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92화 (192/224)

192. 재해 (4)

왈왈!

흑구와 온리베어가 나타났다. 거대화한 상태로 달려오던 그들은 곧 소형화해서 합류했다.

-근데 있잖아. 그러고 보니 대형화하면 목걸이도 같이 늘어나네?

-아이템은 아닌데.

-특수효과임. 헐크 바지처럼.

이제 와서 나누고 있는 시답잖은 대화를 들으며 고천수는 온리베어에게 물었다.

“그쪽에는 몇 명 없었지?”

[4명 있었는데 전부 골로 보냄.]

역시나 방찬혁은 거기 없었다.

‘뭐야, 그 자식.’

여기에서만 디엔드가 손해 본 인원의 수가 엄청났다.

디엔드는 이제 30명 남짓만 남지 않았을까 하는 게 고천수의 추측이었다.

‘설마…….’

여기서 다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방찬혁이 분화대마다 신도들을 보내 이곳의 재난을 바꿔 버리려고 하는 거면 나름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긴 했다.

그사이 세 번째 분화대가 터졌기에 주위의 온도가 올라갔다.

아직도 눈이 내리고는 있었지만 지금 이 정도의 온도가 딱 적당했다.

혹시라도 방찬혁이 앞쪽에 있는 다른 분화대를 터뜨리려고 앞서가고 있는 거라면 서둘러 따라잡아야 했다.

“다들 더 빠르게 이동하세요!”

고천수는 일행들을 닦달했다.

일행들도 이곳에 오래 머무르면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인지, 모두 속도를 내며 서로에게 따라붙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고천수 일행은 이내 또 다른 분화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저기 있습니다!”

마키나 단원의 외침대로 앞쪽의 분화대에는 디엔드 신도들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방찬혁!’

고천수는 그의 모습이 그사이에 있는 것도 확인했다.

“다들 그냥 통과합니다! 무시하고 지나치세요!”

하지만 고천수는 그와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고천수의 지시에 마키나 단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그냥 지나간다고요?”

“정말로 그래도…….”

아무리 30명 남짓이라고는 해도 방찬혁의 주위에 남아 있는 건 정예들이었다. 게다가 기이한 행보를 보이는 방찬혁이 무엇을 또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이번엔 저희가 앞질러 갑니다! 경계만 제대로 하세요!”

마키나가 공격하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가자 디엔드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곧장이라도 따라붙을 듯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괜찮았다.

‘놔두고 올 거면 놔두고 와라.’

분화대가 더 터지는 게 아니면 고천수도 나쁠 게 없었다.

심지어 이젠 터진다고 해도 마키나가 앞선 상태였다. 쫓아오는 마그마에는 디엔드가 더욱 취약했다.

“천수 님! 터졌습니다!”

하지만 디엔드는 결국 분화대를 터뜨렸다.

간발의 차였다.

고천수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놈들이야, 대체!’

미리 앞서가고 있다가 첫 번째 분화대가 터지며 활동성 향상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지금 네 번째 분화대를 터뜨릴 정도면 엄청나게 빠르게 이곳에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콰아아아아.

분화대에서 마그마가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디엔드도 마그마를 피해 마키나의 뒤를 쫓아왔다.

철컥.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온도를 느끼며, 고천수는 총을 들어올렸다.

‘어쩔까.’

지금 디엔드를 공격하면 유리했다. 마그마를 뒤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디엔드는 이쪽에서 날리는 총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공략집이 없어도 괜찮을까?’

정보창만으로 위층을 전부 뚫고 올라갈 수 있으면 당장 전투를 벌여도 상관없었다.

“응?”

그때였다.

디엔드가 갑자기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달리기 시작했다.

“천수 님!”

“디엔드가 다른 곳으로 갑니다!”

“쏠까요?”

고천수는 놀라면서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리고 타이밍을 잡기 쉽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을 발현했다.

10분간 시야를 훔쳐보는 스킬.

제나의 것과는 다르게 제한이 없는 시청자의 선물이 방찬혁에게 달라붙었다.

‘망할!’

분화대가 이 층의 입구로부터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 당연히 출구 또한 북쪽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자식 진짜로 시스템창을 가지고 있었어!’

방찬혁은 허공에 뜬 지도를 보고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시야 한편에 뜬 방찬혁의 시야를 보며 고천수는 경악했다.

약도에 가깝긴 했지만 방찬혁이 보는 창에서 출구는 분명 동쪽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시선을 집중하자 고천수는 방찬혁의 시야 맨 아래 끝을 확대해, 창에 떠있는 경고도 읽어낼 수 있었다.

[분화대가 2개 이상 터지면 이 층은 출구를 닫아서 잠글 수 있습니다.]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 자식 그냥 출구 닫으려고 하는 거?

-고천수 여기 가둬 버리려고 한 거네.

-아주 멕이려고 작정함.

그랬다.

방찬혁은 고천수 일행을 아예 여기서 떼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지시했다.

“쏘세요!”

탕! 타탕! 탕!

방찬혁이 죽어서 공략집이 사라지더라도 여기에 갇히는 것보다 최악은 아니었다.

고천수의 지시 아래 마키나 단원들은 디엔드 신도들을 향해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큭!”

“크악!”

“달려!”

디엔드 신도들도 맞대응을 하기는 했지만 숫자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멈춰서 대응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집집 사이의 골목을 돌아 숨는 데 주력했다.

“천수 님! 마그마가 다가옵니다!”

그사이 분화대에서 퍼져 나온 마그마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마그마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지는 양상이었다.

“후우!”

터진 분화대가 몇 개 안 되는데도 공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고천수는 한숨을 흘리며 일행들에게 지시했다.

“숨은 놈들은 무시합니다! 따라오세요!”

어차피 고천수는 방찬혁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다.

지금 방찬혁이 근처에 숨어 가만히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천수가 할 일은 하나였다.

먼저 출구로 가는 것뿐.

‘무조건 먼저 가야 한다!’

고천수가 멈추지 않고 움직이려니 방찬혁의 시야도 돌아가는 게 보였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것이리라.

-교주 살릴 필요는 없음?

-지금 보는 거 말고 정보 더 갖고 있을 텐데.

-쟤 지금 이 층 것만 보고 있잖아.

“형님들.”

고천수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됐어요.”

원래라면 그럴 생각이었지만 이젠 아주 지긋지긋했다.

어차피 이쪽도 정보창의 갱신 법을 알았으니 공략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계속 이쪽을 노리는 놈을 살려서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왈왈!

흑구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짖어댔다.

“저, 저기!”

“출구다!”

“출구가 보인다!”

오래 지나지 않아 출구가 보였다.

다들 반색하며 달리는 속력을 높였다.

탕! 타앙!

하지만 이번엔 뒤를 쫓기게 됐다.

“큭!”

“디엔드가……!”

마키나 단원들은 뒤를 돌아보며 응사했다. 갑자기 걸음이 느려지는 그들을 보며 고천수가 소리쳤다.

“일단 달리세요! 달리면서 쏘세요!”

중요한 건 출구로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응전하며 발목을 붙잡히면 본말전도였다.

고천수는 방찬혁의 시야를 살폈다.

방찬혁은 고천수가 출구의 방향을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급하게 따라붙고 있는 중이었다.

고천수는 그걸 보며 코웃음을 흘렸다.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방찬혁의 입장에서는 고천수의 이런 행동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터.

‘방심했던 결과다.’

방찬혁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마키나를 앞질렀던 일이 있었다. 당연히 방찬혁은 고천수가 출구의 방향을 미리 알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을 것이었다.

이제 정식으로 맞붙는 것도 각오한 것처럼 디엔드가 총질을 해대며 따라왔지만, 그뿐이었다.

고천수 일행은 출구에 도달했다.

“문! 빨리 문 닫으세요!”

출구 안쪽에는 커다란 회전 레버가 있었다.

마키나 단원들이 달려들어서 그 레버를 돌리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기기긱!

요란한 소리를 내며 레버가 돌아가자 위에서부터 아래로 마치 성문처럼 문이 천천히 내려왔다.

“끄악!”

“몇 명은 응전해!”

“문을 내려!”

디엔드가 계속 총을 쏘아댄 탓에 레버를 돌리고 있는 몇 명이 나가떨어졌지만 괜찮았다.

문이 내려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고천수는 방찬혁이 혼자서 미친 듯이 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저놈 이쪽으로 뛰어들려나 봐.

-혼자서?

-혼자.

방찬혁은 디엔드 신도들이 엄호하는 틈을 타 문의 코앞까지 근접했다. 조금은 더 몸을 내밀면 출구 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이.

콰앙!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실패.”

문은 완전히 내려왔다.

마치 기계 외벽처럼 보이는 문에는 두꺼운 창이 하나 나있었다.

고천수는 그곳을 통해 망연히 서있는 방찬혁을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왜 까불어.”

방찬혁의 등 뒤로 눈보라와 열풍이 동시에 몰아치고 있었다. 고천수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었다.

-무섭네.

-방찬혁 열 받은 거 아님?

-ㅋㅋㅋㅋ

방찬혁은 천천히 문에서 물러섰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래, 가라.”

살아남으려면 부리나케 움직여야 할 터.

고천수는 더 이상 바뀌지 않는 방찬혁의 시스템 창을 계속 엿보다가 걸음을 움직였다.

‘다른 층 공략법을 얻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에는 이 층에서 방찬혁을 떼어내는 데만 활용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이쪽에도 정보창이 존재하는 이상 혹을 떼어낼 수 있게 된 게 더 나으니까.

“천수 님, 교주는…….”

다가와 묻는 제나를 보며 고천수는 미소를 지어 주었다.

“여기 가뒀다.”

“아.”

“아마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거야.”

신도들까지 희생시키며 탑을 올라가던 미친놈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한 방법을 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

“왜 그러지?”

왠지 걱정이 가시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제나를 보며 고천수가 물었다.

그러자 제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그냥 실감이 안 나서 그랬습니다.”

“뭐, 그래.”

대수롭지 않게 여긴 고천수는 일행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디엔드의 신도들과는 다르게 이쪽의 단원들은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최형식 병장님.”

“네.”

“몇 명 정도 살아남은 것 같습니까?”

인원 체크를 묻자 최형식이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답했다.

“적어도 50명은 되지 않겠습니까?”

“50!”

고천수는 탄식하며 미소를 그렸다.

“엄청나네요. 고생했습니다, 최형식 병장님.”

“감사합니다. 아직 여정이 더 남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천수는 이쯤에서 단원들을 더 격려해 주었다.

“자, 여러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디엔드도 떨어뜨렸으니 앞으로는 방해 없이 남은 층을 공략하면 될 터였다.

“고지가 눈앞입니다! 다들 함께 끝까지 올라갑시다!”

“아아아아!”

“천수 님을 따라서 끝까지 오르자!”

사기가 충전된 단원들이 손을 높이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좀만 더 고생하면 진짜 끝이야?”

장서연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네. 근데 왜 이렇게 얼굴이 붉습니까?”

“마그마에 열기에 너무 닿아 가지고. 후,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안 닿았으니 다행입니다.”

고천수는 나머지 일행의 안전도 확인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희생된 건 마키나 단원뿐인 것으로 보였다.

“음?”

아니, 자세히 보니 보이지 않는 인원이 있었다.

“기성현 씨는?”

고천수의 물음에 양민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낙오된 것 같아요. 뛰기 좀 어려웠어서.”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기성현은 부목을 하고 있었으니, 따라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뭐야.’

하지만 고천수가 놀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휴는?”

휴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고천수를 보며 김하령이 다가와 말했다.

“그 사람은 자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요.”

“뭐? 휴가?”

“대량 살인마인 교주가 적수로서 흥미가 생긴다면서.”

“아, 미친.”

휴다운 발상이었지만 고천수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같이 갇혔다고?”

물론 휴는 자신이 갇히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었다.

-ㅋㅋㅋㅋ

-진짜 미친놈이네.

고천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쪽으로 난 창에는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후.”

예상외의 이탈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천수는 마음을 가다듬고는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여러분! 여기서 조금만 쉬고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개의 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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