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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93화 (193/224)

193. 휴식처 (1)

12층으로 향하는 계단.

일행들을 데리고 오르면서 고천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다 잘된 건가?’

디엔드를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다.

12층에 무엇이 있든지 간에 돌파할 여력은 충분했다. 마키나 단원들, 능력 있는 핵심 일행들, 그리고 정보창도 있었다.

‘그런데 뭐지, 이 기분은.’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방찬혁을 예상보다 빨리 떼어내서 드는 허탈감 같은 것일까.

“천수 님.”

제나가 고천수의 표정을 보고 옆에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왜. 이상해 보여?”

“조금 지쳐 보이십니다.”

그 말에 고천수는 헛웃음을 살짝 흘렸다.

그래, 지친 것일지도 몰랐다.

계단을 오르기 전 잠깐 쉬고 먹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간의 휴식일 뿐이었다.

디엔드 신도들을 떨어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천수는 등반을 서두르고 있었다.

또 뭔가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 그를 등 떠미는 기분이었다.

“제나. 넌 다 잘 해결된 것 같아?”

역으로 질문을 던지자니 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교주를 처리한 건에 대해서 물으시는 겁니까?”

“그냥 아무거나.”

“교주라면 천수 님께서 완전히 떨어뜨리셨습니다.”

확실하게 직접 손을 본 것은 아닐지언정, 제나는 그러한 결과를 확실하게 수용했다.

“천수 님께서 끝을 내 주신 것입니다.”

“…….”

고천수는 다시 입을 다물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다 잘됐는데 왜 이렇게 뭐 씹은 표정이야.

-잘 가고 있잖아?

-그러게.

시청자들의 성화를 들으며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나 최상층에 가까워질수록 압박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방찬혁이 없어지니까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고.’

적어도 방찬혁은 끝까지 같이 올라갈 줄 알았다.

그를 상대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미리부터 최상층에 대해 걱정할 틈도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방찬혁이 너무 빠르게 이탈해 버렸다.

그 탓에 고천수는 그에게 묻고 싶었던 한 가지마저 결국 묻지 못한 상태였다.

‘그 자식은 진짜 구원받으려고 탑을 올랐던 걸까?’

시스템 창까지 가진 놈이니만큼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방찬혁은 신도들까지 희생하면서 탑을 오르지 않았던가. 좀 더 개인적인 이유로 탑을 오르고 있었다면 그 내막을 좀 더 알고 싶었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거기에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방찬혁은 딱히 타협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어찌 되든 떨어뜨린 것만 해도 다행이고, 어찌 보면 불완전한 마무리였음에도 토를 달지 않는 마키나 단원들이 고천수는 고마울 뿐이었다.

“천수 님, 일단은 탑을 올라가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나가 그런 고천수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끝에 올라가면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고천수는 한 번 더 한숨을 흘렸다. 계속된 반목에 지쳐서 잡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제나의 말대로 일단은 최상층으로 가는 게 중요했다.

서로 간의 의문이나 현재의 감상 같은 건 그때까지 미뤄 놨다가 얘기를 나누면 될 일이었다.

“자, 그럼 12층도 긴장해서 한번 가 보자.”

이번에는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천수는 정보창을 갱신할 준비를 하고 12층의 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

그런 그의 눈에 나타난 건 푸른 초목이 심어진 공간이었다.

***

풀과 바위 말고는 없던 1층과는 달랐다.

청명한 강 주위에는 여러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숲이 끝나는 구간에는 산림욕을 위해 지어진 듯한 건물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하늘은 높고 해는 밝게 햇살을 비추며, 곳곳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쒯.

-나한텐 너무 밝아!

-나도 적응 안 되는 곳임.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산인가?’

뭔가 야생에서의 시련을 주려는 것인가 하고 고천수가 인상을 마구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부우웅.

갑자기 난 엔진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차?”

“뭐, 뭐야.”

“버스잖아.”

근처 표지판이 세워진 곳에 좌석버스가 한 대 섰다.

마키나 단원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웅웅웅웅.

버스는 다시 출발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마치 이곳에 온 사람들을 기다려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수 님?”

단원들이 전부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고천수는 살짝 미간을 구겼다.

‘뭐야, 저건.’

이런 곳에 갑자기 버스가 나타나다니,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버스로 다가갔다.

“……이건.”

운전자가 없었다.

안에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기에 고천수는 버스 앞쪽만 살펴보다가 행선지를 발견했다.

13층.

버스에는 그런 표시가 적혀 있었다.

“뭐야.”

“13층?”

“다음 층으로 가는 건가 봐요.”

그사이에 다가온 양민철 일행이 각각 한 마디씩을 던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키나 단원들 또한 버스의 행선지를 확인하고 크게 외쳤다.

“13층이다!”

“천수 님! 바로 가는 버스인가 봅니다!”

“그럼 여기서는 바로 직행할 수 있는 건가……!”

다들 신이 난 표정이었지만 고천수 혼자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직행?’

여태까지 올라오는 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휴식도 짬짬이 틈을 봐서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자비를 베풀어 준단 말인가.

“형님들, 아무리 봐도 이상하네요.”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들이 후원조차 제대로 해 주지 않는데, 이런 에스컬레이터 같은 버스가 존재할 리 없잖아요.”

-ㅋㅋㅋ 그새 우리한테 뭐라고 하네.

-좀만 더 기다리라니깐.

-그리고 버스는 네가 알아서 생각해. 행선지만큼은 거짓말이 아니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그 말에 고천수는 더욱 크게 탄식을 흘렸다.

‘거짓말이 아냐?’

그렇다면 약간의 휴식을 부여하는 공간인 것일까.

고천수는 마키나 단원들에게 지시했다.

“주변에 산장들이 있습니다! 들어가서 사용이 가능한지부터 다들 확인 부탁드립니다!”

“예!”

단원들은 다들 신이 난 표정으로 산장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소리쳤다.

“천수 님! 여기 먹을 게 아주 많습니다!”

“단체로 잘 수 있는 공간도 있고요!”

“음식을 집으면 또 음식이 생깁니다!”

마지막 말은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고천수는 직접 뛰어 올라가 한 산장 안에 있던 사과를 집어 보았다.

“……?”

정말로 사과를 들자마자 새로운 사과가 나타났다.

-신문물이라도 본 듯한 표정. ㅋㅋ

-이제 식량 걱정은 없겠네.

-머해! 빨리 챙기자!

고천수는 사과를 든 채로 탄식을 흘렸다.

‘뭐지, 여긴?’

쉬고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고 바깥에는 버스도 존재하고 있었다. 여태 겪은 과정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낙원이나 다름없는 휴식 공간이었다.

“천수 님, 어떻게 할까요.”

최형식 병장이 다가와 고천수에게 물었다.

“아래에서 잠깐 쉬었다고는 해도 다들 많이 지쳐 있습니다. 혹시 여기서 시간을 좀 더 때워도 되겠습니까?”

“…….”

고천수는 즉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탑이었다. 공짜로 무언가를 주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나았다.

-여기서 주는 거 먹어도 문제 없어.

-그런 건 개의치 마셈.

-여기서 주는 건 다 주는 거야.

하지만 시청자들은 고천수가 조금 쉬고 움직이기를 바라는 듯 그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형님들, 진짜 쉬라고요?”

의아해서 채팅창을 바라보는 고천수에게 시청자들이 답했다.

-기회가 있을 때 쉬란 얘기지.

-계속 너무 긴장만 빨고 있잖아.

“아니, 틀린 말은 아닌데…….”

이러면 12층이 너무 거저먹는 곳이 되어 버렸다.

물론 13층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12층에서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갱신.

고천수는 정보 1을 갱신해 보았다.

[정보 1 : 12층에서 주어지는 편의시설과 음식은 모두 안전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안심하고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정보에서 확인한 내용은 이곳에서 얻는 것들이 전부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남은 정보창이 두 개 더 남았지만 그걸 다 열려면 젠을 다 사용해야 하지만, 고천수는 이것으로 충분한 안내를 받은 느낌이었다.

“다들 들어가서 충분히 먹고 휴식하라고 하세요.”

“앗, 정말이십니까?”

“네, 그럼요. 최형식 병장님도 조금 편하게 시간을 보내세요. 경비 인력 정도만 빼놓고.”

고천수의 말에 최형식은 다른 마키나 단원들과 함께 한 산장으로 들어갔다. 쉬라고 하니까 아주 정말 마음 놓고 쉬려는 기세였다.

다들 그를 따라 여러 산장에 나눠서 들어가자, 밖에는 고천수와 제나, 양민철, 장서연, 김하령, 송하나와 흑구&온리베어가 남았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생각이 있는 사람?”

고천수는 버스의 행선지를 다시 살피며 말했다.

“이 버스에 다 타면 13층으로 바로 간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제나가 심플한 답을 내놓았다.

“그럼 조금씩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됩니다. 여기선 다들 제대로 먹고 잘 수 있어서 힘도 많이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지?”

버스기사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 눈에 띄는 위협은 없었다.

고천수는 남아있는 일행과 함께 맨 마지막에 있는 산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정말로 음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배경이 도심이 아니라서 위화감을 덜 느끼는 거지, 상황적인 것만 따지면 과연 진짜인가 하고 의심이나 할 정도였다.

파삭!

고천수는 그곳에서 사과 하나를 찾아내 베어 물었다.

싱그러운 향기가 고천수의 입가로 흘러들어왔다.

“야, 이거.”

그는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맛있네.”

그냥 모호한 것들이나 지급해 줄 줄 알았더니 통조림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신선도와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천수는 잘 곳도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진짜 쉬기엔 딱 좋은 장소잖아?’

날씨도 11층에서처럼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진짜 웬 휴식이지?

-뒤가 더 헬이니까.

-헬? 뭐가 어떤데.

시청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힐끔 엿보던 고천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그런 것일까.

13층과 최상층이 무척 고된 환경이기에, 이곳에서 여독을 풀고 가라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다들 쉬자.”

그렇게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말하고 근처에 있는 이불을 찾아 잠시 몸을 뉘였다.

몸에 피로가 정말 많이 쌓여 있었다.

잠은 일찍 들었다.

……스륵.

하지만 일어나는 것도 빨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고천수는 잠이 들랑 말랑 할 때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아직도 버스가 존재하고 있었다.

시동조차 꺼지지 않은 버스를 보고 고천수는 안으로 들어가 열쇠를 돌려 보았다.

시동을 끌 수도 없고 차키를 뺄 수도 없었다.

고천수는 운전석에 앉아 사이드브레이크와 기어를 조작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보았다.

“안 움직이네.”

13층에 데려가 준다더니, 직접 조작이 아니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슨 조건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수야, 좀 쉬어.

-여기에서라도 좀 쉬어야지.

-그래, 좀 쉬라고.

시청자들이 한 마디씩 걱정하는 말을 건넸다.

그런 그들의 말을 흘려듣는 고천수의 눈에는, 정원 15명이라는 글자가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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