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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86화 (186/224)

186. 살아남은 사람들 (3)

전투기가 아군이냐 적군이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민철아, 조명탄 가져왔어?”

“네, 형!”

마키나 단원들에게 다녀온 양민철이 고천수에게 조명탄을 건넸다.

“근데 괜찮을까요, 형! 이렇게 시선을 끌어도……!”

“괜찮아.”

오히려 그걸 바라는 거였다.

어차피 이 상태에서는 이곳을 건너갈 수가 없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다가 메이플라이가 경계하고 있는 외벽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적어도 메이플라이는 없앨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메이플라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적을 붙여 주는 것이었다.

“전투기가 이쪽에 관심만 가져도 괜찮아.”

빛을 보고 확인 차 근처까지 날아오게만 할 수 있어도 메이플라이가 새 먹잇감을 인식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이곳에 있는 인원들은 그 순간을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치익!

고천수는 조명탄에 불을 붙였다.

발사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고 손에 들고 있어야 하는 막대로, 고천수 역시 메이플라이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쾅! 콰앙!

고천수가 조명탄을 든 손을 외부에 놓고 흔들자 메이플라이가 몇몇 달려들었다.

그렇게 달려든 메이플라이는 고천수가 안쪽으로 몸을 순간순간 숨기는 때에 외벽에 몸을 박고 바닥으로 뱅글뱅글 추락했다.

‘이렇게만 다 유인할 수 있어도 나쁘진 않겠는데?’

메이플라이는 큰 충격을 받으면 뱅글뱅글 돌며 지상으로 추락한다. 시간만 많다면 이렇게 메이플라이들을 하나씩 골로 보내도 될 것이었다.

콰아아아아!

하지만 그렇게 메이플라이를 잡는 것은 너무 시간이 많이 드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전투기들도 그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탑 근처로 다가왔다.

결국 전투기들이 메이플라이를 잡는 데 도움을 줄지 확인해야 되는 순간이 되었다.

고천수는 계속해서 신호탄을 흔들어댔다.

“여기야, 여기!”

디엔드가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면 미리부터 투입했을 터, 적이어도 상관은 없지만 고천수는 저 전투기들이 일반 군인들의 것이라는 추측에 좀 더 힘을 실었다.

“젠장, 안 오나?”

다만 전투기들이 주변을 선회하기만 하는 것을 보며 고천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일반 군인들이라고 해서 이쪽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구해줄 필요는 없었다.

투두두두두!

그렇게 여기는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투기들이 먼저 메이플라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기총 공격을 받게 된 메이플라이는 탑에서 시선을 돌리고 전투기로 향했다.

투두두두!

하지만 전투기는 일반적인 비행기와는 달랐다.

여격기에는 상대적으로 잘 따라붙던 메이플라이였지만, 전투기들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던 것이다.

콰직! 콰지직!

이미 죽어서 뱅글뱅글 돌며 추락하는 메이플라이까지 기총에 또 얻어맞고 바스러졌다.

끼아아악!

개중에 괴성까지 지르는 메이플라이들이 제법 빠르게 전투기에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편대를 갖춘 전투기들은 거의 즉각적인 반응으로 흩어졌다가 모이며 메이플라이들을 교란 및 제거하고 있었다.

-야, 엄청난데?

-블랙이글스임?

-숙련된 조종사들이 타 있는 건 확실하네.

물론 아무리 숙련된 조종사들이 타고 있는 전투기라고 할지라도 메이플라이의 숫자가 좀 많았다.

완벽한 정리를 위해서는 기총 외에도 활용해야 할 것이 있어 보였다.

“다들 안쪽으로 들어와!”

전투기를 이용하려다가 이쪽이 얻어맞으면 오히려 어불성설이었다.

“흑구 너도!”

고천수는 양민철과 흑구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콰앙! 콰아앙!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밖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렸다.

미사일까지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좀만 더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어도 같이 날아갈 뻔했네.’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어디서 온 공군이지?’

의문을 가져도 답을 알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갑자기 최형식 병장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천수 님, 밖에 전투기가 나타났다던데 정말입니까?”

“네, 지금 들리고 있는 게 그 전투기들이 메이플라이하고 싸우는 소리입니다.”

“이럴 수가.”

최형식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니, 최형식 병장은 무언가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저희가 제주도에 있을 때 남아있는 공군하고 교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공군하고 교신?”

“그때 공군은 행선지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은 십 수 대의 전투기와 몇몇 개의 헬기를 가지고 이동 중인 4개의 편대라고 했다고 최형식은 말했다.

“포항에서 잠시 교전을 하고 김해 국제공항으로 이동 중인데, 그쪽도 사정이 좋지 않을 경우 제주공항으로 가도 되겠느냐는 거였습니다.”

“아.”

“하지만 사단장이 반대해서 일부러 착륙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대체 활주로도 찾을 수 없을 거라면서 차라리 위쪽으로 올라가 보라고 얘기했습니다.”

전투기 편대들은 사단장에게는 위협이 되는 존재로 여겨진 듯했다.

“누구랑 교신했는지는 기억하십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최형식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답했다.

“제가 직접 교신한 건 아니고 전해들은 거라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성이 진이었던 소령이었던 걸로…….”

순간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진 소령?

-왜 익숙하지?

-아, 잠만. 설마 그 진 소령?

“아니, 그럴 리가.”

고천수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 소령은 포항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남겨졌다. 고천수가 살아남기를 희망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구출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더 없습니까?”

“위쪽으로 올라가라고 하니까 자기가 대전에서 내려왔는데 그쪽도 다 박살이 났다고 했습니다.”

“진짜잖아……!”

이제 확실해졌다. 저쪽에 직접 탑승했든 아니든 진 소령은 살아있었다.

‘이런 미친!’

전투기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헬기가 진 소령을 구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이제 확신을 가졌으면서도 고천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밖의 전투기와 교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저희가 갖고 있는 것 중에 현재 작동하는 건 7층에서 얻은 그 무전기뿐이라. 교신 시도는 해 보겠지만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역시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고천수는 생기 있는 표정으로 최형식에게 말했다.

“그래도 한번 뭐라도 해 보세요. 안 되면 위로 올라가서 다른 걸 구해 볼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최형식을 보며 양민철이 고천수에게 물었다.

“형, 진 소령이 누구예요? 아는 사람이에요?”

“알다마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까지 희생할 줄 아는 군인이었다.

진 소령이 저쪽에 속해있다면 메이플라이를 먼저 제거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한번 크게 시달렸던 만큼, 존재 자체만으로도 제공의 위협으로 느껴질 테니까.

고천수는 미소를 그렸다.

“민철아, 여기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

폭음이 잦아들고, 다시 확인해 본 바깥에는 이제 몇 마리 안 되는 메이플라이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잘 들으십쇼!”

고천수는 마키나 단원들을 모아 놓고 소리쳤다.

“밖은 낭떠러지길입니다! 탑에 들어오기 전에 보였던 날아다니는 놈들까지 있으니 소총 쓸 준비를 하시고, 지금부터 이동에 들어가겠습니다!”

많은 수의 인원을 데리고 가는 길은 항상 질서가 중요했다.

고천수는 흑구와 휴, 몇 명의 단원들을 앞세우고는 자신이 선두 그룹에 섰다.

“제가 직접 안내를 맡겠습니다! 자, 그럼 출발!”

단원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바깥으로 향했다.

휘이이잉.

몰려오는 바람. 몇몇의 단원들이 주춤했지만 고천수가 속한 선두 그룹이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천수 님이 먼저 가신다!”

“갈 수 있어!”

“따라서 가자!”

고천수는 그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멀리서 굉음이 들리는 걸 보면 전투기는 아직도 근처에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계속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지 다른 쪽으로 이동한 듯했다.

-천수 전투기가 여기 한번 쓸고 가니까 앞장서는 거 봐라. ㅋㅋㅋ

-메이플라이 그대로 있었으면 단원들 전부 앞세우고 뒤에 갔을 듯.

-ㅋㅋㅋㅋㅋ 인정.

고천수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긴 했다.

‘뭐, 어때.’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고천수는 뒤의 단원들을 돌아보았다.

8층과는 달리 떨어지는 인원은 없었다.

간간히 달려드는 메이플라이를 총으로 쏘는 단원들이 불안정한 자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남은 층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숫자다.’

다음은 드디어 10층이었다.

14층이 정상인 만큼 남은 층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음 층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까지 해 왔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돌파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고천수는 그리 생각했다.

“차하!”

낭떠러지 길을 돌아올라 마침내 10층 안에 발을 디딘 고천수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살았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죽는 줄 알았다.

뒤에 단원들이 보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고천수도 압박감이 컸던 것이다.

‘그래도 이젠 괜찮아.’

위험지대는 벗어났다.

고천수는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10층은 한가운데 강처럼 깊은 물이 지나가고 있는 곳이었다.

넘어가려면 깊은 물을 건너가야만 했다.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범위였다.

“…….”

하지만 고천수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같이 선두 그룹에 있던 이들도 고천수가 시선을 향한 곳을 함께 봤다가 놀라서 흠칫했다.

“왔나?”

거기에는 이미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있었다.

“덕분에 아주 재미난 경험을 했어.”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는 포니테일 여자.

이름은 분명 권민주였다.

“교주님께서도 상상 그 이상이라고 하셨지.”

그리고 그의 옆에는 정장을 입고 가면을 쓰고 있는 이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뭐?’

상상하지도 못했던 광경에 고천수는 잠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거.’

분명히 앞질렀다.

7층에 남겨 뒀고, 8층도 자신이 먼저 올라 종유석까지 떨어뜨렸다.

9층에서 험준한 지형과 메이플라이를 만나 전투기가 정리를 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데 시간을 좀 많이 썼다고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수는 없었다.

뒤처진 디엔드는 고천수와 맞닥뜨리지 않고 이곳에 먼저 오를 수 없었다.

분명히 그럴 터인데, 지금 보이는 게 환영이 아니고서야.

“디엔드.”

하지만 환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고천수는 아직 마키나 단원들과 비슷한 숫자를 남겨서 데려온 교주를 보며 일단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마키나 단원들이 아직 이쪽으로 건너오는 중이었다.

적어도 입을 털어서 서로 균형을 맞춰야만 했다.

“용케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네?”

깜짝 놀라서 자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그런 상황에 고천수가 블러핑을 시도하자 상대도 경솔하게 나서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네가 뭘 하다 온 놈이든 간에, 우리는 이 탑에 대해서 먼저 조사했으니까.”

“그런 것 같네.”

고천수는 말을 하고 있는 권민주가 아니라 교주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먼저 조사한 것치고는 꽤 당하지 않았나?”

“……말조심하는 게 좋아.”

권민주는 차고 있는 칼을 한 번 쓰다듬었다.

“단숨에 토막 나고 싶지 않다면.”

“…….”

고천수는 시선을 돌려 권민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뒤따라온 제나가 그들을 발견했다.

“……!”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던 그녀는 간신히 입을 막아내고 상황을 인식했다.

고천수가 디엔드와 마주하고 있었다. 권민주는 칼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위험한 상황일 게 분명했다.

지잉.

제나는 바로 능력을 사용하고 총을 들어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슥.

하지만 고천수가 제지하듯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교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10층의 적막한 공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반갑다, 고천수.”

그리고 교주의 입에서 마침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디엔드 교주 방찬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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