깨를 풀었다.

"한 판 붙자, 새끼들아."

크아아아…… 컥!

가장 앞서서 달려온 좀비가 고천수가 휘두른 총에 맞아 쓰러졌다. 고천수는 바로 그 좀비의 머리를 총검으로 찌르고, 다음으로 달려드는 좀비는 도끼를 꺼내 목을 쳐 버렸다.

칵!

크억!

캬학!

좀비들이 고천수가 연속해서 휘두른 도끼에 죄다 나가떨어졌다. 일행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들에게 향하는 좀비들에게 급하게 시선을 향했다.

"우, 우리도!"

정신을 차린 그들은 각기 좀비를 맡아 상대하기 시작했다.

다만 몰려드는 좀비의 숫자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상태로 총을 갈겨대 봤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밖에는 안 됐다.

그렇기에 다들 뒤로 밀리며 주춤대는 가운데, 종횡무진으로 도끼를 휘둘러대던 고천수가 외쳤다.

"뒤로 빠지세요! 방어선을 세워야 합니다!"

그의 의도를 알아챈 장서연이 제나와 함께 일행들을 천천히 뒤쪽에 있는 천장 없는 창고 건물 쪽으로 인도했다.

일행이 모두 안쪽으로 들어가자 장서연이 고천수에게 외쳤다.

"고천수!"

퍽! 퍼억!

좀비들의 머리를 깨고 있던 고천수는 뒤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일행들이 어느새 창고의 문을 닫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파악!

한 마리를 더 처치하고 나서 고천수는 창고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아직 창고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거대화된 흑구가 고천수를 물어 등에 태웠다.

온리베어는 그런 고천수를 꽉 붙잡았다. 흑구는 둘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창고 안에 들어갔다.

크아아아아!

그런 그들을 기어코 붙잡겠다는 달려드는 좀비들.

하지만 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쾅!

문이 닫혔다. 결합부가 채워지고 걸쇠가 걸렸다.

콰앙! 쾅쾅쾅!

두터운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고천수 일행은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다들, 무사합니까?"

자신의 몸부터 확인을 끝낸 고천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일행들도 자신들의 몸을 살피고는 말했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

다들 괜찮다며 자신의 상태를 전하는 가운데, 몸을 살피다가 묵묵히 고개를 떨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응?’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름표가 뜯겨 나간 이등병.

여태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던 그는 팔다리에 물린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철컥!

그 모습을 확인한 제나가 곧바로 총을 들었다.

"제나."

고천수는 제나를 말리며 이병을 살펴보았다.

"이런……."

상태가 심각했다.

물린 곳은 팔과 다리뿐이긴 했지만, 좀비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유동선도 좀비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전, 이제 끝입니까?"

여태 입을 다물고 있던 이병이 겨우 말을 뱉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강한 녀석은 아니었네.’

말도 안 하고 다니기에 강한 면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었다. 아니, 실제로 강한 면이 있었다고 해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죽음이 예정됐다.

이 상태에서 이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천수는 그게 고민일 뿐이었다.

"천수 님, 감염됐습니다."

제나는 고천수에게 물러나라는 듯 말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천수 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진정해."

고천수는 다시 한번 제나를 말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어차피 죽을 인원이라면, 굳이 지금 끝내 버릴 필요는 없었다.

‘아직 감염이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어.’

이제 막 물려서인지 아직은 좀비가 되어 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흑구를 불렀다.

"잠깐 도와줘 봐. 상황을 확인해야겠어."

고개를 끄덕인 흑구는 창고 벽에 제일 높은 곳을 향해 두 앞발을 대고 비스듬히 섰다.

고천수는 그런 흑구의 등을 타고 올라가 창고 바깥을 살펴보았다.

크아아아아.

카아아아.

크아아아.

좀비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문을 닫기 전 보았던 좀비들의 숫자보다 더 추가된 상태였다.

‘대략 이백은 넘으려나?’

엄청난 숫자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더 추가되는 숫자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좀비들이 창고 문 앞쪽에만 몰려 있는 것도.

‘직접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어그로 스킬을 이용해 다량의 좀비들을 상대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어그로 스킬은 10분마다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순간 어그로를 제대로 끌지 못하면 신체 능력을 상승시키지 못해 당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좀비는 떼로 덤비는 습성이 있어서 어그로 스킬을 사용하기에는 좋지만, 잘못 긁히기만 해도 감염된다는 사실 또한 치명적이었다.

결국 고천수는 유인책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끝날 거 알고 계실 겁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천수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이병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이병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죽게 될 테니까요. 뭐라도 하고 싶습니다."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고천수는 그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제가 바라는 내용은 간단합니다. 흑구가 밖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면, 최대한 멀리 도망친 뒤에 좀비를 유인해 주세요."

좀비는 어차피 페이크맨처럼 지능이 있는 몬스터도 아니었다.

적당하게 유인만 해도 따라가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후."

씁쓸하게 헛웃음을 뱉은 이병이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천수 님, 꼭 끝까지 도달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로써 계획은 완성됐다.

고천수는 어그로 스킬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쿨타임이 다 돌았을 때, 다시 흑구를 타고 올라가 정문 바로 위에서 좀비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야! 여기다!"

그러자 상당수의 좀비들이 당연하게도 고천수를 바라보며 포효하고 이빨을 드러냈다.

어그로 재발동. 이걸로 준비는 끝마쳤다.

고천수는 이병의 앞으로 돌아가 말했다.

"저희를 위해 해 주신 희생은 잊지 않겠습니다. 흑구야!"

고천수가 지시하자 흑구는 바로 이병의 옷자락을 물었다.

놀이기구를 탄 듯 이병의 몸이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흑구는 그런 그를 데리고 창고 정문과는 반대쪽에 있는 벽을 살짝 타고 올라가 고개를 내밀고 밖에 내려 주었다.

"……."

이병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사막이라 걷기 쉽지 않았지만 그는 필사적이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고천수는 이곳에 오는 동안 많은 것을 보여 줬다.

남들이 알 수 없는 지식들을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분명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를 도와 앞으로 남을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괴물이 되어 죽기만 하는 것보다는.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이병은 오래잖아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그 소리를 들었던 걸까, 창고 앞에 서 있던 한 좀비가 그를 멀찍한 곳에서 내다보았다.

크아아아아!

달려드는 놈을 보며 이병은 창고 문 앞쪽 몰려있는 좀비들이 자신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냅다 뛰어갔다.

감염이 진행되면서 비틀거렸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창고 앞 좀비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었다.

크아……!

크아아아아!

캬아악!

이병을 알아챈 좀비들이 순식간에 무리 지어 달려 나갔다.

모래 먼지가 미친 듯이 일어나는 가운데, 밖을 확인한 고천수는 창고 문을 열고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지금입니다!"

고천수는 일행들을 데리고 달려 나갔다.

목표는 방찬혁이 있는 건물의 잔해였다.

‘이 새끼부터 처리한다!’

방찬혁을 없애지 못하고 전진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는 고천수보다 자세하게 이 탑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또 무슨 수작을 벌일지 모르기에, 가능한 빨리 틈도 주지 말고 바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철컥!

남아 있는 탄환은 많지 않았다.

탄창 하나를 꽉 채운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방찬혁의 머리를 박살내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잔해 안에 들어서자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출입구를 막을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일행들이 방어선을 만드는 동안 고천수는 작아진 흑구, 그리고 온리베어와 함께 바로 안쪽으로 달려갔다.

‘조심해야 된다.’

휴도 당했다.

끝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휴는 창고 안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그만큼의 부상을 입힌 건 분명 방찬혁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디냐.’

고천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부는 왜인지 옅은 빛이 돌고 있어 시야가 좁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시선을 옮기는 고천수의 눈에 열려 있는 철문이 하나 보였다.

그 부근에는 많은 수의 발자국이 있었다.

감옥이라고 해야 할까.

방찬혁은 이곳의 존재를 알고 바로 문을 열어 준 게 분명했다.

폴짝.

계속해서 방찬혁을 찾던 그때, 온리베어가 제자리에서 폴짝거리다가 어딘가로 뛰어갔다. 미처 붙잡을 새도 없는 속도였다.

‘설마?’

온리베어가 갑자기 혼자 달려 나갈 때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온리베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툭.

어디선가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고천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흑구와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옅은 빛 때문에 생기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장소는 어느 기둥 뒤였다.

확!

그때였다.

고천수가 총구를 돌리자 누군가 튀어나오며 몸을 덮치려고 했다.

파악!

그러자 고천수는 바로 발을 내밀어 튀어나온 인영을 차 버렸다.

인영은 바로 뒤로 나자빠지며 나동그라졌다.

"안 되지, 새꺄."

고천수는 넘어져 있는 인영, 방찬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랑 나랑은 사실 격이 다르거든."

1920%.

현재 고천수의 신체 능력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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