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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79화 (179/224)

179. 희생자의 계획 (1)

무사귀환.

그건 분명히 이것을 보고 하는 말이리라.

“천수 님!”

“천수!”

최형식과 휴가 돌아온 광경을 보며 고천수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역시 제 역할은 하는 놈들이었네.’

솔직히 말해서 무사귀환이라고 하기에는 단원들의 피해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아니, 오히려 예상보다 더 나았다.

“남은 수는 얼마나 됩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최형식이 바로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바로 저희 쪽이랑 천수 님 쪽 확인해서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천수!”

휴는 고천수의 어깨를 붙잡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야, 멀쩡하구만, 생각보다 더!”

“나도 똑같이 생각하는 중이다.”

두 명의 살인마를 맞닥뜨렸다면서 휴는 별다른 부상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상한 지팡이까지 들고 있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지팡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근데 어떻게 한 거냐? 보니까 여기 앞에 살인마가 셋이나 쓰러져 있던데.”

“아, 그거?”

휴의 물음에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다 잡았다.”

“진짜냐? 대박인데, 이거.”

휴가 잡은 살인마는 둘.

거기다가 하나는 없애버린 것도 아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주변의 놈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고천수는 총 5명의 살인마와 맞닥뜨린 듯했다. 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나보다 더 재능이 있는 놈일지 모르겠어.’

개인 대결이라고 생각한다면 밀린 거긴 했지만, 지금 휴에게 고천수는 팀원이었다.

팀이 다른 살인마 팀과 싸워 이겼다고 한다면 단순하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휴, 할 얘기가 있다.”

그 와중에 고천수가 어딘가로 손을 뻗었다.

“지영배 씨를 소개해 줄게.”

그러자 지영배라고 불린 남자가 걸어왔다.

휴는 그를 보며 바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영배?”

“야야.”

바로 칼을 꺼내드는 휴를 만류하며 고천수가 말했다.

“동명이인이야, 동명이인.”

“동명이인이라고?”

“이 마을에 지영배가 좀 많대.”

그 말에 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름이 많다고?”

-ㅋㅋㅋㅋㅋ야, 거짓말을 좀 엔간한 걸로 하면 안 되냐?

-이건 속기도 힘들겠다.

-너무 뻔뻔해서 오히려 넘어갈 것 같기도 한데.ㅋㅋ

다른 걸 지어낼 기운은 없었다.

고천수는 그냥 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 이름 같은 거 신분증으로 다 확인했어.”

“정말이냐? 나도 보여 줘.”

“싸우다가 개가 먹어 버려서 어쩔 수가 없다.”

그러자 휴는 칼을 치켜들었다.

“내가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해 볼게. 갈라서.”

“아서라.”

고천수는 흑구를 가리켰다.

“내 개가 먹었다.”

“…….”

“농담이고, 다른 개가 먹긴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정말 내가 다 확인했으니까. 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는 말에 휴는 머리 위로 다시 물음표를 그렸다.

“더 중요한 얘기?”

“그래, 우리 뒤를 쫓아오는 놈들에 대한 거야.”

아직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디엔드는 아직 8층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8층으로 올라갔다면 여기에 머물고 있는 지영배가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아니면 적어도 이 도개교에는 흔적이 남아있을 터.

아직까지 도개교가 내려가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만큼, 디엔드는 6층과 7층 사이 계단, 혹은 6층에 그냥 대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탑에 들어갔던 놈들이 우리보다 늦게 뒤처지게 오고 있어.”

“그건…….”

“의도적으로 그러고 있는 거야.”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열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보복은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우리가 일은 다 해 놓고 도개교까지 열고 가 버리면 완전히 죽 쒀서 개 주는 일이잖아.”

“그렇긴 하네.”

새로운 얘기에 완전히 몰입한 건지 휴는 지영배는 아랑곳 않고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면 우리가 건넌 뒤에 다리를 어떻게 무너뜨려 볼까? 아니면 넘어온 다음에 함정에 휩쓸리게 하든지 말이야.”

“뭐, 나도 그런 생각을 좀 하긴 했는데…….”

고천수는 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양민철이 거기에 끼어 있단 말이지.’

디엔드 신도들 사이에 양민철 일행이 끼어 있었다.

대체 어쩌다가 거기에 들어가게 된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그놈들과 뜻을 함께해서 동행하고 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다리를 끊어 놓으면 양민철 일행도 여기에 갇히게 돼.’

고천수의 최종 목적은 탑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괜히 구해 주려다가 일을 아예 그르치는 짓은 하면 안 됐다.

-양민철 때문에 그러지?

-천수가 누구 살리고 싶어서 고민을 다 하네.

-양심적인 척하는 거임?

“그런 거겠습니까, 형님들?”

양민철은 초기 때부터 함께한 절대적인 우군 중 하나였다. 게다가 손발도 잘 맞는 편이었고.

아직 남아 있는 탑의 층수를 생각한다면, 그런 전략적인 우군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에이.”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고천수에게는 선택이 필요했다.

“사실 내가 아는 애들이 거기 끼어 있어서 잠깐 고민 좀 해 봤어.”

“아는 애들?”

“처음에 나랑 같이 다니던 애들이야. 같이 올라가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여길 끊어 놔야 하면 어쩔 수 없지.”

결국 고천수가 체념하려고 하니, 갑자기 지영배가 손을 들었다.

“저기…….”

“응?”

“혹시 말이야, 그 인원들이 몇 명 안 되면 내가 좀 도와 볼까?”

고천수와 휴, 두 사람의 눈길이 지영배에게 쏠렸다.

지영배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혹시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 누군지 알려줄 수 있어?”

***

7층의 또 다른 입구 안쪽.

그곳의 계단에는 디엔드 신도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자, 다들 주목!”

모두가 언제 올라가는지를 기다리던 그때, 포니테일 여성이 나와 외쳤다.

“이제 곧 5분 뒤에 출발한다! 다들 서둘러 채비를 마칠 수 있도록!”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자신을 소개하기를, 여성의 이름은 권민주이고 교주의 비서 겸 호위를 맡고 있다고 했다.

“뭐, 5분?”

“갑자기 가자고 하네.”

“뭔가 좀 찝찝하네요.”

일행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난 양민철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멈추더니 또 갑자기 가자고 그러네.’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위 7층에서 뭔 일이 일어났다는 것쯤은 양민철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위에서 폭음이 나고 사람들의 소리도 들렸던 것이다.

‘누군가 또 탑에 있어.’

괴물이 흉내 낸 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쪽에서 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에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애초에 이 탑에 이 인원만 들어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들 준비됐나?”

그 와중에 아직 5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권민주는 뭐가 그리 급한지 신도들에게 금방 지시했다.

“이동을 재개한다! 다들 앞으로!”

그녀에게 떠밀린 신도들은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그 중에는 양민철 일행도 포함돼 있었다.

“우와. 뭐야, 이거…….”

7층의 풍경을 확인한 장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마을이잖아, 여긴.”

그 말 대로였다.

어디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음침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 펼쳐져있었다.

“……발자국.”

양민철은 시선을 돌리다가 이곳에 남아있는 발자국을 확인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M구역.

근처의 표지판에는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치이이익! 누구 듣고 있는 사람 없나?』

그때, 근처에 있던 차량 진입로 통제기 옆, 부서진 사무실에서 무전이 들려왔다.

『누구, 듣는 사람 없나? 여기는 D구역!』

다들 듣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질 못했다.

저기에 응답해도 되는지는 일개 신도들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뚜벅뚜벅.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비서 권민주와 함께 교주가 천천히 걸어왔다.

딸깍.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 무전 수화기를 잡아들었다.

『여기는 D구역! 정체불명의 놈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다! 열쇠를 찾아서 이곳의 다리를 내려야…….』

“…….”

교주는 잠시 동안 가만히 무전을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사무실에서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녹음된 소리다. 이미 정리는 끝났겠지.”

지켜보고 있는 양민철의 입장에서는 뭐가 정리됐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권민주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진행이라는 것은 빠르게 이 마을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추가로 어떤 지도를 찾아온 권민주가 그걸 교주, 그리고 주변의 연구원, 덩치들과 공유했다.

“간부들끼리만 얘기하니까 뭔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지.”

장서연이 작게 투덜거렸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도 없으니까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같은 생각입니다.”

김하령이 주변으로 고개를 획획 옮기며 말했다.

“엄청 기분 나쁜 곳이에요. 어디서 피 냄새도 나고요. 사람 살리는 입장에서 이런 냄새는 상당히 불쾌해요.”

“굳이 뭔 입장이 아니어도 불쾌하지. 나도 별로야.”

일행들의 대화에 한숨을 쉬며 기성현이 말했다.

“뭐가 됐든 대전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나아 보여서 온 건데, 점점 뭐가 뭔지 모르겠고 말이야.”

디엔드는 수뇌부와 신도들 간의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

필요한 정보는 수뇌부들끼리만 교환하고, 일거리가 있을 때만 신도들에게 지시하는 방식이었다.

일단 이곳에 들어온 이상 신도들은 충성도를 떠나서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수뇌부를 거역하기 어려웠다.

모든 건 다 저들끼리만 쥐고 있었다.

‘천수 형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저돌적인 그가 있었다면 이미 교주 무리와 한바탕하고도 남았을까?

어떻게 됐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질질 끌려 다니지는 않을 것이었다.

‘젠장, 근데 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정보라도 조금 빼낼 수 있으면 그걸 기반으로 계획이라도 짜 볼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끌려 다니는 게 다였다.

“자, 이동!”

권민주의 지시 아래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전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D구역이 유력해 보였다.

‘대각선으로 이동하고 있어.’

출발지는 M이었다. 그걸로 유추해봤을 때 D구역은 북쪽에서 약간 동쪽으로 틀어진 곳에 존재하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읍! 으아아아아!

가는 도중에 한 건물 안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모두가 놀라 움츠러드는데, 권민주가 신도들 몇을 확인 차 보냈다.

건물은 과학관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신도들 중 하나로 포함된 양민철은 조심스레 그곳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읍! 으읍!”

복도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몇몇 공간에 사람들이 붙잡힌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저, 저 사람들 뭐지?”

“글쎄.”

“빠, 빨리 끝까지 확인하고 나가자고.”

하지만 더 이동해도 건질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지 화학 약품이 가득한 곳에 웬 남자가 죽어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교주님, 살인마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권민주가 돌아온 신도들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교주에게 전했다.

교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신도들을 다시 이동시킬 뿐이었다.

“야, 뭐 본 거야?”

장서연의 물음에 양민철은 본 것들을 다 말해 주었다.

일행들은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불안한 표정만 지었다.

그렇게 몇몇 장소를 돌아보며 얼마나 지났을까, 양민철 일행은 지나가다가 어떤 집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 다녀가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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