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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81화 (181/224)

181. 너도 한번 당해 봐 (1)

도개교가 내려가기 얼마 전, 교주는 결국 인원들을 먼 곳에까지 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각 간부의 인솔을 따라 이동하도록!”

권민주가 인원들을 나누는 것을 보며 양민철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시작됐네요.”

지영배라는 남자가 말한 대로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존재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른다는 거네.”

“그러게요.”

“우리끼리 뭉쳐 있으니까 똑같은 구역으로 가게 된다고는 해도 다리 옆에 있질 않으면…….”

일행들이 전부 우려를 표했다. 그건 양민철도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맞는 말이야. 다리를 건너려면 다리 옆에 남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운이 좋아서 남는다고 해도, 교주 또한 다리 근처에 있을 터였다.

양민철은 이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방법을 알려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양민철은 D구역에 남기 위해 인원 분류 작업 동안 최대한 눈치껏 일행들과 함께 뒤쪽으로 움직였다.

“거기.”

하지만 권민주의 눈에 띈 양민철은 더 이상 눈치 보며 숨어 있을 수가 없게 됐다.

“G구역으로 이동할 그룹에 참여해라.”

양민철 일행 전체가 다리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쪽으로 정해졌다.

“아이씨.”

상황이 꼬였다고 생각한 장서연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항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민철 일행은 G구역으로 가는 그룹에 포함됐다.

그 그룹을 이끄는 덩치 큰 간부 한 명이 나와 말했다.

“자, 꾸물거릴 시간 없으니까 빨리 빨리 움직이자고.”

그는 인원이 정해지자마자 곧장 G구역으로 모두를 인솔했다. 열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초조함이 그의 태도에서 묻어나는 듯했다.

“이제 어떡하지?”

장서연이 양민철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딱히 해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남자가 분명히 적절한 시점에 열쇠가 손에 들어올 거라고 했어.’

그렇다는 말은 반드시 열쇠를 찾게 설계를 해 두었다는 뜻이었다.

이쪽에서 무조건 발견할 수 있는 곳에 두었든지, 아니면…….

‘누군가 가져오든지.’

지영배는 자신이 할 수 없었던 트롤링을 누군가 했다고 했다.

이곳에는 누군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가 열쇠를 배달해 주려고 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천수 님이 여기 남아 계신 거 아닐까요?”

같은 생각을 한 김하령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분이라면 충분히 그런 발칙한 계획을 짜실 만하죠.”

“표현 참.”

장서연이 혀를 쯧하고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머, 일리는 있는 말이야. 고천수라면 여기 어디에 숨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지.”

“글쎄요.”

양민철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은 무리수를 잘 두긴 하지만 도박수는 잘 던지지 않아요. 자기 목숨이 걸려 있을 때 아니면.”

“그럼 누가 남아 있다는 거야?”

“아마도…….”

양민철은 장서연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형이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대리인.”

터무니없지만 있을 법한 추측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요.”

***

추측을 하긴 했지만 양민철 일행이 G구역에 다다르는 동안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쪽에 온 인원만 십 수 명.

간부가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자! 서둘러서 열쇠를 찾아라!”

어지간히 급했는지 조원을 제대로 짜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양민철은 자기 일행들끼리만 몰려다닐 수 있었지만, 문제는 할 수 있는 게 그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있잖아.”

장서연이 그런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만 있어도 되는 건가?”

고천수가 남았든 누가 남았든지 간에 열쇠를 전해 줄 사람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어떻게든이라뇨?”

“잘 봐 봐. 여기 같이 있는 사람들.”

장서연이 양민철에게 대답하며 주변을 가리켰다.

“우리처럼 억지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거의 절반 가까이 그런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

“진짜네.”

“다들 계속 뭉쳐 있어서 그렇게 된 거네요.”

기성현과 김하령이 각각 말했다.

“그래, 맞아. 올라오는 동안 다른 놈들하고 거리를 두고 있었어. 다들 이 상황을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지.”

장서연은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딱 봐도 이런 명령에 따르고 있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양민철, 그러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겠어?”

“예? 뭘…….”

“반란.”

장서연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간부만 하나 쳐 죽이면 해결돼. 그다음에 우리한테 동조하는 인원들만 생기면 바로 나머지를 제압할 수 있을 거야.”

무리한 제안. 양민철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될 수, 있을지도.’

장서연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쪽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동조를 할 것인가.

간부를 따르는 놈들에게는 위협적인 무기도 많이 들려 있었다. 그것만 보면 위축되기 딱 좋았다.

“무기부터 손에 쥐어야 돼요. 간부만 노려서는 소용없어요. 나머지가 우리를 총으로 쏴 버리려고 할 테니까.”

“그럼 무기 든 놈 몇부터 좀 끌어들여 볼까요?”

양민철의 말에 김하령이 나섰다.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더니 그녀는 총을 들고 있는 한 신도에게로 뭐라고 몇 마디 속삭였다.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도는 양민철 일행이 있는 구석진 곳까지 얌전히 다가왔다.

“뭐지?”

그러더니 신도는 양민철 일행을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주님이 나한테 몰래 따로 전하라고 했다는 내용이?”

교주.

신도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오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김하령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말하니까 따라오던데요.”

그랬다.

여기까지 얌전히 따라오기는 했지만 김하령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양민철은 신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젠장……!”

일은 벌어졌다.

양민철은 할 수 없이 신도를 붙잡고 입을 소매로 틀어막았다.

“읍?!”

놀란 신도가 들고 있던 총을 움직이려고 했다.

척!

그 움직임을 막은 건 장서연이었다.

“아이씨, 일을 이렇게 벌이네……!”

그녀는 신도의 팔을 꺾어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읍! 읍!”

신도는 계속해서 발악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양민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푹!

뭔가 꽂히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건 양민철이 신도에게 뭔가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 얌전히.”

김하령이 신도에게 주사기를 꽂은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약을 맞은 신도는 눈을 까뒤집고 곧 바닥에 쓰러졌다.

장서연은 김하령을 돌아보며 놀라서 물었다.

“……뭐야, 그 약은.”

“오다가 찾았어요.”

김하령은 쓸 만하지 않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후.”

뭐가 됐든지 간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장서연은 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워들었다.

“김하령, 몇 명 더 해 볼 수 있어?”

“네.”

무리한 요구일 수 있었지만 김하령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가 데려온 인원은 둘.

퍽! 퍼억!

조용히 붙잡아 끝낸 덕분에 총을 두 개 더 얻을 수 있었다.

“더는 안 돼! 눈치챈 것 같아!”

망을 보고 있던 기성현이 돌아와 말했다.

이제는 이것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철컥.

장서연이 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됐어, 이 정도면.”

그렇게 그녀는 걸어나가 간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헉, 헉…….”

양민철은 반항하던 마지막 신도까지 처치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다들 괜찮나요?”

그의 눈에 장서연과 김하령, 기성현의 모습이 다 들어왔다.

다행히도 그들에게서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기적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참.”

장서연은 주변을 돌아보며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이 전투를 시작하자 억지로 끌려왔던 사람들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총소리에 놀라며 혼비백산해 달아났던 것이다.

“찝찝하게 됐네.”

신도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양민철 일행에게는 방패막이 생겼다.

그 덕분에 간부를 죽이고 지휘관을 잃은 군인들을 차례차례 끝낼 수 있었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막을 수는 없던 것이다.

“자네들 총에 맞진 않았다고 생각하라고.”

기성현이 장서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누가 기습했는지 몰라서 죄다 쏴 버리던 건 저 죽은 놈들이잖아. 이쪽은 목표 살펴 두고 조준 사격했으니까 말이야.”

“저는 아닌데요.”

김하령이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그냥 다 쐈는데.”

“야야.”

장서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면서 총 쏘는 법 가르쳐줬더니 겁나 무섭게 써먹네. 너 오히려 이쪽에 재능 있는 거 아니냐?”

“감사해요.”

“아니, 칭찬이 아니잖아.”

실랑이가 생기자 양민철이 재빨리 나서며 말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총소리가 퍼졌으니까 누가 올지 몰라요. 일단 여기서 얼른 이동하도록 하죠.”

지지부진할수록 위험했다.

열쇠를 찾는 건 그렇다 치고, 일단은 여기서 이동해 다시 계획을 짜야만 했다.

“어서 이동을…….”

그러던 양민철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뭐지?’

개였다.

흑색의 진돗개.

그 위에는 하얀색 곰 인형이 타 있었다.

“뭐지?”

“개?”

장서연과 김하령도 흑구를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김하령은 흑구를 보며 뭔가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라? 저 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성현이 김하령에게 동조하며 말했다.

이상한 반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흑구는 그다지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양민철 일행을 보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냥 돌아다니는 개라면 굳이 공격할 건 없었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던 그때, 양민철은 곰 인형이 들어 올리는 종이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고천수.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

“내가 남긴 녀석이랑은 잘 만났는지 모르겠네.”

그 시각 8층의 입구.

고천수는 아직 단원들과 함께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천수 님, 먼저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제나가 물음에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진입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기다리기로 했어.”

“예?”

“어떤 게 더 유리한지 알아야겠으니까.”

교주는 고천수가 먼저 올라가서 길을 터 놓기를 기다렸다.

고천수를 이용한 것이었다.

‘날 이용해?’

교주는 이 탑에 대해서 어떠한 정보를 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네가 쥐고 걸 그대로 활용하게 계속 둘 수는 없지.’

탑은 8층이 끝이 아니었다.

고천수도 위로 안전하게 올라가려면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공략집은 현재 교주가 가지고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천수 님, 혹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휴한테 너도 들었을 거야.”

휴는 살인마를 다 죽이지 않았다.

하나는 맨홀 아래로 떨어뜨린 것뿐이었다.

“지영배가 그랬지. 그 살인마가 떨어진 곳은 빠져나올 수 있는 하수도 입구가 있는 곳이라고.”

포비아는 그 하수도를 돌아 결국에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올 거라는 게, 지영배가 알려준 내용이었다.

“내 옛 동료를 구하긴 해야겠지만 아무런 이득도 없이 구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겠지.”

교주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정면으로 상대해서 바로 죽이려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탑을 클리어할 수 있는 조건인 인원수를 줄이는 게 목적이었다.

디엔드의 신도 숫자만 줄여 놔도 교주는 이쪽과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실패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지금 자기는 건너오고 양민철 일행한테 맡기는 거잖아.

-천수, 용의주도하다고.

“기다리고 있어 봐. 내 동료들이라면, 내가 계획한 대로 해낼 테니까.”

고천수는 시청자에게 대답하듯, 제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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