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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80화 (180/224)

180. 희생자의 계획 (2)

‘고천수, 다녀가다……?!’

양민철은 크게 탄식을 흘렸다.

‘형의 이름이 어떻게……!’

언젠가 고천수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야야.”

“저기……!”

장서연과 김하령도 옆에서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양민철은 확신했다.

‘확실히 형의 이름이야!’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뭐지, 거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지만, 앞에서 걷고 있던 권민주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라도 발견한 건가?”

“아, 아니…….”

양민철이 아무것도 아닌 척하려고 했지만, 권민주도 그 문구를 봐 버리고 말았다.

“고천수, 다녀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교주 옆에 다가가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이런…….”

그 모습을 보며 양민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좀 더 침착했어야 했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적인 판단을 잘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실책이었다.

“너무 소란 떨지 말고 이동에 집중하도록.”

교주에게 말을 전한 권민주는 양민철 일행에게 주의를 한 번 주었다.

양민철은 고천수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문구가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딱히 더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걸음을 옮겼다.

“뭔데. 뭐였는데?”

다만 딴 데를 보다가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기성현만 뒤늦게 양민철에게 물음을 던져 왔다.

“……천수 형이요.”

양민철은 권민주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뒤로 빠져서는 말했다. 기성현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그렸다.

“천수 형?”

“잊진 않았겠죠? 버스 터미널에서 아저씨하고 만났던 사람.”

그제야 기성현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 사람? 그 사람이 왜.”

“쉿.”

양민철은 검지를 들어 올려 기성현을 진정시켰다.

“여기에 다녀간 흔적이 있어요.”

“뭐?”

“조용하라니까요.”

여기서 더 얘기를 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양민철은 일단 대화를 정리했다.

“나머지는 가다가 더 얘기해요.”

이후 양민철이 다시 입을 연 건, D구역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

D구역.

어떤 도개교 앞에 도착하자 권민주가 주먹을 쥐며 모두를 멈춰 세웠다.

“정지!”

그녀는 신도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다리가 위로 올라가 있어서 지금 당장 건널 수가 없다! 교주님께서 확인해 보라고 하시니 다들 여기서 대기하도록!”

몇 명의 다른 간부들과 함께 권민주가 자리를 떴다.

양민철은 남겨진 신도들이 다리를 보고 저마다 떠들기 시작한 것을 보며, 기성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아저씨, 괜찮으세요?”

“응? 뭐가?”

“다리 말이에요.”

기성현은 아직도 다리에 부목을 차고 있었다.

제대로 걷기 힘들었을 텐데 그대로 따라온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아, 이거. 이상하게 걸을 만해지던데. 처치를 잘 받아서 그런가.”

“애초에 부상이 심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고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형 얘기, 계속할게요.”

고천수인지 아닐지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고천수의 이름만 알면 누구나 그런 글귀를 적어 놓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고천수가 아니라면 그런 말을 적어 놓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양민철은 역시 고천수가 이 탑에 들어와 있다고 확신했다.

“천수 형이 먼저 이곳에 들어와서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문구를 남겨 놨고요. 무슨 뜻인 것 같아요?”

“글쎄.”

기성현은 턱을 매만지다가 답했다.

“깃발 꽂기 같은 거 아닐까?”

“깃발 꽂기요?”

“먼저 도착한 사람이 깃발 꽂기 같은 거 하잖아.”

실없는 소리에 양민철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저희가 시합을 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하고 있지.”

하지만 기성현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놈 보고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

그가 턱짓으로 가리킨 건 다름 아닌 디엔드의 교주였다.

“아.”

양민철은 순간 탄식했다.

‘확실히.’

디엔드는 이 탑에 있다는 ‘구원’을 바라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시합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이 탑에 있다는 것을 알면 신경이 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잠깐.’

그렇게 생각하던 양민철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디엔드는 6층과 7층 사이에 있는 계단에서 일정 시간 동안 대기했다.

왜 7층으로 바로 올라서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지나오면서 본 시체를 떠올리자니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왜 그래. 뭐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어?”

“……네.”

양민철은 기성현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교주는 이미 누군가 탑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것 같아요.”

그러면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던 게 이해가 갔다.

7층을 누군가 대신 클리어해 주고 난 뒤에 올라서려고 했던 것이다.

“그게 그놈인지도 알았다는 얘기야?”

“그것까지는 아니겠죠.”

그랬다면 권민주가 건물 벽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를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형이 도발이라도 한 걸까?’

교주는 탑에 먼저 올라간 인원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걸 눈치챈 고천수가 교주를 자극하기 위해 그런 문구를 적어 둔 것일 수도 있었다.

“……교주님!”

그때였다.

어떤 사무실 안에 들어갔던 권민주가 바깥으로 나와 외쳤다.

“열쇠가……!”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꽤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교주는 그런 그녀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둘이 다시 나온 건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다들 주목! 지금부터 이곳에서 열쇠를 찾는다! 뭐든 좋다! 열쇠처럼 생긴 것이면 모두 찾아서 보고하도록!”

갑작스러운 지시에 신도들이 급하게 움직였다.

“열쇠?”

“뭐지?”

“저 다리를 내릴 열쇠 말인가.”

그들의 대화를 듣던 양민철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열쇠……?’

권민주의 얼굴을 보니 뭔가 교주의 계획과는 다르게 된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라!”

그녀의 지시를 따라 신도들이 뿔뿔이 흩어져 주변 수색을 시작했다.

양민철도 일행들과 함께 주변 풀숲을 수색하면서 말했다.

“형이 열쇠를 빼고 간 걸까요?”

“아닐걸.”

장서연이 뭐라도 찾는 척을 하면서 답했다.

“그 녀석, 그 문구 적어 놓고 갔잖아.”

“다녀갔다는 거요?”

“그래.”

그걸 적은 건 도발이 아니라 진정용이라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그 녀석이 쓸데없는 도발을 할 리는 없어. 도발 목적도 있겠지만, 뭔가를 전해 두려고 한 걸 수도 있지.”

“뭔가를 전해 두다니, 그게 무슨…….”

“우리가 따라오는 걸 안 거야.”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양민철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따라오는 걸 알았다고요?”

“그래, 아마도.”

그러면서도 그녀는 어디까지나 추측임을 분명히 했다.

“교주도 누군가 먼저 올라갔다는 걸 알았어. 고천수도 똑같이 다른 집단을 경계하고 있었다면 우리를 목격했을 수도 있지.”

“먼저 탑에 올랐다고 해도요?”

“뒤늦게 목격하고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까.”

디엔드는 6층과 7층 사이에서 잠시 대기했다.

그런 만큼 뒤늦게 올라온 인원이 먼저 7층을 통과했어도 순서가 잘못되진 않았다.

“중요한 건 고천수가 그걸로 뭘 하려는가 하는 거야. 도발용이든 진정용이든 뭔가 있는 거겠지.”

“그럼 뻔하네요.”

여태 가만히 있던 김하령이 끼어들었다.

장서연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뻔하다고? 뭐가?”

“천수 님도 이쪽을 알아차리고 있을 수 있다면서요. 디엔드하고 우리.”

김하령은 고천수가 양쪽에 다 신호를 보내는 게 맞다고 해석했다.

“헷갈리게 하려는 거예요. 천수 님은.”

“헷갈리게?”

“네.”

지금 D구역은 도개교가 내려오질 않았다.

그리고 권민주는 열쇠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개교를 내리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한 것.

즉, 누군가 열쇠를 빼서 빼돌렸다는 뜻이었다.

“교주는 7층에 누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열쇠를 빼돌린 채 숨어 있다고요.”

그런 경우 ‘고천수, 다녀가다.’라는 문구는 완전히 도발이었다. 고천수는 갔지만 너희는 남을 거라는 뜻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양민철 일행에게는 희망적인 힌트일 수도 있었다.

“천수 님이 저희를 이곳에 고립시키고 갈 리는 없어요. 즉, 우리만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 자기 이름을 쓴 거예요.”

양민철 일행에게 고천수라는 이름은 흔적이었다.

고천수라면 자신의 이름이 동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힌트가 있을 거예요, 분명.”

“…….”

상황을 확신하는 김하령을 보면서 양민철은 숨을 삼켰다.

‘힌트?’

약간 떨떠름했다.

‘힌트라.’

고천수라면 양민철 일행을 살리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강구해 놓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이곳에서 열쇠라도 찾으라는 말일까? 이 많은 인원을 따돌리고 양민철 일행만 도망칠 수 있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죄송한데, 너무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기엔 여러 요소가…….”

턱.

그때였다.

양민철은 자신의 어깨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고 헉 하고 숨을 삼켰다.

“……!”

군복을 입은 웬 남자가 있었다.

장서연과 김하령, 기성현이 모두 남자를 보고 몸을 흠칫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나 해서.”

그 말에 양민철 일행은 모두 굳을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와의 연관성을 들키면 힌트고 뭐고 더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양민철은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예? 저희는…….”

“알아. 너 양민철이지?”

쿵.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양민철은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주시하고 있던 건가?!’

권민주의 지시를 받고 양민철 일행을 감시하고 있던 자일 수도 있었다.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장서연과 김하령은 모두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뭐지? 당신 뭐야.”

“무슨 목적입니까.”

“이런.”

남자는 한숨을 흘리며 말했다.

“겨우 이름을 말한 것 가지고 이렇게 흥분하면 너무 눈에 띄잖아.”

“당신……!”

“고천수.”

흥분하는 양민철 일행을 보며 남자는 서둘러 말했다.

“그 친구가 보내서 왔다.”

고천수.

그 이름이 남자의 입에서 나온 것을 보며 양민철은 살짝 탄식을 뱉었다.

“예?”

“고천수가 보내서 왔다고.”

그러면서 그는 장서연과 김하령을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장서연, 그리고 김하령 맞지?”

기성현을 제외한 모든 일행의 이름이 나왔다.

“나머지 한 명은 뭐지? 내가 들은 건 이 사람들 정도인데. 아, 누구 한 명 추가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 같기도.”

“기성현.”

기성현은 한숨을 쉬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게 내 이름이다.”

“아, 오케이.”

남자는 그런 건 크게 상관이 없다는 듯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고천수하고 아는 사이야. 그거면 설명이 될까?”

“잠깐.”

장서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가 당신을 남겨 뒀다고? 우리를 위해서?”

“정확히는 남겨 둔 게 아니지. 남을 수밖에 없던 거거든.”

하지만 남자는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고천수가 전한 내용이야. 더 노닥거리는 건 좋지 않을 테니까, 빠르게 전하도록 할게.”

그는 다리를 가리키며 지금 필요한 정보를 알렸다.

“저 도개교는 열쇠 네 개를 꽂고 돌려야 내려가. 그런데 지금은 열쇠가 3개밖에 존재하지 않지.”

한 개는 더 이상 사무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너희를 위해서 고천수가 하나를 빼 뒀어. 곧 교주가 열쇠를 찾기 위해서 인원들을 사방으로 보낼 거야. 너희는 그때를 노리면 돼.”

“그게 무슨…….”

설명이 뭔가 부족했다. 양민철이 그 부분을 지적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자기의 말만 빠르게 내뱉었다.

“시간이 없어. 나도 잡히기 전에 여기서 떠야 하거든. 열쇠는 필요한 시점에 너희 손에 들어올 거야. 내가 할 수 없었던, 트롤링을 할 수 있었던 놈이 가지고 오겠지.”

그게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참고로 내 이름은, 지금은 지영배다. 혹시 그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면 건투를 빈다고 전해 줘.”

그리고 도개교가 내려간 건, 이 시점으로부터 3시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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