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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74화 (174/224)

174. 희생자는 길을 알고 있다 (3)

“저는 여기에서 태어났어요.”

합류한 지영배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을 밖에 나간 적도 없이 컸죠.”

설정된 이력일 터.

하지만 고천수는 그 이력에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처음부터 이 탑에 살고 있었다는 얘깁니까?”

“탑?”

고천수의 물음에 지영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탑입니까?”

“몰랐던 모양이군요.”

“예……. 마을이 어딘가에 갇혔다는 건 알았지만요.”

지영배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고천수 덕분에 의자에서 풀려난 지영배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제나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총알이 스친 상처가 작진 않아서 이따금씩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는 일단 고천수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느 순간 마을이 어두워지더라고요. 주위를 둘러봤더니 지금처럼 돼있었죠.”

“살인마들이 나타난 것도 말입니까?”

“후. 그놈들 다 봤나요?”

지영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잡아서 죽이고 있어요. 무슨 끔찍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감이 잘 안 됐어요.”

“보신 살인마들을 다 기억하십니까?”

“음…… 글쎄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지영배는 천천히 기억을 꺼내놓았다.

“고기에 쓰는 칼 들고 다니는 놈하고 전기톱 쓰는 놈이랑 웬 개들을 끌고 다니는 놈이요. 아, 그리고 피눈물 흘리고 다니면서 이상한 전등 들고 다니는 여자도 있는데 건들지 마세요.”

“전등?”

“그 여자 근처에 생기는 노란 바닥만 밟아도 이상한 공포감을 갖게 하는데, 직접 건들기까지 하면 자기 두 눈을 스스로 뽑게 만드니까요.”

-듣기만 해도 섬뜩하네.

-난 섬뜩한 게 좋음.

-[한도초과] : 으.

시청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고천수는 지영배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살자, 체인킬러, 사육사, 포비아.’

대충 어떻게 부를지를 정해봤다.

앞에 만났던 재단사와 지영배의 친구인 트래퍼를 합하면 총 여섯.

하나는 최형식이든 휴가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전반적인 살인마는 전부 파악한 셈이었다.

“……근데 그렇게 많은 살인마를 만나고도 살아계신 겁니까?”

갑자기 의문이 든 고천수가 묻자니 지영배는 헛웃음을 흘렸다.

“원래라면 죽었겠죠. 근데 역시 제 친구가 만만치 않은 놈이어서요.”

“쫓아내준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 답하며 지영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다른 살인마들을 쫓아내주고, 지영배 씨한테는 왜 그런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이미 미쳐버린 놈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뭐, 제 딴에는 이렇게 잡아두는 게 더 안전하다고 여긴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드하네.

-걔랑 친구되면 천수도 의자에 묶일 수 있는 거임?

-묶이는 거 좋아하냐?

뭐가 됐든지 간에 고천수에게는 성가신 적일 뿐이었다.

“지영배 씨, 그럼 역시 도움을 좀 받아도 되겠습니까?”

총에 다친 걸 보면 트래퍼는 아니었다.

게다가 지영배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열쇠를 얻는 것도 어려웠을 터.

좀 더 도움을 바라도 되는 상대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네. 아무리 제 친구였어도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게 만들 순 없죠.”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다행이네요. 제 동료들도 몇 당했거든요.”

“예? 정말입니까?”

지영배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 자식…… 점점 더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건가.”

“천수 님, 치료는 다 끝냈습니다.”

지영배의 붕대를 마저 묶은 제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아서 이 정도로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고천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지영배가 제나를 돌아보며 고마움을 전했다.

“덕분에 별 탈은 없겠네요.”

지영배는 긍정적이었다.

자신을 다치게 한 건데도 별다른 원망도 의심도 갖지 않았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고천수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찾았다.”

M구역.

최형식은 관리소에서 하나의 열쇠를 찾아냈다.

“후, 그래도 기대만큼은 하게 된 건가.”

다시 밖으로 나온 최형식이 찾아야 하는 열쇠는 총 두 개였다.

그중에 하나를 찾았으니 벌써 반이나 일을 진행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대각선으로 한 구역만 더 옆으로 가면…….”

다른 구역에서 열쇠를 하나 더 찾아낼 수 있었다.

“병장님.”

“잠시 쉬었다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인원들이 지쳤습니다.”

하지만 단원들이 너나할 것 없이 휴식을 요청했다.

까마귀 가면을 쓴 놈이 한 번 헤집어놓고 간 뒤, 단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몸만 지쳐서 그런 건 아니야.’

최형식이 본 단원들은 정신적으로 공포감에 짓눌린 듯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지금 이 근처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붉고 어두운 하늘.

단원들 주변에 있는 노란 전구의 가로등들이 근처를 비추고 있었다.

그만큼 밤은 아닌 듯한데 어둡고, 정체를 모를 사람이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심신이 안 지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

하지만 최형식은 단원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을 잊은 거냐?”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서둘러 열쇠부터 모아야 했다.

열쇠가 없으면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단원들 대부분이 7.5사단 출신이다. 몬스터하고도 몇 번이나 싸웠던 놈들이 왜 다 와서 죽어가는 소리를 내는 거야.”

“병장님.”

하지만 단원들은 우는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예, 여기가 끝이 아닐 거라고요.”

“끝까지 몇 명이나 살아서 갈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던 최형식이 진땀을 흘렸다.

“뭐야, 너희들.”

그냥 공포감에 질렸다고 하기에는 반응이 좀 이상했다.

“병장님, 쉬었다 가시죠.”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닐 겁니다.”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단원들의 눈덩이가 점점 더 초췌해졌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형식은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내렸다.

“뭐, 그, 그렇다면 잠시 여기서 휴식을…….”

“아니지, 아니야.”

그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고개를 저으며 나타났다.

“……!”

놀란 최형식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너, 너는!”

“안심하세요, 최형식 병장님.”

그렇게 답한 이는 곧장 가면을 내리며 인사를 올렸다.

“접니다, 저.”

짐짓 반가운 척 미소를 그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휴였다.

“휴…… 씨?”

“예예, 바로 알아보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네요. 옷도 그대론데.”

그 말에 최형식은 휴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방독면만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을 뿐이지 여전히 아까 전에 봤던 비닐옷을 입고 있었다.

“그건?”

하지만 까마귀 가면과 더불어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명백히 휴의 것이 아니었다.

“아, 이거요? 별 거 아닙니다. 전리품으로 좀 챙겨왔죠. 가면은 뜯어내는데 고생 좀 했지만.”

“서, 설마!”

그렇다면 휴는 그 까마귀를 혼자서 잡아냈다는 소리였다.

“혼자서 해치우신 겁니까?”

“뭐, 다른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휴는 까마귀 가면을 흔들면서 말했다.

“혹시 이거 가지실래요? 지팡이는 뚜껑까지 챙겨와서 갖고 다니기 편한데, 이 가면은 영 거슬려서.”

“저기.”

순간, 단원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놈은 정말 죽었습니까?”

“음?”

“동료는 없었나요?”

단원들은 갑자기 걱정이 된다는 듯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누군가 복수하러 올지도 모릅니다.”

“동료가 죽은 걸 알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숨겨진 미친놈들이 더 있을지 모릅니다.”

나름 합리적인 의견.

하지만 휴는 그런 단원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답했다.

“뭐, 그럴지도 모르죠. 몇 놈이 더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럼……!”

“우리 지금 엄청 위험한 걸지도 몰라요! 다 죽을지도…….”

“쉿.”

휴는 검지를 들어 입술에 올렸다.

“진정하시길.”

단원들이 내고 있는 의견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휴가 넘어가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지금 다들 너무 되는 대로 떠들고 있잖아?”

단원들은 하나같이 초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게 벌써부터 쫓기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직 역병의사를 잡았기 때문에 생긴 여파는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들이 대부분 훈련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집단적이고 일관적인 공포심은 조금 이상한 것이었다.

“최형식 병장님.”

휴는 지팡이를 돌려잡으며 최형식에게 물었다.

“혹시 뭐 이상한 거 못 느끼고 계십니까?”

“이상한 거…… 말입니까?”

“단원들 말입니다.”

그 말에 살짝 숨을 삼킨 최형식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도 뭔가 이상하다는 점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다만 뭐가 어떻게 됐는지를 모를 뿐이었다.

“제가 까마귀를 상대하면서 보니까, 녀석은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더군요. 폭발에도 총에도 멀쩡했습니다. 상식 밖의 존재라는 거죠.”

“예?”

“병장님, 근데 애초에 이 탑 자체가 상식 밖인데, 그렇게 상식적으로 휴식이나 주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휴는 최형식을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최형식이 보기에는 그런 휴도 충분히 비상식적으로 보였다.

“아래를 보세요.”

그런 최형식이 안타깝다는 듯, 휴는 지팡이로 바닥을 가리켰다.

“아래……?”

최형식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

“색이 다릅니다.”

휴는 지팡이로 최형식이 서 있는 곳과 단원들이 서 있는 땅을 번갈아 가리켰다.

“가로등 때문에 노란 게 아니란 말이죠.”

그제야 최형식은 탄식을 뱉었다.

단원들이 서 있는 땅이 노랬다. 근처에 가로등들이 유독 촘촘하게 늘어서 있고, 주변이 완전히 밤처럼 어둡지는 않아서 색이 어설프게 대조돼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화, 화학무기?”

“또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휴는 노란색의 바닥에 서 있는 단원 중 한 명을 붙잡아 끄집어냈다.

“……응?”

바깥으로 나온 단원은 최형식과 휴를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죠? 기분이…….”

“나아졌습니까?”

휴는 키득거리며 답했다.

“아무래도 정답이었나 보네요.”

“이, 이런…….”

최형식은 단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 다들 거기서 나와! 빨리!”

“예? 왜…….”

“별 이상할 건 없는데요.”

다행히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단원들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천천히 노란 바닥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응?”

“뭐지?”

“이상해.”

밖으로 나온 단원들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후, 후우.”

최형식은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란 바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밟고 있었으면 어찌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앞으로 뭐가 또 있을지는 모르니까.”

꿀꺽.

최형식은 다시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여기서는 열쇠를 찾아 빠르게 가야 할 듯 싶었다.

“자, 다들 이동! 열쇠를 찾고 천수 님과 만난 뒤에, 그때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

그렇게 급하게 단원들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자니,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지?’

울음소리는 가로등이 늘어선 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역시 멀쩡히 지나가기는 글렀다는 소리죠.”

휴는 지팡이를 짚고 걸으며 여전히 즐겁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최형식은 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순간 멈칫했다.

“헉……!”

사람 하나가 나무 옆에 죽어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두 눈을 뽑은 상태로.

“이런 시발…….”

나무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던 직원인지, 유니폼을 입은 그의 가슴에는 카페 로고와 함께 매니저 지영배라고 쓰인 명찰이 달려있었다.

“어, 얼른 가자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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