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67화 (167/224)

167. 7층의 살인마 (3)

7층에 있는 살인마는 총 7명.

숫자를 맞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제나, 위험한 놈들이 더 있을 거야.”

고천수는 제나에게 미리 경고를 전했다.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른다는 거지.”

“저희가 봤던 그 살인마와 비슷합니까?”

“그래.”

상세한 모습은 다르겠지만, 살인마라는 틀은 같을 것이었다.

왈……!

치료를 받은 흑구가 옆에서 살짝 불안하게 짖었다. 고천수는 그런 흑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겁이라도 먹었나?’

치료받은 흑구는 주둥이를 움직이기 어려워 보였다.

자가 치유 능력을 떠나서 거대화가 되면 피부가 두꺼워질 텐데도 이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살인마의 공격력이 흑구의 방어력을 상당 부분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즉, 이 층은 흑구가 나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흑구야, 넌 앞으로 좀 사려라.”

재단사라서 이 정도지 도살자라도 만났으면 그대로 끝장났다.

“내가 정말 위험하지 않은 이상 넌 그냥 정찰견으로 돌아다녀. 괜히 눈에 띄게 다니지 마.”

도살자는 살인마 게임에서 무척이나 자주 나오는 콘셉트였다.

이 층에 살인마가 7명이나 있으면 반드시 있을 터였다.

“재단사 냄새는 맡았어?”

고천수의 물음에 흑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재단사가 가까이 다가오면 신호기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을 터였다.

“천수 님,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제나의 물음에 고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소수로 움직여야겠어.”

“소수로…… 말씀이십니까?”

“아직 여기에 있는 살인마들이 다 확인되지도 않았으니까.”

어떤 위기가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번에 몰려다니는 건 좋지 않았다.

만약 압도적인 화력으로 살인마를 제거할 수 있는 건만 확실했다면 좀 더 시도해 봤겠지만, 재단사를 통해서 보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모르고 함정 살인 위주인 트랩퍼라도 먼저 맞닥뜨렸을 경우,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경계조하고 실행조를 나눠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정찰이 중요하게 됐어.”

아직 주어진 시간은 따로 없었다.

시청자도 조급해하지 않는 걸 보면 다리까지 그렇게 빨리 갈 필요도 없는 듯했다.

‘휴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이고.’

시청자들이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휴를 성장시키려면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살인마 위의 살인마라는 말은 뜯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다른 살인마보다 우월하다.

즉, 다른 살인마들이 쓰는 기술을 파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각성시켜 줄 필요가 있어.’

다만 휴는 아직까지는 전투력이 조금 뛰어난 동료 정도였다. 살인마들이 가질 법한 특별한 기술은 제대로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살인마가 판치는 맵에서 마음껏 날뛰게 해 줌으로써 대 살인마 병기로서의 능력을 각성시켜야만 했다.

“천수 님, 그럼 인원은 어떻게 나누면 좋겠습니까?”

“너하고 나, 그리고 흑구를 제외하고는 5, 6명으로 나눈다.”

실행조는 딱 한 팀, 고천수를 중심으로 모인 셋뿐이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장소를 지정해 주거나 척후병으로 활용할 거야. 일정한 범위로 우리를 둘러싸서 안전을 도모할 거다. 그러다 가능하면 베타 조에도 정보를 공유하고.”

어떤 살인마가 나타날지도 모르고, 나타난다고 해도 아직 뚜렷한 대응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흑구까지 몸을 사려야 할 듯하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나는 고천수의 지시를 이해하고 곧장 이행에 나섰다.

“지금부터 인원을 나누겠습니다! 모두 앞으로 정렬해 주세요!”

분주해지는 단원들을 보며 고천수는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좋아. 가 보자.”

* * *

그 시각, O구역에서 서쪽으로 한 칸 옆인 N구역.

“어디로 갔을까?”

휴는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

“소리가 분명히 경쾌했는데 말이야.”

7층 입구에 들어오면서부터 들렸던 소리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전기톱 소리.

다른 엔진 소리일 수도 있었지만 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스읍-.”

아직까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휴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냄새.”

주변의 공기는 탁했다.

숨쉬기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각종 냄새가 혼합돼 있었다.

피 냄새? 아니, 약간 아린 것이 독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녀석은 아닌가?”

전기톱을 들고 날뛰던 놈이 이쪽으로 지나가지 않았을까 했다.

그래서 고천수의 일행이 향한 곳으로 가지 않고 최형식 일행이 서쪽으로 따라붙어서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클리어!”

“이쪽에는 이상 없습니다!”

“서둘러 이동한다!”

저 앞쪽에 최형식 일행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휴는 헛웃음을 뱉었다.

“다 뒈지고 싶나?”

수십 명의 인원.

최형식은 자신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7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이 인원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올라왔으니까.

위험한 괴물들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분명히 괜찮은 건 사실이긴 했다.

‘위험한 놈들만 없다면 말이야.’

고천수가 자신을 내보낸 것을 봤을 때 이 층에 있는 것은 살인마.

전기톱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나무를 베는 것도 아닌데 전기톱을 그냥 들고 다니는 놈은 없을 테니까.

“예전 생각나네.”

휴는 어릴 적 살인마에게 길러졌다.

그놈은 미쳐 있었기 때문에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는 했다. 그중에 가장 독특한 짓은 남의 집에 들어가서 주인을 죽이고 집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함께 움직이다 정신적인 계승이라도 된 것인지 휴도 항상 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놈과는 좀 다르긴 했다.

휴는 미치광이들의 집을 빼앗아 살고 싶어 했다. 아마 그놈이 자신도 살인마로 만들겠다며 끔찍한 짓을 저지른 탓이 아닐까 했다.

그놈 같은 녀석을 살려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

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착한 성격이라 고천수에게 붙은 건 아니었다.

처음엔 고천수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붙은 것뿐. 하지만 그는 뭔가 달랐다.

마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 이곳에서 날뛰라고 보내 준 것도, 마치 모든 걸 알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으, 으아악!”

“뭐야!”

“다들 물러서!”

앞서나간 최형식 일행 쪽에서 비명이 터지고 있었다.

휴는 털레털레 걸어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팡! 파앙!

그곳에는 뭔가가 터져 노란색의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쩐지 탁하더라니.”

휴는 코밑을 손가락으로 슥 닦았다. 연기가 그가 있는 곳까지 뻗쳤다.

그는 하나 챙겨 두었던 방독면을 머리에 둘러썼다.

“좀 둘러볼까?”

휴는 뒤돌아 걸어갔다.

그러면서 근처에 있던 한 집에 들어가 물품을 살폈다.

“뭐가 있나~.”

살펴보니 일반적인 가정집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었다.

비닐봉투들과 은색의 테이프를 찾은 휴는 몸을 둘러쌀 방호복을 만들고, 가방을 하나 찾아와 페트병 몇 개, 그리고 가위를 집어넣었다.

터벅터벅.

준비를 마친 휴는 방호복을 입고 다시 노란색 연기가 터졌던 곳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쓰러져있는 십 수 명의 단원들이 있었다.

“너무 오바했나?”

증세를 보아하니 조금 고통스러워하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놈이 내성을 키운다고 조금씩 여러 가지 독을 지속적으로 먹였던 덕인지 휴는 어느 정도의 독소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독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때문에 대비책을 꾸려 왔지만 CS탄 수준인 듯하여 휴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단원들을 챙겨라!”

그 와중에 외침이 들려 휴는 고개를 돌렸다.

남은 인원들과 함께 방독면을 쓴 최형식이 쓰러진 단원들을 살피고 있었다.

‘피해는 그럭저럭인가.’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방독면도 있었기 때문인지 고천수 일행과 물자를 나눴음에도 최형식 일행은 CS탄에 대부분 대비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휴는 뿌옇게 가득 찬 연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연기가 아주 짙어. 그치?’

마치 다수 안에 개인이 몰래 잡입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찾았다~.”

“……!”

홀로 다른 모양의 방독면을 쓰고 있던 사내가 휴를 보고 놀라서 주춤거렸다.

“뭘 놀라? 동족끼리.”

푹!

휴가 내지른 칼이 사내의 어깨를 찔렀다.

“읍! 으읍! 읍!”

사내는 고통에 겨워하며 뒷걸음질 쳤다.

“조금 빗나갔네? 어디 가. 이리 와.”

휴는 도망치려는 사내를 계속 쫓아갔다.

“읍! 으읍!”

툭.

사내는 휴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휴가 더 빨랐다.

휴에게 칼등으로 목을 얻어맞은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하.”

휴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쭈그려 앉았다.

“읍! 으읍!”

사내는 그런 그를 보며 그저 겁에 질린 채 괴상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사내에게서는 아무런 적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휴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의 방독면을 붙잡아 당겼다.

확!

알 수 없는 인물.

고천수가 데리고 온 단원들 중 하나는 아니었다.

“으읍……!”

울상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입에는 테이프가 붙어져 있었다.

찌이익.

휴는 그 테이프를 떼며 물었다.

“누구?”

“콜록! 케엑! 콜록!”

CS탄을 들이마신 그는 답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서 뒹굴었다.

휴는 기지개를 켜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해 보자는 거지?”

휴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휴는 정보를 모르고 있을 거라는 게 좀 걸리네.’

경계조를 편성해 안전 고리를 형성한 뒤, 고천수는 제나, 그리고 흑구와 함께 이동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특정한 조건이 없으면 살인마를 잡지 못할 텐데, 역으로 당하지는 않으려나?’

자유롭게 날뛰게 해 주기 위해서 정글러로 투입했건만, 그 때문에 오히려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형님들, 휴가 정보가 없어서 당할 일은 없겠죠?”

-모르겠네.

-적응력은 뛰어난 놈인데, 흠.

-휴가 먹잇감을 가지고 놀려는 놈이랑 만나면 오히려 괜찮을 거.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하자, 채팅창에 말이 더 올라왔다.

-바로 육체전으로 가는 타입이 아니면 휴도 정보를 습득할 시간이 있을 거라는 얘기임.

-자기 가지고 놀려고 하는 거 알면 휴도 똑같이 하려고 존버하다가 오히려 정보 습득한다는 것?-오, 그럴 듯.

살인마 위의 살인마 콘셉트라면 시청자들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휴는 확실히 일반인과 행동양식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미친놈을 상대할 때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계획적이었다.

공항에서의 일만 보아도 상대방의 주위를 맴돌며 가지고 놀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성향만 발현된다면 휴에게 좀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치익! 알파 제로, 여기는 알파 원. 재단사 전방 약 200m 거리에서 확인.』

무전이 들어왔다.

재단사는 다시 활동을 재개한 듯했다.

‘역시 멀쩡하네.’

흑구가 던져 버린 행위로는 죽지 않는다.

‘살인마는 역시 사람이 아닌 것 같네.’

공포게임에서 흔히 쓰는 콘셉트를 생각하자면 이곳은 지옥과도 같은 곳일 확률이 높았다.

살인마는 일종의 악귀로, 사람의 형태를 흉내 내고는 있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이었다.

“천수 님, 어떻게 할까요?”

제나가 옆에서 지시를 기다렸다.

고천수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들었다.

“여기로 갈 거야.”

재단사가 남기고 가는 명함에 그려진 양복점의 약도가, 거기에 있었다.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위험하겠지.”

제나의 말에 고천수는 한숨을 쉬었다.

“시체들을 마지막에 거기로 가져가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힌트도 거기에 있었다.

물론 재단사를 그냥 건너뛰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고천수가 느끼기에 입구 근처에 있던 이 살인마는 그래도 상대하기 쉬운 존재일 거란 추측이 들었다.

여기서 끝장내고 가는 것이 좋을 터.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이야. 들키지 않게만 간다.”

고천수는 시야에 보이는 재단사를 눈으로 쫓으며, 무전기를 끄고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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