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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71화 (171/224)

171. 7층의 살인마 (7)

“이병 천도영! 재단 공장에서 일해 본 적 있습니다!”

그렇게 단원들이 한 명 찾아서 보낸 경력자 한 명은 아주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자대 배치 받고 얼마 안 지나서 이렇게 된 거임?

-ㅅㅂ 첨에 만났던 놈보다 더 불쌍한 듯.

-ㅉㅉ.

그 마음은 고천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천도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병 맞아?’

보통 사회에서 그냥 대학교를 다니다가 입대한 경우는 이병 때 비리비리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도영은 바깥에서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 꽤 다부진 몸을 하고 있었다.

키도 고천수보다 컸다.

“……재단 기계 돌리는 일이 꽤 힘든 모양이군요.”

-ㅋㅋㅋㅋㅋ

-천수 표정 봐.

-괜찮아. 천수도 근육 많음.

“아닙니다.”

천도영은 뜸 들이지 않고 답했다.

“저는 익숙해서 괜찮습니다. 천수 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훨씬 더 힘든 일일 겁니다.”

-라인 좀 타는 놈인 듯.

-어쩐지 빠릿빠릿해 보이더라.

서로의 소개는 이 정도면 됐다.

이름과 능력을 알고 있으니, 남은 건 재단사를 잡는 일뿐이었다.

“재단사는 북쪽으로 갔습니다. 저희도 이동하죠.”

고천수는 일행을 끌고 북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사실상 G구역과 그리 멀지는 않은 경계선에 공장이 하나 있었다.

슥.

안을 들여다본 천도영이 고천수에게 말했다.

“천수 님, 재단 공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원단을 덧대어서 박는 기계도 있습니까? 재봉틀 같은 거.”

“재봉틀, 말씀이십니까?”

천도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예, 재봉틀 같은 건 당연히…….”

“아뇨, 사람 박아 버릴 만한 거.”

고천수의 말에 천도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람……!”

“제가 지금 좀 필요할 것 같거든요.”

재단사가 남긴 쪽지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이 주효한 것이었다.

“이것 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천수는 쪽지를 천도영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재단사가 자기 양복점에 남긴 겁니다.”

통상적인 내용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기괴한 방식으로 적힌 쪽지.

그렇기에 오히려 힌트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랍바 같은 게 뭔지 대충 알기는 알았는데, 양복점에는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죠.”

마치 다른 장소를 찾아가라는 듯이.

“천도영 이병, 이게 뭘 얘기하는지 알 것 같습니까?”

“으, 음.”

“약점이란 얘깁니다.”

재단사의 희생자는 옷감에 덧대어져죽어있었다.

그리고 재단사도 자기와 같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재단사는 옷감을 말아넣고 박음질하는 도구들이 싫다고 해놓았다.

‘그럼 답은 뻔하지.’

그게 재단사를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재단사 스스로도 그걸 알기 때문에 관련된 도구를 양복점에 가져다 두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상식적으로 따져 볼 때, 가정용 재봉틀 따위가 재단사에 대응할 무기일 리는 없었다.

즉, 재단사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는 다른 곳에 있고, 재단사는 그걸 마주치기 싫지만 계속 마주쳐야만 해서 쪽지에 이런 말을 적어 둔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재단사를 죽게 만들 수 있는 장소는, 이런 정황들을 볼 때 한 곳밖에 없었다.

“여기입니다, 천도영 이병.”

고천수는 천도영을 빤히 마주보며 물었다.

“사람을 넣어 버릴 수 있는 재봉틀 같은 거, 있겠습니까?”

“흠.”

천도영은 예상외의 주문을 받은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천수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금세 내놓았다.

“저기, 보이십니까?”

천도영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기다란 레일,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공항 검색 기계 같은 커다란 기계를 가리켰다.

“자르거나 뭔가 덧댈 수 있는 기계인데, 입구 넓이를 조정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사람을 넣으려면 넣을 수는 있을 겁니다. 모든 공장에 있는 건 아닌데 여긴 있는 거 보니…….”

“천도영 이병도 감이 오는 것 같군요.”

누군가를 집어넣으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천수 님, 저 안에 넣는다고 해서 죽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원단을 자르거나 덧댈 수는 있지만, 그걸로 정말 그 괴물을 해치울 수 있겠습니까?”

“해 봐야죠.”

고천수는 창문으로 계속 안을 들여다보았다.

북쪽으로 먼저 올라간 재단사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먼저 공장 안에 들어가 있어야 정상일 텐데.

-야, 천수!

-뒤뒤!

-빨리!

그때였다.

뒤를 돌아본 고천수의 눈에 줄자와 칼을 하나 들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쩐지 누가 엿보는 것 같긴 하더라고?”

재단사였다.

“천수 님!”

천도영이 곧장 총을 치켜들었다.

“제 뒤로…….”

팍!

좋지 못한 소리.

고천수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탕! 타탕!

날아온 커다란 바느질 칼에 목을 꿰뚫린 천도영이 온몸을 뒤틀며 총을 발사했다.

“아, 망할!”

타당! 타다당!

눈먼 총알이 사방에 튀었다.

고천수는 제나, 흑구와 함께 주변 엄폐물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타다다다다!

목에 칼이 찔린 상태에서도 조금 버티고 있던 걸까.

천도영은 이제야 총을 연달아 쏘며 자리에 엎어졌다.

타다다다다…….

그렇게 한바탕 총성이 지나가고 나서야 고천수는 흑구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함, 봐 봐.”

-ㅋㅋㅋㅋ

-자기도 칼 맞을까 봐 그런 거임?

-근데 흑구가 냄새 못 맡아 줬으니까 책임은 있지.

흑구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고천수는 그러려니 했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 뭐 어쩌겠어.’

재단사를 구분해내기에는 주변 냄새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피와 여러 잡다한 것들이 섞인 냄새가 공기 중에 잔뜩 퍼져 있던 것이다.

슬쩍.

바깥을 살짝 내다본 흑구가 고천수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천수는 총구를 먼저 내밀고는 바깥을 살펴보았다.

재단사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칼을 더 가지고 있으려나?’

하나 던졌으니 이제 없을 수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여기는 알파 제로. 재단사 위치 확인되는지?”

고천수는 꺼 두고 있던 무전기를 다시 켰다.

어차피 자신이 있는 위치를 들켰으니 더 숨길 것도 없었다.

『여기는 알파 식스. 재단사 공장 입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됨.』

“지금부터 전 단원들에게 지시함. 재단사 노출된 신체 부위 적중 가능하면 단발로 사격 바람. 그리고 적중이 확인되면 사격은 10초에 후에 재개.”

앞으로를 위해서 최대한 탄약을 아껴야 하긴 했지만, 어차피 재단사의 약점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약간의 탄약을 소진해서라도 바로잡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탕!

총성이 들렸다.

고천수는 일행과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탕! 타앙!

10초 후에 재개라고 했는데 다음 총성이 빨랐다.

‘못 맞췄나?’

재단사는 품 안에 방탄 소재를 숨기고 있었다.

이젠 아예 안에 입고 돌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긴 했지만, 단원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머리는 역시 못 맞췄나.”

사실상 머리를 맞추지 못하면 나머지는 소용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전 인원, 공장으로 집결하세요.”

그렇다고 아예 소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약점이 없으면 모를까, 이 정도면 체력을 소비해서 물량으로 확실하게 찍어 누를 수 있었다.

무전기로 단원들을 호출한 고천수는 공장의 입구로 향했다.

끼익.

어느새 살짝 열려 있는 공장의 입구에는 여러 발의 총탄이 남긴 흔적들이 있었다.

왈!

흑구가 먼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대지 말라고 했지만, 재단사를 미리 알아채지 못한 책임감에 먼저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왈왈!

흑구의 신호를 받고 고천수는 안쪽으로 몸을 들였다.

“욱……!”

여기에도 온갖 냄새가 진동했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가 도살자야 뭐야.”

재단사면서 피 냄새를 흩뿌리고 다니는 건 다른 살인마의 전문 분야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옷이라도 맞추려고 왔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 기계 옆에, 재단사가 얼굴을 빼꼼 내민 채 서 있었다.

“꽤 뻔뻔하네. 사람들을 그렇게나 뜯어 발겨놓고.”

“옷 맞추러 왔다고 해서 그랬을 뿐인데?”

재단사는 쪽가위 하나를 들어 올리고 딱딱거렸다.

“공장으로 직접 찾아왔으니 할인가를 적용해야 하나?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딱 말해 봐.”

“너나 말해 보지 그래.”

고천수는 총을 등으로 돌리고 도끼를 휘둘러 잡으며 말했다.

“내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나 맞춰 줄게.”

“감동이야.”

재단사는 정말로 짐짓 감동한 것처럼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여태껏 내 정장을 맞춰 주겠다는 놈은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생겼네.”

단원들이 올 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된다.

재단사가 머리 쪽도 방비할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 명이서 달라붙어서 방탄복을 뜯어내고 공격을 먹이면 그만이었다.

약간의 희생은 있을 수 있지만 괜찮았다.

재단사를 끝장낼 수 있는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까.

“혹시, 혹시혹시혹시.”

재단사가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날 끝장낼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낸 거야?”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알아냈다면?”

고천수가 답하자 재단사는 갑자기 키득거렸다.

“축하한다고.”

덜컹!

그때였다.

입구를 열고 수십 명의 단원들이 몰려 들어왔다.

“천수 님!”

단원들은 순식간에 고천수의 뒤에 서며 재단사를 향해 총구를 들어올렸다.

“손들어!”

“꼼짝 마라!”

“꼼짝, 마?”

재단사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미소를 그리며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꼼짝 말아야 할 건, 너희들 아닐까?”

쾅!

순간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단원들 몇이 나가떨어졌다.

“뭐, 뭐야!”

쾅!

“으아악!”

단원들이 허둥거리며 움직이는 사이 몇 번의 폭발음이 더 있었다.

“큭!”

충격 때문에 고천수도 옆으로 튕겨 나갈 정도였다.

-뭐임?

-함정 같은데? 단원이 뭐 스치니까 터졌어.

-재단사가 함정을?

고천수는 이명이 도는 와중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재단사가, 함정이라고?’

물론 함정이 특정 누군가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살인마들은 각기 가지고 있는 콘셉트를 잘 버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다른 살인마의 작품이었다.

이 공장에는 재단사가 준비해 두지 않았던 다른 종류의 위협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게 꼼짝 말라고 했잖아.”

재단사는 웃는 낯으로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고천수는 그런 그를 바로 뒤쫓았다.

“거기 서, 새끼야!”

우연일 가능성도 크지만 재단사가 만약 다른 살인마와 협력하는 사이라면 곤란했다.

이대로 도망치게 해 버리면 트래퍼 살인마와 다시 계획을 짜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아니, 이미 계획을 짜 둔 것일지도 몰랐다.

“크, 크윽!”

“다들 괜찮아?!”

“정신 차려!”

얼마나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곳곳에 단원들의 비명이 넘쳐났다.

‘넌 반드시 내가 족친다.’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단원들의 일정 인원은 무조건 살려 가야 했다.

공략집의 끝에는 7층 이후에 50명 이상이 필요한 곳이 있으므로 다수의 생존을 꾀하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고천수도 이렇게 뼈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속 올 거야? 응? 계속?”

재단사는 뒤를 쫓는 고천수를 돌아보며 기괴하게 물었다.

‘나가려고?’

재단사는 공장의 다른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협력은 아닌가?’

트래퍼와 협력하고 있었다면 이 정도로 끝내고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저 트래퍼의 함정만 눈치채고 이용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재단사가 계획한 건 딱 거기까지.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꽈악.

고천수는 도끼를 세게 움켜쥐었다.

재단사가 문을 쥐고 잠시 멈출 때를 노릴 수 있을 듯했다.

끼익.

재단사가 문고리를 쥐었다.

주어진 건 정말이지 잠깐의 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비어 있는 곳은 머리뿐.

콰악!

힘차게 전진하며 도끼를 든 팔을 뱅글 돌린 고천수는, 그대로 재단사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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