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희생자는 길을 알고 있다 (1)
지익……, 지익…….
결과는 정해졌다.
“그러게 왜 이렇게 까불어.”
머리를 찍힌 재단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고천수는 그런 재단사를 끌고 가 천도영이 말해 준 기계 앞에 깔린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았다.
“일만 힘들게 만들고 말이야.”
고천수는 기계의 입구를 넓히고 간신히 작동 버튼을 찾아냈다.
-될지 모르겠네.
-어차피 기본 세팅돼 있을걸. 재단사가 썼을 테니까.
-오우, 그런감.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중에 고려하면 그만이었다.
고천수가 가만히 보고 있는 사이, 재단사가 몸을 움찔했다.
“……여긴, 어디?”
하지만 재단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벌써 기계 앞에 도달해 있었다.
“어딘지는, 네가 직접 알아봐.”
다다다다다!
기계가 요란스레 돌아갔다.
“으, 아아, 읍!”
곧장 입구로 빨려 들어간 재단사의 위로 준비된 옷감이 덧대어졌다.
그뿐이랴.
덧댄 옷감이 재단사의 몸에 바느질로 박혀 버렸다.
드드득! 드드드득!
움찔거리며 기계 안으로 들어간 재단사는, 곧 반대편의 출구로 튀어나왔다.
콰당!
컨베이어 벨트에 이미 깔려 있던 옷감과 기계가 덧입힌 옷감 사이에 박음질된 재단사는 완전히 번데기처럼 땅바닥에 내던져졌다.
“되네, 이게.”
고천수는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는 재단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거의 포장 수준인데?”
사람을 재단하는 기계가 아닐 텐데도 위아래가 꼼꼼하게 박음질돼 있었다.
-희생됐던 애도 장난 아니었잖음.
-얘가 기계 설비도 좀 만져 놓은 거지.
-일반적인 기계가 아님.
채팅창을 보고 고천수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아, 그랬고만.”
그래서 이렇게나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든 것이었다.
움찔움찔.
재단사 번데기는 계속해서 제자리에서 몸을 뒤틀었다.
“설마 이대로 봉인해 두고 가야 하는 거?”
하지만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재단사는 곧 움직임을 멈췄다.
“야.”
툭툭.
고천수는 재단사를 발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진짜 죽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움직임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오래잖아 재단사를 감싸고 있는 옷감에서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먹혔네.”
봉인이고 뭐고 끝났다.
자신이 만든 기계에 당하면 죽는 것이, 그에게 허락된 죽음의 방법이었으니까.
***
“후.”
일을 끝낸 뒤, 고천수가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옆으로 제나가 다가왔다.
“천수 님, 이제 끝났습니까?”
“그래.”
하지만 이걸로 전부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 겨우 하나 잡았다고.’
최형식 일행이나 휴가 다른 살인마와 대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고천수 자신이 잡은 살인마는 하나였다.
거기에 총 일곱이라고 했으니 아직 여섯이 남은 셈이었다.
‘가는 곳마다 이런 놈이 있으면 곤란한데.’
재단사 하나를 잡느라고 다른 살인마의 트랩을 신경 쓰지 못해 결국 피해를 봤다.
다리가 있는 D 구역까지 과연 얼마나 생존해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천수 님, 저희 인원 총 52명입니다.”
한 군인이 생존자의 수를 보고하러 왔다.
고천수는 그에게 물었다.
“저하고 제나도 포함한 숫자입니까?”
“예, 옆에 이 녀석들은 제외했습니다.”
군인이 가리킨 곳에는 흑구와 온리베어가 있었다.
‘희생자가 많아.’
폭발 때문에 입은 피해가 적지 않았다.
고천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북쪽으로 좀만 더 올라가면 G구역입니다.”
열쇠부터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도록 하죠.”
다른 살인마와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나머지 6명을 상대하다 보면 어떤 리스크가 따를지 모르니까.
“탄약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군인은 잠시 당황하더니 답했다.
“천수 님과 제나 님이 가지신 것을 제외하고 1500발 가량으로 추측됩니다.”
“정확힌 따져 보진 않았군요.”
“네. 워낙 경황이 없어서…….”
질책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닙니다. 이 정도를 파악하고 있는 것만도 대단하니까요.”
1500발 가량이면 많아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한 명당 30발 정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번에 멋대로 퍼부으면 단 몇 분만에도 사라질 수 있었다.
“천수 님, 다음에 살인마가 나타나면 바로 포위해서 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고천수는 제나에게 답했다.
“재단사는 무난한 편이었지만 다른 살인마들은 각자 더 강력한 살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 그렇게 하는 건 위험해.”
심지어 재단사를 잡는 데도 이렇게 애를 먹지 않았던가.
재단사가 다른 살인마가 깔아 둔 것을 함정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더 큰 화를 입었고.
“당장 어떻게 하겠다고는 못해. 계획은 가면서 수립한다.”
확실한 건 열쇠뿐이었다.
고천수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얘기 끝났으면 가자. 열쇠부터 찾고 보자고.”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는 건, 고천수도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
G구역.
북쪽으로 계속 이동해서 첫 번째 목적지에 다다른 고천수는 오래잖아 그곳에서 관리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있다.”
관리소라고 쓰인 건물은 큰길에 맞붙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여기는 알파 원. 발견되는 것 있는지.”
어느새 다시 흩어져 경계 조 역할을 하는 인원들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다행히라고 할까, 지금 보이는 것은 없는 듯했다.
“좋아, 가자.”
단원들이 트래퍼에게 당했기 때문에 고천수는 지금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엄청 조심하는데.
-50명 남겨 가는 것만 아니면 천수도 이러진 않을 듯.
-그냥 혼자만 살아서 가 봐. 어떻게 되는지 보게. ㅋㅋㅋ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모험은 금물이었다.
고천수는 제나, 흑구, 온리베어 세트와 함께 관리소 쪽으로 향했다.
“온리베어.”
입구에 다다른 고천수는 온리베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트랩 같은 거 있는지 먼저 들어가서 확인 가능하냐?”
온리베어는 엄밀히 말하면 무생물이었다.
대형화되었을 때는 확실히 동물화되는 듯하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봉제 인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트랩은 대부분 대인용 혹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장비를 노리고 설치되게 돼 있었다.
봉제 인형이라면 무게나 형태면에서 많은 트랩을 피해 내부를 살펴볼 수도 있을 터.
끄덕끄덕.
온리베어는 자신의 역할을 이해한 듯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부탁한다.”
고천수의 말을 들은 온리베어는 관리소 문에 난 작은 틈을 통해 몸을 들였다.
콰앙!
그러자 곧장 굉음이 이어지며 문이 박살나 버렸다.
“이런, 썅……!”
고천수는 문의 잔해를 얻어맞으며 몸을 뒤로 물렸다.
-뭐야, 폭탄임?
-폭탄은 아닌 듯.
-타격 음이었음.
시청자들의 말대로 폭발은 아니었다.
뭔가가 문을 타격해서 그대로 부순 것이었다.
‘공성추?’
고천수는 부서진 문 사이로 보이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가시 돋은 쇠공을 바라봤다.
-하마터면 머리 쪼개질 뻔했네.
-천수 반사 신경 있어서 그 정도는 아님? 그냥 반신불수 정도.
-에바임.
“온리베어는?”
고천수가 물음표를 그리자 온리베어가 들어갔던 곳으로 다시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후.”
온리베어가 지나가며 거기에 있던 선만 건든 듯했다.
워낙 작아서 공성추에 맞을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을 터.
‘트래퍼가 여기도 지나갔다는 거네.’
재단사보다도 훨씬 귀찮은 타입이었다.
고천수는 천천히 부서진 문을 열었다. 공성추는 문을 부수고도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었다.
톡톡톡.
온리베어는 다른 함정을 발견해 보겠다는 듯 먼저 앞으로 달려갔다.
콰앙!
순간, 갑자기 폭발음이 울렸다.
철퍽!
온리베어는 폭발에 휩쓸려서 높게 떠올랐다가 벽에 부딪혔다.
“아니, 시발!”
고천수는 주위로 흩날리는 잔해를 견뎌내며 소리쳤다.
“뭐냐고, 이거!”
어디서 터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밟아서 터지는 부류라면, 온리베어의 무게로는 쉽게 터질 리 없었다.
선이라도 설치해서 걸리면 터지게 해 둔 걸까.
“천수 님, 더 들어가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고작 관리소의 1층이었다.
2층으로 된 이 건물의 어디에 열쇠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들어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위험한 거는 알겠는데…….”
고천수는 우려를 표하는 제나를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위험하다고 해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희생을 감수해야 하나?’
이번엔 살인마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살인마를 붙잡기는커녕 희생만 하면서 이 안을 수색해야 한다는 건데, 자신의 몸이 날아가면 완전히 도루묵이므로 고천수는 단원들의 희생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천수 님, 다른 인원들을 투입하는 게 좋겠습니까?”
제나가 고천수의 속마음을 읽은 듯이 물었다.
고천수는 잠시 침음했다.
다른 단원들이 여기 들어와서 수색한다고 했을 때, 과연 자신보다 잘할 수 있을까?
단원들의 규모가 너무 줄어드는 것도 고천수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저기요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고천수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살살 털어내며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서 나고 있었다. 아니, 소리가 조금 먼 걸 보니 아예 2층에서 나는 것인 듯했다.
“누구 살아 있는 사람 있나요!”
목소리는 남자의 것이었다.
“…….”
고천수는 그 목소리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뭐야, 이건 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냐니, 마치 살인마는 아닌 것처럼 뱉는 대사이지 않은가.
“저 잡혀 있어요! 저기요! 거기 누구 없나요!”
“천수 님?”
제나가 고천수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글쎄.”
원래라면 그냥 놔두고 갈 길을 갔겠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열쇠는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목소리가 이끄는 데로 갔는데 함정이면 어찌한단 말인가.
고천수는 온리베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온리베어. 확인 가능하겠어?”
톡톡.
그러자 온리베어가 털에 묻은 먼지를 몇 번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ㅋㅋㅋㅋㅋ 온리원 왜 아무 말도 없냐.
-얘 이거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그러게. 온리원 모욕 아님?
“생존에 모욕이 어디 있습니까.”
온리베어는 고천수의 생존을 위해서 투입된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뭘로 쓰든 온리원이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계속 써먹는 것에 경의를 표하면 모를까.
“온리베어, 부탁한다.”
톡톡톡.
온리베어는 그대로 복도를 지나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콰앙!
계단에도 공성추가 설치돼 있었다.
온리베어가 지나가니 쇠공이 또 1층과 2층 사이의 층계참을 휘적였다.
-온리베어가 여럿 살리네.
그 말대로였다.
흑구를 보내도 되긴 했지만 저런 게 있다면 역시 온리베어가 제격이었다.
애초에 솜으로 차 있는 녀석이니 뭐에 맞더라도 죽지는 않을 터.
“살려 주세요! 이쪽이에요!”
수상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2층 쪽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살려……. 으아악! 뭐야!”
온리베어가 그의 눈에 띈 듯했다.
“뭐, 뭐야! 뭐…….”
남자의 외침이 잠시 멎었다.
위에서 온리베어가 뭘 한 것일까.
고천수가 궁금함에 인상을 찌푸리던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기! 함정은 아직 남아 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함정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입구를 통과했다고 했죠?! 그럼 제가 있는 곳까지 오는 데 3개의 함정이 더 남아 있습니다.”
“뭐야.”
고천수는 탄식을 뱉었다.
“무조건 자기 쪽으로 올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제 쪽으로 오셔야 할 겁니다! 열쇠를 찾고 계시다면서요?!”
온리베어에게 내용을 전해 들은 것인지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열쇠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로…….”
“온리베어!”
순간 고천수는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열쇠만 가지고 내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