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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73화 (173/224)

#173. 희생자는 길을 알고 있다 (2)

“자, 잠깐! 저도 여기서 구해 주세요!”

위층에 있는 남자가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고천수가 알 바 아니었다.

“뭐 해, 온리베어! 빠르게 가지고 와!”

고천수의 외침에 곧 온리베어가 작은 발걸음으로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한다는 짓이,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ㅋㅋㅋㅋ 주기 싫은가.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ㅋㅋㅋㅋㅋㅋ

진짜로 그런 건가 싶어 고천수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온리베어는 또 고개를 저었다.

“천수 님, 키를 가져올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

제나의 말을 들은 고천수는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귀찮게 하는구만.”

열쇠만 가져오면 위험한 일도 없겠건만, 결국 2층에 고대로 가야 하게 생겼다.

“저기, 키를 그냥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대신 제가 도와드릴게요!”

고천수 일행이 그냥 멈춰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2층에서 남자가 다시 소리쳤다.

“일단 1층 복도 있죠?! 입구에서 계단 방향 기준으로 좌측에 붙어서 오세요! 우측에 밟으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좌측으로?”

고천수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육안으로는 바닥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식별할 수 없었다.

토토토.

그러자 온리베어가 계단에서 내려와 남자가 기준으로 삼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하겠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로는 안 돼. 무게나 생체 반응 때문일 수도 있어.”

애초에 온리베어는 남자가 말하기 전에도 계단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걸어갔었다. 고천수는 흑구를 내려다보았다.

왈?

흑구가 설마 지금 자기를 본 것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위험한 데만 보내는 주인 수준. ㅋㅋ

-보니까 흑구 얘 좀 자율적으로 움직이던데.

-말도 안 듣는 거 아님?

“가라.”

하지만 흑구는 그렇게 주인의 뜻을 거역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고천수가 말하자 흑구는 그대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온리베어는 그런 흑구에게 달려가 다시 위에 올라탔다. 무게라도 더해 주려는 걸까.

“천수 님,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제나가 그런 흑구를 따라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천수가 시키려고 했을 텐데 가네.

-속마음 읽었나 봄.

-ㅋㅋㅋㅋㅋㅋ

그런 생각까지는 없긴 했지만 그래도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고천수는 흑구와 제나를 따라 천천히 계단까지 이동했다.

“어디까지 오셨나요! 계단까지는 오셨나요?”

남자는 저 혼자 묻더니, 다음 길도 알아서 알려 주었다.

“계단에서 추가 하나 떨어졌을 거예요! 소리는 아까 들었습니다! 근데 추를 지나칠 때, 추보다 아래로 몸을 숙이고 지나 주세요!”

근처에 센서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잘못하면 센서에 감지돼서 또 다른 것들이 떨어질 겁니다!”

이 역시 흑구와 제나가 먼저 길을 갔기에 고천수도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었다.

“그다음은, 제가 있는 곳에 들어올 때인데요!”

더 이상 설명할 것은 없었다.

일행과 함께 2층에 올라선 고천수의 눈에, 문이 열려 있는 한 사무실의 풍경이 들어왔다.

“네! 절대로 그냥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외치는 남자는 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젊은 사람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남자는 어느 의자에 몸이 꽁꽁 묶여 있는 데다가 주위로는 초록색 선을 내뿜고 있는 수십 개의 센서에 감시를 받고 있었다.

“건들면 일대가 날아갈 거예요! 예!”

남자는 제법 발랄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해 있으면 정신이 무너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남자는 살려 달라곤 하면서도 제법 상태가 멀쩡해 보였다.

“정말로 거기 갇혀 있는 거 맞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갇혀 있는 것치고는 제법 침착해 보여서요.”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자작극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아무래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군요.”

“아.”

“잠시만요.”

고천수는 총을 들어올렸다.

“앗! 뭐, 뭐 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계세요. 이게 가장 간단한 확인법이니까.”

조준선을 맞추자 남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 정말로…….”

탕!

총알이 남자의 어깨를 스치고 레이저 선 사이의 벽으로 날아가 꽂혔다.

“끄, 끄아아아악!”

부상을 입은 남자가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다행히 살인마는 아니네요.”

“끄윽! 무, 무슨 짓입니까! 당연히 아니죠!”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확인해서 나쁠 건 없었다.

“대, 대체 이걸로 뭘 확인을……!”“모릅니까?”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인마는 공격했을 때 일반 사람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텐데요?”

“젠장, 전 모릅니다!”

남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공격을 해 봤어야 알죠!”

“잡힐 때 공격 안 해 봤습니까?”

“아는 사람이었어요! 설마 이렇게 할 줄은 몰랐죠!”

“아는 사람?”

고천수의 물음에 남자는 고통을 겨우 삭이며 대답했다.

“제 친구였다고요!

“친구…….”

“네, 제 빌어먹을 친구요!”

안 그래도 인상을 잔뜩 구긴 남자가 더욱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저랑 같이 폭탄물이나 함정을 다루던 놈인데, 어느 순간 거기에 심취해 버렸어요! 제가 그만하라고 하니까 이 꼴로 만들어 뒀죠!”

“죽이지는 않을 셈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있는 레이저 센서는 1초 만에 10개의 선을 끊어 놓지 않으면 꺼지질 않게 돼 있어요.”

“10개가 거의 동시에 끊어져야 하는 겁니까?”

“네. 그냥 물체로 가려도 되는데, 그게 말이 쉽죠.”

묶여 있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누가 도와주러 온다고 해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없어요. 다른 데서도 찾긴 힘들겠죠.”

거대하고 규격에 맞는 물건으로 레이저 선들을 가로막아야만 했다.

“도와달라고 한 주제에 염치가 없긴 하지만, 저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냥 가시진 않겠죠? 보니까 저 정체 모를 인형이 열쇠를 가리키던데.”

열쇠는 사무실 끝에 매달려 있었다.

고천수가 그걸 확인하는 사이, 남자는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온리베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형이 움직이는 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고천수는 곧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열쇠를 찾고 있었죠. 그리고 가져가려면…… 저도 여기를 지나쳐야 할 것 같긴 하네요.”

레이저 선을 무마할 도구가 없지는 않을 터.

재단 공장에만 가도 암막 커튼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그걸 어떻게 잘만 던져 놓으면 레이저 선도 한 번에 잔뜩 가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가능은 하겠는데.’

열쇠가 코앞에 있는데 시간을 지체하고 싶진 않았다.

웬만하면 지금 해결을 보는 것이 나았다.

“제가 지금 처리할 테니까 그럼 너무 놀라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어떻게…….”

고천수의 말에 이번엔 남자가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미소만 지어 보이고는 온리베어와 흑구에게 말했다.

“너희, 내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이해하지?”

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정해져 있는 레이저 선들만 끊어 놓으면 되는 일 아니던가.

톡톡.

온리베어가 손으로 살짝 치자 흑구가 입구 안쪽으로 몸을 들였다.

아직까지는 레이저 선에 몸이 닿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좀만 더 몸을 들이면, 10개가 아니라 고작 몇 개의 레이저 선에 걸려 경비 알람이라도 울리게 할 판이었다.

휘릭!

하지만 온리베어가 흑구의 목걸이를 풀자, 상황이 달라졌다.

흑구는 순식간에 방안을 가득 채워 버렸다.

촘촘했던 레이저 선은 흑구의 거대한 몸뚱이에 가로막혀 무려 10개 이상이 한 번에 가려지게 되었다.

픽.

그게 끝이었다.

방 안의 레이저 선은 갑자기 동력을 잃은 것처럼 전부 꺼져 버렸다.

“……!”

남자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제 애완동물입니다.”

고천수는 놀라는 남자를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커졌다 줄었다가 할 수 있는 녀석이죠.”

“이런 애완동물이 어디에…….”

“것보다 먼저 시급하게 처리해야 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레이저 선이 사라지자 제나가 사무실로 들어가 남자의 포박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고천수는 그런 제나를 봤다가 다시 시선을 남자에게 향하며 말했다.

“그쪽 분 친구 잡는 거.”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

“잡는다고요?”

포박에서 풀려나 의자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 남자가 기가 찬 듯 말했다.

“폭탄을 그렇게나 쑤셔 넣고 다니는 놈을요?”

“압니다. 이제 좀 살았다 싶은데 괜히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기분이겠죠.”

하지만 고천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쪽, 같이 폭탄이나 함정을 만들던 친구라고 했었죠?”

“예? 예. 그, 그렇죠.”

“보니까 우리가 올라올 때도 그 폭탄마가 어디에 어떻게 함정을 파 놨을지 알고 계셨던데, 그건 다른 장소에서도 그런 겁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고천수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달라졌다.

“대, 대략적으로는요?”

남자는 침을 삼키며 답했다.

“저랑 같이 답사한 장소가 아니면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녀석이 설치하고 다니는 폭탄이나 함정은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습성도 잘 알고요.”

“잘됐군요. 그럼 같이 다닙시다.”

“예?”

남자는 화들짝 놀라다가 아서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 녀석은 미친놈이에요. 무슨 목적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갈 길을 가는 게 나을 거예요.”

“저도 웬만하면 갈 길을 얌전히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살인마를 계속해서 피해 다니긴 어려운 일이었다.

맞닥뜨릴 때를 대비해서 보험은 반드시 필요했다.

“어차피 그쪽도 친구한테 버려진 처지 아닙니까?”

“그건, 뭐…… 저는 미친 짓을 말려야 했으니까요.”

“그럼 좀 더 같이 막도록 하죠.”

고천수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의 악행을 그쪽이 함께 멈춰 주는 겁니다.”

짐짓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자, 남자는 오래잖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제가 함께 멈춰야겠죠.”

-ㅋㅋㅋㅋ 천수야, 사적인 감정은 다 숨기고 얘기하는구나.

-친구의 악행을 죽음으로 멈춰 줄 거라는 말도 해야 하지 않나?

-폭사로 마무리 지어 줄 거야.

“혹시 어떻게 살리지는 못할 것 같으면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고천수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남자 쪽에서 알아서 답변을 꺼내 놓았다.

“그렇죠? 다시 또 저를 여기에 묶어 둘지도 모르니까요.”

“예, 아니면 다시 묶지 않고 그대로 날려 보낼지도 모르죠. 그 친구의 계획에 맞지 않게 살아난 거니까.”

“아앗, 그러려나요.”

“네. 그러니까 일단 이름부터 알려 주시죠. 전 고천숩니다.”

고천수가 손을 내밀자 남자는 밟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지영배라고 합니다. 그놈을 막을 수 있다면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죠.”

새로운 인원도 포섭했겠다, 고천수는 벽에 있는 열쇠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게 첫 번째 열쇠…….’

최형식이 어떻게 했냐에 따라 두 번째일 수도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직접 보는 다리의 열쇠로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열쇠는 작고 납작했다.

구식 집의 현관문 열쇠와 비슷하다는 감상이었다.

‘과연 남은 살인마들도 잘 넘길 수 있을지.’

고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옆에 있는 지영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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