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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96화 (196/224)

196. 종말 폐기장 (1)

온갖 부서진 차들이 널려 있는 풍경.

고천수만 창문 밖을 내다본 것은 아닌지, 탑승객들이 전부 탄식을 흘렸다.

“차들이…….”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저기 봐. 우리가 탄 버스랑 똑같은 것도 있어.”

그 말에 고천수도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이 버스와 같은 종류의 차들이 사방에 처박혀 있었다.

-폐차장이네, 이거.

-폐차장이라고 하면 안 되지.

-차로 끝이 아니니까.

“천수 님.”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심하문 일병이 입을 열었다.

“저 앞을 보십쇼.”

그 말에 고천수는 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거기에 펼쳐진 건 다름이 아니었다.

무너진 빌딩, 날아오르는 흙먼지, 타 버린 가로수들, 붉은 해, 그리고 불길하게 쏟아지는 정체 모를 유성들까지.

“이건…….”

망해 가고 있는 도시를 목격한 느낌에 고천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콰아아아아.

버스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그러자 고천수는 방금까지 본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뭐야, 저건.”

“끝이 안 보여.”

“정말 여기가 한 층이라고?”

놀라며 외치는 단원들의 말대로, 망해 가는 도시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아니, 이어져 있다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처음에 봤던 폐차장처럼, 마치 망해 버린 세계의 부속품들을 여기저기 내던져놓은 것처럼 너저분했으니까.

‘역시 최상층 바로 아래라 그건가.’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쿵. 쿠웅.

유성처럼 보였던 것들이 멀찍이 하나씩 떨어졌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것들은 일반적인 유성도 아니었다. 자세히 지켜보던 고천수는 그것들이 부서진 빌딩이나 비행기 같은 것들임을 알아챘다.

이곳은 그야말로 세계의 쓰레기장이었다.

-천수야. 좀 더 가기 전에 할 거 있음.

-맞아맞아.

-준비해야 됨.

떠오르는 채팅들에 고천수는 뒤늦게 고개를 갸웃했다.

“뭘, 말입니까?”

그러자 시청자들이 아웅다웅하듯이 답했다.

-그거 있잖아, 그거.

-새로운 곳으로 넘어왔으니까.

-여기서도 내용을 확인해야지.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침음하던 고천수는 곧 시청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형님들, 여기서는 더 조심스럽게 나오네요.”

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최상층에 가까워질수록 시청자들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정보창.”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으므로 고천수는 일단 정보창을 띄웠다.

[정보 1 : ×] - [갱신 : 모든 젠]

층을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정보 1은 엑박으로 처리돼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뭐야.”

갱신에 붙어 있는 가격대가 너무 터무니없었다.

“지금 이거 장난하는 겁니까?”

물론 고천수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젠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 재산이 가격표로 붙어 있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어차피 얼마 안 남았잖아.

-그렇게 열 낼 건 없을 듯.

-맞아맞아.

시청자들은 오히려 대부분 차분했다.

원래부터 자기네들이 위험한 건 아니다 보니 태평하게 굴던 시청자들이긴 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형님들, 설마?”

만약 여기서 젠을 들고 있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셈.

-우린 원래 짠돌이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의도했던 것일까 아닐까.

뭐가 됐든지 간에 고천수는 주어진 재산이 얼마 없는 만큼 젠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활용해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쥐어 짜내서 사용을 했어야 했기에 여유롭게 남긴 것도 없었다.

즉, 시청자들이 줄 수 있는 젠을 여기서 무의미하게 소비할 일 또한 생기지 않게 된 것이었다.

“역시 형님들.”

고천수는 바로 탄식했다.

“제가 젠 다 쓰면 바로 다 충전해 주시려고 그러는 거죠?”

하지만 고천수의 말에는 시청자들이 대답하지 않고 웃음만 흘렸다.

알 수 없는 분위기였다.

고천수는 입가에 떠 있던 미소를 지우고 다시 정보창을 바라봤다.

정보 1.

딱 하나 떠 있는 정보창의 내용을 갱신할지 말지 고천수는 고민해야만 했다.

‘할 수 없지.’

안 할 수도 없었다.

고천수는 남은 젠을 사용해 정보창을 갱신했다.

[정보 1 : 13층은 당신이 알고 있는 종말의 조각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탈출로는 동쪽 끝에 있습니다.]

끝이었다.

이외에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탈출로는 동쪽 끝…….’

그것 하나만 확실했다.

“응?”

어디가 동쪽인지를 확인하려던 고천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버스가 지나갈 길, 그러니까 저 앞에 초록색 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천수. 그동안 고생했다.

-그러게. 여기까지 이렇게 빠르게 올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잘할 거라고 믿어도 되겠지?

뭔가 갑자기 작별 인사 같은 느낌이었다.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형님들, 어디 가기라도 하십니까? 왜 갑자기 그러시죠?”

-어디 가는 건 아니야.

-계속 지켜보고는 있을 거야.

-다만 지켜보는 방식이 지금과는 좀 다를 뿐이지.

역시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고천수는 버스가 초록색 선을 지나기 전, 이 한 마디를 더 들었을 뿐이었다.

-[한도초과] : 네 능력을 믿도록 해, 천수야.

부우웅!

지나쳤다.

버스가 초록색 선을 밟고 지나갔다.

“…….”

뭔가가 바뀌었을까.

아직 끄지 않은 정보창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다른 알림도 없었다.

“형님?”

하지만 채팅창은 아니었다.

공백.

여태까지 시끌벅적했던 채팅창에 활자가 사라졌다.

“형님들?”

채팅창을 만져 보았지만 복구는 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굳이 사용하지 않았던 제안 기능도 다시 써 보려고 했지만 불가했다.

그냥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먹통이 된 느낌이었다.

부우우우웅.

버스가 속도를 내는 소리만 고천수의 귀에 쑤셔박혔다.

젠, 그리고 시청자, 모든 게 사라졌다.

잠시 멍하게 있던 고천수는 순간 몸을 일으켜 다른 곳을 확인했다.

흑구와 온리베어는 있었다.

“천수 님?”

고천수의 행동을 보고 놀란 듯 옆자리의 제나가 물었다.

다른 일행들도 똑같은 표정으로 고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때였다.

갑자기 버스 앞으로 유성이 떨어져 내렸다.

심하문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피하려고 버스를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끼이이익!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결국 유성, 아니, 건물의 잔해였던 것과 충돌하고 버스가 고꾸라졌다.

“큭!”

불안한 자세로 서 있던 고천수는 곧장 자리에서 이탈해 이리저리 굴러 버렸다.

쾅! 콰직! 쾅!

몇 번이나 굴렀을까.

뒤뚱거리던 버스가 겨우 멈춰 서자 여기저기서 신음이 쏟아져나왔다.

“아, 제기랄.”

“크윽.”

“다들 괜찮아?!”

그 와중에 제나는 다른 일행들보다 고천수를 먼저 찾았다.

“처, 천수 님!”

고천수는 버스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제나는 바로 몸을 추스르고 움직여 그의 몸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아, 끄응.”

다행히도 그는 괜찮았다.

“덕분에 살았다.”

그의 옆에는 흑구와 온리베어가 있었다.

그들이 고천수를 붙잡아 충격을 완화해 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본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안전벨트라도 했는지 괜찮은 모습으로 고천수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보고 있다면 바로 비웃음을 날릴 타이밍이건만, 역시 채팅창은 조용했다.

고천수는 아직도 비어 있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사라졌어.’

아무런 채팅도 보이지 않았다.

‘방에서 다들 나간 건가……?’

잠시 그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시청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채팅방에는 여전히 시청자들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천수 님, 일단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버스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망치로 창문을 깨부순 제나는 고천수를 바깥으로 끄집었다.

휘이이잉.

다른 인원들도 하나둘씩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있던 고천수가 바람의 흐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쾅! 콰아앙!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의 충격으로 여기저기서 충격파가 날아오고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네, 망할.”

지평선을 보려고 해도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제 쓰레기들이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출구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천수야, 인원은 이상 없다.”

장서연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근데 인원이 이상 없어도 이건 좀 예상외인데.”

거의 지옥과도 같은 풍경을 둘러보며 장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괜찮은 거냐?”

“그러게요.”

시청자들이 사라졌다.

고천수가 가지고 있는 건 약간의 정보, 그리고 탑에서는 별로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원래의 스킬뿐이었다.

층의 색깔이 많이 변한 만큼 이제는 아이템이 다시 떨어질 수도 있긴 하지만, 문제는 시청자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천수 님! 여기……!”

그 와중에 심하문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외쳤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고천수는, 그가 가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말 폐기장.

거기에는 그렇게 적힌 푯말이 하나 박혀 있었다.

“종말, 폐기장……?”

잠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고천수는 곧 시선을 옮겼다.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정보창으로.

거기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종말의 조각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종말의 조각?’

고천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쓰레기들은 망한 세상이면 어디서든 익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고천수는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성?’

폴링월드.

지금처럼 무너진 세상이 유성이 되어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공포물 게임.

정크야드.

온갖 고물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탈출하는 게임.

당장 보이는 것들로만 맞춰 봐도 기시감이 드는 것들이 있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형, 괜찮아요?”

고천수가 가만히 서 있자 양민철이 다가와 물었다.

“아냐.”

정신을 차린 고천수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천수가 지시를 내려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의지할 것은 역시 고천수밖에 없었다.

“일단 걸어가기는 어려우니까 차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차라면…….”

고천수의 말에 심하문이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이런 곳에서 말입니까?”

“이해가 잘 되진 않겠지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종말 조각들이 만약 고천수가 알고 있는 종말의 형태를 전부 의미하는 것이라면, 번뜩 떠오르는 게임들과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 게 우연은 아닐 터.

여기까지 여기로 오면서 보았던 것들도 합해졌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할 가능성은 있었지만, 뭐라도 감이 온다면 그대로 움직여 보아야만 했다.

“일단 유성부터 피합시다.”

폴링월드에서는 잔해가 떨어지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존재했다.

일반적인 유성과는 다르게 속도가 많이 떨어져는 있지만, 그래도 맨몸으로 직격하면 그냥 분쇄되어 버릴 것은 자명했다.

지하든 어디든 일단은 몸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다들 서두르세요. 아직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하기가 무섭게 하늘에 나타난 유성들이 많아졌다.

일행들은 그것을 보면서 다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서두르시라고요!”

고천수의 외침에 그제야 일행들은 발걸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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