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7층의 살인마 (5)
칼에 찔려도 피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
멈춰 있는 역병의사를 보며 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역병의사의 차림새를 살폈다.
까마귀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가면에, 같은 색의 긴 코트.
허리춤에는 여러 개의 동그란 깡통들이 매달려 있었다.
촥!
휴는 재빠르게 허리춤에서 깡통 하나를 뺏어 들었다.
그 순간, 역병의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분을 한 명 더 만났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시급한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가진 주사기의 바늘이 구부러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툭.
주사기를 바로 바닥에 버린 그는 품에서 또 다른 주사기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뭐 하는 놈이야, 너?”
공격이 통하지 않는 살인마는 처음이었기에, 휴는 궁금증을 갖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병의사는 그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 가까이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시급히 치료를 해 드리겠습니다.”
“치료?”
치료라 함은 그 인간처럼 독이 몸 안에 쑤셔 넣어져서 최종적으로는 사망하게 되는 그런 형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미안하지만 치료는 네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푹!
휴는 재빠르게 역병의사의 가면을 한 번 칼로 찔렀다.
멈칫.
하지만 이번에도 역병의사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저 잠시 멈추게 될 뿐이었다.
‘보통 인간은 아니라 이건가?’
휴는 칼을 빼내며 역병의사의 몸을 살폈다.
역시 부상을 입은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칼이 지나간 자리로 옷과 가면은 분명히 찢겼다.
“제가 바로 치료를…….”
일시 경직에서 회복된 건지 역병의사가 바로 움직였다.
그러자 휴는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깡통의 손잡이를 빼서 내던졌다.
파앙!
깡통은 다름 아닌 죽은 남자가 들고 있던 것과 같은 CS탄이었다.
“이걸로 사람들 무력화시켜서 환자 하나 만들어서 주워 오라고 시켰냐?”
휴는 연기가 퍼지는 주변을 맴돌며 역병의사에게 말했다.
“네가 직접 하지, 왜 남을 시키고 그래?”
“당신은, 콜록! 오염되었습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역병의사가 CS탄을 들이쉰 듯 기침을 하며 몸을 뒤틀었다.
“응, 알겠네.”
칼은 통하지 않아도 CS탄은 통한다.
본인이 들고 있는 것에만 타격을 입는 것인지, 아니면 화약 작용이면 뭐든 먹히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휴는 그래도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뭔지 알겠어.”
“콜록! 당신은 치료를…….”
“시끄러워.”
푹! 파악! 푹!
휴는 칼을 더 휘둘러댔다.
이 상태라면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쳇!”
하지만 여전히 피를 흘리지 않는 역병의사를 보며 휴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인지.”
휴가 할 수 있는 건 역병의사가 더 가지고 있는 CS탄 네 개를 더 빼앗는 것뿐이었다.
품 안도 뒤지고 싶었지만 역병의사가 몸을 움츠린 채로 굳어 있어서 그건 쉽지 않았다.
‘얼굴이라도 볼까?’
그렇게 가면을 떼어 내려던 휴는 순간 흠칫했다.
“이 새끼, 설마.”
가면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과 꿰매 놓은 부분들이 있던 것이다.
“나보다 심하네.”
휙!
시간이 흐르자 역병의사는 갑자기 움직이며 품 안에 있던 접이식 지팡이를 하나 꺼내 휘둘렀다.
“워우!”
휴는 지팡이를 간신히 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것도 들고 다니나?”
휙!
휘익!
지팡이까지 있으니 거의 고전에 가깝게 전해지던 옛 역병의사의 모습과 흡사한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지팡이만으로는 휴를 상대할 수 없었다.
치익!
지팡이가 땅에 닿자 이상한 부식 음이 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굉장한데?”
치익! 치익!
휴가 놀라는 사이 역병의사는 지팡이를 더 휘둘러댔다.
지팡이가 땅을 짚을 때마다 뭔가 부식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부식이야? 너한테도 그거…….”
통하냐고 물어보려다가 지팡이에 몸이 스칠 뻔했다.
휴는 일단 뒤로 빠르게 몇 걸음 더 물러섰다.
접이식에서 펴진 지팡이는 끝에서 15cm 정도가 녹색 빛을 띠고 있었다.
역병의사 근처에 15cm 정도의 뚜껑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길게 펴지며 저 뚜껑이 떨어져 나가면서 안에 있는 부식체를 꺼내게 된 것으로 보였다.
“당신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역병의사는 고통에 겨워 하면서도 계속해서 휴를 노렸다.
“아, 이 새끼!”
한 방에 이기려고 이러는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역병의사는 휴의 옷에 구멍을 내려고 하고 있었다.
파앙!
휴는 CS탄을 하나 더 까서 터뜨렸다.
노란 연기가 주변을 크게 감쌌다.
“안에다가 뭘 넣은 건지 연기가 더 심하네.”
휴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미리 봐 두었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근처에 있던 주택이었다.
‘땅에 묻어 버리면 좋긴 할 텐데.’
근처에 있는 묘지로 갔다간 오히려 숨을 데가 없어서 당할 수도 있었다.
휴는 집 안에 들어가 곧장 가스 밸브부터 확인했다.
웃기게도 이곳에는 가스가 끊기지 않았다. 밸브를 돌려 가스레인지의 레버를 돌려 보자 그대로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딱.
가스레인지를 끄고 휴는 성냥갑을 찾아서 주머니에 넣은 뒤, 가스 선을 칼로 잘라 놓았다.
푸시시시.
가스가 새는 것을 보며 휴는 다시 입구로 향했다.
망할 역병의사가 휴가 있는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대단하네, 저 친구.”
여전히 부식 지팡이는 손에 들고 있는 채였다.
“얼마나 더 대단한가 볼까?”
휴는 일부러 역병의사가 자신의 모습을 눈치챌 때까지 서 있다가 바로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리고 찬장에 있던 밀가루까지 뜯어서 흩날리게 만든 뒤, 곧장 반대편에 있는 창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뚜벅뚜벅.
역병의사는 그가 밖으로 나갔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집안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들였다.
“나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여전히 역병의사는 말도 안 되는 말로 휴를 찾고 있었다.
‘불씨, 피워야 하나?’
휴는 밖에서 좀 떨어져서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병의사가 가진 지팡이가 불을 붙일 정도의 온도까지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틱.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콰아아앙!
분진과 가스, 두 가지를 모두 점화해 버린 역병의사의 지팡이에 의해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갔다.
쾅! 콰앙!
치솟는 불길을 보며 휴는 탄식을 뱉듯 말했다.
“솔직히 이거에서도 살아남은 놈이면, 학을 떼겠는데?”
하지만 역시 상대는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불길 속에서도 걸어 나오는 역병의사를 보며 휴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지가 만든 거밖에 안 통하는 놈인가?”
그러면 어떻게 상대를 해 줘야 할까 하는 와중에 갑작스러운 소리가 하나 더 끼어들었다.
탕! 타앙!
총성이었다.
휴가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총을 쏘며 다가오고 있는 인원들이 있었다.
“최형식?”
최형식 일행이 달려오며 역병의사에게 총을 쏘고 있었다.
역병의사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몸을 움츠리더니, 곧 어딘가로 달려 도망가 버렸다.
“헉, 헉. 이 자식.”
휴가 있는 곳까지 달려온 최형식이 방독면을 쓰고 있는 상태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도망갔군요.”
“예, 덕분에요.”
휴는 역병의사가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골치 아픈 놈인데, 이렇게 보내 줘도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예? 역시 그럼 쫓아가는 게 낫겠습니까?”
그 물음에 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걸 나한테 묻지?’
휴는 단독으로 행동하는 주의였다.
남한테 굳이 지시를 내려 줄 만한 성격은 되지 못했다.
‘아~ 천수가 없으니까 귀찮네.’
고천수는 어떻게 단독 행동까지 하면서 무리도 끌고 가고 있는 걸까.
휴에게는 미스터리였다.
“뭐, 쫓아가든가요. 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결국에 대충 말해 주었더니 최형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일단 M 구역에 왔으니 관리소부터 찾아야겠습니다. 열쇠를 획득해야 하니까요.”
적절한 판단이었다.
휴가 어깨를 으쓱하자 최형식은 단원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계속해서 이동했다.
홀로 남은 휴는 역병의사가 향한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른 단원들과 달리 휴는 살인마를 상대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흔적을 잘도 흘리고 갔네?”
역병의사는 도망가면서 지팡이를 짚은 듯했다.
땅에 부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슥.
블록을 하나 돌아 있는 한 과학관 앞에서 지팡이의 흔적이 끝나 있었다.
휴는 입구에 살짝 몸을 들이고 안을 살펴보았다.
안에는 넓은 복도가 있었다.
구조는 일반적인 학교와 비슷한 듯했다.
‘여기도?’
지팡이의 부식 흔적이 여기에도 있었다.
휴는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교실처럼 나눠져 있는 각 구역의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읍! 으읍!”
“으으읍!”
“으으으으!”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상태는 죄다 비슷했다.
의자에 몸이 묶인 채 테이프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휴의 눈에는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꼴에 의사라고 하더니 꽤 온건한 편이긴 해. 그치?”
진짜 의사는 아니고 사칭 의사긴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그놈에 비하면 하는 짓이 약한 편이었다.
“읍! 읍!”
창문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휴에게 도와 달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휴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살살 고개를 저었다.
“안 되지.”
어떤 놈들인 줄 알고 구해 준단 말인가.
여기에 갇혀 있는 건 안타깝지만, 구원자는 휴의 역할이 아니었다.
“스읍.”
휴는 숨을 살짝 들이켜며 칼을 들고 다시 걸어갔다.
칼만으로는 역병의사에게 이기지 못한다.
역병의사를 잡으려면 녀석이 직접 만든 화학제, 즉, 그 남자를 죽였던 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걱정 마, 천수야. 내가 이놈은 여기서 잡아 줄게~.”
약품을 다루는 녀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잡기 어려워지고, 아군에 피해도 더욱 많이 입힌다.
고천수가 자신을 믿은 만큼, 휴는 그만한 보답을 해 줄 생각이었다.
쿠당탕!
웬 요란한 소리가 들려 휴는 걸음을 멈칫했다.
그리고 연구실이라고 적혀 있는 문에 난 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쾅! 쿠당탕!
안에서는 역병의사가 요란하게 뭘 가져와서 책상에 올리며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아마 위협을 받았다고 여겨서 새로운 약품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그러면 무섭잖아.”
지금까지는 상대할 만한 것들만 갖고 있던 역병의사에게 새로운 무기가 추가되면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다.
휴는 가방을 내리고 조심스레 그 안에서 페트병을 꺼내 얇게 가위로 오려내기 시작했다.
쿠당탕! 쿠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소리는 그에게는 마치 음악 소리와 같았다.
‘흠, 흐흠~.’
속으로 흥얼거리며 휴는 얇게 자른 페트병을 문 앞에 깔아 놓았다.
똑똑.
그리고 연구실의 유일한 문을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멈칫.
그러자 역병의사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휴와 눈을 마주쳤다.
“안녕.”
휴는 짐짓 수줍은 척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역병의사는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거.”
휴는 그런 그를 계속 바라보면서 문고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뻑뻑한데 좀 열어줘 봐.”
안에 소리가 들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휴는 상관없다는 듯 입 모양으로 역병의사를 계속 불러댔다.
“나 잡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환자라며.”
시급한 환자를 눈앞에 두고 가만 놔둘 수 있는 의사가 있겠는가.
역병의사는 바로 문 앞까지 다가와 창문 밖 좌우를 살폈다.
당연히 거기에는 휴 혼자 서 있을 뿐이었다.
“맞아. 나 혼자야.”
휴가 싱긋 웃어 보였다.
역병의사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덜컥!
순간, 역병의사는 문을 열면서 그 앞에 있던 휴에게 지팡이를 찔러 넣으려고 했다.
촥!
그렇게 그는 발밑의 투명한 페트병을 밟고서 그대로 뒤로 미끄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