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재회
디엔드의 교주와 신도들이 폭발에 막혀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을 때, 양민철 일행은 무사히 다리 반대편을 향해 뛰어갔다.
‘형 말대로야……!’
흑구와 온리베어가 보여 준 쪽지에는 살인마를 이용할 방법뿐 아니라 이곳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도 적혀 있었다.
그렇게 고천수가 제시했던 대로 움직였더니 디엔드 신도들을 저렇게 떨어뜨려놓을 수 있게 된다.
쿠웅.
완전히 내려온 다리는 마을에서 시작하는 쪽과 그 반대편이 완전히 이어졌다.
남은 것은 쪽지에 나와 있는 방향대로 계속 폭탄을 피해 움직이는 일뿐이었다.
“서두르세요!”
양민철은 일행들에게 좀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을 종용했다.
다리가 이대로 계속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실제로 양민철 일행이 반대편까지 거의 도달하자 다리의 중간이 다시 분절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녀석들은……!”
양민철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흑구와 온리베어가 오지 않았다.
둘은 따로 올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내용 또한 쪽지에 적혀 있었다지만 아무래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과연 녀석들이 이쪽으로 건너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던 것이다.
크아아아!
그때였다.
올라가고 있는 다리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점프했다.
“뭐, 뭐야, 저건……!”
개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녀석은 지금 막 뛰어올라 반대편인 이쪽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크아아아!
이곳 도개교의 분절된 다리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워지는데다가 양쪽 사이의 거리가 상당했다.
양쪽 다리가 다 올라가기 전에 가속력을 확보하고 뛰어오른 것으로 보이는 몬스터는, 이쪽 다리의 끝을 간신히 부여잡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야, 저거!”
“큰일 났네요.”
“몬스터잖아!”
디엔드와 함께하며 저런 게 일반적인 괴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았다.
한결같이 인간을 집요하게 노리는 것.
어디서 저런 게 또 나타난 건지는 몰라도 피해야 했다.
크르! 크아아아!
몬스터는 결국 다리를 기어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장 양민철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망할……!”
그렇게 다들 총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쑥.
갑자기 몬스터가 작아졌다.
“어?”
그냥 작아진 것도 아니었다.
일반적인 개의 형태가 된 녀석은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이었다.
“흐, 흑구?”
목 위에는 온리베어까지 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하는 양민철을 보며 흑구는 재밌다는 듯 뱅글뱅글 돌았다.
[이해해. 주인을 닮아서.]
온리베어가 든 종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주인을…….”
“닮았다고?”
“고천수, 대체 이놈은.”
어떻게 이런 것과 주종 관계가 된 걸까.
일행들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멍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짤랑.
그때, 온리베어가 열쇠를 떨어뜨렸다.
양민철은 그 열쇠를 주워들며 물었다.
“이거, 네가 뽑아온 거야?”
끄덕.
온리베어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버튼을 누른 뒤에는 뽑히는 거였나?”
그렇다면 교주와 디엔드 신도들은 다시 다리를 내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끝났다…….”
디엔드에게서 벗어났다.
남은 일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
“성공했네.”
고천수는 7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교주는 저기에 갇혔고.”
솔직히 교주와 몇 명 정도는 다리를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역량 부족이었을까.
교주조차 다리를 넘어오지 못했다.
‘좀 술술 풀린 느낌인데.’
탑 자체의 시련을 제외하면 교주는 현재 유일한 경쟁자였다.
여기에서 낙오된다고 하면 조금 실망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사이 포비아가 D구역을 휩쓸었다.
디엔드는 계속 물러설 것인지 포비아를 상대할 것인지를 택해야 했다.
고천수가 그 부분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디엔드가 택한 포비아 대응법은 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디엔드는 포비아를 유인해 또 다른 맨홀에 빠뜨려 버렸다.
그 와중에 입은 피해는 현재 D구역에 있는 신도들의 절반 정도에 이르렀다.
“제나, 종이랑 펜.”
고천수의 말에 제나가 종이와 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종이에다가 뭐라 적은 뒤에 비행기로 만들어 낭떠러지로 내던졌다.
방향은 이제 막 포비아의 위협에서 벗어난 교주가 있는 쪽이었다.
“교주님, 저기!”
8층에서의 말이 7층으로 전해지지는 않아도 물건은 전해졌다.
애초에 떨어질 수 있는 곳이라고 분명히 표시돼 있는 낭떠러지였으니까.
촤락.
교주는 신도들에게 시켜서 가져온 종이비행기를 펴서 내용을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 혼자만 남고 나머지는 다 없애, 그러면 열쇠 줄게.]
스윽.
충격적인 내용인지 교주가 위를 올려다봤다.
“왜. 꼽냐?”
그냥 핵심 전력만 이탈시킬 거라고 봤다면 오산이었다.
고천수는 교주를 철저히 무너뜨린 뒤에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완전히 굴복시켜서 이쪽에서 원하는 바를 수월하게 받아낼 수 있을 테니까.
“탑에 계속 오르고 싶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와, 무섭.
-지금 다 죽이라는 거임?
-ㄷㄷ
다 죽이라고까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단신인 교주에게 그 정도의 힘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천수 님.”
가만히 교주를 지켜보고 있자니, 제나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든 것처럼 말했다.
“교주는 자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전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판단할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시킨 대로 다 몰살시킬까봐 걱정이라도 되는 건가?”
“조금 다릅니다.”
제나는 침음하고는 답했다.
“저쪽도 천수 님과 기 싸움을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 싸움이라.
상황이 이렇게 된 와중에도 기 싸움을 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해라.’
하지만 고천수는 오히려 그 점을 기대하고 있었다.
교주에게서 공략집만 습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건 기대할 수 없었다.
무려 탑에서 만난 경쟁자였다.
교주가 이 정도로 꺾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너도 어디까지 역량이 되는지, 보여줘 봐.’
싸움을 하려면 적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직 교주는 고천수가 예상하고 있는 수준의 뭔가를 보여 주진 않았다. 숨기고 있다면 그걸 꺼내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일까.
교주는 갑자기 권민주에게 뭐라고 속닥였다.
“인원을 집합시킨다! 전부 불러들여서 플랜B를 진행해라!”
-플랜B?
-뭐 하려는 거임?
-천수가 놀라진 않을지 모르겠네.
고천수는 시청자가 뭘 얘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곧 디엔드의 신도들이 뭘 하려는 것인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
“저건…….”
순식간에 몰려든 디엔드 신도들은 등반 장비를 꺼내 거의 수직이 된 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대기에 도달하고는 어떤 발사체를 활용해 반대편 다리에 밧줄을 연결했다.
“……!”
십 수 명의 단원들이 만든 밧줄이 도개교를 건널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걸 보며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과연!”
고천수에 의해 계획이 어그러져서인지 상당한 피해를 입긴 했지만, 역시 공략집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교주는 7층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천수 님, 내려가서 방해할까요?”
총으로 응전하면 디엔드 신도들의 이동을 조금은 방해할 수 있을 거라고 본 제나가 말했다.
하지만 고천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쪽 피해도 커져.’
교주가 둔 화력조가 다리 반대편에 총구와 포구를 겨누고 있었다. 포비아가 이번에 빠진 맨홀에서도 다시 올라올 수 있으면 모를까, 아직도 저쪽 숫자와 화력이 만만치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넘어올 때도 대비해뒀 잖아.”
교주만 계획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고천수도 디엔드를 방어할 생각은 다 했다.
‘교주는 죽지 말아야 할 텐데.’
붙잡아서 심문할 수 있을 때까지는 교주의 생존이 요망됐다.
물론 그렇다고 다리 반대편에도 폭탄이 있다는 얘기까지는 해줄 수 없었다.
디엔드 신도들이 피해를 입어야 이쪽에서 마주쳤을 때 어렵지 않게 상대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제나, 일단 이동한다. 단원들 준비시켜.”
흑구와 양민철 일행이 돌아오고 있었다.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할 셈이었다.
-그대로 가려고?
-교주한테서 얻어야 할 건?
-아니면 지금 어떻게든 죽이는 것도 방법일지도.
“잘못해서 죽도 밥도 안 되고 싶진 않습니다.”
공략법을 모르기는 하지만 이왕 앞지른 상태니 그걸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8층은 7층에 비해서는 무척 단순한 구조였다.
유리한 고지점을 선점한 뒤에 교주는 다시 상대해 봐도 될 일이었다.
‘흑구를 보고서도 멈춰 서지 않고 있으니까.’
교주는 이쪽이 몬스터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만한 전력이 없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지금 보인 게 다가 아닐지 모른다.’
흑구의 퇴치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면 격전 시 이쪽이 너무 많은 걸 잃게 될 수도 있었다.
흑구의 광견 모드는 이런 데서 쓰는 게 아닐 것이라는 추측에 좀 더 무게감이 쏠렸다.
-[한도초과] : 역시 천수야. 치고 빠질 줄 아네.
거기다가 한도초과까지 이렇게 돌려 말하는 걸 보면, 틀린 선택을 한 것은 아닌 듯했다.
“천수 님! 올라옵니다!”
고천수가 다시 8층의 입구로 돌아가자, 한 단원이 그렇게 외쳤다.
왈!
처음으로 보인 것은 다름 아닌 흑구의 모습이었다.
로데오를 하듯 온리베어를 태운 채 격렬하게 뛰어온 흑구가 고천수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래, 잘했다.”
흑구와 온리베어에게는 조금 무리한 지시를 내린 걸지도 몰랐다.
사실 근래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후원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시청자들이나 온리원을 향한 항의의 시위 의도도 있었는데, 둘은 천진하게 자신들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천수 님!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둘을 칭찬해 줄 시간도 없이, 고대하던 다른 인물들이 계단 위로 나타났다.
***
처음 양민철 일행이 마키나 단원들에게 보인 건 경계였다.
“디엔드?”
“디엔드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흐음.”
하지만 디엔드 신도들이라기엔 적의가 없었다.
온리베어도 ‘저건 마키나 단원들이야.’라고 적어 보이고는 흑구와 함께 먼저 사라졌다.
‘대체 뭐지?’
지영배를 봤을 때부터 양민철은 고천수가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게 됐다는 것쯤은 알았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의 파티를 예상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건 수십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무장을 하고 있는 수십 명이었다.
“뭐야, 고천수. 뭐랑 엮인 거지?”
“마키나라고 했나?”
“디엔드랑 적대 세력?”
일행들이 추측을 계속 흘렸지만 양민철은 멍하게 계속 발걸음을 움직였다.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양민철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고천수와의 만남으로 변할 수 있던 덕이었다.
“양민철 씨?”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자가 먼저 계단으로 내려와 양민철 일행을 맞았다.
“이쪽입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느낌상 고천수의 비서처럼 보였다. 김하령이 그녀를 보며 뭔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양민철은 계속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보게 된 광경.
“뭐야, 이건.”
마키나 단원들이라고 했던 이들이 한쪽으로 늘어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양민철 일행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그 끝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만나고자 했던 이가 그곳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양민철. 나 보고 싶었냐?”
재회.
고천수는 환한 미소와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