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85화 (185/224)

185. 살아남은 사람들 (2)

양민철 일행의 이야기는 꽤 파란만장했다.

그들은 고천수와 헤어지고 난 뒤 대전 복합 터미널에서 기성현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대전역으로 이동해 거기서 7.5사단을 만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7.5사단하고 엮일 생각을 다했네.”

대전까지 오는 데만 해도 7.5사단과는 격전을 치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7.5사단과 엮여서 서울까지 올 생각을 했다는 게, 고천수로서는 참 대단해 보였다.

“형이 없으니까 저희끼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려웠거든요. 7.5사단이 사람을 모으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양민철은 담담하게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왔는데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거죠.”

“뭐,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캐묻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고천수는 시선을 옮겼다.

떨어지는 종유석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일단 우리 얘기는 이걸로 정리하자. 여기서 더 오랜 시간을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9층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웬만하면 여기서 조금 휴식을 취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디엔드가 올라올 때까지 마냥 이곳에 있을 수도 없었다.

고천수는 양민철 일행에게 현재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인원들에 대해서만 더 설명을 뱉어냈다.

“올라가기 전에 미리 말해 둘게. 여기는 휴, 이쪽은 제나, 그리고 송하나, 최형식 병장님이야.”

-설명이 너무 부실하지 않냐?

-그러게. 적어도 뭐가 특기인지는 알려 주는 게.

-무슨 진열된 상품 이름만 알려 주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시청자들의 말 대로였지만 고천수는 거꾸로 현재 인원들에게도 양민철 일행을 이름으로만 소개했다.

양쪽 다 고천수의 설명에 고개만 꾸벅 해 보였을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내 동료라는 것만 인식하면 그만이니까.’

여기에 모인 인원들은 모두 고천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인원들이었다.

시간이 많다면 좀 더 여유롭게 인사할 수 있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양민철이 겪은 얘기만 안 들었어도 서로 제대로 된 소개 가능했을 듯.

그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디엔드가 혹시나 양민철 일행에게 보였을 정보가 있을 수 있었으니까.

없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간을 마냥 흘려보낸 게 후회될 정도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양민철 일행이 예전보다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고천수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그룹은 아니었다.

그건 고천수에게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천수 님, 이쪽으로.”

그사이 길을 봐 둔 제나가 방향을 안내했다.

고천수는 모든 일행들을 데리고 8층과 9층 사이의 계단을 올랐다.

일부 인원이 떨어져 내리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그래도 많은 인원을 남겨 왔다.

계단을 올라선 고천수는 마키나 단원들을 돌아봤다.

최형식 병장에게 전해 들은 결과, 남은 인원은 총 75명이었다.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였다.

고천수는 9층에 올라선 뒤, 뭔가 퍼뜩 떠올리고 단원들에게 9층 입구를 막을 물건들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아예, 봉쇄해 버리려고?

-가둬 버리려고 하나 보네.

-아이템 찾는 게 낫지 않아?

아이템은 지금 찾아도 쓸모가 없었다.

고천수가 가지고 있는 젠은 한 자릿수였다.

온리베어가 새로운 보급함을 찾아낸다고 해도 고천수가 낼 수 있을 비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이쯤에서 제대로 된 걸 구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형님들, 후원이나 하고 얘기하세요.”

후원이라도 잘 들어오면 모를까, 시청자들의 지원은 지금 잠시 끊긴 상태였다.

당장 무기나 방해물을 구매하려고 해 봤자 성능이 낮은 것이나 구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런 건 현재 고천수에게 별로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쯤 제대로 된 후원을 할 건지?’

예전에 시청자들이 언급했던 대로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일 수 있었다. 고천수는 후원 없이 좀 더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형! 여기!”

다행히 양민철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돌무더기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고천수는 당장 그곳으로 가 보았다.

무거워 보이긴 하지만, 이 정도 인원이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옮길 수 있을 터.

당장 이 층의 입구를 틀어막기에는 최적의 도구였다.

“다들 이쪽으로!”

고천수의 손길을 따라 마키나 단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돌무더기를 주워 와 9층 입구에 쌓기 시작했다.

누군가 쫓아온다는 공포와 경계심이 들었던 것일까.

마키나 인원들은 돌무더기를 가져와 성심성의껏 쌓았다. 아무도 쉽게 뚫지 못하도록.

계단에서 문을 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뒤에서 따라온 교주는 고생깨나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게, 마음 좀 곱게 쓰지.’

남을 먼저 앞세우고 자신은 뒤따라오겠다는 심보 때문에 교주는 이런 꼴을 당하는 거였다.

제나가 여전히 교주를 조심하라고는 했지만 이미 한 층 아래에 있는 이상 그가 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뭐, 그래야 하건만.’

약간 찝찝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화면으로 본 디엔드의 모습에서, 일반 신도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교주는 조금 달랐다.

그게 원래 본인 성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계할 필요는 있을 듯했다.

“형!”

다소 넋을 놓고 걸어가고 있자니, 양민철이 갑자기 외쳤다.

“음?”

쿵.

뭐지, 하는 순간 고천수는 눈앞의 벽과 부딪쳤다.

-ㅋㅋㅋㅋㅋ 바보냐.

-뭔 생각으로 걷는 거야.

-[한도초과] : 혹 났겠다. ㅜ,ㅜ

시선을 올린 고천수의 눈에 복도가 그려진 벽이 보였다.

비유가 아니었다.

진짜 어떤 복도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뭐야, 이거.”

길이 없는 곳에 마치 길이 있는 것처럼 장난질을 쳐 놓은 그림이었다.

고천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휘이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옆에 길이 난 건가?’

고천수는 흑구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자 흑구가 달려가 길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왈!

옆으로 길이 나 있는 건 맞는 듯했다.

고천수는 직접 길을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길이 위험해. 조심해.]

이제 종이와 펜을 항시 휴대하고 다니게 된 온리베어가 이런 말을 적어서 고천수에게 보여줬다.

“위험하다고?”

[길이 외부랑 연결돼 있어.]

외부.

고천수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외부라고?”

밖이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일까.

고천수는 흑구의 안내를 따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보았다.

휘이이이잉!

그러자 어느 순간 칼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아니, 시발!”

고천수는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를 확인하고 바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형님들 이건 아니죠!”

길은 정말 밖으로 나 있었다.

탑 외부를 돌아야 하는 낭떠러지 길이었던 것이다.

“이미 8층에서 그런 길을 지나왔는데 또 이런 델 가라는 겁니까? 콘셉트 엔간히 좀.”

-ㅋㅋㅋㅋ 아니 왜 우리한테 그래.

-온리원한테 뭐라고 해.

-원래 온리원이 사람 굴리기로 유명해. 지영배도 봤잖아.

“하.”

지영배를 보고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탑의 끝에는 뭐가 있는 걸까.

이렇게 괴랄한 콘셉트가 기다리고 있으면 온리원을 가만두고 싶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건너갈 수 있나, 이거?’

바람이 심한데다가 길의 폭이 좁았다.

고천수는 길을 다시 잘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외벽에는 손잡이가 설치돼 있었다.

벽 색깔과 같아서 잘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바람이 불 때 버틸 수 있는 도구는 하나 있는 셈이었다.

다만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파다다다닥!

뭔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자니, 고천수의 눈에 익숙한 몬스터가 들어왔다.

“메이플라이……!”

그랬다. 외벽으로 길이 통해 있다는 건 밖에 있는 몬스터와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탑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메이플라이가 지금 9층 근처의 상공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후.”

“형?”

뒤따라온 양민철이 고천수에게 물었다.

“뭔 일 있어요?”

고천수와 떨어져 자립심을 기르고 돌아온 양민철은 더 상황 판단이 빨라진 모습이었다.

“아, 이거 꽤 안 좋게 됐네요.”

“그래. 꽤 안 좋게 됐지.”

내부의 시련에 비해서 규칙은 간단해 보이지만, 원래 간단한 게 더 어려울 때도 있는 법이었다.

“너 고소공포증은 없냐?”

“고소공포증이요?”

고천수의 물음에 양민철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정도 높이면 없던 공포증도 생기겠는데요.”

“최악의 상황에서는 저 메이플라이를 붙잡고 지면으로라도 내려가야 돼. 참고해 둬.”

만약 이 탑에서 떨어진다고 하면 최소한 살아남을 방법은 강구해야 했다.

“……떨어질 생각하니까 아찔하네요.”

양민철은 그러면서 고천수를 돌아보았다.

“형은 떨어져도 괜찮아요?”

“뭐?”

“탑 올라가는 경쟁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경쟁.

디엔드와 탑을 누가 먼저 올라가느냐를 두고 애를 쓰고 있기는 했다.

“올라가면 뭐가 있는 거죠?”

디엔드와 함께 이곳까지 온 양민철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놈들이 여기 올라가려고 할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형도 이만한 인원을 모아서 올라가고 있는 거 보니까 진짜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

“위에 뭐가 있는 거예요, 형?”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천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글쎄…….”

-야, 여기서 글쎄라고 대답하면 어떡해. ㅋㅋㅋ

-그럼 뭐하는 거지 싶잖아.

-양민철 표정 이상해지네. ㅋㅋㅋ

그 말대로 양민철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했다.

“아직 말해 주기는 어려워. 지금은 일단 여기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애써 시선을 돌린 고천수는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진짜 어떡하지?’

메이플라이가 날고 있는 와중에 길을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단 혹시나 싶어서 흑구에게 물어봤다.

“흑구야. 균형 좀 잡을 수 있겠냐?”

왈!

가능하다는 의사를 보인 흑구에게 길을 좀 건너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흑구는 천천히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파다다닥.

메이플라이가 급하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쒯!”

고천수는 흑구에게 서둘러 손짓했다.

“야! 돌아와! 빨리!”

콰앙!

메이플라이가 탑의 외벽에 몸을 들이박았다.

탑이 어찌나 단단한지 손상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흑구가 메이플라이와 충돌할 뻔했다는 사실이었다.

왈……!

돌아온 흑구가 놀란 표정으로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고천수는 흑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도 놀랐어, 인마.”

예전에 메이플라이가 비행기와 처박을 때도 살아남았던 흑구인 만큼, 만약 추락하게 되면 또 뭐라도 부여잡고 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추락 그 자체였다.

8층과는 비교도 안 되는 추락 위치였다. 한 번 떨어지면 나락이었으니까.

‘대체 왜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야?’

9층이 이럴 거면 8층은 왜 그렇게 돼 있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쿠우우우우.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고천수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굉음을 들었다.

쿠우우우우.

‘뭐지?’

몬스터가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무언가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콰아아아아!

소닉붐.

정체를 알아챈 고천수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몇 대의 전투기가 상공을 찢고 날아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형……!”

같은 것을 목격한 양민철이 급하게 소리쳤다. 고천수도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시선을 전투기들에 박고 있었다.

‘전투기?’

갑자기 전투기가 어디서 나타난 걸까.

어떤 경로로 이곳에 온 건지는 모르지만 탑이 김포공항에 세워져 있는 만큼, 활주로를 확보하려고 왔다가 이렇게 서로 조우하게 됐을 수도 있었다.

“민철아, 빨리!”

고천수는 양민철에게 요청했다.

“들어가서 조명탄이든 뭐든 달라고 해서 가져와 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