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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68화 (168/224)

168. 7층의 살인마 (4)

양복점.

전면 유리창에 정장을 차려입은 마네킹들이 여러 개 보이고 있었다.

-저거 마네킹 맞지?

-아, 쒯. 이상한 상상하게 하지 마셈.

-우웨엑.

시청자들의 과장된 반응과는 달리 유리창 안쪽에 놓인 마네킹은 다행히 사람의 몸은 아니었다.

“제나,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물어도 될까?”

“예? 무슨 질문을 하시려고……. 편하게 물어봐 주시길.”

고개를 갸우뚱하는 제나를 보며 고천수는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눈, 이기만 하면 시야를 엿볼 수 있는 거냐?”

“…….”

고천수를 빤히 바라보던 제나가 순간 흠칫했다.

“눈이기만 하면요?”

-ㅋㅋㅋㅋ

-제나 당황한 듯. ㅋㅋㅋ

-아, 나 이런 거 싫어한다니깐.

제나는 우물쭈물하더니 곧 답했다.

“아마, 죽어 있지만 않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욱 끔찍한 대답이었다.

고천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기만 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진짜야.”

고천수는 대화를 끝내고 다시 양복점을 바라보았다.

잠시 살펴본 결과 침입을 막는 장치는 특별히 없는 듯했다.

고천수는 양복점의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돌아오려나.’

재단사가 언제 돌아올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알려면 무전기를 켜 둬야 하는데, 안에 들어온 이상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들어왔을 때 무전 소리를 들으면 큰일 나니까.’

무전기에 꽂을 수 있는 이어폰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단자는 존재하지만 정작 이어폰이 없다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항상 가지고 다녔던 것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살금살금.

고천수는 천천히 양복점 안을 살폈다.

일단 1층 내부 인테리어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흔히 보이는 양복점처럼 기성 양복이나 샘플 같은 게 쭉 늘어서 있고, 계산대가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천수 님.”

그 와중에 제나가 바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피는 1층에 존재하는 어느 커다란 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로 옮겼나 보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통로를 사용하지는 않은 듯했다.

하긴 여기는 바깥 세계와는 다른 장소니까.

경찰까지 썰리는 마당에 굳이 살인 행위를 감추는 설비는 필요 없었을 것이었다.

“흑구야.”

고천수가 턱짓하자 흑구가 앞서 나가 문을 살폈다.

킁킁거리던 흑구는 곧장 문을 몸으로 밀쳤다.

문고리도 없는 문은 그대로 열렸다.

“……계단.”

흑구 쪽으로 다가간 고천수는 문 안쪽에 나타난 계단을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부는 샛노란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그나마 붉은 조명은 아니네.

-선정성을 낮추기 위한 조치인 듯.

-ㅋㅋㅋㅋㅋ

틀린 말은 아닌 듯한 게 안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조금 껄끄럽긴 했지만 고천수는 제나에게 지시했다.

“제나, 내가 흑구랑 직접 내려갈 테니까 너는 여기서 입구를 지키고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신호를 주고.”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제나를 놔두고 고천수는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

지하 1층.

계단을 내려서자 곧장 보인 의자와 그 위의 거적때기를 보며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망할.”

희생자를 덮어 놓은 듯했다.

그나마 거적때기 덕분에 직접 그 몰골을 볼 필요는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진짜 선정성 보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형님들?”

-왜.

-끔찍한 장면은 보기 싫은가 보지?

-뭐, 없다고는 못하는데 모자이크 처리되는 것도 아니라서. ㅋㅋㅋ

즉, 거적때기를 치우면 실제로 얼마나 끔찍한 희생자의 모습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지나가도록 하죠.”

-ㅋㅋㅋ

-빠른 진행.

고천수는 희생자가 있는 방 옆에 또 다른 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를 열어젖히자 마치 재단실과 같은 곳이 나타났다.

“욱!”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곳곳에 피가 묻은 재단 도구들이 가득했다는 것이었다.

“……취향, 시발!”

거의 썩은 듯이 느껴지는 피 냄새를 견디며 고천수는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흑구랑 베어. 너희 둘도 메모장 같은 거 있는지 찾아봐.”

재단사의 약점이 있다면 문서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일단은 여기 있는 종이쪼가리는 다 뒤져보고 다음으로 도구들에게서 단서를 찾아 볼 생각이었다.

덜커덩, 덜컹.

서랍들을 다 빼 봤을 때였다.

고천수는 종이 한 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뭐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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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멋지게 차려입을 수 있다.

나도?

나도 그럴 듯?

근데 말아박기 금지? 덧대기 금지?

나는 안 돼?

랍바는 치우고 재봉틀도 치우고. 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다 죽은 놈 데려올 때만 꺼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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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친 새끼.”

뭔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메모를 남겨 놨다.

사실 메모용으로 남겨 놓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형님들, 랍바가 뭐예요.”

뭔지 모르는 용어가 있어서 일단 물었다.

-원단 감싸는 역할 하는 보조 장치라고 보면 됨.

-재봉질할 때 잘 말리면서 들어가게 도와주는 거 있잖아. 드드드득, 하는 거에 붙어서.

“아나.”

그렇게 말해도 고천수도 잘 모르는 도구였다.

‘대략 추측은 가기는 하는데…….’

이걸 단서라고 준 건지.

고천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재봉틀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끼익. 덜컥덜컥.

벽 쪽에 손잡이 하나를 발견하고 당겼지만 열리지 않았다.

부숴 봐야 할 것 같아 고천수가 도끼를 들 때였다.

타타다닥!

누군가 갑자기 지하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다들 괜찮습니까!”

노란 연기가 다 가시고 난 뒤, 최형식은 단원들을 추스르며 외쳤다.

“괜찮습니다!”

“콜록콜록!”

“그냥 CS탄입니다!”

특별한 제독은 필요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자신들의 상태를 알리는 단원들을 보며 최형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설마 CS탄을 쓰는 놈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올라올 때 전기톱 소리가 나는 게 다였기에, 기껏해야 냉병기를 들고 날뛰는 놈만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 큰 판단 미스였다.

상대를 교란시키는 놈이 근처에 있었다. 어쩌면 몬스터보다 더 큰 위협일지도.

“으으, 사, 살려 줘어!”

그 와중에 근처에서 비명이 들렸다.

최형식은 비명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바닥을 기고 있는 웬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살려 줘! 살려 줘!”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남자 옆에는 칼을 들고 있는,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최형식은, 방독면 안쪽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휴!”

최형식은 칼을 들고 기어가는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

“언제 우리 뒤로 따라붙어 있던…….”

그러던 최형식은 바닥을 기고 있던 남자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단원이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설마……!”

최형식은 바닥을 기고 있는 남자의 멱살을 끌어 잡아 올렸다.

“너냐?!”

갑작스러운 공격과 함께 나타난 남자.

휴가 공격해서 잡은 거라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네가 우리 단원들을 공격한 거냐고!”

“아, 아니……!”

“똑바로 말해라! 머리에 구멍을 내놓기 전에!”

최형식의 일갈에 남자는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아,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네가 한 게 아니면! 대체 뭐야!”

“나, 난……!”

남자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난 잡힌 것뿐이야! 잡혀서 여기로 내보내졌어! 연기 때문에 보이는 게 없어서 뭐가 뭔지 잘 몰랐어!”

“뭐?”

최형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봐 봐! 난 입에 테이프도 붙여져 있었다고! 여기 남아 있잖아!”

남자가 자신의 입을 가리켰지만 쉽게 믿기 힘든 일이었다.

최형식은 총구를 들이밀었다.

“믿기 힘들어!”

“아, 아니, 잠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누가 널 잡은 거라는 거야! 그놈이 있는 곳은?”

“모, 몰라! 알 리가 없잖아! 그냥 잡혀 있었던 거란 말이야!”

남자의 외침에 최형식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걸 우리가 믿을 수 있겠냐?”

“이, 시발!”

남자는 최형식의 손길을 뿌리치려는 듯 발버둥 쳤다.

“그럼 어쩌라고! 그럼 너도 더 가다가 붙잡히든가! 나도 이쪽으로 가면 있는 공동묘지에서 마취제 맞고 잡힌 거라고! 무슨 까마귀 가면 쓴 놈한테!”

“까마귀……?”

“그래! 까마귀! 이제 얼른 돌아가야 돼! 돌아가서 빼 달라고…… 컥!”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그러더니 곧 새파래진 얼굴로 몸을 마구 뒤척였다.

“뭐, 뭐야.”

놀란 최형식이 그의 멱살을 놔주었다.

하지만 남자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제, 젠장. 제기랄…….”

남자는 그저 바닥을 나뒹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다가 픽, 하고 갑자기 멈춰 섰다.

“이, 이봐.”

최형식이 살펴보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런……!”

최형식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죽었어!”

마치 내부에 있는 시한폭탄의 독이 지금 터진 것처럼.

“다들 물러나! 여기를 빠르게 벗어난다!”

하지만 O 구역으로 빠질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든 열쇠는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남자가 남긴 불온한 말에도 M 구역 쪽으로 몸을 돌리던 최형식이 순간 고개를 돌렸다.

“휴는…….”

그러고 보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휴는 먼저 M 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역병의사 같은 놈이, 거기에 있다는 거지?’

최형식에게 붙잡힌 남자는 단순한 희생자는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그가 직접 CS탄을 던진 흔적이 있었다.

즉, 아무나 공격하고 오라고 협박을 당했든 뭐든 최형식 일행을 습격하는 일은 직접 수행했다는 뜻이었다.

“희생자를 붙잡아서 떨거지로 써먹는다!”

그야말로 쫌생이나 할 법한 짓이지 않는가.

휴는 걸음을 옮기면서 키득거렸다.

그의 머리에는 그 쫌생이를 잡을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마취제 맞고 잡혔다고 했었지?’

휴는 길을 가다 말고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에 있는 페트병을 꺼냈다.

“여기다 쓰려고는 안 했지만, 조금 써 볼까?”

챙겨 온 페트병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휴는 그중 몇 개를 꺼내서 오리기 시작했다.

“이걸로는 좀 부족하긴 한데.”

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쓰레기처럼 늘어져 있는 박스를 몇 개 찾아냈다.

비닐 방호복을 잠시 연 휴는, 박스들을 큼지막하게 잘라 품 안에 채워 넣고 테이프로 고정하기 시작했다.

목에도 박스 조각을 두른 휴는 그 위에 페트병의 조각들도 둘러 붙였다.

그리고 팔뚝과 팔꿈치 안쪽에도 페트병의 조각들을 붙였다. 움직임은 좀 둔해졌지만, 감당할 만한 무게였다.

찌익.

남아 있던 테이프를 떼서 방호복을 닫은 휴는 다시 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묘지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왔나?’

살짝 눈만 돌리며 휴는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그의 감각은 예민했다.

집중하면 누군가 다가서는 것을 빠르게 알아챌 정도로.

틱!

순간 들린 작은 마찰음과 함께 휴는 뒤돌아 칼을 휘둘렀다.

카직!

뭔가가 찔렸다.

“음?”

고개를 돌린 휴의 눈에 들어온 건 역병의사였다.

까마귀 가면을 쓴, 그 남자가 진술한 그대로의 살인마가 서 있던 것이다.

카득!

그리고 그 의사의 손에는 바늘이 휘어진 주사가 들려 있었다.

휴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것과 더불어, 그의 몸에 채워져 있던 것들에 의해 미끄러지고 엉뚱한 데 꽂힌 바늘이 결국 목적된 대상에게 제대로 들어가질 못했다.

칵! 카직!

휴는 무표정한 얼굴로 역병의사에게 계속 칼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역병의사가 자신에게 주사를 제대로 찔러 넣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휘두르는 칼도 제대로 쑤셔 박히는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하는 놈이냐, 너?”

결국 십 수 번의 칼놀림 끝에 물러선 휴가 싸늘한 눈길로 물었다.

역병의사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일시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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