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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77화 (177/224)

177. 희생자는 길을 알고 있다 (6)

“왜?”

고천수가 반사적으로 물으려니 휴는 나지막이 답했다.

『아냐, 잠시 잘 안 들렸어.』

“그래?”

『아, 그건 그렇고 너한테만 해 둘 얘기가 있는데. 잠시 괜찮나?』

갑자기 왜 그러나 싶었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고천수는 주변을 멀리 물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무슨 일인데?”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나갔지? 내 목소리 못 들을 정도로.』

“그래.”

『좋아. 그럼 바로 경고할게.』

휴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지영배 조심해.』

“뭐?”

예상외의 발언에 고천수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몰라.』

“근데?”

『봤거든.』

휴는 왜 자신이 이런 얘기를 하는지 바로 털어놓았다.

『지영배라는 명찰을 달고 죽어 있는 사람. 두 눈이 파인 채로.』

“……!”

죽어 있었다니, 동명인 사람이 말인가.

“그게 무슨……. 정말 지영배였어?”

『확실해.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물론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 네가 모르지는 않겠지.』

“하.”

그야 이런 곳에서 의미 없이 동명이인일 확률은 낮을 테니까.

게다가 지영배는 그렇게 흔한 이름도 아니었다.

『왜 데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처리해. 그게 좋을 거야.』

“흠.”

『이만 간다. 좀 이따 보자고.』

당연히 그렇게 할 거라 믿는다는 듯 휴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진짜 쉽지 않고만.’

고천수는 두통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도와준 사람이라 데려왔더니 뭔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지영배 씨.”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고천수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 지영배에게 손짓했다.

-진짜 죽일라고?

-아직 가능성일 뿐인데?

-뭐, 네 입장에서는 겁나게 찝찝하겠지만 말이야.

시청자들의 말 때문에 더 찝찝해졌다.

고천수는 지영배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문을 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려던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지영배 씨, 살인마들을 목격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죠?”

“예? 아, 예.”“그럼 도살자, 체인킬러, 사육사에 대해서 아는 대로 얘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지영배는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그렸다.

“아, 제가 만든 네임이라 헷갈리시나 보군요.”

“아닙니다! 지금 막 이해했습니다!”

어차피 특징을 뽑아서 만든 명칭이었다.

이내 알아들은 지영배가 얼른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대로만 말씀드리면 되겠죠?”

“예, 편하신 대로.”

“그럼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영배는 지금 고천수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인마들에 대한 정보를 나열했다.

“도살자는 큰 칼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다닙니다. 중식을 만들 때 쓰는 칼보다 좀 더 큰 칼요. 던져 대기도 잘하는데, 그럼 어디선가 또 칼이 생겼습니다.”

“체인킬러는요?”

“그 녀석은 엔진 톱을 들고 다니는 놈인데, 톱을 켜고 있을 때는 누가 공격해도 안 멈추더라고요.”

“사육사는?”

“큰 괴물 개를 세 마리나 끌고 다녀요. 괴물 개들은 엄청 강하고 총은 안 먹혔어요. 근데 더 큰 문제는 사육사가 든 총에 든 진정제를 맞으면 다른 동물도 그놈 것이 된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 필요한 정보는 획득했다.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더 얘기할 부분이 있습니까?”

“음, 다 얘기한 것 같습니다. 이게 끝이에요.”

“그렇군요.”

고천수는 지영배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그럼 더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군요.”

“예? 고천수 씨, 갑자기 분위기가…… 큭?!”

고천수는 지영배를 붙잡아 벽 쪽으로 밀쳤다.

놀란 지영배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고, 고천수 씨?! 왜!”

“왜냐고요?”

고천수는 그의 목을 팔로 밀어붙이며 말했다.

“제 친구가 지영배 씨랑 똑같은 이름의 사람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예?”

“그것도 두 눈이 파인 채로 말이죠.”

곱게 죽은 사람은 아니었다.

살인마가 잡아 죽인 것이었다.

“우연이겠습니까? 전 걸리는 부분이 좀 있는데.”

“예?”

하지만 지영배는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이름이 같은 거겠죠!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런 장소에서 이름이 같기는 어렵겠죠. 지영배 씨도 이미 아시겠지만, 여긴 정상적인 동네가 아닙니다.”

이런 걸 그냥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크윽! 고천수 씨! 잠깐 진정하고…….”

“지영배 씨, 죄송하지만 죽어 줘야겠습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그냥 처단하는 게 나았다.

고천수는 지영배의 목을 더 세게 눌렀다.

“자, 잠깐……!”

지영배는 발버둥 쳤다.

그러다가 순간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고천수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라고, 고천수!”

그게 굉장히 절박한 목소리였다는 점은 떠나서, 고천수는 지영배가 뱉은 다음 말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플레이어……!”

힘을 다 짜내서 한 말이어서인지 딱히 맥락은 없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지영배의 목에서 팔을 살짝 풀어 주었다.

“뭐야.”

그 말은 지영배가 알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말을 한 거지?”

-지영배, 이거.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저지르네.

저질렀다.

그 표현이 채팅창에 보였다.

“형님들, 무슨 소립니까.”

-글쎄.

-이미 지영배가 다 까발리기로 한 거 같으니까 우리도 말해도 되지 않아?

-그래도 순서대로 해야지.

지영배에게 직접 들으라는 소리였다.

고천수는 다시 지영배에게 집중하며 물었다.

“지영배, 방금 한 소리 뭐야.”

이미 일은 저질렀다.

더 이상 존대할 것도 없이 고천수는 그를 노려보았다.

“……말 그대로지, 뭐야.”

지영배의 표정도 바뀌어 있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플레이어잖아, 너.”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

NPC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네.”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뭔데 네가 그걸 알고 있는 거야? 정체가 뭐냐?”

“흥분하지 마.”

흥분할 얘기를 꺼내 놓고도 지영배는 오히려 차분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걸 내려놓은 것 같기도 했다.

“지금 가장 심란한 건 바로 나야.”

“뭐?”

“내가 뭐 때문에 너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영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플레이어였어.”

***

누군가 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고천수도 생각은 해 왔다.

그도 그럴 게 이 게임은 고천수가 최초로 플레이한 게 아니었으니까.

처음 튜토리얼 구간을 돌파할 때 최단 시간이라는 말이 나왔던 걸 보면, 다른 플레이어가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너도 플레이어였다고?”

다만 지금 시점에 등장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그래.”

지영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건 내가 플레이어였다는 사실하고 내가 어떻게 여기 존재하는지 정도야. 다른 건 잘 몰라.”

“농담이라면 끝이 좋지 않을 거야.”

“왜 농담을 하겠어. 애초에 농담으로 할 수 있는 거야? 네 정체를 아는 거?”

고천수가 대답하지 않자 지영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너야말로 날 어떻게 알아챈 거야. 평범한 놈이 아닌 거.”

“너랑 이름이 같은 시체가 있었다.”

“아.”

지영배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것 때문이었나?’

시체의 이름을 보면서 다니는 사람은 여태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거리에서 본, 곧 죽을 사람의 이름을 가져다가 쓴 것뿐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어이없이 들킬 줄은 몰랐네.”

“어이가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니지.”

고천수는 여전히 지영배를 풀어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네가 플레이어였다는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을 필요가 있겠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영배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세하게 듣고 싶다고 해도 내가 알려 줄 건 별로 없어. 난 그냥…….”

콰드드드득!

갑자기 밖에서 뭔가가 작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고천수는 이내 다시 지영배를 쳐다보았다.

“나 아니야.”

당연했다.

고천수는 지영배를 밀쳐 놓고 사무실 바깥으로 나왔다.

“으아아아!”

“천수 님!”

“살인마입니다!”

크아아아아!

살인마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있었지만 정작 보인 것은 도사견으로 보이는 개 한 마리였다.

크아아아!

크아!

아니었다.

세 마리였다.

-케로베로스임?

말마따나 지옥견이 떠오를 정도로 사나워 보이는 개들이 사무실 근처에 있는 울타리를 물어뜯고 달려오고 있었다.

‘사육사!’

그 뒤에 있는 것은 포획용 총을 하나 들고 있는 남자였다.

위잉! 위이잉!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에 엔진 톱을 들고 쫓아오는 이가 있었다.

‘체인킬러도?’

이쯤 되면 다른 살인마도 뒤따라왔을 거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역시나!’

피 묻은 앞치마를 걸친 채 이쪽으로 다가오는 뚱뚱한 남자도 있었다.

도살자였다.

-여기에 다 몰렸네.

-원래 살인마 몇 안 남으면 이렇게 될걸.

-하필 이쪽으로 다 왔네.

불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고천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휴가 있는 쪽으로 갔으면 합류가 늦어질 수도 있었다.

어차피 시간을 끌 거라면 여기가 나았다.

“골치 아파졌네.”

어느새 따라 나온 지영배가 고천수를 향해 말했다.

“근딜, 원딜, 지원가 파티잖아. 묶음 조합으로 등장해 버렸어.”

“…….”

“그렇게 보지 마.”

지영배는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나중에 다 설명할 테니까, 일단 앞에 있는 적한테 집중하자고.”

“나중에 다 얘기하긴 해야 할 거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던 것인지, 고천수는 그에게 자세하게 들을 필요가 있었다.

“고기! 고기!”

험악하게 외쳐대는 도살자를 보며 단원들이 고천수에게 물었다.

“천수 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총부터 갈길까요?!”

체인킬러는 톱을 켜고 있으면 저지 불가에 개들도 총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영배가 말한 대로 까다로운디 어케 상대하지?

-얘네 셋 조합 꽤 저돌적인데.

-쓰읍.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일단 그가 말한 내용은 확실했다.

고천수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전원 칼 꺼내세요!”

적어도 달려드는 개들은 봉쇄해야 했다.

‘광견을 사용하는 게 좋을까?’

살인마들은 몰라도 개를 상대하는 것은 괜찮을지 몰랐다.

애초에 괴물 같은 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고천수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육사에게 진정제를 맞으면 흑구를 빼앗길 수 있었다.

그러니 통제가 어려워지는 광견 상태로 만들 수는 없었다.

크아아아아!

생각하는 사이 개들이 달려들었다.

크르르!

곁에 있던 흑구는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어 개 한 마리를 물고 뒹굴었다. 나머지 개 두 마리는 단원들에게 향했다.

“끅!”

“끄아아악!”

칼을 들고 있었음에도 개들에게 당했다. 고천수는 흑구에게 진정제를 맞추려는 사육사를 향해 총을 들었다.

타앙!

총에 맞은 사육사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사이 도살자가 큰 칼을 하나 고천수에게 내던졌다.

“이런……!”

엄청난 정확도였다.

머리를 뒤로 빼 겨우 칼에 스친 고천수가 총을 다시 들어 올릴 때였다.

콰직!

또다시 날아온 칼에 고천수의 총이 박살났다.

“이 새끼가!”

고천수는 총을 박살내고 땅에 박힌 칼을 뽑아내 도살자에게 던졌다.

위이이잉!

하지만 칼은 도살자에게 닿지 않았다.

체인킬러가 휘두른 톱에 맞고 나가떨어졌을 뿐이었다.

“제기랄!”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나오면 대응하기가……!’

여태까지는 한 마리씩 상대하면서 약점을 파악하고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오면 뭘 어떻게 파악하고 공략하란 말인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기본적인 약점이긴 하겠지만 그걸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 트래퍼 때처럼 그걸 그대로 되돌려 먹이기가…….

“아.”

고천수는 순간 탄식했다.

조합.

서로가 서로를 도운다.

이들이 한 묶음이란 것을 떠올린 고천수는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래, 한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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